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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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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년의 시간 동안 번데기 속에 갇혀있던, 그러나 끝내는 우화(羽化)를 이룬 로젤린 아스칼로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나진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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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심상의 편린을 자각한 지 일개월하고도 조금의 시간이 지나, 이개월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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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6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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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으로 심상의 편린을 자각한 이들은 통상적으로 40일 내로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오르곤 한다. 애당초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오름에 있어 중요한 건 심상을 자각하는 것이지, 그다음 과정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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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진은 심상을 자각했음에도, 두 달에 가까운 세월 동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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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리 오래 정체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태껏 막힘없이, 남들의 수십 배에 가까운 속도로 성장해 왔던 나진에게 있어 자신이 정체됐다는 것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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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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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 탈피. 검기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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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그 과정이 좀처럼 감이 잡히질 않았다. 뜬구름을 잡는 것 같은 소리. 로젤린은 말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게 좋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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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합리적인 지적이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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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가에 멀린의 목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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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남들보다 오래 걸리는 건 당연한 일이야. 왜? 네 심상에는 중심점이 두 개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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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한쪽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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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보이는 것은 제 심상에 자리 잡은 풍경이다. 높은 곳에 뜬 별과 낮은 곳에 뜬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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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보통 하나의 심상만을 품어. 하나의 중심점을 가지고 있지. 하지만, 넌 아니야. 네 심상에는 중심점이 두 개거든. 이건 이상한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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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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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신기한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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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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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게 아니야. 사실, 그 누구도 알려줄 수 없는 거지. 답은 너 스스로 찾아야 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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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의미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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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만, 의미를 가질 수 있지. 멀린은 그렇게 말했다. 나진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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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힌트를 주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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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심상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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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하늘에 뜬 별을 바라보며 멀린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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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타협하지 마. 네 눈에 보이는 세계가 아닌, 네가 품은 세계만이 진실한 것이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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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에 이른 대마법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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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自身)만을 자신(自信)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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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초월로 향하는 길을 걷는 자가 가져야 할 덕목이야. 어쩌면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며, 또한 지독하기까지 하지. 그리 속삭이며 멀린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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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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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란 삶의 윤활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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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탈진해 들판에 대자로 뻗은 나진을 내버려둔 채, 그는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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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퍽한 삶도, 지랄 같기 그지없는 삶도, 술 한 잔만 걸치면 제법 나아지는 법이거든. 그래서 난 술을 좋아한다. 아쉽게도 요즘은 취기가 좀처럼 느껴지진 않지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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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가 술을 홀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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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으, 하고 입가를 훔친 사내는 말린 고기를 한 점 입에 넣고선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을 지었다. 나진은 문득 사내가 쥔 술병과 고기 조각을 흘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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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나 살 수 있는 싸구려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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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말려 염장했을 뿐인 육포 쪼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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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디흔한 것들이지만, 눈앞의 사내가 그것을 즐기고 있는 순간부터 그건 흔한 게 아닌 것이 됐다. 나진은 비명을 질러대는 몸을 간신히 일으키며 사내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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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의 교단의 주인, 검성 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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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포를 안주 삼아 싸구려 술을 즐기고 있는, 별 여섯 개를 가진 소드 마스터를 보며 나진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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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소박하게 즐기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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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기에 의미가 있는 거지. 너도 한잔할 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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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술은 좀. 육포만 한 조각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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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에게 육포 한 조각을 받아 질겅거리며 나진은 뻐근한 어깨를 풀었다. 한두 달 간격으로 검을 봐주겠다고 검성은 약속했었고, 오늘이 약속했던 그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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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반나절 정도 휘둘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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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와 팔이 비명을 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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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격 일격에 모든 것을 쥐어짜 내도 결코 닿지 않는 상대. 그런 상대에게 반나절 가까이 달려들었으니, 혹사당한 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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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 훨씬 더 날카로워졌더군. 움직임도 더 좋아졌고. 괜찮은 상대를 만났던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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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상대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서너 번 죽을 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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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대답에 검성이 웃음을 터뜨리면서 술을 홀짝였다. 크으, 하고 술병을 내려놓고서 검성이 턱짓했다. 계속 이야기해 보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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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베니아 공작가의 기사단장, 그리핀 경과 검을 맞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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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트리가디언의 검을 쓰는 자로군. 타협 없는 우직한 검을 휘두르는 기사인데, 그 우직함을 뚫어내기란 몹시도 어려운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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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으론 걸작 ‘불그림자’를 소유한 4 서클의 흑마법사 파우베와 전투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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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을 소유한 흑마법사라, 그거 흥미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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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前) 테첼 산맥의 레인저, 카프만 테오시스와 맞부딪쳤습니다. 아, 이게 제일 위험했던 것 같네요. 실제로 몇 번은 죽을 뻔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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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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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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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하다만, 너도 제법 극적인 삶을 사는군. 그 짧은 시간에 그만한 적을 연달아 마주치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혹시 찾아다니면서 결투라도 걸어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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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더군요. 절 죽이려는 사람이 좀 많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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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은 나진의 말에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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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디까지나 나진에게 검을 가르쳐줄 뿐, 나진의 삶에는 눈곱만큼도 관여하지 않을 거라고 선을 그어놨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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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다 살이 되고 뼈가 되는 경험들이군. 다양한 전투 경험만큼이나 값진 것이 또 없지. 이 기회에 실컷 단련해 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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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살아남아야 경험이 되는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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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로 죽으면 그 정도 그릇일 뿐이지. 살아남는 것 자체도 성장 과정이다. 생과 사의 경계선에서만 쌓을 수 있는 경험이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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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헛웃음을 흘렸다. 대화를 나눌 때마다 느끼지만, 나진이 느끼는 바에 의하면 카론도 정상은 아니었다. 전투광적인 기질이 다분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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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말하면 흰소리에 불과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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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고 강자에게 덤벼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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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전장과 캄란의 경계선에 뛰어들며, 생과 사의 경계선에서 줄타기하며 살아가는 검성의 말이니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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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한 방식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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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정답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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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이 제 칼자루를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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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게르드 경도, 유엘 그 친구도 이런 방식으로 초월의 길에 올랐지.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숱한 전장에 발을 디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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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진을 바라보며 히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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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마스터를 아무나 하겠나? 미친 자들만이 소드 마스터가 되는 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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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 경께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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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이지. 난 나를 정상인이라 생각하지만, 세간의 기준에선 나 또한 정신병자에 불과해. 그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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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이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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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륙에서 활동 중인 소드 마스터들 중에선 내가 제일 정상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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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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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귀, 유엘 라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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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제일각, 게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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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소드 마스터 중에 자신이 제일 정상이다. 카론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애초에 유엘 라지안은 정상과는 일억 년만큼의 거리가 있었으니, 남은 비교 대상은 게르드였는데······ 나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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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드 경은 제국제일각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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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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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중추를 담당하는, 어마어마한 권력가인데··· 그분보다 카론 경이 더 정상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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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나를 어떻게 보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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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이 어이없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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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네가 게르드 경에 대해 몰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야. 그자는 검과 제국 이외에 아무것도 모르는 인물이야. 어떤 의미로는 유엘 라지안보다 더한 광인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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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과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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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드를 구성하는 두 가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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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을 위해 그자는 제 딸과 아들을 제 손으로 죽였지. 부인을 비롯한 제 친족 모두를 죽였어. 그들은 반역도였거든. 어디 그뿐일까? 검을 위해 그자는 제 인간성을 비롯한 모든 것을 포기했어. 검을 휘두르는 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에서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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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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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의 경지란, 완벽으로 향하는 길이란, 역설적이게도 무엇을 버림으로써 완성되지. 나도 유엘 라지안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게르드 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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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이 잠시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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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길게 숨을 뱉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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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보다 버린 게 더 많지. 그자는 검과 제국을 제외한 모든 것을 덜어냄으로써 초월에 이르렀어. 무서운 집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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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확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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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 부르긴 어려운 존재지. 뭐, 유엘 라지안이야 말할 것도 없고. 어떤가? 이젠 네 앞에 앉아있는 내가 좀 상식인처럼 보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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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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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할 순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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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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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유엘 경과 만난 경험을 떠올려보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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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유엘을 만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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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와의 전투 직후, 상황 파악을 위해 파견 나왔던 유엘 경과 마주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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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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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이 식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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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죽을 뻔했군.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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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죽을 뻔했습니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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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엘과 만났다면, 그자가 분명 네게 눈독을 들였을 텐데··· 앞으로 고생 좀 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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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동정한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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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서 자네가 내 제자였단 사실이 밝혀졌다면, 예쁘게 포장된 머리 하나가 검의 교단에 배송됐었겠군. 과연 끔찍한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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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과 만났단 사실을 숨기길 잘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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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그리 중얼거리며 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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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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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진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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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가 본론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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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羽化)에 대해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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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십 년도 더 전에 건너온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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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이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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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심상의 편린을 자각한 듯싶던데. 우화를 거치는 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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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는 막혀있습니다. 검기의 재구성이 무엇인지 감이 안 잡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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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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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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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 탈피. 검기의 재구성. 말로 하면 어렵지만 실은 단순하고 또 명료한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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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게 펼쳐진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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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의 위에서 카론이 검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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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란 한 필의 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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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마스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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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이, 검(劍)에 대해 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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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는 붓을 물들이는 물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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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의 검 위로 검기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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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피워 올린 검기를 나진은 두 눈으로 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까마득한 경지의 차이는 인지조차 왜곡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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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붓이고, 검기는 물감이며, 물감은 곧 네가 품은 심상이다. 심상은 곧 너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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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검성이 검을 휘두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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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검이 한 뼘 앞으로 나아간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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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휘두름이란, 세상 위에 너의 세상을 덧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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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눈동자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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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의 검(劍)이 나아간 궤적을 따라 덧칠되는 풍경을. 그것은 검성이 품은 심상이었고, 그의 영혼이 가진 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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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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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이 가벼이 검을 휘둘렀다. 그가 휘두른 검의 궤적을 따라 세상은 덧칠됐다. 나진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검성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는 얼추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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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검의 길을 걷는 이들이 추구해야 할 종착지. 그리고, 소드 시커는 검의 길을 찾아 헤매는 구도자다. 그들은 검을 휘둘러 세상을 물들이진 못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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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이 납검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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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검기가 뻗어나가는 곳만큼은, 자신만의 세상으로 만든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도 확고한 자신(自信)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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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마스터가, 나진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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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 넌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냐. 스스로의 행실을 가다듬는 건 훌륭한 일이며 칭찬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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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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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자기 자신의 부정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스스로의 본성을 부정해선 안 될 일이지.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꾸려 들지 마라. 완벽으로 향하는 계단은 한 번에 뛰어넘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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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이 검집으로 나진의 심장을 쿡,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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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새장을 부숴라.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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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면 새로운 길이 열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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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가르침은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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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을 옮기며 카론이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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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볼 땐 검의 구도자가 되어있길 바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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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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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도시, 캄브리아의 중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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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길드와 상인의 거리가 인접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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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상부 이 도시의 심장이라 불릴 위치에, 디에타 상회의 건물은 우뚝 솟아있다. 그리고 그 건물의 최상층에는 한 마리의 뱀이 똬리를 틀고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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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를 삼키는 뱀, 디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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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서류, 계약서, 거래 증표, 명세서, 숱한 숫자와 문장으로 둘러싸인 집무실에서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금화를 닮은 샛노란 눈동자가 마석등의 빛을 빨아들여 금빛으로 번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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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사람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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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돈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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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돈이 움직인 곳에는 당연하게도 흔적이 남는다. 정보가 남는다는 뜻이다. 무릇 유능한 상인이라면 금화가 지나간 길과, 앞으로 지나갈 길을 알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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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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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를 삼키는 뱀, 디에타는 전례 없는 상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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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쌓아 올린 업적은 단순한 행운과 몇 가지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녀는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렸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게.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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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동자는 금화를 쫓는다. 금화가 흘렀던 곳과, 앞으로 흐를 곳, 그리고 모여드는 곳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그것이 그녀가 타고났으며, 지난 수년간 갈고닦은 재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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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이해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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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으로 흐름을 만드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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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를 삼키는 뱀은 금화를 튕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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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가 검을 휘두르고, 마법사가 마법을 부리고, 사수가 화살을 쏘듯, 금화를 삼키는 뱀은 금화를 튕겼다. 그것이 그녀가 가진 무기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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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튕긴 금화가 지도에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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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는 모험가 도시의 각지로 퍼진다. 금화의 형태는 정해져 있지 않다. 때로는 사람이고, 때로는 의뢰이며, 때로는 주점에서 오가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금화가 흐르는 물길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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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로 만들어낸 물길, 그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물길이란 사실도 모른 채 물고기는 꼬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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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디에타는 다만 낚싯대를 물길에 휙, 던져둘 뿐이다. 그렇게 낚시꾼은 금화로 만들어진 낚싯바늘을 드리운 채 기다린다. 어차피 시간은 그녀의 편이다. 하물며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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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을 튕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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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를 한 번 튕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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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의 속도마저 그녀가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으니. 빠르게 몰아치는 물길. 거센 물살에 물고기들이 휩쓸리기 시작한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물살에 시야가 흐려진 물고기들은 기어코 미끼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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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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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낚시꾼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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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로 만든 낚싯바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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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끝에 꿰인 물고기가 허덕이고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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