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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소드를 휘감은 순백의 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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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소드 엑스퍼트급의 무인이 뽑아냈다기엔 너무나도 강맹한 검기다. 빛에 휘감긴 수준이 아닌, 아예 빛으로 만들어진 칼날을 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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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출력의 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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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특수한 형태나 성질을 띠고 있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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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당연하다. 나진은 아직 소드 엑스퍼트이며, 시커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으니까. 지금의 나진은 단지 검기의 출력을 한계의 너머까지 올렸을 뿐이다. 오직 자신만이 가능한 방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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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마나 연공법은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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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내에 쌓아두는 마나는 극히 소량이며, 연공한 마나의 태반은 육체를 강화하고 마나가 흐를 통로를 강화하는 데 사용한다. 이는 굳이 마나를 체내에 쌓아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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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나진은 외부의 마나를 빨아들이는 즉시 운용할 수 있었으니까. 공기 중에 떠도는 마나를 빨아들여 나진은 곧장 검기로 엮어낼 수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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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내에 쌓아둔 마나만을 다뤄야 하는 다른 이들과는 마나를 운용하는 그 감각 자체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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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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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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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 자체에 한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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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 떠도는 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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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것의 상태로 세상을 순환하는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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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다루는 나진은··· 드넓은 바다의 한가운데에 물컵 하나를 들고 서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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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작은 그릇으로 퍼낼 수 있는 바닷물이 많지 않을 뿐, 그릇을 키운다면 얼마든지 물을 퍼낼 수 있다는 사실을 나진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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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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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도시를 빠져나오기 직전, 이반과의 결전에서 나진은 무의식중에 무언갈 떠올렸다. 그것은 승리를 갈망하는 나진이 찾아낸 특수한 운용법이자, 오직 나진만이 가능한 운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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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으로 물을 퍼내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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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향해 뛰어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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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속을 허우적대며 익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당장의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제 육체를 내던진다. 그것이 나진이 발견한 도박수였다. 지금 이 순간 나진은 그때와 같이 도박수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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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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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마나 운용법에 멀린은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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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육체에 새겨진 길. 마나가 흐르는 통로, 마나 회로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담길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양의 마나가 나진의 체내에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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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치를 넘어선 마나의 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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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로가 삐걱거리고. 망가지고. 금이 간다. 회로에 다 담기지 못한 마나가 누수(漏水) 하기 시작한다. 누수 된 날것의 마나가 날뛰며 나진의 체내를 할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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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 못 할 양의 마나를 빨아들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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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된 한계의 너머에 발을 디디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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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내를 망가트리고 회로를 망가트리는 대신 압도적인 출력을 손에 넣는, 그야말로 뒤를 생각하지 않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운용법이다. 제아무리 엑스칼리버의 회복력이 있다곤 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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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럭. 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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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뛰는 마나에 체내가 갈가리 찢기는 고통은, 오직 나진이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나진이 한 움큼 피를 토했다. 안에서부터 갈려나가는 고통에 나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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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검을 쥔 손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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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발이 선 눈을 부릅뜬 채 나진은 베른하이겐을 노려봤다. 노을빛의 눈동자에 담긴 것은 승리를 향한 갈망. 나진이 이를 악물고 땅을 내려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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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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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은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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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향한 갈망으로 나진이 만들어낸 운용법. 우연찮게도, 그것은 일찍이 아서가 사용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그 어디에도 기록으로서 남아있지 않는 운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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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강자와 싸워온 아서는 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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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일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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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깨부술 일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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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자신보다 강한 이에게 도전했고, 목숨을 걸고 승리해왔으며··· 제아무리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도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발버둥친 아서가 그 여정 속에서 만들어낸 운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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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서부터 요동치는 마나가 몸을 찢어발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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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로가 삐걱거리고 비틀리는 격통이 덮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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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물러서는 법 없이, 피를 게워내며 적을 향해 달려들어 반드시 그 목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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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의 눈에는 그런 아서의 모습과 나진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거늘, 나진은 저 스스로 아서와 같은 운용법을 깨우쳤다. 오직 승리하겠다는 그 일념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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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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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은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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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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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땅을 박차고 베른하이겐을 향해 달려들었다. 새하얗게 치솟는 백색의 검기가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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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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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이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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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죽어가던 놈이 갑작스레 되살아났다. 그것도 놀랍거늘 약해지긴커녕 그 속도는 더 올라갔으며, 검에 휘감은 검기는 더욱 거세게 치솟고 있었다. 마치 여태껏 힘을 숨기고 있었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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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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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순간 베른하이겐이 밀려났다. 검의 무게도, 근력도 베른하이겐이 우위를 점하지만, 그 출력에서 밀렸다. 거세게 치솟는 검기가 가진 반발력이 베른하이겐의 대검을 밀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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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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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이겐이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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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쥔 손아귀가 저렸다. 이어지는 나진의 검격. 여태껏처럼 팔뚝을 들어 올려 목을 보호하려던 베른하이겐은 움찔 제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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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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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맨몸으로 받아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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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베른하이겐이 제 몸을 비틀었다. 목을 노리고 날아들던 나진의 검이 베른하이겐의 어깻죽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순간 베른하이겐은 회피를 선택한 제 판단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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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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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죽지가 깊게 베였으니까. 목으로 받아냈다면 거의 목이 절반 가까이 잘렸을 깊이였다. 상처에서 느껴지는 타는듯한 고통 사이로 베른하이겐은 나진과 눈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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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빛으로 번들거리는, 핏발이 선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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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하기 짝이 없는 눈동자다. 베른하이겐은 직감했다. 여태까지와는 전황 자체가 다르다는 사실을. 저놈의 검기는 악마화된 자신의 육체조차 베어낼 만큼 강맹하다. 더는 몸으로 받아내선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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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정체가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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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엑스퍼트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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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엑스퍼트가, 저 정도 출력의 검기를 뽑아내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저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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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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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이겐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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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 맞부딪칠 때마다, 나진의 검이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곧장 목을 노리고 달려들 때마다··· 베른하이겐은 이를 악물고 받아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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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나진을 농락하던 입장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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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동등한 위치에서 검을 받아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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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내지 못하면 죽는다. 더이상 경지는 무의미하다. 승패를 가르는 것은 기술과 순간적인 판단. 한 번 한 번의 휘두름이 생과 사를 가른다. 그리고 나진의 검은 매 순간 베른하이겐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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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피를, 살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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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튀었다. 잘려나간 살점이 흩뿌려졌다. 이제 더는 나진만이 피 흘리지 않았다. 베른하이겐의 몸에서도 핏물이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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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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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기사 베른하이겐의 추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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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가의 기사단으로 이루어진 추격대의 선두에 선 기사, 아르고는 말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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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신호가 잡혔던 곳. 그곳에서 멈춰 주변을 둘러보던 아르고의 귓가에 ‘캉, 카앙’ 하고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뒤따라오는 기사들에게 신호를 보낸 뒤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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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풀을 해치고, 우거진 나무를 지나쳐 걸음을 옮기면··· 나타나는 것은 숲의 한가운데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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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혀나가고 양단된 나무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공터. 아마도 검투(劍鬪)중에 방해되는 나무들을 베어버리고, 뽑아버려 만들어냈을 공터. 그것은 얼핏 보기엔 숲 한가운데 만들어진 결투장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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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아아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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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투장에서 검을 맞부딪치는 두 검사가 있었다. 한쪽은 아탕가의 기사단이 추격하던 악마 기사, 베르하이겐이었고 다른 한쪽은 모험가로 보이는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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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브리아에서 모험가 하나가 의뢰를 수주했다고 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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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저 청년이 그 모험가인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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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를 훌륭히 수행해낸 청년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아르고는 검을 뽑아들었다. 저 청년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서, 그리고 악마 기사를 토벌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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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걸음을 내디디려던 순간 아르고가 눈살을 찌푸렸다. 위화감을 느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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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이겐의 움직임, 베른하이겐이 뽑아내는 검기와 그 짙은 마기. 아르고의 눈에 비친 베른하이겐의 경지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높았다. 강함의 측정이 잘못됐나? 놀랍긴하나 그 부분은 문제 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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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을 대비해 내가 움직인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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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는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오른 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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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자신의 등 뒤에는 자랑스러운 아탕가의 동료들이 모여있지 않는가.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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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베른하이겐의 예상외의 강함이 문제가 되진 않지만··· 다른 부분이 아르고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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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베른하이겐과 검을 맞부딪치고 있는 청년의 움직임이다. 새하얗게 빛나는 검기를 끌며 검을 휘두르는 청년. 그 검기의 출력은 소드 시커인 아르고가 보기에도 놀라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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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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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도 더럽혀지지 않은, 순백의 검기가 검게 물든 베른하이겐의 검을 몇 번이고 쳐낸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과감하게. 청년이 내디디는 발걸음은 가벼웠으며 또한 정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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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을 놓치지 않고 찔러 드는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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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레 전환되는 자세와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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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의 교단의 검술을 바탕으로 해, 여러 검술이 섞인듯한 기이한 검술을 청년은 선보이고 있었다. 그 검술도 감탄할만하나···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저자가 보이는 순간적인 판단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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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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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쳐내는 데 그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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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하게 파고들어 상처를 입히고, 상대가 보인 빈틈을 결코 놓치는 법 없이 물어뜯는다. 마치 사나운 맹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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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청년은 베른하이겐과 호각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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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시커급이라고 추정되는 악마 기사와 동등한 위치에서 검투를 벌이고 있다. 저만한 실력자라면 자신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청년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르고가 숨을 헛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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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눈동자를 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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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베른하이겐만을 바라보고 있는 눈동자는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다. 승리를 향한 강렬한 열망. 빨려 들어가는 듯한 섬뜩한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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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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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동자를 본 순간 아르고는 말없이 검을 내렸다. 팔을 뻗어 아탕가의 기사단에게 정지 신호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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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부정하겠다는 의지를 지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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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향한 강렬한 열망을 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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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전력을 다해 맞부딪치는 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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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결코 타인이 끼어들어서도, 방해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아르고는 언제든 개입할 준비를 마친 채 나진과 베른하이겐의 검투를 바라봤다. 아니, 바라본 것이 아니다. 빼앗긴 것이다. 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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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휘두르는 것은 날것의 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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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완전히 단련되지 않은, 완성되지 않은 날것의 검술과 검기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에 시선을 빼앗는다. 정제되지 않은 날것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강렬함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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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 가가가가가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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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와 검기가 서로를 긁어내며 빛 무리가 튀어 올랐다. 칼끝이 스치고 지나간 곳에서 터져 나오는 핏물이, 튀어 오른 검기의 빛 무리에 닿아 치이이이익! 소리를 내며 증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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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어오르는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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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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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럽게 얽히는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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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균형을 이루던 저울은 점차 나진의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전투 속에서도 성장하는 나진과 달리, 베른하이겐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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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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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이겐의 대검이 땅을 파헤쳤다. 둔중한 충격이 땅을 뒤흔들었을 무렵, 나진은 이미 땅에 발을 디디고 있지 않았다. 가볍게 도약한 나진이 몸을 빙글 돌며, 착지함과 동시에 베른하이겐의 검을 향해 롱소드를 내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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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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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박힌 대검을 롱소드로 내려쳐, 더욱 깊은 곳에 박아넣는다. 그리곤 비스듬한 대검의 검면을 따라 나진이 롱소드를 휘둘렀다. 카가가각, 소리를 내며 대검을 긁으며 휘둘러지는 검이 노리는 곳은 베른하이겐의 목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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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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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베른하이겐이 대검을 놓고 손을 뻗어 나진의 검을 붙잡아보려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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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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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나진의 검기는 저항력으로 어떻게 해볼 만한 수준이 아니다. 앞을 향해 뻗은 베른하이겐의 손바닥은 검기에 닿은 순간 잘려나갔다. 새끼손가락에서 검지까지. 살가죽과 뼈를 가르며 빠져나온 나진의 검은 조금도 속도가 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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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어오르는 핏물을 증발시키며 나아간 나진의 검이 베른하이겐의 목에 닿으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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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이겐은 자신의 패배를 직감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느꼈다. 그렇기에 그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감추고 있던 수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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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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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이겐이 괴성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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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동자가 뒤집히고, 베른하이겐의 몸에서 한순간 새까만 연기가 치솟았다. 찰나의 순간 터져 나온 연기가 나진과 베른하이겐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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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탕가의 기사단조차 반응할 수 없을,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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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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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이겐이 마지막까지 숨겨둔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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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본래 아탕가의 기사단과의 전투를 대비해 아껴두던 수다. 한 번밖에 쓰지 못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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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얻은 권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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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권능을 빌려 올 한 번뿐인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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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베른하이겐은 나진을 죽이기 위해 사용했다. 쓰지 않는다면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확신했기에. 베른하이겐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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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 따위에게 쓸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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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하우저 가문이 대대로 관리하던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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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에는 유물에 깃든 것이 중하급 악마로 알려졌지만··· 그 유물에 깃든 악마가 고작 그런 존재가 아님을 베른하이겐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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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전, 고대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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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에 깃든 것은 그 시절에 활동했던 고대의 악마다. 슐하우저 가문의 금서를 훔쳐내 그 사실을 알아냈기에, 베른하이겐은 유물을 강탈해 그곳에 깃든 악마와 계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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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과 공포. 맹인을 상징하는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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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악마, 아르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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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권능이 베른하이겐의 손을 통해 발현됐다. 치솟았던 검은 안개는 한순간에 돔 형태의 결계로 변해 나진과 베른하이겐을 가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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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의 아르칸드라면 작은 영지 하나쯤은 통째로 집어삼킬 수 있을 테지만··· 베르하이겐의 손으로 펼칠 수 있는 범위는 이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충분함을 베른하이겐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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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계의 범위는 이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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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계가 가진 성질은 같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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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와 완전한 단절. 별빛조차 닿지 않는 완전히 밀폐된 공간의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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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기의 증폭. 베른하이겐의 상처가 한순간에 모조리 회복됐다. 살갗이 차오르고 잘려나간 손가락이 검게 물든 채 돋아났다. 온몸에 힘이 넘쳤으며 그 육체 능력은 조금 전과는 비할 바가 못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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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올린 대검에는 새까만 검기가 넘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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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의 안에서 베른하이겐은 압도적인 이점을 가진다. 설령 상대가 아탕가의 기사단이라 한들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니, 그들조차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으리라고 베른하이겐은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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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휘감은 전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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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껴지는 압도적인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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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이겐이 입꼬리를 틀어올린 채 나진을 바라봤다. 새하얗게 빛나던 나진의 검기도 결계가 가져온 어둠에 가려져 사그라들고 있었다. 저 검기가 다시 타오를 일은 없으리라. 이 결계는 베른하이겐을 강화함과 동시에 상대를 약화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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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끝이다. 애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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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이겐이 입꼬리를 틀어올린 채 나진을 바라봤다. 악마가 만들어낸 어둠 속에서, 한낱 인간이 만들어낸 빛은 볼품없다. 당장에라도 꺼질듯한 백색의 검기를 끄는 나진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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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이겐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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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을 어떻게 짓밟을지, 저 건방진 놈에게 얼마나 처참한 최후를 안겨줄지 베른하이겐이 고민하며 나진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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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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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이겐은 나진과 눈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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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동자에 두려움은 없었다. 흔들림 또한 없었다. 평온하기 짝이 없는 눈동자. 그 눈동자에 베른하이겐이 위화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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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저런 색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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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조금 전까진 노을빛이었을 나진의 눈동자가 지금은 백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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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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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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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귓가에 멀린의 목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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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소리는 웃음기에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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