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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베니아 공작가의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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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정원과 휘황찬란한 건물, 그리고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많은 수의 사용인들. 과연 공작가의 명성에 걸맞은 위용이다. 마차에서 내린 디에타는 5년 만에 돌아온 본가의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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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本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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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태어난 곳이자 유년기를 보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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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에 돌아왔으니 느껴야 할 편안함과 아늑함 같은 건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디에타에게 있어 이 저택은 별다른 추억이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기껏 해 봐야 제 어머니와의 추억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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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추억은 잊어버린 지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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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앞에서 목매달아 죽은 어미의 시체를 보았을 때, 추억은 모두 악몽이 되었으니까. 떠올리면 우울해지는 기억을 디에타는 모조리 치워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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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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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숨을 내뱉고 디에타는 저택의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숱한 가신들을 끌고 다니는 제 오라비와 언니들과 달리 디에타와 동행하는 것은, 호위 기사 파시온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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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들의 시선을 받으며 그녀는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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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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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겠습니다. 디에타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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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의 안내를 따라 디에타는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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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드레스를 입었을 때처럼 고개를 숙이고, 죽은 척 걷던 옛날과는 다르다. 디에타는 지금 상단주로서의 제복을 입은 채 저택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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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 아르베니아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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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주, 디에타로서 왔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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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딱히 고개를 수그릴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접견실이다. 시종이 열어준 문 너머로 들어서자···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르베니아 공작가의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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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아르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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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의 친부이자, 아르베니아 공작가를 이끄는 가주. 그 눈동자는 디에타와 같은 샛노란 색을 품고 있다. 시선과 시선이 마주하기를 잠시, 오스만 아르베니아가 환히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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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구나, 디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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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의 웃음에 디에타는 속으로 혀를 찼다. 초장부터 연기를 하는구나. 하지만 속내를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디에타도 웃음으로 화답하며 접견실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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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에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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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네가 가문을 떠난 지 5년 만이로구나? 더 넓은 세상을 보겠다며 편지 한 장 남기고 사라졌을 땐 내 어찌나 걱정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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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뜸을 들인 오스만이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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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믿을만한 기사와 함께였고,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이 캄브리아에서 들려오니 이 아비도 한시름 놓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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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한 딸아이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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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조는 자연스러웠고, 표정 역시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저것이 가면에 불과하단 사실을 디에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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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게 식은 제 어머니의 시체를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고선, 혀를 차며 ‘치워라’ 라고 명령하던 오스만의 모습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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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가치를 재단하던 오스만의 눈동자를 잊지 않았으니까. 디에타는 여전히 미소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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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르베니아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게끔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소식이 아버지에게까지 닿았다니 영광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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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에서부터 불과 5년 만에 도시를 휘어잡는 상단주의 자리에 앉았다니, 네가 참 자랑스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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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이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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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 상단. 네 이름을 본떠 지은 상단에 대한 소식은 많이 들었단다. 세간에서야 네가 아르베니아의 버려진 자식이라는 질 나쁜 소문이 돌지만··· 내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그녀가 남긴 유일한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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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다. 거짓말과 거짓말이 오가며, 거짓된 웃음이 오간다. 서로가 가면을 쓴 채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대화가 충분히 무르익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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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늘 너를 부른 이유는 다름 아닌, 네 공을 치하하기 위해서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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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아르베니아는 본론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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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는 오스만을 바라봤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담긴 뜻을 이해하고자,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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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하여 네 힘으로 일구어낸 상단, 가문의 힘이 아닌 오직 너만의 힘으로 일구어낸 것에 나는 적잖게 놀랐단다. 이는 칭찬해 마땅할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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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예상한 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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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고개를 숙였다. 왜 자신을 가문으로 다시 불러왔을까. 마차를 타고 오는 길에 고민을 해본 결과 디에타는 몇 가지 결론을 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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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은 충분히 궤도에 올랐으며, 이는 아르베니아 공작가의 가주가 보기에도 충분한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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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는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 낸 것이다. 그리고, 오스만 아르베니아는 사람의 가치를 재단한다. 그가 보기에 디에타는 버려두기엔 아까운 가치요, 거둬들인다면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낼 만한 인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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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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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에 아르베니아 공작가와의 연관점을 만들고자 하겠지. 이제 와서, 버려진 자식이라는 소문을 바로잡고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려는 것인가? 물론 그렇게까지 희망적인 관측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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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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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이라면 상단과의 연결점을 만들고, 점차 상단을 장악해 가겠지. 그리곤 끝내 상단을 집어삼키려 할 것이다. 거기까지 예상했음에도 디에타는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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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야 단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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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있었으니까. 고작 그 정도 수작이라면 휘어잡아, 제 상단을 더 높은 곳으로 올릴 발판 정도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으니까. 각오를 다지고 이곳에 걸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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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언니오빠들과 달리 대단한 공을 세웠더구나. 어린 나이에 대단한 일이야. 하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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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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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빠가 요즘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 나를 닮아 머리는 잘 굴러가는지 제법 높은 직책에 앉긴 했지만, 경험과 실적이 따라주질 않더구나. 재능은 있는데 아직 실적이 모자라 인정받지 못하다니 안타까운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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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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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 오라버니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인가? 위화감을 느낀 디에타가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오스만 아르베니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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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샛노란 눈동자는 싸늘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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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 아르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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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이 디에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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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의 자식이다. 아르베니아의 일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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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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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버려진 자식이 아니다. 아르베니아의 일원이다. 그리고, 가족끼리는 돕고 살아야지. 피보다 진한 것은 없다고들 하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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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는 상황을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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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오스만의 의도를 파악했다. 그렇기에 디에타의 입가를 비집고 헛웃음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오스만 아르베니아는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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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라버니에게 상단을 넘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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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이 필요한 네 오빠의 이력서에 한두 줄에 불과한 문장을 쓰기 위해··· 네가 5년 동안 일구어낸 상단을 바치라고. 오스만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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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께선, 잘못 판단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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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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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아닌, 공작이라고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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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은 제 관리하에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이가 상단주 자리에 앉는다고 하여, 매끄럽게 돌아갈 일이 만무하지요. 무엇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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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는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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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께서 보기에, 제 가치가 고작 그것밖에 되지 않는 건가요? 5년 만에 이 자리에 올랐습니다. 다시 5년이 흘렀을 때, 제가 어디까지 올라갈지 공작께선 궁금하시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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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치를 당신은 잘못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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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그 정도에 그칠 가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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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의 말마따나 디에타에겐 실적이 있었다. 실적이 있었기에 디에타는 오스만에게 반문했다. 이건 잘못된 판단이라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행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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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상단과의 연결점을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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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장악해 나가는 게 당신의 방식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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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상단 하나를 집어삼키겠다고 나를 가르는 것은 당신에게 있어 손해가 아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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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컸구나, 디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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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디에타의 이야기에 오스만은 다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여전히 그 가면은 견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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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들어온 혼담이 많더구나. 명망 높은 가문에서 널 원한다는 이야기가 많아. 아마도, 캄브리아에서 상단을 이뤄내 네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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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을 들려줄 뿐이다. 그리고, 오스만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들이 으레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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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아주 높게 치더구나. 네 가치를. 너와의 혼담을 위해 내주겠다는 것들이 아주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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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듣던 디에타는 오스만의 의도를 이해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오스만 아르베니아는 가치를 재단한다. 그리고, 그는 딱히 디에타를 낮잡아 보지도 무시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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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파악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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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가진 가치와, 그 고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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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가 일궈낸 상단은 이미 궤도에 올랐다. 그녀의 나이는 혼인하기에 걸맞으며, 그 외모는 충분히 무르익어 꽃을 피워냈다. 상단도, 디에타 본인도 지금이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단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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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치가 높을 때 매각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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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상인들의 철칙이었으며 상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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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아르베니아는 귀족인 동시에 상인이었다. 그는 정치란 결국 명분을 앞세워 장사질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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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별채를 기억하느냐?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손님들이 찾아오거늘, 내 너를 따로 부르도록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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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저택에서 멀리 떨어진 영지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별채. 얼굴에 화상을 입어, 가치를 잃은 제 어머니가 추방당했던 곳. 그 별채를 뭐라고 부르는지 디에타는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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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베니아의 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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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를 잃은 자들을 추방하거나, 도망치지 못하게 가둬두는 감옥. 오스만의 의도를 읽어낸 디에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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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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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차 시험도 순조롭게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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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합격점을 찍어준 감독관을 뒤로하고, 나진은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길을 걷다가 말고 나진은 시선을 옮겼다. 갈라진 인파 사이로 화려한 마차가 지나가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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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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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이라도 행차한 모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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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마차에 새겨진 가문의 문양을 보았다. 뱀과 같은 형상이 새겨진 문양.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문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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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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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문양을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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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내 시대에도 저 문양이 새겨진 깃발을 흔들며 전장에 섰던 놈이 하나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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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를 흘려들으며 나진은 턱을 매만졌다. 아르베니아, 아르베니아··· 그 이름을 곱씹던 나진이 짧게 탄식했다. 기억이 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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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베니아의 버려진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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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과의 ‘사소한’ 다툼이 발생했을 때, 귀족은 분명 디에타를 그런 식으로 불렀었다. 그럼 디에타가 속한 가문에서 사람을 보내온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진은 마차가 향하는 곳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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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는 상단이 있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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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멈춰 선 마차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반질반질하게 닦인 갑옷을 차려입은 기사 넷과, 그들의 호위를 받으며 내리는 화려한 제복을 차려입은 남자. 디에타와는 달리 화려한 금발의 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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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내는 기사를 대동한 채 상단의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뒤따라 걷는 네 명의 기사. 그리고 그 뒤를 따라, 허름한 갑옷을 입은 기사 하나가 따라붙었다. 익숙한 모습의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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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의 호위 기사, 파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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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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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문득 뒤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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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과 시선을 마주한 순간 파시온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를 악문 파시온은 사내의 뒤를 따라 상단의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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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의 이름이 ‘디에타’에서 ‘아르베니아’로 바뀐 것은, 그리고 아르베니아 상단에서 나진에게 한 통의 편지가 날아온 것은 하루 뒤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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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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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베니아 상단으로부터 날아온 초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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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장을 쥔 채 나진은 상단으로 향했다. 건물 자체에 크게 바뀐 것은 없으나, 집무실로 향하는 계단에는 기사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그들은 나진이 초대장을 보여주자 길을 터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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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올라 최상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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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층에는 과거와는 달리 시종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나진이 직접 문을 두들길 필요도 없이, 나진을 확인한 시종이 대신 문을 두들기고, 대신하여 문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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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들어선 집무실의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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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곳에 앉아 나진을 살갑게 맞이하던 갈색 머리칼의 소녀는 없었다. 집무실에 앉아있는 것은 금발의 청년과, 그 곁을 지키고 선 두 명의 기사다. 그중 하나는 디에타의 호위 기사였던 파시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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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귀한 손님이 오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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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석에 앉아있던 청년이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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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멀뚱멀뚱 청년을 바라보고 있자니, 청년의 곁에 서 있던 기사가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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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게시오 공자님께 예의를 갖추도록.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리고, 이름을 밝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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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것 같은 기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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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떨군 불호령에 나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꼽다는 듯 기사를 바라보는 나진의 눈빛에, 기사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에 손을 올리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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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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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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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캄브리아에서 이름을 날리는 모험가라면 이래야지. 필레온 경? 그리 깐깐하게 굴지 않아도 된다네. 이곳은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이지 않은가. 모험가들의 도시에 왔으면 그들의 규칙을 따르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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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웃음과 함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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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게시오 아르베니아. 아르베니아 공작가의 첫째 자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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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등급의 모험가, 이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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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대에 대한 이야기는 좀 들었지. 듣기로는 전 상단주인··· 내 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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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이야기를 이어가던 아게시오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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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앉게. 내가 그대를 몇초만 더 올려다보고 있으면 필레온 경이 그대의 무릎을 부숴, 억지로 무릎 꿇릴지도 모르는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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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게시오의 곁에 서 있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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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부릅뜨고 있는 기사를 흘겨보니, 확실히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보이긴 했다. 나진은 짧게 숨을 내뱉고선 제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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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대를 부른 건 그리 거창한 이유는 아니라네. 상단주의 자리에 앉았으니 장부를 확인하고, 이것저것 손을 보고 있거늘··· 그대에 대한 이야기가 제법 중히 적혀있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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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에서 투자하는 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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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나진과 관련된 투자 부분은 디에타가 직접 작성한 것이다. 핏빛 트롤의 가죽으로 만든 방어구와, 지원 예정에 있던 수많은 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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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에 대한 디에타의 평가에는 ‘백각 등급의 모험가를 노려볼 만한 인재’ 라고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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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평가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참고할 만은 했다. 실제로 눈앞의 모험가에 대한 소문은 캄브리아를 넘어 아게시오의 귀에까지 들려오곤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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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기사 토벌전의 주역, 그대에 대한 소문은 조금 들었다네. 무려 그 아탕가의 기사단에서 그대의 이름을 입에 담았으니 모르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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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게시오가 팔짱을 낀 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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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다시피 상단주의 자리를 꿰차게 됐으나, 나는 그리 오래 이 상단에 있을 생각은 없어. 어디까지나 잠시 거쳐 가는 자리이니 말일세. 하지만, 대충할 생각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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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진을 똑바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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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거래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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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 말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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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길어봐야 몇개월 정도 이 도시에 머무를 테지만··· 그 몇개월간 나는 인재를 끌어모을 생각이거든. 미래를 위한 투자 겸 실적을 올려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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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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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이런 도시에 있을 만한 인재가 아니지 않나? 아르베니아 공작가가 그대의 뒷배가 되어주겠네. 무엇보다 그대는 기사를 동경하는 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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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게시오 아르베니아가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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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서임이야 어려운 것도 없는 일이지. 그대가 거래를 받아들인다면, 서임식 정도야 얼마든지 해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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