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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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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부터 납치를 당했다.

팔을 붙잡힌 채 대뜸 마차에 태워져선, 목적지도 모른 채 끌려가는 이 상황은 납치라 부르기에 충분한 상황이라고 나진은 생각했다.

-납치는 무슨? 작정하면 마차 부수고 탈출까지 몇초도 안 걸릴 텐데.

‘일단 납치는 맞잖아요.

-얼씨구. 소드 시커에 근접한 놈이 잘도 납치당하겠다.

부정할 순 없군.

나진은 짧게 숨을 내뱉곤 마차의 등받이에 몸을 파묻었다. 확실히, 상황만 놓고 보면 납치이지만 자신도 거부하진 않지 않았던가.

“······.”

나진은 말없이 맞은편을 바라봤다.

그곳엔 무릎을 꼼지락대며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는 디에타의 모습이 보였다. 일단 마차까진 끌고 왔는데, 그다음은 생각을 안 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마차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

“네, 네에?”

“목적지가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고개를 휙 든 디에타가 제 가슴팍을 쓸어내리더니 입을 열었다.

“제국의 수도요. 카멜롯.”

“···카멜롯?”

“네, 카멜롯에 들를 일이 있어서. 호위 기사를 제외하고 하나 더 동행할 수 있는데, 같이 가면 좋잖아요?”

제국의 수도 카멜롯.

나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저를?”

“···몰라서 물어요?”

디에타가 한숨을 쉬며 팔짱을 꼈다.

“같은 임무를 맡았던 카프만 경은 임무 도중 전사하셨지, 흑마법사의 공방이 발견됐다느니, 교단의 처형인이 방문했다느니 흉흉한 소문은 한가득하지.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그렇습니까?”

“네, 그래요. 뭘 신기하다는 듯 그렇게 봐요? 당연히 걱정하지.”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온갖 지원을 받으며 상단의 홍보 모델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 모델이 외지에서 객사한다면 손해도 이만저만이 아니겠지.

나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이다. 디에타가 눈을 게슴츠레 뜬 채 나진을 노려봤다.

“당신, 지금 ‘내가 모델인데 죽으면 상단에 손해가 가기야 하겠지. 하는 생각 하고 있죠?”

“어떻게 아셨습니까?”

“내가 미쳐 진짜. 네, 뭐. 맞아요. 상단에도 손해가 있긴 할 텐데 이유가 꼭 그거뿐이겠어요?”

디에타가 그럴 줄 알았다면서 길게, 아주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조금 섭섭한 듯한 눈치로 나진을 바라봤다.

“우리, 일적으로만 만나는 사이 아니잖아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까진 안 바라도, 친구 정도는 되잖아요? 그 정돈 됐다고 생각했는데.”

앞에 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뒤에 이어진 이야기는 들을 수 있었다. 디에타의 말을 듣던 나진은 침묵했다. 친구. 낯선 단어였으니까. 지하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진에게 친구란 존재가 있을 리가 없다.

경쟁자이거나.

죽여야 할 대상이거나.

그도 아니라면 일방적인 관계가 대부분이었다. 아트만에는 나진을 동경하거나, 질투하거나, 두려워하는 이들만이 가득했으니까. 제대로 된 관계라 해봐야 이반과 오펜, 그리고 호겔 영감 정도일 텐데······.

‘그건 친구라기보단 어른이나 스승 느낌이고.

그럼 친구란 무슨 느낌이지.

‘친구의 정의가 뭐죠?

-뭐어···?

나진이 제 턱을 매만지며 멀린에게 질문했다. 멀린은 어이없다는 듯 반문했고, 나진은 살짝 고개를 숙인 채 고뇌했다. 친구, 친구라.

“설마 지금 친구가 뭔지 생각 중인 거예요?”

“···제가 그런 걸 가져본 적이 없어서. 디에타는 친구가 있습니까?”

“지금 그거 굉장히 무례할 수도 있는 질문이에요. 그래도 답해드리자면, 당연히······.”

디에타 또한 침묵했다.

친구, 단어만 보면 간단하다. 말 좀 트고 악수도 좀 하고 같이 놀러 다니면 그게 친구이지 않은가. 하지만 디에타가 생각하는 친구란 조금 다른 것이었다.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

가면을 벗고 마주할 수 있는 상대.

그런 의미에서 친구라면,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녀 또한 파란만장한 유년기를 거친 까닭에. 만일 눈앞에 앉아있는 사내가 친구임을 부정한다면, 자신은 친구 한명 사귀어 본 적이 없는 게 되는 것이다.

“······저도, 없네요.”

디에타가 문득 웃음을 흘렸다.

스물 다 된 남녀 둘이 자리에 앉아, 친구의 정의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니. 웃긴 상황이지 않은가. 엷은 웃음을 머금은 채 디에타가 말했다.

“전 당신이랑 친구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음 좀 섭섭하긴 한데···.”

디에타가 나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금부터라도 친구 할까요, 그럼.”

“그 친구라는 게 뭐 하는 역할입니까?”

“그냥,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 같이 있으면 즐겁고 편하게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

“그렇다면······.”

디에타의 손을 맞잡은 채 나진은 생각했다.

확실히, 디에타를 상대로는 조금 편하게 있을 수 있었으니까.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맞는 것 같기도 하네요. 친구.”

“그렇죠?”

나진의 악수를 받으며 디에타는 생각했다.

그녀의 눈에 나진은 언제나 완벽하고, 유능한 인물이었다. 검술이면 검술, 위장술, 도주, 처세술, 그리고 전투까지. 용병으로서 꿀리는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친구라는 단어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낯설어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새로운 면을 마주하게 된 느낌이라 신선했다. 인간관계 쪽으론 낯설단 말이지. 하기야, 원래부터가 조금 벽만 보고 살아가는 느낌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쪽으로 약하단 말이지···?

디에타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사람의 심리에 쓱 파고들어 이용해 먹는 건 상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 아니던가. 비록 친구 한명 사귀어 본 적이 없다 한들, 이건 그녀의 전문 분야였다. 디에타가 탐욕스러운 눈동자로 나진을 바라봤다.

‘이렇게 저렇게 구워삶으면.

나만 바라보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친구란 매일 찾아와서 인사를 나누고, 밥도 같이 먹고, 그 다음은······.

“친구라.”

그렇게 디에타가 머리를 굴리고 있을 무렵이다. 나진이 문득 입을 열었다. 혼잣말이었지만, 디에타의 이목을 끌기엔 충분한 목소리였다. 목소리에 끌려 고개를 든 디에타는 나진의 얼굴을 보았다.

나진은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친구라는 울림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그 모습을 본 순간 디에타의 머리가 새하얗게 표백됐다. 디에타가 휙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거세게 뛰는 심장을 꾸욱 누르며 디에타는 애써 호흡을 가다듬었다.

······인간 관계에선.

아니, 남녀 관계에선 먼저 좋아하게 된 쪽이 진다고 했던가. 그 말대로라면 이미 자신은 패배자 딱지를 이마에 붙인 채로 전장에 나선 것이다. 패자와 승자를 뒤집으려면 보통 각오론 불가능하겠지.

‘쉽지 않은 싸움이다.

그러니까, 일단은 친구부터.

시작이 반이라 하지 않은가. 시작했으니 온 거나 마찬가지다. 절반이나 왔으면 많이 왔네. 그러니 오늘은 여기서 좀 여유롭게······.

“······.”

디에타의 호위 기사 파시온.

말을 몰던 그는 슬쩍 뒤를 돌아보고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에서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진 몰라도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인 제 주인의 상태를 보아하니 글러 먹은 것 같았으니까.

힘내십시오 디에타 님.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며 파시온은 말을 몰았다.

제국의 수도까진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차가 움직이는 동안에도 나진은 주변을 경계하며 감각을 한계까지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이는 디에타가 보기에도 이상한 것이었다. 무언가에 쫓기거나 몰리고 있는듯한 모습.

날카롭게 뜬 눈동자.

언제나 칼자루에 얹어져 있는 손.

꼭 나진을 처음 볼 때와 같았다.

그날 골목길에 걸터앉아있던 나진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으니까. 이에 대해 말을 꺼내려다가, 디에타는 아직 이르다고 판단하고선 말을 아꼈다.

“누가 됐던.”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흘러 제국의 수도, 카멜롯에 가까워질 무렵. 디에타는 나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국의 수도에서 당신에게 해를 입히진 못할 거예요. 황도의 한복판에서 누군가를 습격해 피를 흘리게 만들거든, 결코 그분께서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요.”

“그분이라면?”

“소드 마스터, 게르드 경이요.”

긴장을 풀어도 된다는 조언.

그 조언을 들은 나진은 눈을 깜빡였다. 뒤늦게 자신이 사방을 경계하고 있단 게 들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나진은 어설픈 웃음을 지었다.

“···티 많이 납니까?”

“이야기할 때는 물론, 잠에 들 때도 칼자루에 손을 얹고 있는데 티가 안 날까요.”

디에타가 쓰게 웃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해요.”

그리 말하며 그녀가 팔을 뻗어 앞을 가리켰다.

“도착했네요.”

그녀가 가리킨 곳엔 거대한 관문이 있었다.

“제국의 수도, 카멜롯에.”


브리튼 제국의 수도 카멜롯.

수도를 감싼 거대한 성벽을 지나치면 그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신화와 함께한 제국 브리튼의 중심이다. 마차에서 내린 순간 확 넓어진 시야에 나진은 숨을 헛삼켰다.

세상의 중심이라 불리는 곳.

고개를 들어 올리면 시야에 들어오는 곳은 하늘 높이 솟아오른 탑(塔)들이다. 일곱 개의 마탑이 제국의 수도를 감싸고 있었으나, 탑이 그림자를 드리우는 법은 결코 없었다. 특수 처리된 탑의 벽면은 반투명하게 햇빛을 투과했고, 제국의 그 어디에나 공평히 태양 빛이 내려앉았다.

드넓은, 끝이 보이지 않는 도시.

그런 도시의 중심이자, 가장 높은 곳에 황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백금색으로 뒤덮인 거대한 궁. 고개를 들어 황궁의 꼭대기를 바라보면 그곳의 하늘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제국의 중심이자 세상의 중심.

그곳의 정중앙에 뚫려있는 구멍.

대낮임에도 푸르른 하늘 사이에 뚫려있는 구멍은 밤하늘처럼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어둡지는 않았다. 뚫린 구멍 너머에 자리 잡은 별이 있었기에.

열세 개의 별로 이루어진 별자리.

제국의 첫 번째 황제이자.

브리튼의 적법한 주인.

대영웅, 기사왕 아서의 별.

아서의 별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제국의 한가운데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그 모든 풍경에 나진은 압도됨과 동시에, 짧게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이네, 여기도.

나진의 눈으로 카멜롯을 바라보는 멀린은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그녀가 알고 있던 카멜롯과는 너무나도 많이 바뀌어 있었으니까.

브리튼은 본래 제국이 아니었고.

카멜롯 역시 이토록 거대하지도 않았다.

본래 브리튼은 아서와 원탁의 기사들이 나라를 잃은 피난민들을 위해 세운 거처에 불과했다. 지금은 수도라 불리는 카멜롯도 본래는 낡은 고성일 뿐이었고.

-많이도 키웠네.

그런 브리튼은 어느덧 대륙을 호령하는 제국이 되었고, 낡은 고성이었던 카멜롯은 일곱의 마탑을 거느린 거대한 수도가 됐다. 복잡한 감정을 품은 채 멀린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이쪽이에요.”

그리고, 디에타는 나진의 팔을 잡아끌었다.

디에타에게 이끌려 나진이 도착하게 된 곳은 온갖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였다. 건물에는 저마다 깃발이 매달려 있었는데, 각 가문을 대표하거나 특정한 집단을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건물들 사이에.

디에타 상단의 문양이 새겨진 건물 역시 있었다. 다른 건물들에 비해 작고 초라하며, 아직은 깃발만이 달린 볼품없는 건물.

탁.

그 건물의 앞에 선 디에타가 나진을 돌아봤다. 그녀는 미소 짓고 있었는데, 이 건물 자체가 몹시도 마음에 든다는 미소였다.

“저희 상단의 건물이에요.”

그녀가 건물 앞에 제 발자국을 찍었다.

건물의 문을 열며 디에타가 손짓했다.

따라 들어오라는 듯이.

나진은 디에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아직 건물의 안에는 가구가 채워지지 않아 삭막했다. 청소도 덜 됐는지 군데군데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그렇게 디에타를 따라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계단을 타고 나진은 최상층으로 향했다.

최상층이라 해보아야 3층이 전부였지만.

건물의 가장 높은 곳에서 디에타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창문을 활짝 열고 디에타는 제 옆을 손짓했다. 탁탁, 창틀을 두들기는 디에타의 손짓에 못 이겨 나진은 그녀의 옆에 바로 섰다.

“여긴 카멜롯의 상인의 거리예요. 캄브리아에 있는 상인들의 거리와는 비교가 안 되죠?”

“그렇네요.”

“여기에 부지 하나만 세워도 성공한 상단이란 소리를 듣거든요. 저기 걸린 깃발들 보여요? 록티드 상단, 코넬하일드 상단···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상단들이에요. 지금의 제 상단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상단들이죠.”

깃발과 문양으로 화려히 장식하고.

저 높은 곳까지 쌓아 올린 건물들.

그런 건물들을 가리키며 디에타가 말했다.

“그래도, 기회의 도시에서 시작해 제국의 수도에 건물을 세운 건 저희 상단이 처음이에요. 제가 처음이란 뜻이죠. 이거 엄청난 업적이에요?”

“그렇습니까?”

“네. 지금이야 뭐 이런 볼품없는 건물이지만.”

디에타가 고개를 돌려 나진을 바라봤다.

나진을 바라보며 그녀는 미소 지었다.

“나중엔 저 건물을 먹어버릴 생각이에요.”

이 거리에서 가장 높은 건물. 코넬하일드 가문의 깃발이 걸려있는 건물을 가리키며 그녀는 웃었다.

“캄브리아에서 그랬듯이, 이 거리를 죄다 집어삼켜서 제 것으로 만들고······.”

그다음은 저기죠.

그녀가 손가락을 쭉 뻗어 황궁을 가리켰다. 황궁의 주변에는 우뚝 솟은 망루와 같은 형상의 탑이 다섯 개 있었는데, 사람들은 저 탑을 가리켜 제국의 다섯 기둥이라 불렀다.

제국의 다섯 기둥.

제국을 지탱하는, 황제를 제외한 제국에서 가장 위대한 다섯에게 주어지는 탑. 저 탑 중 하나에 소드 마스터 게르드가 있음을 나진은 알았다.

“저 탑의 주인이 되는 거.”

그 탑을 가리키며 디에타가 말했다.

“그게 제 목표예요. 나진, 당신 덕에 꿈꿀 수 있게 된 목표.”

탑을 바라보는 디에타의 눈동자는 샛노랗게 번들거렸다. 금화를 삼키는 뱀의 눈동자였고, 디에타의 눈동자였다.

“제국의 수도로 대뜸 끌고 온 것도 별 이유 없어요. 그냥 당신이랑 같이 보고 싶었거든요. 어때요? 엄청 어려워 보이죠?”

“쉽지는 않아 보이네요.”

“당신이 할 말은 아닌데.”

디에타가 히죽였다.

“당신 목표는 저깄잖아요?”

디에타가 눈짓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않아도 나진은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진은 황궁의 꼭대기에 걸려있는 별을 바라봤다.

가장 높은 곳에 걸린 별.

가장 위대한 별, 아서의 별자리.

그 별을 바라보며 나진은 문득 웃었다. 갈길이 참 멀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갈길 참 멀군요.”

“저도 그래요. 저 깃발들을 다 떨어트려야 제가 저기에 오를 수 있을 텐데, 벌써 한숨부터 나오네요.”

디에타가 몸을 돌렸다. 창가에 등을 기댄 채, 그녀가 제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러니까.”

그녀가 팔을 뻗어 나진의 멱살을 붙잡았다.

콱, 붙잡은 나진의 멱살을 그녀가 잡아당겼다. 가느다란 손가락이었고, 언제든 떨쳐낼 수 있는 힘이었지만 나진은 순순히 디에타에게 끌려가 줬다.

가까운 거리에서 나진과 디에타가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의 숨결이 닿을 것만 같은 거리.

노을빛 눈동자와 샛노란 눈동자가 서로를 마주했다. 조금은 생기가 돌아온 나진의 눈동자를 가까이서 바라보며 디에타가 속삭이듯 말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아요. 그랬다간 될 일도 안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