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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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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파우베에 이어 카프만과의 전투.
강적과의 연전으로 지친 몸을 끌고 나진은 지하수로를 거닐었다. 걸음은 무겁고 눈꺼풀은 자꾸만 감겨왔다.
‘죽을 맛이네.
나진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엑스칼리버의 회복력과 포션이 있다곤 하나, 정신적 피로와 치명상은 곧장 회복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카프만에게서 도주하며 내팽개쳤던 파우베의 시체를 회수해 나진은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 지하수로의 바깥에 발을 디뎠을 때는 이미 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이른 아침,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살.
오랫동안 어두운 곳에 있다 바깥에 나오니 햇빛이 제법 낯설었다. 눈살을 찌푸린 채 나진이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햇빛에 적응을 하고 나서야 나진은 주변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
“······.”
지하 수로의 입구.
그곳에 모여있는 이들이 있었다. 성혈 교단의 이단심문관들이었고, 그들을 보조하기로 한 용병들이었다. 그들 중 몇이 나진을 발견하고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어?
그들은 눈을 크게 뜬 채 나진을 바라봤고, 뒤이어 나진이 끌고 온 파우베의 시체를 확인했다. 그들의 눈동자가 조금 더 커다래졌으며 그들의 입 바깥으로 경악 어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른 아침, 지하수로에 진입하기 위해 장비를 정비하고 작전을 되새기던 그들이 아니던가.
그런 그들이 마주한 건 상황이 이미 정리됐단 소식이다. 나진의 손에 끌려온 흑마법사의 시체가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었다. 그 점잖은 이단심문관들조차 눈을 부릅뜨는 가운데, 나진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곤 몇 걸음 앞으로.
용병단과 이단심문관 사이에 섞여 있는 자신의 고용주, 하이트에게 다가가 나진은 시체를 내려놓았다.
“허어······.”
하이트가 장탄식을 내뱉었다.
“대단하시군요, 정말.”
하이트가 나진에게 요구했던 것은 가능한 빠르게 일을 처리해 줄 것. 혹은, 더 이상 이단심문관 쪽에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게끔 선발대로서 파우베의 힘을 빼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진은 그 둘 모두를 완벽하게 이행했다.
이는 하이트와 이 도시의 영주가 바란 대로 빠르고 깔끔한 일 처리였지만······.
상황이 그들이 바라던 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그들이 바란 것과는 달리, 이번 사건은 조용하게 마무리 될 수 없었으니까. 도시의 지하에서 칠환(七環)의 흑마법사 ‘케팔론’의 공방이 발견됐으므로.
그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성혈(星血) 교단이 움직였다.
2.
치명상에 간단한 응급처치만을 한 뒤, 나진은 하이트가 마련해준 객실에서 하룻밤을 꼬박 골아떨어졌다. 그것만으로도 정신적 피로는 해소됐지만 몸에 뚫린 바람구멍들마저 그렇진 않았다.
‘거 크게도 뚫어놨네.
소드 시커급의 무인이었던 카프만.
과연 그 명성에 걸맞게, 카프만이 뚫어놓은 구멍들이 모두 메꿔지진 않았다. 물론 이미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회복력이었기에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진 않았다.
붕대를 감아 회복되는 상처를 감추고, 나진은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접견실에 도착하자 설명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파우베의 토벌 과정과, 자세한 설명을···.”
그들의 물음에 나진은 답했다.
파우베를 어떻게 토벌했는지, 그리고 도망치던 파우베를 추격하는 과정에서 케팔론의 공방을 발견했다는 이야기까지 전부.
물론 케팔론의 공방은 이미 이단심문관들에 의해 그 위치가 드러난 상황이었다. 부자연스럽게 끊긴 핏자국으로 하여금 위치는 특정되고 말았으니까.
“허어···.”
나진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용주 하이트는 신음을 흘렸다. 결국에 교단의 개입을 피할 수 없게 됐으니까. 그러나 그 책임을 나진에게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숨과 함께 하이트가 입을 열었다.
“카프만 테오시스 경은 어디에?”
나진은 홀로 지하 수로에서 귀환했다.
그리고 카프만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나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전사하셨습니다. 흑마법사와의 전투에서.”
그게 나진이 선택한 대응이었다.
카프만이 교단의 사냥개였고, 자신의 손에 의해 죽임당했단 사실을 밝혀봐야 일이 복잡해질 뿐이다.
‘아직은 아니야.
교단을 무너트릴 힘과 권력, 그리고 명분.
그 모두를 가지게 됐을 때 비로소 카프만이 넘겨준 계약서는 다시 쓰이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까.”
하이트가 제 미간을 짚었다.
파우베를 추격하는 과정, 케팔론의 공방으로 도주한 그녀가 발현한 4서클 주문 ‘망자의 굶주림’에 당해 카프만은 사망했다.
그것이 나진이 증언한 카프만의 죽음이었다.
망자의 굶주림은 대상을 망자화시키며, 시전자가 사망할 시 망자들은 바스러지니 흔적이 남지 않은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는 이단심문관들의 조사 결과와도 일치하는 부분이었다.
‘공방에 준비된 제물들을 매개 삼아, 4서클 주문 망자의 굶주림을 시전한 흔적이 남아있다.
앞뒤가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카프만의 죽음을 공표해야 하는 하이트의 입장에선 속이 쓰릴 수밖에 없었다. 백각 등급의 모험가의 죽음과 잘못 판정된 추정 위험도.
‘이쪽의 불찰이다.
캄브리아 재단에 물어야 할 손해배상이 한두 푼이 아니리라. 하이트의 미간이 구겨졌다.
“수고하셨습니다. 의뢰 보수는 캄브리아 중앙 길드를 통해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하이트는 접견실을 나섰는데, 그 걸음걸이가 무겁기가 짝이 없었다. 속이 쓰린 듯 연신 한숨을 푹푹 쉬어대는 하이트를 흘겨보던 나진은 이내 접견실에 놓여있는 신문에 손을 뻗었다.
자신이 잠들어있던 하룻밤.
그 하룻밤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고자.
그렇게 신문을 펼치고 첫 장을 읽은 순간 나진은 깨달을 수 있었다. 하이트가 어째서 저런 반응을 보였는지. 속이 쓰리다 못해 다 죽어가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말이다.
「레겐오프 시의 지하로 도주했던 흑마법사 파우베, 추격 끝에 토벌에 성공해.」
「허나 레겐오프 시의 지하에서 발견된 시설.」
「수십 년 전 제국을 두려움에 떨게 한 흑마법사 ‘케팔론’의 공방이 발견 돼······.」
상황을 정리한 문장들.
그 자그마한 문장들의 뒤에 이어지는, 큼지막한 문장이 나진의 시선을 빼앗았다.
「성혈 교단의 개입.」
「교단의 처형인, 유엘 라지안 경께서 레겐오프 시에 방문 의사를 밝혀.」
칠환의 흑마법사가 남긴 공방.
이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사특하고 사이한 것들을 심판하는 성혈(星血)교단의 본진이 움직일 명분으로선 더할 나위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성혈 교단은 움직였다.
자신들이 가진 처형기관을.
걸어 다니는 심판대라 불리는 존재를.
교단의 처형인, 유엘 라지안.
여섯 개의 별을 가진 소드 마스터가 레겐오프 시에 걸음 한다. 나진은 아까부터 바깥이 소란스러운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이는 유명인을 맞이할 준비나, 축제와 같은 행사를 준비하는 소란스러움과는 다르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문을 걸어 잠그고, 거리를 치우고, 가게를 닫고 노점상은 가판대를 모조리 치워버리고 있다. 소란스러움과 함께 거리는 정리되고 있다. 아마 몇 시간 뒤면 거리는 쥐 죽은 듯 고요해지겠지.
그 모습이 나진의 눈에는 마치 ‘윗동네’ 사람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지하도시의 주민들 같아 보였다.
3.
교단의 처형인, 유엘 라지안.
그녀에 대해선 나진은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일찍이 소드 마스터들에 대해선 전부 찾아본 나진이지만, 유엘 라지안에 대해선 놀라울 정도로 정보가 결여돼 있었다.
제국의 첫 번째 기둥, 제국제일각 게르드.
검의 교단의 주인, 검성 카론.
성혈 교단의 처형인, 살인귀 유엘 라지안.
이 시대의 가장 이름 높은 세 소드 마스터 중 일각을 차지하고 있거늘, 유엘 라지안에 대한 정보는 다른 둘에 비하면 한 줌에 불과했다.
출신, 생애, 검술, 검기······.
그 어떤 것도 공개되지 않았다.
소드 마스터쯤 되면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드러내는 게 정상이거늘, 그녀의 유년기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었다. 고작 해봐야 이런 기록들뿐.
『새벽 전쟁에는 귀신이 돌아다닌다.』
『새하얀 백발을 끌며 돌아다니는 소녀가 있다. 소녀는 패잔병을 죽인다. 시체들을 뜯어먹으며 산다. 마주치거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라.』
『추정, 소드 시커.』
150년도 더 전에 일어났던 전쟁에서의 목격담.
『미친 살인귀가 있다.』
『흑마법사가 이끄는 집단 하나가, 백발의 소녀의 손에 의해 박살이 났다. 육환의 흑마법사가 무참히 살해당했다.』
『피 칠갑을 한 소녀가 성혈 교단에 흑마법사의 시체를 182구를 가지고 찾아와 보수를 요구했는데, 이에 대사제께서 크게 놀라 주저앉으시다.』
80년 전의 일화.
『성혈 교단의 처형인.』
『유엘 라지안.』
『대사제의 세례를 받고 십여년 만에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다.』
이게 그녀의 삶에 대해 알려진 전부였다.
150년 전부터 존재했으며, 70년 전에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인물. 소드 마스터쯤 되면 수명의 제한에서 자유로워지기에 그 나이 역시 알 수 없다.
그 모든 게 불명이지만, 그녀가 피로 물들인 역사는 제국의 역사서에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흑마법, 악마, 사특하고 사이한 것. 그런 것들이 들끓는 곳에 유엘 라지안은 걸음 한다. 걸음 하여서, 관련된 모든 것을 쳐 죽인다. 살인 그 자체를 즐기는 듯 사람을 죽이고 해체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그녀가 걸음 한 곳은 핏빛으로 물든다.
그렇기에 세상은 그녀를 두려워하고 또한 경외한다. 그녀에게 살인귀라는 멸칭이 붙게 된 것도 그쯤이었는데, 정작 유엘 본인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 멸칭을 제 이명으로 삼았다. 마음에 든다는 이유였다.
-제대로 미친년이지.
멀린이 턱을 괸 채 중얼거렸다.
-엑스칼리버의 후보자에 들었을 때 나랑 베디비어가 얼마나 비명을 질렀는지 너흰 모를 거야. 그년은 그냥 걸어 다니는 인간 백정이야.
질색하는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소드 마스터에 오르려면 검술에 통달해야 하고, 심상을 깨우쳐야 하고, 제 검으로 세상을 뒤흔들 줄 알아야 해. 그런데 내 시대에 어떤 미치광이가 이론 하나를 제시한 적이 있었거든?
‘이론이요?
-응, 정신 나간 이론이었는데 뭐라더라?
검을 휘둘러 사람을 죽이고.
피를 취하고, 그들의 영혼이 마지막으로 내지르는 비명에 귀 기울이며, 죽음 그 자체를 가까이한다.
-자세히 파고들면 좀 복잡하긴 한데, 요점만 말하면 이거야. 수만, 수십만 단위로 사람을 검으로 죽이면 심상이니 검술이니 그런 거 없이도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거지.
어이없는 나머지 나진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게 뭔 정신 나간···.
-그치? 내 시대에도 그 이론을 제시한 학자를 미친년이라고 욕했는데 말야.
멀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진짜로 행한 게, 유엘 라지안이라는 인간이야. 많이 죽여서 소드 마스터 경지에 오른 인간.
검의 묘리를 깨우친 것도 아니며, 제 심상을 세상에 그려내는 것도 아닌, 그저 단순히 많이 휘두르고 많이 죽여 정점에 오른 인간.
“······.”
나진은 침묵했다.
때마침 저 멀리서 마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성혈 교단의 문양이 새겨진 마차. 사람 하나 없이 한적한 거리에 마차가 멈춰 섰다.
끼이익.
이윽고 마차의 문이 열렸다. 화려해 보이는 마차의 외관과 달리, 마차에 타고 온 것은 한 명 뿐이다. 그 어떤 호위도 대동하지 않은 채 찾아온 귀빈이 마차의 바깥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또각.
마차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묘령의 여인이다. 허리까지 길게 늘어진 새하얀 백발과 하얗다 못해 창백하기까지 한 피부. 오롯이 하나의 색깔로만 이루어진 여인이었는데, 그녀의 눈동자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핏빛과 같은 붉은 눈동자.
마차에서 내린 그녀가 나진을 바라봤다.
붉은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나진은 제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섬뜩함을 느꼈다. 제 목과 몸이 분리되는 환상이, 제 몸에서 피가 쏟아지는 환상이 나진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콱.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채워둔 검을 뽑으려던 왼손을, 나진은 간신히 오른손으로 움켜쥐었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각이다.
카론과는 전혀 다른 기세를 내뿜는, 갈무리되지 않은 살기를 흩뿌리는 유엘 라지안의 모습은 그야말로 섬뜩하기 짝이 없다. 나진이 제 옆을 바라보니, 함께 서 있던 고용주 하이트는 눈을 까뒤집은 채 쓰러져 있었다.
-거봐. 미친년이라니까.
멀린이 기가 찬다는 듯 중얼거리는 가운데 나진은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유엘 라지안. 한없이 무표정한 그녀의 입꼬리가 조금이지만 움직이는 것을 나진은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