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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 성좌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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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그리 묻거든 열 중 아홉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거야 당연히 선별의 검 아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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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성좌, 선별의 검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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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에 대다수는 아서 일대기의 주인공인 아서왕이 아니냐고 답할 것이고, 제국의 역사를 공부한 지식인들은 현 제국의 기반을 다진 선왕이라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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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기사와 검의 길을 걷는 구도자들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성좌 선별의 검이야말로 가장 긍지 높은 기사요, 가장 위대한 검사이자 영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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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성좌 선별의 검에 대한 기록은 분야를 막론하고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었다. 제국의 역사에서, 검술의 교본에서, 정치와 제왕학에서, 악마와의 전쟁을 기록한 비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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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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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가장 먼저 보이는 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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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성좌들 중 독보적인 인지도를 가졌던 아서왕이나, 그런 아서왕의 명성이 더욱 드높아지게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수백 년 전 선별의 검이 이 땅에 내린 하나의 시련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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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시련, 선별(選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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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을 주기로 13일간 진행되는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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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대상은 전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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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련의 내용은 지나치리만치 단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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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박힌 검을 뽑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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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엔 어떠한 조건도 걸려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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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도전자가 시련에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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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세출의 천재라 불리는 검사가, 검의 구도자들이, 역사서에 실린 영웅들이··· 수많고 수많은 이들이 바위에 박힌 검에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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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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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세기가 지나도록 검은 뽑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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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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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에게 선별(選別)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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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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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머리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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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관자놀이를 엄지로 꾹꾹 눌러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기야, 요 며칠 잠을 설쳤으니 머리가 무거울 만도 하지. 광장에 떨어지는 검을 본지 며칠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진은 여전히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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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계속 어른거리는 성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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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검이 내뿜던 찬란한 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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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머릿속을 가득 채운 한 줄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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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뽑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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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장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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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는커녕 이제 한 줄이 아니라 두 줄이 되려 하고 있었다. 검을 뽑아라 다음에 따라오는 ‘너는 검을 뽑을 수 있다’ 라는 어이없는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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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긴 뭘 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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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잘난 소드 마스터조차 못 뽑는 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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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도 끝도 없는 망상인 걸 알고는 있는데, 머릿속에서 문장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깊게 뿌리내린 두 줄의 문장. 누가 머릿속을 휘저어 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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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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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한숨을 내쉰 나진이 벤치에 몸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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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외곽에 놓인 벤치에 앉아 나진은 광장의 중심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로 붐벼야 할 광장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광장의 중심에는 이 침묵을 만들어 낸 당사자들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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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에서 보내온 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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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빛이 서린 갑옷을 차려입은 채 그들은 성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이 성검의 위에 덮어둔 천 덕에 검에선 별빛 한 줌조차 새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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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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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게 쩨쩨하게 구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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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검은 못 보더라도, 성검에서 새어 나오는 별빛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광장을 어슬렁거리던 나진으로선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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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죽치고 있어 봐야 성검을 볼 수 있을 거 같진 않다. 그렇게 광장을 떠나려다 말고 나진이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 시야에 뭔가 들어온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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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외곽, 그늘진 곳에 모여 앉아있는 어린아이 둘. 둘은 가판대라 부르기도 뭣한 판자 쪼가리 위에 물건들을 올려둔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뚝, 나진과 아이의 시선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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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그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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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팔고 있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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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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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판대 앞에 쪼그려 앉은 채 나진은 아이들이 올려둔 물건을 보았다. 신문 쪼가리와 잡동사니들. 뭘 팔고 있었냐는 나진의 질문에 아이들은 손가락을 뻗어 광장의 중심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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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들이 버린 거 주워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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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질은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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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뻗은 손가락을 나진이 자신의 손바닥으로 가렸다. 물론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굴지는 않겠지만, 만일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성깔 더러운 병사한테 잘못 걸리면 흠신 두들겨맞을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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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거 신문 한 부 살게. 얼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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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둘, 아니 세닢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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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년이 뻗은 손바닥 위에 나진은 동전 세닢을 올려줬다. 두 손으로 동전을 조심스레 받은 소년은 제 옆에 앉아있는 아이와 눈을 마주치곤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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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당량 채웠다, 하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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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동전 몇닢을 더 꺼내려다가, 그 목소리를 듣고선 동전 주머니를 닫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윽고 나진은 노점에서 간단한 식사 거리를 사 와 아이들의 앞에 내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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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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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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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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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굶주렸던 모양이지. 나진은 쓰게 웃었다. 보아하니 할당량을 정해둔 ‘부모’ 아래서 생활하는 것 같았다. 이런 아이들한테는 돈 몇푼 챙겨주는 것보다 음식으로 주는 게 더 좋다는 사실을 나진은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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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갈취당할 뿐이지만, 이미 배 안에 들어찬 음식을 도로 뱉어내게 할 방법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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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생각이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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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의 눈에 들기 전까지 자신도 저 아이들처럼 살았으니까. 제 과거를 떠올리며 아이들이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진은 불현듯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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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 섞인 비웃음 소리가 들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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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낄거리는 비웃음 소리. 광장의 중심에 서 있는 병사들이 낸 웃음소리였다. 그들은 나진과 아이들을 손가락질하며 큰 목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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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들 하는 짓 좀 봐라, 우리가 버린 걸 주워다 팔고 있다··· 이딴 데 사는 놈들이 다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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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대놓고 이쪽을 손가락질하고 큰 목소리로 떠들고 있음에도, 아이들은 감히 그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들려도 들리지 않는 척, 보여도 보이지 않는 척 아이들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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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굴함과 굴욕은 잠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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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들겨 맞아 부러진 팔다리는 평생 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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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라 해서 아이들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쯧, 하고 속으로 짧게 혀를 차며 나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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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들이랑 눈 안 마주치게 조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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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나진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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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내 이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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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사이에서 형 엄청 유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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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해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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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처럼 되고 싶다고 돈 모아서 칼 사는 애들도 많아요. 달리기가 빠른 애들은 아빠가 따로 모아서 검 휘두르는 훈련도 시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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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형처럼 되고 싶은데, 우리는 달리기가 느려서 아빠가 안 된데요. 그렇게 중얼거리는 아이의 모습에 나진은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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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되서 뭐하게? 사람 담그고 다니는 게 썩 건실한 삶은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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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차마 그런 말을 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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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을 뒤지고 누가 먹다 버린 음식들을 주워 먹고 살던 과거, 그때는 나진 역시 지금의 저 아이들처럼 이반의 조직원들을 부러워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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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 다 챙겨 먹고 침대에서 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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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확실히 부러울 만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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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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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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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아이의 머리칼을 쓱쓱 헝클어트리고선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기며 나진은 신문을 펼쳤다. 신문에는 각 도시에 날아와 꽂힌 성검과 시련의 도전자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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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소드 마스터, 게르드 이자발트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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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별의 시련 역시 도전 의사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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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도합 다섯번째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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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마지막 13일째 되는 날 제국의 수도 카멜롯에서 시련에 도전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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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에 도전하는 늙은 소드 마스터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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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의 구도자, 검성(劍聖) 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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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박힌 성검을 흔들리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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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보다 큰 폭으로 흔들린 검, 다음 시련에선 검을 뽑아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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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의 구도자, 검성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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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혈(星血) 교단의 처형인, 유엘 라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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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검을 붙잡은 순간 칼자루가 거칠게 흔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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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뽑는 데는 실패했으나, 칼자루가 주인을 거부하듯 흔들리는 것은 이례적인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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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星體) 교단에선 유엘 라지안의 행보에 불만을 표해. ‘피에 미친 사냥개 따위가 손을 댈만한 검이 아니다’ 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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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의 살인귀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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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숱한 도전자들의 이야기가 신문에 적혀 있었다. 그들의 배경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검을 뽑을 당시의 묘사를 읽으며 나진은 괜스레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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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도전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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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떠오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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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눈을 감은 채 제 미간을 꾸욱 눌렀다. 만약, 혹시, 어쩌면 하는 단어들과 함께 떠오르는 생각을 나진은 씹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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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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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대로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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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넘은 꿈을 꾸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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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다볼 수 없는 것을, 감히 보려 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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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의 경고이자 조언. 말버릇처럼 이반이 내뱉었던 말을 나진은 곱씹었다. 그래, 닿지 않는 것에 손을 뻗어봐야 그 끝은 비참할 뿐이다. 이 도시에 떨어진 수많은 이들이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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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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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신문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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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읽으며 잠시나마 빛났던 나진의 눈동자는 어느샌가 본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흐릿하고, 어스름하고, 불분명한··· 지하도시 아트만에 어울리는 탁한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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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마지막으로 광장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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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별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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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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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소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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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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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은 팔짱을 낀 채 이를 갈았다. 그녀의 미간은 잔뜩 구겨져 있었으며, 팔뚝을 두들기는 손가락의 움직임은 신경질적이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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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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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짜증 섞인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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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멀린은 아서를 모욕한 애송이 하나를 찾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지상을 샅샅이 뒤졌다. 자신의 별빛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볼 수 있는 천리안을 지닌 멀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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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지기 짝이 없는 애송이 하나 찾아내는 것은 일도 아니며, 그 애송이를 벌하는 것 역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리라 그녀는 확신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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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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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목이 뜨끈해질 정도의 모욕을 들은 날로부터 며칠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멀린은 여전히 소년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 사실을 그녀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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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성좌가 숨겨주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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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랬다면 오히려 발견하기 더 쉬웠을 것이다. 별빛으로 무언갈 숨기려 한다면 그 부분의 공간만 일그러져 보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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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별빛이 닿지 않는 곳에 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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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란, 별이 추락하는 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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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의 몇 개의 영지를 떠올려 본 멀린은 이내 헛웃음을 흘렸다. 그런 곳에서 사람이 살아갈 수 있을 리가 없다. 밤하늘에 걸린 별자리들조차 바스러지는 곳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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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대체 왜 안 보이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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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땅굴이라도 파고 숨어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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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치 일주일 동안 땅굴을 파고 숨어 바깥으로 얼굴조차 안 내밀고 있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놀라운 일이다. 멀린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흘러내린 제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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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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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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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써야 할 일이 한가득한데 엄한 곳에 정신력을 소모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하기야, 생각해 보면 천년 넘게 살아온 초월자인 자신이 한낱 애송이의 도발에 이토록 끌려다니는 것도 우스운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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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자, 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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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은 눈을 감고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화를 다스리려 해보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귓가에 ‘아서는 시대를 잘 탔을 뿐인 풍운아···.’ 따위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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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려넘길 수 있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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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하면 그만일 모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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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멀린이 그리하지 못하는 것은, 소년이 가볍게 던진 모욕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멀린은 이젠 자신의 역린이 되어버린 누군가의 예언을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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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칼리버는 새로운 주인을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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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 몇백년이 걸려서라도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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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영웅의 재목을 선별(選別)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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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탁의 배신자가 남긴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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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만들어 낸 영웅인 아서 따위와는 다른 진정한 영웅. 아서보다 위대해질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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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자야말로 브리튼의 구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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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캄란의 너머, 우리가 꿈꾸던 세상의 끝에 인도해 줄 진정한 왕이자 인도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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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 눈뜬 맹인아! 너의 눈에는 이 찬란한 미래가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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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을 떠올린 멀린의 표정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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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소년의 말과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아서가 시대를 잘 탔다는 부분이 특히나. 멀린은 눈살을 찌푸린 채 혀를 찼다. 시대를 잘 타긴 개뿔, 아서가 얼마나 힘들게 그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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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는 시대를 잘 탄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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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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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을 만든 거야, 이 머저리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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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백 년간 누구도 아서가 남긴 검을 뽑지 못했다. 그것만으로도 아서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였는지 증명되는 셈이다. 멀린은 코웃음을 치며 지상을 내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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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지에서 진행 중인 별의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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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련에 도전하는 숱한 검사의 모습이 멀린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 중 그 누구도 검을 뽑지 못하고 돌아가는 모습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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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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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코웃음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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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뽑긴 누가 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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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검을 뽑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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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 누구도 아서보다 위대해질 수는 없다. 그러니 배신자의 예언도, 정체 모를 애송이의 조롱도 모두 헛소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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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멀린이 숨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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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마음이 좀 편해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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