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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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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베니아 공작가의 저택.

드넓은 정원과 휘황찬란한 건물, 그리고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많은 수의 사용인들. 과연 공작가의 명성에 걸맞은 위용이다. 마차에서 내린 디에타는 5년 만에 돌아온 본가의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본가(本家).

그녀가 태어난 곳이자 유년기를 보낸 곳.

고향집에 돌아왔으니 느껴야 할 편안함과 아늑함 같은 건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디에타에게 있어 이 저택은 별다른 추억이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기껏 해 봐야 제 어머니와의 추억이지만······.

그런 추억은 잊어버린 지가 오래다.

제 앞에서 목매달아 죽은 어미의 시체를 보았을 때, 추억은 모두 악몽이 되었으니까. 떠올리면 우울해지는 기억을 디에타는 모조리 치워버린 것이다.

“후우······.”

길게 숨을 내뱉고 디에타는 저택의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숱한 가신들을 끌고 다니는 제 오라비와 언니들과 달리 디에타와 동행하는 것은, 호위 기사 파시온 하나뿐이다.

시종들의 시선을 받으며 그녀는 걸음을 옮겼다.


“모시겠습니다. 디에타 아가씨.”

시종의 안내를 따라 디에타는 걸음을 옮겼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었을 때처럼 고개를 숙이고, 죽은 척 걷던 옛날과는 다르다. 디에타는 지금 상단주로서의 제복을 입은 채 저택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디에타 아르베니아가 아닌.

상단주, 디에타로서 왔다는 듯이.

그렇기에 딱히 고개를 수그릴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접견실이다. 시종이 열어준 문 너머로 들어서자···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르베니아 공작가의 주인이다.

오스만 아르베니아.

디에타의 친부이자, 아르베니아 공작가를 이끄는 가주. 그 눈동자는 디에타와 같은 샛노란 색을 품고 있다. 시선과 시선이 마주하기를 잠시, 오스만 아르베니아가 환히 미소 지었다.

“오랜만이구나, 디에타.”

오스만의 웃음에 디에타는 속으로 혀를 찼다. 초장부터 연기를 하는구나. 하지만 속내를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디에타도 웃음으로 화답하며 접견실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오랜만이에요, 아버지.”

“그래. 네가 가문을 떠난 지 5년 만이로구나? 더 넓은 세상을 보겠다며 편지 한 장 남기고 사라졌을 땐 내 어찌나 걱정했던지······.”

잠깐의 뜸을 들인 오스만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믿을만한 기사와 함께였고,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이 캄브리아에서 들려오니 이 아비도 한시름 놓았지.”

출가한 딸아이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모습.

어조는 자연스러웠고, 표정 역시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저것이 가면에 불과하단 사실을 디에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차게 식은 제 어머니의 시체를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고선, 혀를 차며 ‘치워라’ 라고 명령하던 오스만의 모습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가치를 재단하던 오스만의 눈동자를 잊지 않았으니까. 디에타는 여전히 미소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르베니아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게끔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소식이 아버지에게까지 닿았다니 영광스럽네요.”

“밑바닥에서부터 불과 5년 만에 도시를 휘어잡는 상단주의 자리에 앉았다니, 네가 참 자랑스럽구나.”

오스만이 미소 지었다.

“디에타 상단. 네 이름을 본떠 지은 상단에 대한 소식은 많이 들었단다. 세간에서야 네가 아르베니아의 버려진 자식이라는 질 나쁜 소문이 돌지만··· 내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그녀가 남긴 유일한 것인데.”

거짓말이다. 거짓말과 거짓말이 오가며, 거짓된 웃음이 오간다. 서로가 가면을 쓴 채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대화가 충분히 무르익었을 때.

“내가 오늘 너를 부른 이유는 다름 아닌, 네 공을 치하하기 위해서란다.”

오스만 아르베니아는 본론을 꺼냈다.

디에타는 오스만을 바라봤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담긴 뜻을 이해하고자,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출가하여 네 힘으로 일구어낸 상단, 가문의 힘이 아닌 오직 너만의 힘으로 일구어낸 것에 나는 적잖게 놀랐단다. 이는 칭찬해 마땅할 일이야.”

여기까지는 예상한 바였다.

디에타가 고개를 숙였다. 왜 자신을 가문으로 다시 불러왔을까. 마차를 타고 오는 길에 고민을 해본 결과 디에타는 몇 가지 결론을 냈었다.

상단은 충분히 궤도에 올랐으며, 이는 아르베니아 공작가의 가주가 보기에도 충분한 업적이다.

디에타는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 낸 것이다. 그리고, 오스만 아르베니아는 사람의 가치를 재단한다. 그가 보기에 디에타는 버려두기엔 아까운 가치요, 거둬들인다면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낼 만한 인재일 것이다.

‘그러니······.

상단에 아르베니아 공작가와의 연관점을 만들고자 하겠지. 이제 와서, 버려진 자식이라는 소문을 바로잡고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려는 것인가? 물론 그렇게까지 희망적인 관측은 하지 않았다.

‘미끼겠지.

오스만이라면 상단과의 연결점을 만들고, 점차 상단을 장악해 가겠지. 그리곤 끝내 상단을 집어삼키려 할 것이다. 거기까지 예상했음에도 디에타는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이유야 단순했다.

자신이 있었으니까. 고작 그 정도 수작이라면 휘어잡아, 제 상단을 더 높은 곳으로 올릴 발판 정도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으니까. 각오를 다지고 이곳에 걸음 한 것이다.

“네 언니오빠들과 달리 대단한 공을 세웠더구나. 어린 나이에 대단한 일이야. 하여간······.”

그러나.

“네 오빠가 요즘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 나를 닮아 머리는 잘 굴러가는지 제법 높은 직책에 앉긴 했지만, 경험과 실적이 따라주질 않더구나. 재능은 있는데 아직 실적이 모자라 인정받지 못하다니 안타까운 일이야.”

이건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왜 제 오라버니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인가? 위화감을 느낀 디에타가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오스만 아르베니아가 있다.

그 샛노란 눈동자는 싸늘하기 짝이 없다.

“디에타 아르베니아.”

오스만이 디에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너는 나의 자식이다. 아르베니아의 일원이지.”

“······.”

“너는 버려진 자식이 아니다. 아르베니아의 일원이다. 그리고, 가족끼리는 돕고 살아야지. 피보다 진한 것은 없다고들 하지 않느냐.”

디에타는 상황을 이해했다.

그녀는 오스만의 의도를 파악했다. 그렇기에 디에타의 입가를 비집고 헛웃음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오스만 아르베니아는 말하고 있었다.

네 오라버니에게 상단을 넘기라고.

실적이 필요한 네 오빠의 이력서에 한두 줄에 불과한 문장을 쓰기 위해··· 네가 5년 동안 일구어낸 상단을 바치라고. 오스만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공작께선, 잘못 판단하고 계십니다.”

디에타는 말했다.

아버지가 아닌, 공작이라고 입에 담았다.

“상단은 제 관리하에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이가 상단주 자리에 앉는다고 하여, 매끄럽게 돌아갈 일이 만무하지요. 무엇보다······.”

디에타는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공작께서 보기에, 제 가치가 고작 그것밖에 되지 않는 건가요? 5년 만에 이 자리에 올랐습니다. 다시 5년이 흘렀을 때, 제가 어디까지 올라갈지 공작께선 궁금하시지 않으신가요?”

내 가치를 당신은 잘못 판단하고 있다.

고작 그 정도에 그칠 가치가 아니다.

오스만의 말마따나 디에타에겐 실적이 있었다. 실적이 있었기에 디에타는 오스만에게 반문했다. 이건 잘못된 판단이라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행위라고.

차라리 상단과의 연결점을 만들고.

천천히 장악해 나가는 게 당신의 방식 아니냐고.

고작 상단 하나를 집어삼키겠다고 나를 가르는 것은 당신에게 있어 손해가 아니겠냐고.

“많이 컸구나, 디에타.”

그런 디에타의 이야기에 오스만은 다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여전히 그 가면은 견고했다.

“네게 들어온 혼담이 많더구나. 명망 높은 가문에서 널 원한다는 이야기가 많아. 아마도, 캄브리아에서 상단을 이뤄내 네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거겠지.”

그는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을 들려줄 뿐이다. 그리고, 오스만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들이 으레 그렇듯······.

“그들이 아주 높게 치더구나. 네 가치를. 너와의 혼담을 위해 내주겠다는 것들이 아주 많아.”

이야기를 듣던 디에타는 오스만의 의도를 이해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오스만 아르베니아는 가치를 재단한다. 그리고, 그는 딱히 디에타를 낮잡아 보지도 무시하지도 않았다.

단지 파악했을 뿐이다.

디에타가 가진 가치와, 그 고점을.

디에타가 일궈낸 상단은 이미 궤도에 올랐다. 그녀의 나이는 혼인하기에 걸맞으며, 그 외모는 충분히 무르익어 꽃을 피워냈다. 상단도, 디에타 본인도 지금이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단 뜻이다.

가장 가치가 높을 때 매각해라.

그것이 상인들의 철칙이었으며 상식이었다.

오스만 아르베니아는 귀족인 동시에 상인이었다. 그는 정치란 결국 명분을 앞세워 장사질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으므로.

“네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별채를 기억하느냐?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손님들이 찾아오거늘, 내 너를 따로 부르도록 하마.”

가문의 저택에서 멀리 떨어진 영지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별채. 얼굴에 화상을 입어, 가치를 잃은 제 어머니가 추방당했던 곳. 그 별채를 뭐라고 부르는지 디에타는 잘 알고 있었다.

아르베니아의 새장.

가치를 잃은 자들을 추방하거나, 도망치지 못하게 가둬두는 감옥. 오스만의 의도를 읽어낸 디에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틀 차 시험도 순조롭게 끝마쳤다.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합격점을 찍어준 감독관을 뒤로하고, 나진은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길을 걷다가 말고 나진은 시선을 옮겼다. 갈라진 인파 사이로 화려한 마차가 지나가고 있었으니까.

‘요란스럽네요.

-귀족이라도 행차한 모양인데?

나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마차에 새겨진 가문의 문양을 보았다. 뱀과 같은 형상이 새겨진 문양.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문양이었다.

-아르베니아?

‘저 문양을 아세요?

-응. 내 시대에도 저 문양이 새겨진 깃발을 흔들며 전장에 섰던 놈이 하나 있었거든.

그 이야기를 흘려들으며 나진은 턱을 매만졌다. 아르베니아, 아르베니아··· 그 이름을 곱씹던 나진이 짧게 탄식했다. 기억이 났으니까.

아르베니아의 버려진 자식.

귀족과의 ‘사소한’ 다툼이 발생했을 때, 귀족은 분명 디에타를 그런 식으로 불렀었다. 그럼 디에타가 속한 가문에서 사람을 보내온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진은 마차가 향하는 곳을 보았다.

마차는 상단이 있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윽고 멈춰 선 마차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반질반질하게 닦인 갑옷을 차려입은 기사 넷과, 그들의 호위를 받으며 내리는 화려한 제복을 차려입은 남자. 디에타와는 달리 화려한 금발의 사내였다.

그 사내는 기사를 대동한 채 상단의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뒤따라 걷는 네 명의 기사. 그리고 그 뒤를 따라, 허름한 갑옷을 입은 기사 하나가 따라붙었다. 익숙한 모습의 기사였다.

디에타의 호위 기사, 파시온.

철컥.

그가 문득 뒤를 돌아봤다.

나진과 시선을 마주한 순간 파시온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를 악문 파시온은 사내의 뒤를 따라 상단의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상단의 이름이 ‘디에타’에서 ‘아르베니아’로 바뀐 것은, 그리고 아르베니아 상단에서 나진에게 한 통의 편지가 날아온 것은 하루 뒤의 이야기였다.

아르베니아 상단으로부터 날아온 초대장.

초대장을 쥔 채 나진은 상단으로 향했다. 건물 자체에 크게 바뀐 것은 없으나, 집무실로 향하는 계단에는 기사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그들은 나진이 초대장을 보여주자 길을 터줬다.

계단을 올라 최상층으로.

최상층에는 과거와는 달리 시종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나진이 직접 문을 두들길 필요도 없이, 나진을 확인한 시종이 대신 문을 두들기고, 대신하여 문을 열어주었다.

그렇게 들어선 집무실의 안.

늘 그곳에 앉아 나진을 살갑게 맞이하던 갈색 머리칼의 소녀는 없었다. 집무실에 앉아있는 것은 금발의 청년과, 그 곁을 지키고 선 두 명의 기사다. 그중 하나는 디에타의 호위 기사였던 파시온이었다.

“오, 귀한 손님이 오셨군.”

상석에 앉아있던 청년이 미소 지었다.

나진이 멀뚱멀뚱 청년을 바라보고 있자니, 청년의 곁에 서 있던 기사가 눈을 부릅떴다.

“아게시오 공자님께 예의를 갖추도록.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리고, 이름을 밝혀라.”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것 같은 기사의 모습.

그가 떨군 불호령에 나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꼽다는 듯 기사를 바라보는 나진의 눈빛에, 기사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에 손을 올리려는 순간이다.

“하하하!”

청년이 웃음을 터뜨렸다.

“과연, 캄브리아에서 이름을 날리는 모험가라면 이래야지. 필레온 경? 그리 깐깐하게 굴지 않아도 된다네. 이곳은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이지 않은가. 모험가들의 도시에 왔으면 그들의 규칙을 따르는 게 옳다.”

그가 웃음과 함께 말했다.

“나는 아게시오 아르베니아. 아르베니아 공작가의 첫째 자식이지.”

“녹색 등급의 모험가, 이반입니다.”

“그래. 그대에 대한 이야기는 좀 들었지. 듣기로는 전 상단주인··· 내 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던데.”

그리 이야기를 이어가던 아게시오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일단 앉게. 내가 그대를 몇초만 더 올려다보고 있으면 필레온 경이 그대의 무릎을 부숴, 억지로 무릎 꿇릴지도 모르는 일이니.”

아게시오의 곁에 서 있는 기사.

눈을 부릅뜨고 있는 기사를 흘겨보니, 확실히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보이긴 했다. 나진은 짧게 숨을 내뱉고선 제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뭐, 그대를 부른 건 그리 거창한 이유는 아니라네. 상단주의 자리에 앉았으니 장부를 확인하고, 이것저것 손을 보고 있거늘··· 그대에 대한 이야기가 제법 중히 적혀있더군.”

상단에서 투자하는 인재.

그중에서도 나진과 관련된 투자 부분은 디에타가 직접 작성한 것이다. 핏빛 트롤의 가죽으로 만든 방어구와, 지원 예정에 있던 수많은 물품.

나진에 대한 디에타의 평가에는 ‘백각 등급의 모험가를 노려볼 만한 인재’ 라고 쓰여 있었다.

그 모든 평가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참고할 만은 했다. 실제로 눈앞의 모험가에 대한 소문은 캄브리아를 넘어 아게시오의 귀에까지 들려오곤 했으니까.

“악마 기사 토벌전의 주역, 그대에 대한 소문은 조금 들었다네. 무려 그 아탕가의 기사단에서 그대의 이름을 입에 담았으니 모르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아게시오가 팔짱을 낀 채 웃었다.

“보시다시피 상단주의 자리를 꿰차게 됐으나, 나는 그리 오래 이 상단에 있을 생각은 없어. 어디까지나 잠시 거쳐 가는 자리이니 말일세. 하지만, 대충할 생각도 없지.”

그가 나진을 똑바로 바라봤다.

“나와 거래를 하지 않겠나?”

“거래, 말씀입니까?”

“그래. 길어봐야 몇개월 정도 이 도시에 머무를 테지만··· 그 몇개월간 나는 인재를 끌어모을 생각이거든. 미래를 위한 투자 겸 실적을 올려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말야.”

그가 나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대는 이런 도시에 있을 만한 인재가 아니지 않나? 아르베니아 공작가가 그대의 뒷배가 되어주겠네. 무엇보다 그대는 기사를 동경하는 듯한데······.”

아게시오 아르베니아가 미소 지었다.

“기사 서임이야 어려운 것도 없는 일이지. 그대가 거래를 받아들인다면, 서임식 정도야 얼마든지 해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