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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베니아 공작가의 기사들은 숲속을 헤치며 추격을 이어가고 있었다. 해는 어느새 중천에 걸렸거늘, 그들은 마땅한 흔적을 찾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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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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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을 도울 정보가 하나도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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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의 얼굴은커녕, 체형이나 윤곽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마치 귀신이라도 왔다 간 듯, 별장에는 침입자를 유추할 만한 흔적이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침입자가 실력 있는 레인저나 그에 준하는 인물이라 추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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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추측이 위안이 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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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게서 기척을 감출 정도의 실력을 갖춘 레인저가, 작정하고 도주한다면 붙잡기란 몹시 어려운 법이었으니. 그나마 위안 삼을 것은 대상이 ‘발목에 부상을 입은’ 인질을 데리고 있단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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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는 못 갔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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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기사, 팔라이즌은 숲속의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로 가려거든 넘어야 하는 숲이었다. 이 숲을 우회해서 가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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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대상은 캄브리아로 도주하려 할 테니, 이 길목을 지나치거나 뚫고 지나가려 할 확률이 높았다. 그렇기에 팔라이즌을 비롯한 몇몇 기사들은 숲을 쥐잡듯이 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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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께선 제 1 추격대와 함께 숲을 가로질러 앞으로 향하셨다. 그분이 추격자를 앞질러 길목을 막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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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역할은 흔적을 찾고 퇴로를 막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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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이즌은 제 역할을 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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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중천에 떴음에도, 우거진 초목에 가려 숲은 어둑어둑했다. 어두운 숲속을 그는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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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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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팔라이즌이 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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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주변을 둘러봤다. 인기척은 느껴진 것은 아니지만 날카롭게 곤두선 그의 직감이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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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근처에 있다고. 합리적인 증거에 근거한 판단이 아닌, 동물적인 직감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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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변을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없다.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초목. 바스락거리는 낙엽과 새의 울음소리. 자신의 직감이 틀린 건가. 하기야 맞는 법이 그리 많지는 않지. 그렇게 그가 생각했을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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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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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눈을 부릅뜬 그가 고개를 휙 위로 들었다. 허리춤의 검에 손을 뻗었다. 그러나, 검을 뽑아 들려는 순간 그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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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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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에 펄럭이는 것은 로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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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던진 듯한 로브. 머리 위를 펄럭이는 로브에 그가 시선을 빼앗긴 순간이다. 탁! 하고 땅을 박차는 소리가 팔라이즌의 귓가에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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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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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팔라이즌이 고개를 돌린 순간이다. 그때는 이미 너무나도 늦어있었다. 빼앗긴 시야, 뒤늦은 대응, 이는 치명적인 빈틈을 내주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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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이즌이 발검을 하려는 순간, 나진은 이미 팔라이즌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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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왼손은 팔라이즌의 얼굴을 향해서, 그리고 오른손은 팔라이즌이 허리춤에서 뽑으려는 검을 향해서. 뻗은 두 손은 거의 동시에 제 목적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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콱! 그리고, 카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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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왼손은 팔라이즌의 눈을 가리며 얼굴을 움켜쥐었다. 오른손은 뽑혀 나오려는 검을 후려쳐 검집에 밀어 넣었다. 급습. 가려진 시야. 뽑히지 않는 검.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팔라이즌은 대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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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잘 훈련된 기사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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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이즌은 마나를 끌어올리고 제 얼굴을 움켜쥔 습격자를 떨쳐내려 한다. 이는 그가 지금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이지만, 이미 습격을 허용하고 시야가 가려진 순간부터 상황은 최선과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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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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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 충격이 느껴졌다. 갑옷이 우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제 머리를 쥐어 터뜨릴 것 같은 악력이 느껴졌다. 고통, 소음, 몸이 기울어지는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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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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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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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이즌의 몸이 짧게 경했으나 충격은 거기서 끊이질 않는다. 여전히 시야가 가려진 채로 무언가 팔라이즌의 관자놀이를 연달아 후려쳤다. 머리를 뒤흔드는 충격이 몇차례고 엄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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쩍, 쩌억, 쩌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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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향해 뻗은 손은 무언가에 쳐내지고, 발버둥 치려고 한 다리는 발에 짓밟힌 듯 땅에 고정됐다. 반응속도가 다르다. 육체 능력이 다르다. 새까만 시야 속에서 습격자는 몇번이고 팔라이즌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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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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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제아무리 잘 훈련된 기사라고 한들, 관자놀이에 집중된 타격을 견딜 수는 없는 법이다. 그가 신음을 내려는 순간, 관자놀이를 후려치던 무언가가 그의 턱을 후려쳤다. 입은 다물어지고 비명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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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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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기절도 오래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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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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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만 시야에 튀어 오른 불똥, 등줄기를 타고 뇌를 뒤흔드는 고통에 팔라이즌이 정신을 차렸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으나, 입에 무언가 물린 듯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무언가에 눈이 가려졌는지 상황을 파악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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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인기척은 사라졌다. 팔라이즌은 잘 움직이지 않는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린 무언갈 벗겨내고, 입에 물린 천을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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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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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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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작살이난 각반과 기이한 각도로 비틀려있는 발목을. 움직일 수가 없다. 발목에서 느껴지는 시큰한 고통에 그가 신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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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아무도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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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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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니, 아니었다. 돌아오는 소리가 있긴 했다. 쩍, 쩌억··· 무언갈 후려치는 소리와 억눌린 비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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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우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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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한 소리가 숲속에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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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팔라이즌이 이를 악물고 손바닥으로 땅을 기며 움직였다. 소리는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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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기어 그가 소리가 들려왔던 곳에 도착해 마주한 것은··· 판금 갑옷이 완전히 우그러진 채 나무에 처박혀있는 기사다. 조금 더 기어서 움직여보면 거품을 문 채 땅에 널브러져 있는 기사가 하나, 제 발목을 잡고 비명을 지르는 기사가 하나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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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이즌을 포함해 이 숲에 파견된 기사는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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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넷 모두의 발목이 박살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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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이즌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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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넷이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각개격파 당했다. 그것도 제압당해 발목이 박살 났다. 충분히 죽일 수 있음에도 죽이지 않았단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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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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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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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동시에 느껴지는 것은 의문이다. 팔레이즌을 비롯한 기사 넷은, 자신들이 왜 패배했는지 어떤 식으로 제압당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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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인 경지에 의한 패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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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놀아난 듯한 느낌이다. 무언가에 시야가 빼앗긴 채 급습당했고, 초격을 허용했으며, 그로 인해 만들어진 빈틈을 공략당해 철저하게 짓밟혔다. 그 일련의 과정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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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엑스퍼트를 초월한 반응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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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을 읽고 다음 수를 내다보는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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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마나를 끌어올리는 운용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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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과감하게 내지르는 순간적인 판단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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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것을 갖춘 나진은 이미 같은 경지 안에서는 상대할 자가 없다. 하물며, 이런 몸을 숨길 곳이 많은 숲속이라면 더더욱. 물론 그 사실을 공작가의 기사들이 알 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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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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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는 어이없는 눈으로 나진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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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기사 넷을 박살 내고 왔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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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캄브리아로 향하는 길목을 조사하고 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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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굳이···? 저희 그쪽으로 안 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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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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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어디 좀 다녀온다 하더니, 슉 사라졌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나진이다. 그렇게 돌아와서 한다는 말이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기사들을 박살 내고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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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갈 목적지, 상대는 확신하지 못할 거 아닙니까? 일단 캄브리아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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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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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상대는 우리 위치도, 제 생김새도 모릅니다. 쫓는 입장에선 답답한 노릇이죠. 제가 뭐 흔적을 남긴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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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더 혼란을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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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그렇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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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나쳤으리라 생각한 숲속에서, 흔적을 조사하던 기사들이 당했으면 상대는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이 근처에 있나? 이 가까이에 있는 것인가? 이쪽 방향으로 도주하는 것이 확실한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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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생각이 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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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추측에 이유가 생긴다. 혹은, 이것 자체가 미끼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테지만···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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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판단이 안 서겠죠. 그리고, 추격대의 전력을 깎을 수도 있으니 유효한 전략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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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잠시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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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나진의 말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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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려면··· 요구되는 조건이 좀 많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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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손가락을 접으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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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하고, 기사들에게 얼굴이나 체격을 노출함으로써 이점을 지워서도 안 되고, 거기서 이곳까지 ‘빠르게’ 주파할 수 있는 능력마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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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가 말도 안 되는 조건들이다. 그러나, 정작 그 조건을 들은 나진은 고개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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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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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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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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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하게 그 모든 조건을 지키면서 습격을 했노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말에 디에타는 어이없다는 듯 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뭐지 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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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진에겐 이상한 것이 없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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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악명 높은 교단의 암부로부터 며칠씩이나 도주했으며, 열이 넘는 암부를 죽여버린 나진 아니던가. 애초에 혼자서라면 기사들에게 ‘절대로’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는 나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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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있기에 시간을 벌어야했고, 주기적으로 휴식해야 했기에 이런 수단을 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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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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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디에타의 발목을 힐끗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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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바윗돌에 디에타를 앉혀둔 채, 그녀의 발목에 감긴 붕대를 나진이 조심스레 풀었다. 그 과정에서 나진의 손가락이 살갗에 닿을 때마다 디에타가 몸을 움찔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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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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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조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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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붉은 디에타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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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조금 더 조심해야겠노라 생각하며, 천천히 붕대를 풀었다. 진물이 흐르는 발목의 상처가 나진의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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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참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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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 흐르는 진물을 깨끗한 천으로 닦아내고 포션을 부은 거즈를 상처에 덧댔다. 그 과정에서 디에타는 몸을 움찔 떨었고, 고개를 숙인 채 나진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제법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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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해야만 하는 과정이었다. 부상을 치료할 수 없다면, 최소한 덧나는 것을 막아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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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붕대로 갈아 끼운 뒤 나진이 몸을 일으켰다. 디에타는 제 옷소매로 얼굴을 문질렀다. 살짝 붉어진 눈꼬리로 디에타가 나진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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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좀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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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 만합니다. 빨리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편이 좋긴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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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선 따라잡히고 말겠죠. 괜찮아요. 아직 버텨볼 만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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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나진은 말없이 디에타를 바라보다가, 짧게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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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라기엔 뭐하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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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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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 발목을 박살 내고 오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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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기사들을 죽였다간 후에 일 처리가 귀찮아질 것을 염려해, 발목을 박살 내는 것으로 나진은 적당히 합의를 봤다. 그 정도 부상은 후에 회복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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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박살 내도 되긴 했는데, 기왕 하는 김에 발목이 더 낫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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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디에타의 발목을 힐끗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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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습격한 기사들 중에 디에타의 발목의 힘줄을 끊는 데 일조한 기사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걸 생각하니 조금 더 꺾어놓고 올걸, 하고 나진은 살짝 아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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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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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진을 바라보며 디에타가 몇 번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가 뒤늦게 그 말뜻을 이해한 듯, 그녀가 입가를 가린 채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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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좀 위안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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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위안이 되는 표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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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뭐, 저랑 똑같은 꼴을 당했다 해서 제가 얻는 게 없으니 별로 통쾌하고 그러진 않은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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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미소를 머금은 채 나진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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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절 위해 해준 거니까, 좀 기쁘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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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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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기분은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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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게 웃으며 디에타가 나진을 향해 팔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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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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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에게 업혀서 이동하는 것에도 슬슬 적응이 된 디에타다. 처음에야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이젠 나진의 제법 단단한 등판의 승차감을 즐길 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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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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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등에 밀착하곤, 나진의 팔을 감은 채 디에타가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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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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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묘하게 즐거워 보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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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의 도주극이란 거, 생각보다 재밌더라구요. 신세를 지고 있는 입장이니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요, 그래도 즐거운 건 어쩔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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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한낮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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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소한 건 넘어가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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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식, 하고 나진은 웃고서 디에타의 장단에 맞춰줬다. 다 죽어가는 표정을 짓고 있던 별장에서 얼굴보단, 지금의 밝은 얼굴이 더 보기 좋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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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를 등에 업은 채 나진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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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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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넷이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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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발목이 박살 난 채로 발견됐다. 흔적이 발견됐다. 발견된 흔적은 산재해 있다. 방향을 알 수가 없다. 마치 의도적으로 흔적을 남긴 듯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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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이 들려온다.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아르베니아 공작가의 기사단장, 그리핀은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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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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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을 추적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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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지우는 데 도가 텄다. 예상 경로가 이쪽인가 싶다가도, 뜬금없는 데에 흔적이 새겨져 있질 않나, 기사들을 습격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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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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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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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보다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기사 넷을 제압하는 과정이었다. 숲속에서 각개격파 당했노라고 주장한 기사들. 그 네 명의 기사 중 그 누구도 습격자의 모습을 본 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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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습당했다. 시아갸 가려졌다. 얼굴에 무언가 뒤집어 쓰인 채 두들겨 맞고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발목이 박살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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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어이없는 증언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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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중이떠중이들도 아니고 기사다. 소드 엑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기사란 말이다. 아르베니아 공작가는 무가(武家)가 아니었기에 기사들의 수준이 그렇게까지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공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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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이상은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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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사들이 이토록 허무하게 당하는 게 말이나 되는가. 정말로 소드 시커라도 되나? 이토록 깔끔하게 제압할 수 있는 건 소드 시커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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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만 테오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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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네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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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 도시에서 가장 이름난 레인저를 의심하던 그리핀은 괜스레 혀를 찼다. 아니지. 그놈이라면 멀리서 저격으로 기사들의 발목을 꿰뚫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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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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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추격대가 많이 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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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상의 병력을 운용했다간, 외부로 말이 새어 나가기 시작하고 의심을 받기 시작할 거다. 머리가 지끈거려 그리핀은 연초를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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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충분히 시간이 지체됐다. 여기서 더 놀아나며 시간이 지체되선 안 됐다. 그렇게 그리핀이 방법을 고민하고 있을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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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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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소리와 함께 전서구가 그리핀의 곁에 내려앉았다. 그리핀은 전서구에 매달린 편지를 펼쳤다. 오스만 공작이 직접 쓴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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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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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없이 편지를 읽어내렸다. 편지를 다 읽은 그는 ‘과연’ 하고 짧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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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룸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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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뢰프슈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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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체 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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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후보지. 그 후보지로 향하는 길목과, 지나칠 경유지를 찍어둔 지도가 편지에는 담겨 있었다. 디에타가 떠올린 수단과, 정확하게 같은 것을 꿰뚫어 본 오스만이기에 추려낼 수 있는 목적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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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브리아가 아닌 저 세 곳으로 향하는 길목에 집중해라. 그것이 오스만의 전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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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핀은 추격대를 다시 편성하고선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지시를 내린 그는 군마에 올라타 가장 가능성이 높은 길목을 향해 말을 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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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그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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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향하는 곳은 트레바체 후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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