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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 한 장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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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디에타는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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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왜, 동화에서 흔하게 나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탑에 갇힌 공주님과 그런 공주님을 구하러 오는 잘생긴 기사가 나오는 진부하고 유치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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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디에타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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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 따지지 않고 좋은 장면들만 쭈루룩 나열해 둔 동화에 매력을 느낄 나이는 진작에 지났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상의 이야기로 상황을 접했을 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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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 이야기를 현실로 끌고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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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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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제법, 가슴이 두근거린단 사실을 디에타는 인정해야만 했다. 공작가 별장에 감금되어 있던 자신. 그리고 앞뒤 따지지 않고 구하러 왔다며 손을 내미는 잘생긴 기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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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아니지만, 일단 잘생기긴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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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는 몽롱한 눈동자로 나진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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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브에 가려 나진의 얼굴은 잘 보이진 않지만,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어느 정도 윤곽은 그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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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원래 이렇게 잘생겼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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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때문일까, 아니면 정신이 몽롱해서 그럴까, 그것도 아니라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달빛과 별빛이 필터 역할을 해줬기 때문일까. 평소보다 더 반반해 보이는 나진의 외모에 디에타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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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에도 어울리지 않게 디에타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놀라서 그런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디에타는 괜스레 몸을 조금 더 웅크렸다. 밤바람이 제법 차가웠으니까. 몸이 계속 흔들려서 어지러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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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어쭙잖은 핑계를 대며 디에타는 나진의 옷깃을 꽉 붙잡았다. 휘황찬란한 달빛 아래서 도주극은 한동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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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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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휴식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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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장에서 제법 떨어진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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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의 경계선을 따라 우거진 숲속, 그곳에 있는 작은 동굴로 나진은 들어섰다. 디에타를 조심스레 땅에 내려두고선 나진이 로브를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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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제대로 된 추격은 해가 떠야 가능할 겁니다. 밤 시야가 능하다곤 하지만, 상황을 파악하고 수습할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릴 테니까요. 아무리 빨라도 숨 돌릴 시간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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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기사들은 나진이 어느 곳으로 도망쳤고, 어느 곳으로 향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기척을 숙이고 흔적을 교란하는 데는 이미 도가 튼 나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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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일단 좀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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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디에타를 흘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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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 본인이야 밤을 새워서 달려도 문제가 없지만, 디에타의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진 않았으니까.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안색은 창백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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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둔 로브를 나진은 디에타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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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라도 두르고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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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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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춥습니다. 저야 버틸 만하지만 당신은 힘들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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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디에타를 흘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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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고 하늘하늘한 잠옷 차림. 저런 얇은 복장으로 견딜만한 날씨는 아니었다. 디에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곤, 나진이 건넨 로브를 어깨에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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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을 치료할 만한 건··· 아쉽게도 챙겨오진 못했네요. 포션으로 될만한 상처가 아니니, 그건 일단 보류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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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가지고 다니는 모험가용 가방을 뒤적이며 나진이 중얼거렸다. 직후 나진이 가방 속에서 돌돌 말린 모포와 광석등을 꺼내 들었다. 모포를 촥 펼쳐 디에타 앞에 깔아두곤 눈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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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눈이라도 붙이세요. 피곤해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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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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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부리지 말고 쉴 수 있을 때 쉬어두세요. 어차피 동 트면 죽어라 달려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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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중얼거리며 나진이 광석등을 주먹으로 팍, 후려쳤다. 충격을 주자 광석등이 점멸했다. 이윽고 어스름한 노을빛이 동굴 안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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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디에타는 제 몰골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땀에 젖어 피부에 달라붙어, 몸의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잠옷 차림과 흐트러진 머리칼. 그리고 얼굴까지 확인하진 못했지만 분명 눈물자국으로 얼룩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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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스레 디에타는 로브를 단단히 여미고, 얼굴을 옷소매로 쓸어내렸다. 조금 부끄러워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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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춥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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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에? 아뇨? 괜찮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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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딸꾹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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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춥지는 않았다. 괜히 얼굴에 열이 오르는 느낌이어서 그렇지. 하지만, 로브의 옷자락을 강하게 여미는 디에타의 모습은 나진이 보기에 추위에 떠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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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얼굴도 묘하게 붉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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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라도 걸린 걸까. 하기야, 발목에 부상을 입은 채 며칠간 제대로 된 식사도 숙면도 취하지 못한 분위기이지 않은가. 면역력이 바닥까지 떨어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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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어지러운가. 눈도 잘 못 마주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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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핑 도는 디에타의 눈동자. 새빨갛게 물든 디에타의 귓가. 나진의 눈동자엔 그런 디에타가 환자로 보일 뿐이었지만, 그 실상은 조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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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쿵,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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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는 요란스레 뛰어대는 가슴팍을 꾸욱 누른 채 고개를 숙였다. 왜인지, 저 남자와 시선을 마주하는 게 쉽지 않았으니까.. 나진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인 채 디에타는 모포로 기어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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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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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또 왜 이렇게 요란스럽게 뛰어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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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가면을 쓰고, 상단을 키우기에 급급한 삶을 살아왔던 그녀다. 그런 그녀이기에, 가면이 벗겨진 지금 느끼는 감정은 너무나도 낯선 것이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자각조차 하지 못한 채 디에타는 모포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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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하고 떠오르는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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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디에타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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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그런 감정을 느낄 일이 없다고, 하물며 자신이 이렇게 쉬운 여자일 리가 없··· 아니, 이런 상황에서 심장이 조금 두근거리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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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부정과 묘한 자기합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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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에 어울리지 않게도, 디에타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꾸욱 누른 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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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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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기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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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이 찾아오려 하는 이른 새벽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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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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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는 눈을 떴다. 심장은 두근거리고 발목은 욱신거려서 잠을 잘 수나 있을까 싶었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푹 잤다. 눈을 비비며 디에타는 맞은편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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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검을 품에 안은 채, 동굴 벽에 기대어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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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을 꼬박 저렇게 지키고 있었던 걸까. 잠이 조금 덜 깨 몽롱한 눈동자를 깜빡이며 디에타는 나진을 빤히 바라봤다. 그렇게 얼마나 바라보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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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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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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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진이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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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귓가에 울린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디에타가 어깨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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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일어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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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별로 없는 편이라. 슬슬 깨워야겠다 싶었는데 때맞춰 일어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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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길게 숨을 뱉으며 어깨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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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정도면 생각이 얼추 정리됐을 듯한데, 생각해 둔 방법은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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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기사 파시온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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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준비해둔 수가 있고, 전서구 역할만 해준다면 그분께선 능히 상황을 헤쳐나올 수 있을 거라고. 어쩌다 보니 그냥 본인을 데리고 나왔지만 큰 차이는 없을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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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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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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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말대로다. 하룻밤 푹 쉬고 나니 머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으니까. 그래도, 여전히 나진과 시선을 마주하긴 힘들어서 디에타가 살짝 시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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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수 있는 수단이 많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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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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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복잡하고, 귀찮은 명분 싸움이 되긴 하겠지만 상황 자체를 엎어버릴 순 있거든요. 이런 수까지 쓰고 싶진 않았지만··· 이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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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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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상단은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상단이에요. 규모가 큰 상단이죠. 보통 이 정도 규모가 되는 상단을 공작가가 멋대로 집어삼키려 하면··· 역풍이 불기 마련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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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반발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 이유라 할만한 건 별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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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경우에 역풍이 불지 않은 건, 반발이 심하지 않았던 건··· 제가 아르베니아 가문의 소속이기 때문이에요. 공작가에게 명분이 있으니까. 제 자식이 키운 상단을 공작가가 삼킨다 해서 누가 뭐라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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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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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베니아라는 이름. 미련이 남아 차마 버리지 못한 그 이름이 이런 식으로 발목을 잡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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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해결 방법은 간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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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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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상황을 중앙길드, 그보다 더 윗선인 캄브리아 재단에 알리는 거예요. 덤으로 제 성씨도 이번 기회에 갈아버리고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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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떻게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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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아르베니아 공작가가 상단을 집어삼킬 수 없게 되겠죠. 저를 건드리는 것도 외부의 눈치를 봐야 할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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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을 알기에 오스만은 디에타를 감금한 것이다. 디에타가 손을 쓸 수 없는 상황까지 일을 진행시켜버리면, 재단에서도 어찌할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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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명분 싸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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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고 디에타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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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브리아 재단의 명분은, 아르베니아 공작가에도 결코 밀리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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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브리아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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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왕의 여정이 시작됐던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의 전통과 특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몇 귀족이 연합해 만든 재단이었다. 그리고 그 재단의 자격은 제국의 황제가 직접 보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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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무리 아르베니아 공작가가 날고 긴다 한들, 황제의 보증을 받은 재단에 정면으로 들이박을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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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명분은 이쪽이 우위에 있다. 도시에서 규모가 큰 상단을 이딴 식으로 집어삼키게 된다면, 그리고 그런 선례가 남는다면 캄브리아 재단의 명성에도 금이 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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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재단에서 저 나름 괜찮게 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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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뜻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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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세금을 얼마나 꼬박꼬박 잘 냈는데요. 탈세, 장부 조작, 허위 매물··· 이런 장난질을 재단 상대로는 한 번도 쳐본 적이 없어요. 물론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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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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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업계에선 세금 꼬박꼬박 다 내면 호구 소리 듣거든요. 그래도, 재단 상대로는 호구 소리를 좀 들어놔야 편해요. 5년 만에 이렇게 규모를 키웠는데도 잡음 하나 안 나온 게 다 제가 성실납부자였던 덕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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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부탁을 한다면 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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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는 그렇게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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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소한 문제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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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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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길드에 알려선 상황이 늦어질 거고, 직접 캄브리아 재단에 속한 귀족가를··· 그것도 높으신 분들을 만나러 가야 하는데, 대뜸 찾아간다고 해서 문을 문을 열어줄 것 같진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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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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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제겐, 저를 증명할 수단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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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패도, 상단주의 제복도, 상단주의 이름으로 날릴 전서구조차 없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 한낱 소녀에 불과한 디에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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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먼저 캄브리아에 한 번 들러야 할 것 같긴 한데, 오스만 공작이 그 꼴을 두고 볼 리가 없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길목을 가로막을 거 같은데, 일이 조금 복잡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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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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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나진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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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브리아 재단의 중추가 되는 귀족, 그 가문 명이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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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룸 백작가, 클뢰프슈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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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의 중추가 되는 세 귀족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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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가장 명성이 드높은 가문을, 디에타가 마지막으로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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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트레바체 후작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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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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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에겐 익숙한 이름이었다. 디에타의 이야기를 듣던 나진이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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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캄브리아에 들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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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게 무슨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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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품에서 편지 하나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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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깊숙한 곳에서 넣어둔 편지였다. 편지에 새겨진 문양을 확인한 디에타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그야, 그건 트레바체 가문의 문양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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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놀라긴 이르다는 듯 나진은 편지를 펼쳐 디에타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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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체 가문의 주인, 에델마르 후작이 친필로 써 내린 편지가 그곳에 있었다. 언제든 찾아와도 좋으며, 후작가에 방문한다면 귀빈으로 대접하겠단 이야기가 적힌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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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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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기사 토벌전, 거기서 기사 한 분을 만났었거든요. 그분의 유언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연이 좀 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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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체 가문의 기사 길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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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의 대화에서 시작됐던 연줄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지는 몰랐지만, 어찌 됐든 지금 상황에서 이 초대장이 꽤나 유용하단 사실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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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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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장을 바라보며 디에타는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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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사람이네요,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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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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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제가 비효율적인 선택을 했단 사실은 부정할 수 없네요. 제가 별장에 잡혀있는 게 더 나았을 텐데. 미안해요. 그땐 잘못 판단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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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감정적으로 내뱉었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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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둘러싼 이 새장 같은 곳에서, 자신을 꺼내달라고 말해버렸던 과거의 자신이 디에타는 조금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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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덕분에 휴식도 할 수 있었고, 기분도 좋았지만. 심장이 두근거리는 경험을 할 수 있어 기뻤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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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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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의 자신이 내릴 판단은 아니었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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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감정적이었네요.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최선의 방법이 있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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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뭐 어떻게 맨날 그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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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디에타의 말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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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를 챙기고, 흔적을 지우며 자리를 뜰 준비를 하던 나진이 디에타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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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어딨어요? 때론 그냥 질러보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움직여보기도 해야지. 마냥 효율만 따지면 피곤하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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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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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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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굽혀 나진이 디에타에 등을 보였다. 업히라는 신호였다. 디에타는 괜스레 제 머리칼을 쓸어내리곤, 조심스레 나진의 등에 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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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최선이 아니란 법이 어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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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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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목적지까지 도착하면 그게 최선 아니에요? 별장에 감금당해 그딴 취급을 받으면서 견디는 것보단, 이쪽이 더 낫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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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나진의 목에 팔을 감자, 나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순간에 휙, 흔들리는 몸에 디에타가 나진의 등에 밀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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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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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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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일지 아닐지는 결과까지 가봐야 아는 거 아니냐. 이대로 목적지까지 도착하면 그게 최선이 아니겠냐고 나진은 말하고 있었다. 숫제 시원하기까지 한 논리 앞에 디에타는 그만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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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있으세요? 사람 하나 등에 업고 도주하는 게 쉬울 것 같진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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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무겁지도 않을뿐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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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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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하는 거, 제 전문 분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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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본 경험이 어디 한두 번이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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