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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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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붙이와 날붙이가 맞부딪쳤다.

손과 어깨를 깊게 베여 활시위를 당기지 못하는 사수. 검기를 뽑지 못하는 상처투성이 검사. 어느 쪽이든 정상과는 거리가 먼 상태이며, 그 부상과 출혈량 역시 심상치 않다.

후두둑.

격한 움직임으로 하여금 벌어진 상처. 벌어진 상처에서 튀어 오르는 핏물. 만신창이가 된 이들이 피를 튀기며 싸우는 장면은 대개 초라하거나 볼품없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싸움은 그렇지 않다.

캉, 카앙. 카가가가각!

날붙이가 맞부딪치고 긁히는 소리.

1초에도 몇 번이고 연달아 울려 퍼지는 소음은 볼품없기는커녕 화려하기까지 하다. 쇳덩어리가 맞부딪치며 튀어 오르는 불똥이 핏물과 뒤섞였다.

두 사람의 발이 어지럽게 얽혔다.

파고드는가 하면 뒤로 물러서고, 뒤로 물러서는 듯하면 아예 옆으로 파고들어 측면을 노린다. 서로의 허점을 물어뜯기 위해 혈안이 된 사냥꾼들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돼 있다.

쿠웅.

나진이 발을 내려찍으며 검을 휘둘렀다. 발을 내려찍은 순간 허벅지에 뚫린 구멍에서 핏물이 튀어 올랐으나, 그 자세는 흐트러지는 법이 없다.

빠른 속도로 파고들며 휘두른 롱소드.

카프만은 마체테를 비스듬히 세워 롱소드를 받아냈다. 날을 타고 미끄러지게끔. 카프만은 레인저이기 이전에 제국의 군인이었으며, 제국 검술에 숙련된 검사이기도 하다. 멀리서 저격하는 편이 더 유용했기에 검을 쓰지 않았을 뿐이다.

허나, 카프만은 레인저고.

나진은 소드 시커에 근접한 소드 엑스퍼트다.

근력에서 밀릴지언정 검술에 있어서는 나진이 우위에 서 있다. 검의 정점에 오른 검성의 검술을 눈앞에서 식견한 나진이다. 나진의 눈동자엔 카프만이 걸어오는 기술의 허점이 훤히 보였다.

보인다면 찌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마체테를 타고 미끄러지던 나진의 검이 어느샌가 빙글, 돌며 카프만의 검을 휘어 감았다. 힘의 각도와 방향이 한순간에 뒤바뀌자 카프만이 눈을 부릅떴다.

핏!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었으나, 기어코 나진의 검은 카프만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튀어 오르는 핏물에 카프만은 혀를 찼다. 검투(劍鬪)는 피해야겠군.

미끄러지듯 거리를 벌리며 카프만이 단검을 투척했다. 챙, 채엥. 날아드는 단검을 쳐내며 나진이 한 걸음 파고드는 순간 카프만이 손에 쥔 단검과 마체테를 맞부딪쳤다.

각인 해방, 마탄.

표적은 카프만이 손에 쥔 푸른 단검.

나진의 등 뒤로 튕겨 나갔던 단검들이 새파랗게 빛나더니 타앙, 하는 격발음을 냈다. 푸른 빛줄기가 나진의 등줄기를 두들겼다.

투두두두!

시야의 사각. 빠른 속도로 쏘아진 마탄.

위력이 약한 주문이기에 나진의 몸을 관통하진 못하지만, 충격으로 하여금 나진의 자세를 무너트릴 정도는 됐다.

무너진 자세. 비틀거리는 나진.

그 틈을 사냥꾼이 놓칠 리가 없다.

파고들며 카프만이 마체테를 휘둘렀다. 휘두른 마체테가 나진의 어깻죽지를 찍으려는 순간, 나진은 기어코 몸을 움직였다. 충격에 경직된 몸을 억지로 움직인 까닭에 ‘우득’하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간신히 검을 받아내지만 카프만은 한번 붙잡은 흐름을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끝없이 나진을 몰아붙였다.

상대가 유리한 영역에서 싸워주지 않는다. 그것이 전투의 기본이며, 카프만은 나진이 제대로 된 기술을 펼칠 틈을 줄 생각이 없었다. 그리하여 펼쳐진 양상은 검투(劍鬪)가 아닌 박투(搏鬪)에 가깝다.

검을 휘두르는가 싶다가도 발을 뻗어 걷어차고, 팔꿈치로 관자놀이를 찍으며 무릎으로 타격한다. 검과 손, 발을 자유로이 휘두르고 때론 단검을 투척해 변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나진도 가만 당하고만 있진 않다.

누적된 부상 탓에 반응이 굼떠졌다곤 하나, 그 눈동자는 카프만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따라가고 있다. 피하지 못하는 공격은 치명상만을 피해 받아내고, 곧장 그다음 수를 낚아챈다.

콱.

카프만이 붙잡았던 흐름을 낚아채고, 그대로 자신의 흐름을 가져간다. 상대가 박투를 걸어온다면 거부할 생각이 없었다.

‘당신만 자신 있는 게 아냐.

개싸움에는 나진 역시 자신이 있었다.

자신의 근본은 사냥개이지 않은가.

때마침 습기에 가득 찬 지하수로의 공기와 어두움은 지하도시 아트만을 연상케 한다. 나진의 머릿속에 과거가 스치고 지나갔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살았던 나날들. 살아남기 위해 맨손으로 제 덩치의 두세 배는 되는 어른들과 싸웠던 과거를 나진은 떠올렸다.

개싸움, 좋다. 얼마든지 덤벼봐라.

당신이 내 목을 떨구는 게 빠를지.

내가 당신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게 더 빠를지.

그건 지금부터 겨뤄봐야 알 문제일 테니까.

개싸움이 이어지는 가운데, 카프만은 기이함을 느꼈다. 50년이 넘게 전장에서 사람을 죽여온 군인의 눈으로 보기에, 이 상황은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도대체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미친 듯이 달려드는 나진에게서 거리를 벌리며 카프만은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카프만의 눈으로 본 나진의 상태는 걸어 다니는 시체와도 같다.

복부에 박힌 화살촉. 폭발에 휘말려 화상을 입은 피부. 꿰뚫린 옆구리와 종아리. 뚫린 구멍에선 피가 철철 흐르며 등줄기와 어깻죽지에 박힌 화살은 뽑지도 않은 채 내버려두고 있다.

그 외에 자잘한 부상은 셀 수도 없다. 저만한 부상이면 과다출혈로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물론 다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기어코 몇을 더 끌고 가는 군인들을 보긴 했다. 하지만 그들조차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발버둥 치진 않았다. 끽해봐야 몇십 초가 고작이었지.

그러나 지금 눈앞의 상대는?

몇십 초는 진작에 지났다. 이젠 몇 분을 넘어가고 있거늘, 멀쩡히 검을 휘두르고 있다. 오히려 속도가 더 올라간 것 같기도 하다.

‘이건 도대체 뭔······.

칼에 찔리고 폭발에 휩쓸리고, 걷어차이면서도 벌떡 일어나 달려든다.

고통을 느끼지 않나? 아니, 그건 아닌 것 같다. 나진의 바짝 당겨진 턱 근육과 부러질 듯 꽉 문 치아 사이로 새어 나오는 피를 카프만은 보았다.

문자 그대로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저만한 부상을 입고도 거침없이 거리를 좁혀오는 모습은, 보고 있노라면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그 집념에 카프만은 혀를 내둘렀다.

전투의 흥분. 극도의 집중 상태. 아니, 어쩌면 몰입이라 해도 좋으리라. 카아아앙! 코앞에서 검을 받아내며 카프만은 나진과 시선을 마주했다. 핏발이 바짝 선 눈동자와 점처럼 수축한 동공.

보는 이로 하여금, 기세에 눌리게 만드는 섬뜩한 눈동자다. 카프만은 어이가 없는 나머지 헛웃음을 흘렸다.

촤아아악!

기어코 나진의 검이 카프만의 종아리를 할퀴었다. 카프만은 제 몸 상태 역시 서서히 망가져 감을 느꼈다. 상처가 늘었다. 출혈이 많다. 이젠 이쪽도 슬슬 과다출혈을 주의해야 할 상황이다.

결판을 내야 한다.

목숨을 걸고 변수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려본 게 얼마 만이던가. 타국으로 망명하려던 로얄 가드 사살 작전을 펼쳤을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한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당시의 풍경.

어째서 지금 그때의 일이 떠오르는가. 그 이유야 단순하다. 그때 펼쳤던 비장의 한 수가,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할 것 같았기에. 카프만은 십수 년 전의 작전을 떠올리며 몸을 움직였다.

콱.

카프만이 단검을 움켜쥐었다. 남은 단검 네 자루를 손가락에 한 번에 끼우고선, 다른 손에 쥔 마체테에 내리쳤다. 키이이잉! 하고 빛나는 네 자루의 단검.

움찔, 하고 나진이 반응을 보였다.

지금껏 주문이 각인된 단검에 몇 번이고 당한 나진이다. 무언가 오긴 올 텐데, 무엇인지 모르니 반응하지 못하는 거겠지. 지금의 반응을 유도하고 카프만은 다양한 각인이 새겨진 단검을 들고 다녔다.

주문 각인의 특성상 주문이 발현되기 전까지는 그 주문이 어떤 종류인지 알 수 없다. 물론 경지에 오른 마법사들은 날에 새겨진 각인만 보고도 그 종류를 맞춘다곤 하나······.

‘저놈은 칼잡이다.

마법에 대해 깊게 이해하고 있을 리가 없다. 지금까지 보여준 종류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대응을 준비하겠지. 그 순간 이미 걸려든 거나 마찬가지다.

주문 각인이야말로 카프만이 다루는 함정이다.

그리고, 제 함정에 걸려든 사냥감을 카프만은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단검이 빛나고 주문이 발현되려는 순간, 카프만은 두 자루의 단검을 내던졌다.

각인 해방, 파열.

나진의 코앞에서 굉음과 함께 폭발이 터졌다. 두 번의 폭발.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나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찰나의 순간에 반응해 피해를 최소화한 듯, 어깨에만 그을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직 두 개가 더 남았다.

카프만이 남은 단검 두 개를 내던졌다. 두 개의 단검을 내던지며 카프만은 눈을 감았다.

각인 해방, 섬광.

각인 해방, 울림.

번쩍이는 섬광. 그리고 고막을 뒤흔드는 찢어지는 소음. 경지에 오른 무인일수록 제 감각을 과신하며, 그 감각을 한없이 예리하게 열어둔 경우가 많다. 그런 이들에게 있어 이 주문은 천적과도 같다.

시각과 청각을 한순간 앗아가는 주문.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는 주문이 각인된 단검들 사이에 섞어둔, 변수를 만들어내기 위한 비장의 수. 이름난 무인이었던 로얄 가드조차 이 함정에 걸려들어 명을 달리했었다.

‘너 또한 마찬가지다.

카프만이 감았던 눈을 떴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미리 눈을 감았기에 카프만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눈을 뜨고 마체테를 휘두르는 카프만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감았던 눈을 뜨고 있는 나진의 모습이었다.

동시에, 달려드는 카프만의 움직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앞으로 쭉 뻗어오는 롱소드의 모습 역시 카프만의 시야에 들어왔다.

······도대체, 어떻게?

의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도 잠시.

푸욱.

카프만의 몸을 롱소드가 꿰뚫었다.

뻗어온 롱소드를 피하고자 발버둥 쳤지만, 치명상을 피하진 못했다. 어깻죽지가 롱소드에 꿰뚫림과 동시에 카프만의 자세가 무너졌다.

길었던 싸움이 결판이 났다.

무너진 자세. 바닥의 핏물을 밟아 미끄러진 카프만이 고꾸라졌다. 한쪽 어깨는 깊게 베였으며, 다른 어깨는 완전히 꿰뚫렸다.

더는 무언갈 들고 휘두를 상태가 못 됐다.

단검을 투척하는 것 정도야 노력하면 할 수는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각인된 단검은 바닥난 상황이었다. 카프만이 허탈한 웃음을 뱉었다.

“제대로 미친놈이야.”

몸을 일으킬 힘도 남아있지 않아, 바닥에 주저앉은 채 그가 나진을 올려다봤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롱소드를 쥔 채 나진이 카프만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자신은 패배했고.

사냥은 실패했다.

카프만은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할 생각은 없었다. 반대인 상황에서, 상대가 목숨을 구걸한다면 코웃음 칠 뿐 들어줄 생각은 없었으니까. 눈을 감고 카프만이 고개를 숙였다.

목을 친다면 치라는 식으로.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봐도 검은 내려쳐지지 않았다. 병을 따는 소리와, 무언갈 마시는 소리가 들려올 뿐.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입에 포션을 털어 넣는 나진의 모습이 보였다.

“···뭐하냐?”

“뭘 말입니까.”

“안 죽이고 뭐 하냐고.”

“죽이면 죽이는 건데, 그건 상황 좀 보고 해도 안 늦을 것 같아서요.”

나진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 몸 위로는 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카프만이 눈살을 찌푸렸다. 관통상을 제외한 자잘한 상처들이 급속도로 회복되고 있었으니까.

제아무리 값비싼 포션을 먹는다 한들 저런 극적인 효과는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것은 호문클루스.

제국에서 금지된 기술. 과거 마탑의 미친놈들이 만들어냈던 생체 병기를 떠올렸다가, 카프만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호문클루스는 눈앞의 청년처럼 자연스럽게 대화하지 못하니까.

그리고 제국의 소드 마스터가 직접 호문클루스들을 찾아 죽이고 다니지 않았던가. 그 소름 돋는 노인네의 검을 피해 살아 남은 호문클루스가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진 않았다.

“날 죽이는 걸 늦춘 이유는··· 내게 뭔갈 물어볼 생각이 있는 거로 해석하면 되나?”

“이야기가 빨라서 좋네요.”

“그런 것치곤 목을 노리고 찔러 들던데.”

“죽으면 죽는 거고. 살면 물어보려고 했습니다.”

“꽤 합리적이군.”

제 목덜미에 겨누어진 롱소드.

서늘한 금속의 감촉에 카프만이 쓰게 웃었다. 카프만의 목에 롱소드를 겨눈 채 나진은 입을 열었다. 그건, 일찍이 카프만이 나진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죽일 땐 죽이더라도, 어떻게 살아왔는진 들어봐야 할 것 아닙니까.”

“그거참 악취미로군.”

당신이 할 말입니까.

그리 중얼거리며 나진이 짧게 질문했다.

“성휘 교단이 보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