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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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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 성좌가 누구인가?

누군가 그리 묻거든 열 중 아홉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거야 당연히 선별의 검 아니겠냐고.

그렇다면 성좌, 선별의 검은 누구인가?

그 질문에 대다수는 아서 일대기의 주인공인 아서왕이 아니냐고 답할 것이고, 제국의 역사를 공부한 지식인들은 현 제국의 기반을 다진 선왕이라 말할 것이다.

그리고 기사와 검의 길을 걷는 구도자들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성좌 선별의 검이야말로 가장 긍지 높은 기사요, 가장 위대한 검사이자 영웅이라고.

이렇듯 성좌 선별의 검에 대한 기록은 분야를 막론하고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었다. 제국의 역사에서, 검술의 교본에서, 정치와 제왕학에서, 악마와의 전쟁을 기록한 비석에서······.

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는 이름.

저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가장 먼저 보이는 별자리.

안 그래도 성좌들 중 독보적인 인지도를 가졌던 아서왕이나, 그런 아서왕의 명성이 더욱 드높아지게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수백 년 전 선별의 검이 이 땅에 내린 하나의 시련이 바로 그것이다.

별의 시련, 선별(選別).

13년을 주기로 13일간 진행되는 시련.

시련의 대상은 전 인류.

그 시련의 내용은 지나치리만치 단순했다.

‘바위에 박힌 검을 뽑아라.

그 외엔 어떠한 조건도 걸려있지 않았다.

숱한 도전자가 시련에 도전했다.

불세출의 천재라 불리는 검사가, 검의 구도자들이, 역사서에 실린 영웅들이··· 수많고 수많은 이들이 바위에 박힌 검에 손을 뻗었다.

그렇게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다.

수 세기가 지나도록 검은 뽑히지 않았다.

그 누구도.

검에게 선별(選別)되지 못했다.

오늘따라 머리가 무겁다.

나진은 관자놀이를 엄지로 꾹꾹 눌러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기야, 요 며칠 잠을 설쳤으니 머리가 무거울 만도 하지. 광장에 떨어지는 검을 본지 며칠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진은 여전히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눈앞에 계속 어른거리는 성검의 모습.

성검이 내뿜던 찬란한 별빛.

그리고, 머릿속을 가득 채운 한 줄의 문장.

‘검을 뽑아라.

그 문장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으니까.

떠나기는커녕 이제 한 줄이 아니라 두 줄이 되려 하고 있었다. 검을 뽑아라 다음에 따라오는 ‘너는 검을 뽑을 수 있다’ 라는 어이없는 문장.

뽑긴 뭘 뽑아.

그 잘난 소드 마스터조차 못 뽑는 검인데.

밑도 끝도 없는 망상인 걸 알고는 있는데, 머릿속에서 문장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깊게 뿌리내린 두 줄의 문장. 누가 머릿속을 휘저어 둔 느낌이었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쉰 나진이 벤치에 몸을 기댔다.

광장의 외곽에 놓인 벤치에 앉아 나진은 광장의 중심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로 붐벼야 할 광장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광장의 중심에는 이 침묵을 만들어 낸 당사자들이 서 있었다.

윗동네에서 보내온 병사들.

서늘한 빛이 서린 갑옷을 차려입은 채 그들은 성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이 성검의 위에 덮어둔 천 덕에 검에선 별빛 한 줌조차 새어 나오지 않았다.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더럽게 쩨쩨하게 구는구만.

성검은 못 보더라도, 성검에서 새어 나오는 별빛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광장을 어슬렁거리던 나진으로선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여기서 죽치고 있어 봐야 성검을 볼 수 있을 거 같진 않다. 그렇게 광장을 떠나려다 말고 나진이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 시야에 뭔가 들어온 까닭이었다.

광장의 외곽, 그늘진 곳에 모여 앉아있는 어린아이 둘. 둘은 가판대라 부르기도 뭣한 판자 쪼가리 위에 물건들을 올려둔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뚝, 나진과 아이의 시선이 마주쳤다.

나진은 그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뭐 팔고 있는 거니?”

“엇, 그게···.”

가판대 앞에 쪼그려 앉은 채 나진은 아이들이 올려둔 물건을 보았다. 신문 쪼가리와 잡동사니들. 뭘 팔고 있었냐는 나진의 질문에 아이들은 손가락을 뻗어 광장의 중심을 가리켰다.

“저 사람들이 버린 거 주워 왔어요.”

“손가락질은 하지 말고.”

아이가 뻗은 손가락을 나진이 자신의 손바닥으로 가렸다. 물론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굴지는 않겠지만, 만일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성깔 더러운 병사한테 잘못 걸리면 흠신 두들겨맞을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럼 이거 신문 한 부 살게. 얼마냐?”

“동화 둘, 아니 세닢이요.”

어린 소년이 뻗은 손바닥 위에 나진은 동전 세닢을 올려줬다. 두 손으로 동전을 조심스레 받은 소년은 제 옆에 앉아있는 아이와 눈을 마주치곤 웃음을 흘렸다.

할당량 채웠다, 하는 목소리.

나진은 동전 몇닢을 더 꺼내려다가, 그 목소리를 듣고선 동전 주머니를 닫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윽고 나진은 노점에서 간단한 식사 거리를 사 와 아이들의 앞에 내려놨다.

“먹어.”

“감, 감사합니다!”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아이들.

아무래도 굶주렸던 모양이지. 나진은 쓰게 웃었다. 보아하니 할당량을 정해둔 ‘부모’ 아래서 생활하는 것 같았다. 이런 아이들한테는 돈 몇푼 챙겨주는 것보다 음식으로 주는 게 더 좋다는 사실을 나진은 잘 알았다.

돈은 갈취당할 뿐이지만, 이미 배 안에 들어찬 음식을 도로 뱉어내게 할 방법은 없을 테니까.

‘옛 생각이 나네.

이반의 눈에 들기 전까지 자신도 저 아이들처럼 살았으니까. 제 과거를 떠올리며 아이들이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진은 불현듯 눈살을 찌푸렸다.

조롱 섞인 비웃음 소리가 들린 까닭이다.

낄낄거리는 비웃음 소리. 광장의 중심에 서 있는 병사들이 낸 웃음소리였다. 그들은 나진과 아이들을 손가락질하며 큰 목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저것들 하는 짓 좀 봐라, 우리가 버린 걸 주워다 팔고 있다··· 이딴 데 사는 놈들이 다 그렇지.

그들은 대놓고 이쪽을 손가락질하고 큰 목소리로 떠들고 있음에도, 아이들은 감히 그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들려도 들리지 않는 척, 보여도 보이지 않는 척 아이들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비굴함과 굴욕은 잠깐이지만.

두들겨 맞아 부러진 팔다리는 평생 갈 테니까.

나진이라 해서 아이들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쯧, 하고 속으로 짧게 혀를 차며 나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사람들이랑 눈 안 마주치게 조심하고.”

“네, 나진 형!”

“뭐야. 내 이름 알아?”

“우리들 사이에서 형 엄청 유명해요.”

아이가 해맑게 웃었다.

“형처럼 되고 싶다고 돈 모아서 칼 사는 애들도 많아요. 달리기가 빠른 애들은 아빠가 따로 모아서 검 휘두르는 훈련도 시키고요···.”

저도 형처럼 되고 싶은데, 우리는 달리기가 느려서 아빠가 안 된데요. 그렇게 중얼거리는 아이의 모습에 나진은 침묵했다.

나처럼 되서 뭐하게? 사람 담그고 다니는 게 썩 건실한 삶은 아닌 것 같은데······.

나진은 차마 그런 말을 하진 못했다.

쓰레기통을 뒤지고 누가 먹다 버린 음식들을 주워 먹고 살던 과거, 그때는 나진 역시 지금의 저 아이들처럼 이반의 조직원들을 부러워했으니까.

‘삼시세끼 다 챙겨 먹고 침대에서 자니까···.

그건 확실히 부러울 만하네.

나진이 쓰게 웃었다.

“그러냐.”

나진은 아이의 머리칼을 쓱쓱 헝클어트리고선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기며 나진은 신문을 펼쳤다. 신문에는 각 도시에 날아와 꽂힌 성검과 시련의 도전자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제국의 소드 마스터, 게르드 이자발트 경.」

「이번 별의 시련 역시 도전 의사 밝혀.」

「이것으로 도합 다섯번째 도전.」

「시련의 마지막 13일째 되는 날 제국의 수도 카멜롯에서 시련에 도전할 예정······.」

시련에 도전하는 늙은 소드 마스터의 이야기.

「검의 구도자, 검성(劍聖) 카론.」

「바위에 박힌 성검을 흔들리게 만들어.」

「13년 전보다 큰 폭으로 흔들린 검, 다음 시련에선 검을 뽑아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오가.」

검의 구도자, 검성의 이야기.

「성혈(星血) 교단의 처형인, 유엘 라지안.」

「성검을 붙잡은 순간 칼자루가 거칠게 흔들리다.」

「검을 뽑는 데는 실패했으나, 칼자루가 주인을 거부하듯 흔들리는 것은 이례적인 경우.」

「성체(星體) 교단에선 유엘 라지안의 행보에 불만을 표해. ‘피에 미친 사냥개 따위가 손을 댈만한 검이 아니다’ 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해···.」

교단의 살인귀에 대한 이야기.

그 외에도 숱한 도전자들의 이야기가 신문에 적혀 있었다. 그들의 배경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검을 뽑을 당시의 묘사를 읽으며 나진은 괜스레 입맛을 다셨다.

···나도, 도전해 보고 싶다.

한순간 떠오른 생각.

나진은 눈을 감은 채 제 미간을 꾸욱 눌렀다. 만약, 혹시, 어쩌면 하는 단어들과 함께 떠오르는 생각을 나진은 씹어 삼켰다.

선을 넘지 마라.

주어진 대로 살아라.

주제넘은 꿈을 꾸지 말아라.

올려다볼 수 없는 것을, 감히 보려 하지 말아라.

이반의 경고이자 조언. 말버릇처럼 이반이 내뱉었던 말을 나진은 곱씹었다. 그래, 닿지 않는 것에 손을 뻗어봐야 그 끝은 비참할 뿐이다. 이 도시에 떨어진 수많은 이들이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지 않은가.

“······.”

나진은 신문을 접었다.

신문을 읽으며 잠시나마 빛났던 나진의 눈동자는 어느샌가 본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흐릿하고, 어스름하고, 불분명한··· 지하도시 아트만에 어울리는 탁한 눈동자.

나진은 마지막으로 광장을 돌아봤다.

여전히, 별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소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까득.

멀린은 팔짱을 낀 채 이를 갈았다. 그녀의 미간은 잔뜩 구겨져 있었으며, 팔뚝을 두들기는 손가락의 움직임은 신경질적이기 짝이 없었다.

“후우···.”

그녀가 짜증 섞인 숨을 내뱉었다.

요 며칠, 멀린은 아서를 모욕한 애송이 하나를 찾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지상을 샅샅이 뒤졌다. 자신의 별빛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볼 수 있는 천리안을 지닌 멀린이다.

건방지기 짝이 없는 애송이 하나 찾아내는 것은 일도 아니며, 그 애송이를 벌하는 것 역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리라 그녀는 확신했었다.

그러니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뒷목이 뜨끈해질 정도의 모욕을 들은 날로부터 며칠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멀린은 여전히 소년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 사실을 그녀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다른 성좌가 숨겨주고 있는 건가?

아니, 그랬다면 오히려 발견하기 더 쉬웠을 것이다. 별빛으로 무언갈 숨기려 한다면 그 부분의 공간만 일그러져 보일 테니까.

‘그럼 별빛이 닿지 않는 곳에 살고 있나?

캄란, 별이 추락하는 나락.

그 외의 몇 개의 영지를 떠올려 본 멀린은 이내 헛웃음을 흘렸다. 그런 곳에서 사람이 살아갈 수 있을 리가 없다. 밤하늘에 걸린 별자리들조차 바스러지는 곳인데.

그럼 대체 왜 안 보이는 건가?

어디 땅굴이라도 파고 숨어있는 건가?

자그마치 일주일 동안 땅굴을 파고 숨어 바깥으로 얼굴조차 안 내밀고 있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놀라운 일이다. 멀린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흘러내린 제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쯧.”

멀린이 혀를 찼다.

신경 써야 할 일이 한가득한데 엄한 곳에 정신력을 소모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하기야, 생각해 보면 천년 넘게 살아온 초월자인 자신이 한낱 애송이의 도발에 이토록 끌려다니는 것도 우스운 일 아니겠는가.

잊자, 잊어···.

멀린은 눈을 감고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화를 다스리려 해보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귓가에 ‘아서는 시대를 잘 탔을 뿐인 풍운아···. 따위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까닭이다.

흘려넘길 수 있는 말.

무시하면 그만일 모욕.

그럼에도 멀린이 그리하지 못하는 것은, 소년이 가볍게 던진 모욕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멀린은 이젠 자신의 역린이 되어버린 누군가의 예언을 곱씹었다.

「엑스칼리버는 새로운 주인을 선택할 것이다.」

「몇십, 몇백년이 걸려서라도 반드시.」

「위대한 영웅의 재목을 선별(選別)하리라.」

원탁의 배신자가 남긴 예언.

「시대가 만들어 낸 영웅인 아서 따위와는 다른 진정한 영웅. 아서보다 위대해질 존재.」

「아아, 그자야말로 브리튼의 구원자다!」

「우리를 캄란의 너머, 우리가 꿈꾸던 세상의 끝에 인도해 줄 진정한 왕이자 인도자이리라!」

「멀린, 눈뜬 맹인아! 너의 눈에는 이 찬란한 미래가 보이지 않는가!」

예언을 떠올린 멀린의 표정이 구겨졌다.

묘하게 소년의 말과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아서가 시대를 잘 탔다는 부분이 특히나. 멀린은 눈살을 찌푸린 채 혀를 찼다. 시대를 잘 타긴 개뿔, 아서가 얼마나 힘들게 그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아서는 시대를 잘 탄 게 아니라.”

멀린이 중얼거렸다.

“시대의 흐름을 만든 거야, 이 머저리 새끼들아.”

지난 수백 년간 누구도 아서가 남긴 검을 뽑지 못했다. 그것만으로도 아서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였는지 증명되는 셈이다. 멀린은 코웃음을 치며 지상을 내려다봤다.

각지에서 진행 중인 별의 시련.

그 시련에 도전하는 숱한 검사의 모습이 멀린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 중 그 누구도 검을 뽑지 못하고 돌아가는 모습 또한.

“거봐.”

멀린이 코웃음 쳤다.

“검을 뽑긴 누가 뽑아?”

그 누구도 검을 뽑지 못한다.

그러니 그 누구도 아서보다 위대해질 수는 없다. 그러니 배신자의 예언도, 정체 모를 애송이의 조롱도 모두 헛소리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멀린이 숨을 뱉었다.

이제야 마음이 좀 편해진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