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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劍聖) 카론은 별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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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감히 초월에 이른 소드 마스터를 별종이라고 부르겠거니와, 카론은 별종이란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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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마경으로 훌쩍 떠나 고위 악마들의 목을 우수수 들고 오는가 하면, 캄란의 인근으로 발걸음하여 경계를 넘어오는 저주받은 것들을 도륙 내고 오고, 또 어느 날 보면 별들의 전장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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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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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술을 하나 구했다며 저 밤하늘의 성좌들의 성역으로 발걸음하여 대작을 하질 않나, 경비병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가운데 성벽을 훌쩍 넘어 제국의 황제와 술 한잔 걸치고 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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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을 일삼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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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별종 중의 별종인 카론이라곤 하나, 세간은 그를 그렇게까지 위험하게 여기진 않는다. 그가 신봉하는 가치는 너무나도 선명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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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劍), 그리고 의(義)와 협(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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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가의 기사들이 명예와 긍지로 스스로를 속박하듯, 검성은 의와 협으로 스스로를 속박했다. 그는 권력이니 명예니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스스로가 옳다고 여기는 일에 매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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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들어찬 것은 검밖에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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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권력에는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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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목적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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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런 카론에게도 목적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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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제나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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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극한에 올라야 한다고. 더 많은 별을 손에 넣어 더 강해져야만 한다고. 그것은 단지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하는 이의 마음가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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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강함을 갈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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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에 카론은 언젠가 이렇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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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의 교단의 비원을 이루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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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원이 무엇인지 세간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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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카론과, 검의 교단의 주인 자리에 앉았던 역대 검성들만이 비원의 정체를 알고 있다. 그것은 비원이라기보단 차라리 의무와 숙명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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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원을 카론은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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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원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불세출의 천재라 불리는 자신조차 뛰어넘을 괴물이다. 평범한 방식으론 교단의 비원에 접근조차 하지 못할 테니까. 그렇기에 카론은 찾아헤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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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뛰어넘을 가능성을 지닌 존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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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자신에게 ‘다음’을 보여줄 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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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렇다면 너는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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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은 눈앞의 청년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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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번 들여다봐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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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얼마만큼의 재능을 가졌는지. 저자가 자신이 찾아 헤매던 그 존재가 될 수 있을지. 그렇다면 저 청년이 지닌 가치를 무엇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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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답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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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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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면, 검으로 확인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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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검의 교단의 방식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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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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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카론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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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집을 든 채 카론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마치, 덤벼보라는 듯이. 그것은 오만이 아니다. 강자가 가진 여유다. 그 사실을 나진은 부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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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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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자신이 전력을 쏟아붓고, 거기에 엑스칼리버까지 뽑아 든다고 한들 이길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카론과 자신 사이에 놓인 간극은 성검으로도 메꿀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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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의 정점에 오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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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성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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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개의 별을 가지고 있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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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승천하면 언제든 성좌가 될 수 있는 상태지만, 아직 땅에 남아있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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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별이 될 수 있음에도 인세에 남아있는 존재다. 나진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검을 늘어트렸다. 정점을 경험할 기회란 그렇게 많지 않다. 영문도 모르게 찾아오긴 했으나, 이 기회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나진은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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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으므로, 대충 할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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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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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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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체내에 흐름이 휘몰아쳤다. 검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이 다 알려진 마당이니, 더는 숨길 필요가 없었다. 순백의 검기가 나진의 검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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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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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볼크만이 눈을 크게 떴다. 고작 일 개월 만에 검기를 깨우쳤다는 건 말이 안된다. 그때, 검을 맞부딪쳤을 때부터 검기를 다룰 줄 알았다는 게 옳은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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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숨기고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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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크만이 미소 지었다. 그 사실에 실망하진 않는다. 오히려 나진이 카론을 상대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볼크만은 흥미를 느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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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카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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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전히 검기를 뽑지 않았다. 검집을 든 채 나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쾅, 하고 나진이 땅을 박차며 카론을 향해 달려들었다. 소드 엑스퍼트의 수준은 이미 넘어선 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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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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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의 가속과 함께 나진의 검이 휘둘러졌다. 쾌속의 일격. 검을 휘두르는 자세도, 검이 그리는 궤적도 깔끔했다. 중위 사제인 볼크만이 보기에도 흠잡을 데 없는 일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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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카론에겐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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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이 가볍게 검집을 휘둘렀다. 검집의 속도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적당한 속도로 다가온 검집이 검을 휘두르는 나진의 어깨에 닿았다. 카론은 그대로 검집을 앞으로 쭉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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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으로 나진의 자세는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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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의 궤적이 비틀리고, 균형이 무너진 나진이 뒤로 넘어진다. 간신히 몸을 비틀어 넘어지는 것만은 면했지만··· 나진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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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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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장 자세를 바로잡으며 나진이 카론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세 번··· 다섯 번에 이르기까지 조금 전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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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은 가볍게 검집을 휘둘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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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으로 나진의 자세를 무너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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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일격조차 아니었으며, 빠른 일격도 아니었다. 카론이 검집을 내지른 속도는 자신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느렸다. 그럼에도 저자는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자세를 무너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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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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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답을 나진은 알고 있었다. 자세의 빈틈. 불안정한 부분. 범인(凡人)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아주 미세한 틈을, 카론은 정확하게 찌르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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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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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짧게 숨을 내뱉으며 검을 고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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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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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지켜보던 볼크만은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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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의 대련은 대개 저런식으로 이루어진다. 상대와 같거나 그보다 느린 속도로 카론은 스스로의 검을 제한하나, 그 제한이 무의미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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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은 철저하게 대상을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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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을 찌르고, 검로를 박살 내고, 자세를 읽어 무너트리며 제자리에서 모든 검을 막아 내버린다. 분명 자신보다 느리게 검을 휘두르는 상대에게 압도당하는 경험은 결코 빈말로도 유쾌하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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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검이 부정당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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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이 부정당하는 느낌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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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카론과의 대련을 꺼리는 이들이 많았다. 얻는 것이 많다곤 하나, 한번 무너져 버린 자존심을 회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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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청년은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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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뛰어나다는 자각은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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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타격이 좀 크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볼크만이 나진을 지켜보고 있을 무렵이다. 나진은 조금 전과 똑같은 자세로 카론을 향해 달려들었다. 제 검술에 빈틈이 있단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걸까. 그렇게 볼크만이 혀를 찼을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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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이 검집을 내지르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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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움직임이 일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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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 번 찔렸던 빈틈이다. 빈틈이 찔린 순간 나진은 그것을 어떻게 메워야할지, 자세를 어떤 식으로 교정해야 할지 머릿속에서 정리를 마쳤다. 제 몸을 연속된 동작으로 구분해, 잘못된 그림을 날려버리는 것은 나진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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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이 찌르려 했던 빈틈은 막혔다. 카론은 물러서지 않은 채 검집을 가볍게 휘둘렀다. 처음으로 나진의 검과, 카론의 검집이 맞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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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 없이는 검기를 두른 검을 막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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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당연한 상식이나, 소드 마스터는 상식의 위에 군림하는 존재들이다. 카론의 검집은 검기를 두르지 않았음에도 너무나도 가볍게 나진의 검을 받아 흘려냈다. 검집 위로 흐르는 흐름이 그렇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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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가가가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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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진은 당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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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장 자세를 틀어 카론을 향해 연격을 펼쳤다. 가속된 검이 휘둘러지는 가운데 카론의 검집은 몇번이고 나진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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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자세로 밀쳐 나가고 바닥을 구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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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최초의 한 번뿐이다. 한번 찔린 빈틈을 나진은 두 번 다시 내주진 않았다. 한번 굳어진 자세는 버릇과 같아서 교정하는 것이 어렵다고 검사들은 말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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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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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으로 자세를 교정하며 제 빈틈을 메꿔버리는 나진의 모습을 본 볼크만은 눈을 부릅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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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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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의 입가에는 미소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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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째서 볼크만이 눈앞의 청년을 고평가 했는지 얼추 깨달을 수 있었다. 확실히 뛰어난 재능이다. 스스로의 몸을 통제하는 법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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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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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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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은 나진이 휘두르는 검에서 아탕가의 검술을 느꼈고, 용병들의 거친 검을 보았으며, 볼크만의 검 또한 느꼈다. 청년의 검은 여러 개의 검술이 뒤섞여 있었다. 허나 그것은 완전히 융화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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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누군가를 흉내 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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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자신을 위한 검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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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하고 흉내 내는 것에 재능이 있다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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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렇다면 한번 봐보도록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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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을 찌르는 건 이만하면 됐다. 이 이상으로 빈틈을 파고들려면, 저 청년보다 빠르게 검을 휘둘러야 했으니까. 그러니 카론은 검집을 고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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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를 잡은 그가 펼치는 것은 교단의 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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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의 교단의 정점, 검성이란 위치는 그저 소드 마스터의 자리에 오른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단에 존재하는 모든 검술과 모든 자세의 극한에 올라야만 가질 수 있는 칭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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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세 명의 소드 마스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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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검술로 맞부딪친다면, 카론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만큼이나 카론이 이룬 경지는 이질적인 것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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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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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카론이 기술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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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눈을 부릅떴다. 검기의 형태를 변환시키고 특성을 부여해 휘두르는 기술이 아닌··· 순수하게 육체를 움직여 펼치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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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술은 본다면 모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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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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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여태껏 그래왔으며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으니까. 카론이 펼치는 검술을 그대로 들이마셔 자신의 양식으로 삼고자 나진은 눈동자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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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았다. 머릿속에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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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받아내며 나진이 뒤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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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볼크만의 것과는 다르다. 같은 교단의 검술이지만 그 완성도가 달랐다. 하기야, 이렇게 검을 휘두를 수 있으면 자신의 검이 빈틈투성이로 보이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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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그려진 자세에 나진이 혀를 내둘렀다. 볼크만의 검술이 열세 장 남짓의 그림으로 그려졌다면, 검성의 검은 백 장이 넘는 그림으로 그려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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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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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가 시큰거리다 못해 코피가 흘렀다. 핏발 선 눈동자가 따끔거렸다. 고작 자세 하나를 본것뿐인데 머리에 과부하가 걸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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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하는 것에 자신이 있다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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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이 나진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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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검집을 까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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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든지 훔쳐봐라. 얼마든지 따라 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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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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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훔칠 수 있는 한, 난 내가 가진 모든 검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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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해볼 수 있다면 해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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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진은 코피를 손등으로 훔치며, 미소 지어 보였다. 저렇게 시원스레 나온다면 거부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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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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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악문 채 나진이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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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을 따라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진은 깨달았다. 자신의 몸과 머릿속에 그리는 그림이 조금씩 어긋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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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번, 41번, 56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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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일곱 장의 그림이 어긋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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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백 장이 넘어가는 그림에서 그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얼핏 보기에 나진은 카론의 검을 훔쳐낸 것처럼 보이며, 범인의 눈에 보기에 나진의 검이 그리는 궤적은 완벽해 보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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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휘두르는 나진 본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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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보고 있는 카론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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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난 부분에서 만들어진 빈틈이 존재함을. 이 검격이 불완전함을. 카론이 가볍게 검집을 내질러 빈틈을 찔렀다. 자세가 무너진 나진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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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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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주저앉은 채 나진은 멍하니 제 손에 들린 검을 바라봤다. 그림이 어긋났다. 여태껏 이런 식으로 그림이 어긋난 건 처음이었다. 나진은 머릿속에서 어긋난 그림들을 떠올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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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움직여 보니 느껴지는 것은 위화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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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몸을 움직여 봐도 따라 할 수 없는 부분이 그림에는 존재했다. 그 부분을 나진이 곱씹으며 자리에서 일어선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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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 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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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이 나진을 향해 검집을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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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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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은 심드렁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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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나의 검이다. 나의 육체에, 나의 호흡에, 나의 속도에 맞춰 개량한 오직 나만의 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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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을 말하듯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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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낸다 한들 그게 어디 자네의 것이겠나? 이건 내 것이야. 오직 나만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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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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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하는 재능은 확실히 타고났군. 놀라울 지경이야. 하지만, 단순히 모방에 그쳐서야 의미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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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휙, 하고 검집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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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급히 끌어당긴 검이 그리는 궤적은 너무나도 쉽게 박살 났다. 나진은 제 목덜미 바로 앞에 닿아있는 검집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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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검은 어디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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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이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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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이, 검(劍)에 대해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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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검을 보여라. 아직 가지지 못했다면, 이 자리에서 만들어라. 그리하지 못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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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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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련은 무가치하겠지. 베끼는 것밖에 할 줄 모른다면, 네 검은 결코 극한에 오르지 못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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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무가치한 대결에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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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은 그렇게 선언했다. 그 선언의 앞에서 나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웃음을 흘렸다. 갑작스레 대결을 걸어왔으면서 멋대로 가치를 재단하고 있다. 물론 나진은 검성의 말을 헛소리로 일축하고 무시해도 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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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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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 대신 나진은 제 목덜미에 겨눠진 검집에 손을 뻗었다. 검집을 움켜쥐려는 그 돌발행동에, 검성이 눈살을 찌푸린 채 검집을 거둬들이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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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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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진의 손아귀가 검집을 붙잡았다. 검집이 그리는 궤적을 정확하게 예상한 듯한 움직임이다. 그 움직임 앞에 검성은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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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대련에 가치가 생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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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집을 움켜쥔 채 나진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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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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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돌하기 짝이 없는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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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물음 앞에, 검성은 웃음을 터뜨렸다. 소드 마스터의 앞에서 쫄기는커녕 당당히 눈을 마주한 채 목소리를 내는 나진의 모습이 신선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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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임. 그리고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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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이라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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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 스승이 되겠단 뜻이다. 물론, 자네가 원한다는 조건 아래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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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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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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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집을 놓은 뒤 나진이 뒤로 몇걸음 물러섰다. 나의 검을 물었나. 모방 말고는 볼 것이 없다 했나. 그건, 확실히 검성의 말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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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것이란 걸 생각해 본 적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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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 하여 저런 취급을 받고도 그냥 넘어갈 만큼 나진은 성격이 좋지 않았다. 어떻게든 상대에게 변수를 내보이고, 저 검성이 놀란 듯한 모습을 봐야 속이 풀리겠노라고 나진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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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검은 아직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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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수. 자신만의 것이라면 한 가지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 그건 나면서부터 나진이 가지고 난 것이요, 지금껏 무의식중에 단련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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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력(眼力), 그리고 순간적인 판단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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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한시적인 미래시까지 도달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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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두 눈동자가 노을빛으로 번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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