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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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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웨에에에에엑!”

로젤린의 등을 두들기던 나진이 급히 몇걸음 뒤로 물러섰다. 로젤린의 이름을 불렀던 디에타의 표정 역시 벌레를 씹은 것마냥 잔뜩 구겨졌다.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의 정점.

도시에 다섯뿐인 백각(白角) 모험가.

그 반짝이는 명성에 심히 타격을 입힐만한 몇초가 흘렀다. 어젯밤 광란의 음주를 증명하는 소리가 멈췄을 무렵, 로젤린은 품에서 꺼내든 손수건으로 입을 닦고 물통으로 입을 헹궜다.

“햐, 이제야 좀 살겠네.”

그렇게 고개를 든 로젤린은 세상 시원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녀가 제 가슴팍을 두들기며 햐, 하고 연신 숨을 내뱉었다.

“어 뭐야. 뱀년이잖아?”

자신의 이름을 부른 소녀. 디에타의 얼굴을 확인한 로젤린이 고개를 기울였다. 평소에는 어쩌다 눈을 마주치더라도 인사 한번 건네기는커녕, 서로 혀를 차며 지나가는 두 사람이다.

어찌 보면 그건 동족 혐오였고.

각자의 소속이 다른 탓이기도 했다.

로젤린의 용병단을 후원하는 곳은 ‘가르체아’ 상단.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에서 디에타 상단과 1, 2위를 다투고 있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두 상단 간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그곳의 후원을 받는 로젤린 역시, 디에타 상단의 상단주인 디에타와 사이가 좋을 리가 만무했다.

“사람 면전에 대고 뱀년이라 부르는 건 어느 집 예의일까요? 예절 교육을 못 받으셨나? 붉은 눈깔?”

“혐오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는 아가씨도 나 못지않은 거 같은데?”

디에타는 입가를 가린 채 미소 지었고, 로젤린은 뭘 꼬나보냐는 듯 입가를 틀어 올렸다. 그러다 문득, 로젤린은 디에타의 시선이 움직임을 확인했다.

“아하, 그렇구만.”

로젤린이 웃었다.

디에타의 시선이 향한 곳은 한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나진. 그녀가 보증을 서줬다는 청년이었다. 그런 청년이 자신과 붙어있으니 의아함을 느낀 거겠지.

“야, 이반.”

로젤린은 보란 듯이 팔을 휙 뻗어 나진과 어깨동무를 했다. 나진의 표정이 급속도로 구겨졌지만, 나진은 한숨 한 번을 내쉬곤 침묵했다. 중앙 길드에 보고하기 위해선 로젤린이 필요하긴 했으니까.

“어젯밤에 재밌었다. 다음에 또 한잔할까?”

“사양하겠습니다.”

나진이 딱 잘라 말했다.

로젤린이 말한 ‘한 잔’이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한잔이 아님을 어젯밤 알게 됐으니까.

“슬슬 들어가자고. 후딱 보고해 놓고 해장이나 하고 싶네. 근처에 괜찮은 식당 아는데 같이 갈래?”

“생각해 보고요.”

“거기 고기 수프가 아주 맛도리야.”

디에타에게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떠드며 로젤린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진과 함께 중앙 길드 건물로 들어가며 로젤린이 뒤를 흘겨봤다. 그곳엔 눈을 부릅뜨고 있는 디에타가 있었다.

핏발이 선 샛노란 눈동자.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로젤린이 조소했다. 로젤린은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디에타의 귓가에는 로젤린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니가 후원한 모험가 쩔더라.

“아하.”

디에타가 웃음을 터뜨렸다.

입가는 웃고 있지만, 눈동자는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나진과 어깨동무를 한 채 멀어지는 로젤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디에타는 중얼거렸다.

“해보자는 거지···?”

길드에 걸음을 내디딘 순간이다.

“······.”

모여든 모험가와 상인들로 소란스럽던 길드에 누가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한순간의 정적이 찾아왔다. 침묵, 정적 속에서 나진은 자신에게 시선이 쏠림을 피부로 느꼈다.

수많은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고 있다.

처음에는 백각 등급의 용병인 로젤린과 함께 들어온 탓이라고 생각했으나, 이내 그것이 아님을 나진은 깨달았다. 그들의 시선은 로젤린이 아닌 자신에게 향해 있었으니까.

“저 모험가가···.”

“흑색 등급 명패인 걸 보면 맞는 거 같은데.”

“도첸베르크 삼림 소탕전 역대 최고점···.”

정적 속에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적이 깨지고, 모험가들이 수군대는 목소리로 길드 회관이 가득 찼다.

“핏빛 트롤을 토벌한 그 흑색이···.”

“그래. 내가 봤다니까.”

“그 핏빛 트롤을? 승급은 확정이구만.”

도첸베르크 삼림 소탕전에서의 활약.

그에 대한 소문이 이미 길드에 퍼진 것이다. 하기야, 소탕전에서 일찍 귀환한 모험가들도 있었을 때니까. 그들의 입을 통해 소문이 퍼진 것이겠지.

···본래, 도첸베르크 삼림 소탕전은 청색 등급 이상의 모험가가 위로 도약하기 위한 데뷔전이라고 불릴 만큼 파급력이 큰 의뢰다.

모험가들의 이목이 쏠리는 것도 당연한 일.

하물며 그런 도첸베르크 소탕전의 역대 최고점이 갱신됐단, 그것도 흑색 등급의 모험가에 의해 갱신됐단 소문이 퍼지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만큼 충격적이며 파급력을 가진 소문이었으니까.

‘시선이 제법 따갑네요.

-이목을 끈다는 건 그런 거지.

멀린이 담담히 말했다.

-네가 앞으로 견뎌야 할 무게이기도 하고.

정점에 서기를 각오했다면, 제게 쏠리는 시선의 무게 정도는 견뎌내야 하리라. 그것이 정점에 서고자 하는 이가 짊어져야 할 무게일 테니.

“···거짓말 아냐?”

당연하게도.

“뭔가 수를 쓴 거겠지. 말이 돼?”

“디에타 상단이 보증했다며. 상단에서 작정하고 키운 인재겠지. 우리랑은 시작점부터가 다른···.”

그 목소리와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나진의 활약을 두 눈으로 보지 못한 이들은 나진의 업적을 깎아내리고, 그 시작점을 부정하려 든다. 그 목소리들이 귓가에 울림에도 나진의 표정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이미 지겹도록 들어본 말들이었으니까.

이곳이 아닌 지하도시, 아트만에서 말이다.

“후우···.”

짧게 숨을 내뱉은 나진이 어깨를 폈다.

괜히 수그릴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렇지. 바로 그거지.”

나진과 어깨동무를 한 로젤린이, 나진의 귀에만 들릴 만큼의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신경 쓸 필요도, 귀에 담아 둘 필요도 없는 목소리들이지. 굳이 아래를 내려다볼 필요는 없잖아?”

로젤린은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당당한 나진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는 듯 그녀는 나진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길드의 VIP 창구로 걸음을 옮겼다. 백각 모험가들에게만 허락된 창구였다.

번호표를 뽑고 대기 순번을 기다릴 필요 없이, 중앙길드의 가장 높은 곳에 일직선으로 보고할 수 있는 그야말로 정점들을 위한 창구.

“붉은 눈 용병단의 단장, 로젤린이다.”

그곳에 나진을 동행하고 들어선 순간부터, 로젤린의 표정과 태도는 급변했다. 술에 꼴대로 꼴은 동네 누님이 아닌··· 캄브리아 최대 규모의 용병단을 이끄는 단장으로서의 로젤린 아스칼로로서의 면모.

그녀의 모습을 나진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다.


의뢰에 대한 보고 자체는 빠르게 끝났다.

시간이 걸린 것은 도첸베르크 삼림 소탕전에서 나진이 세운 업적과, 핏빛 트롤을 토벌했다는 부분이었다. 이른 아침 용병단의 단원들이 수레에 끌고 온 마물들의 소재로 하여금 핏빛 트롤의 토벌 자체는 받아들여졌으나······.

그 토벌에 가장 크게 기여한 모험가.

사실상 단독 토벌에 가까운 업적을 세운 모험가인 나진이 ‘흑색 등급’이란 점이 문제였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적색 등급의 의뢰를 완수한 나진의 승급은 불가피했으므로.

“정 못 믿겠으면 참가한 모험가들에게 수소문해 보든가. 다들 비슷한 대답을 들려줄 텐데?”

그러나, 감독관의 망설임은 오래가진 못했다.

“내가 보증해. 나 로젤린 아스칼로가 이 녀석의 실력을 인정한다고. 달리 뭐가 더 필요해?”

도시의 정점. 그렇게 불리는 로젤린 아스칼로가 나진을 보증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나진이 승급을 담당하는 길드의 감독관 앞에서 검기를 뽑아내는 장면을 시연한 까닭이다.

나진이 뽑아낸 것은 여전히 검기의 편린이다.

허나, 그것만으로도 숱한 세월 모험가들을 봐온 길드의 감독관은 알아차렸다. 나진이 한없이 소드 엑스퍼트의 경지에 근접해 있음을.

“승급 시험은 필요 없겠습니다.”

감독관은 짧게 말했다.

본래 청색 등급 이상으로의 승급은 그간 수행해 온 의뢰와, 그 의뢰를 발주했던 의뢰자의 만족도와 평가 등등 다양한 방면에서 점수를 매겨 감독관이 승급 여부를 결정하는 식이다.

하지만 나진의 경우는 이례적이었다.

흑색 등급의 모험가가 도첸베르크 삼림 소탕전에서 1위를 기록했으며, 적색 위험도의 핏빛 트롤을 토벌했다. 이례적인 경우였으니 예외를 두는 게 옳다고 감독관은 판단했다.

“명패를.”

나진이 감독관에게 명패를 건넸다.

감독관은 어딘가로 걸음을 옮기더니, 돌아왔을 때 나진에게 녹색의 명패를 건넸다.

흑, 자, 청, 녹.

흑색에서 녹색으로의 삼단 승급.

현재는 백각 등급의 모험가인, 테첼 산맥 출신의 레인저 ‘카프만 테오시스’의 삼단 승급 이후 처음 있는 일. 그야말로 이례적인 승급이란 뜻이었다.

‘이렇게 빨리 승급할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나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제 손에 들린 명패를 바라봤다. 녹색 등급의 명패. 이 도시에서 엄연한 ‘상급 모험가’라 불릴만한 등급이었다.

“축하한다, 애송아.”

로젤린이 나진의 목에 팔을 걸었다.

“뭐 보아하니 이렇게 가면 얼마 안 가 적색 등급도 가겠는데? 네 나이를 생각하면 최연소 같긴 해.”

28세라는 위장 신분으로도, 적색 등급의 모험가에 오른다면 그건 최연소가 될 거다. 로젤린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백각까진 좀 걸릴 것 같긴 한데··· 뭐, 그래도 십년 내로만 찍으면 거의 최연소일걸? 내가 서른아홉에 최연소 백각 등급을 찍었으니까.”

39세. 그것이 로젤린이 소드 시커에 도달한 나이였으며, 백각 등급에 오른 나이였다. 그 이야기를 듣던 나진은 짧게 답했다.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은데요.”

“이야, 이 싹수없는 애송이 좀 보게.”

로젤린이 큭큭댔다.

“그래 뭐. 잘해봐라.”

그렇게 등을 두들기며 로젤린은 나진과 함께 창구의 바깥으로 나섰다. 창구에 들어설 땐 흑색 등급이었지만, 나올 땐 녹색 등급의 명패를 목에 건 나진이다.

나진이 바깥으로 나온 순간.

그리고, 그 목에 걸린 명패를 확인한 순간이다.

모여있던 모험가들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흑색 등급의 모험가가 자색, 청색을 건너뛰고 단숨에 녹색 등급에 올랐다. 저 청년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던 모험가였지만··· 이젠 모두가 그의 이름을 안다.

소문을 통해, 신문을 통해, 수많은 것들을 통해 저 청년의 이름은 이 도시에 퍼질 테니까.

녹색 등급의 모험가, 이반.

두각을 드러낸다는 나진의 목적은 달성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녹색 등급의 모험가가 된 지 며칠의 시간이 흘렀고, 그간 나진은 제법 바쁜 시간을 보냈다. 우선 가성비가 좋았던 여관을 나와 중앙길드와 가까운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월세는 몇 배로 비싸졌지만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돈이 차고 넘칠 만큼이나 있었으니까.

디에타의 의뢰를 수행하고 받았던 돈이 아직도 남아있을뿐더러, 도첸베르크 삼림 소탕전의 보수, 그리고 핏빛 트롤 토벌로 벌어들인 현상금까지. 당분간 돈걱정 할일은 없을 듯싶었다.

‘돈도 벌어들인 김에.

오늘도 여전한 아침 수련을 끝마치고.

나진은 찬물로 몸을 씻어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장비나 맞추러 갈까요?

-확실히 방어구나 여분용 검을 준비해 두는 게 좋긴 하지. 포션 같은 것도 있어서 나쁠 건 없고 말야?

멀린이 맞장구를 쳤다.

그간 바삐 움직이느라 느긋하게 장을 볼 시간이 없었던 나진이다. 하지만 이젠 여유가 생겼고, 등급도 충분히 올려놨다.

녹색 등급은 상급으로 분류되는 모험가다.

흑색 모험가는 발도 디디지 못하는 장인들의 거리에 당당히 출입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나진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장인의 거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연금술사, 이름난 대장장이, 마도구를 취급하는 상점 등등······.

이번 기회에 나진은 장비를 맞춰볼까 생각중이었다. 최고급품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장비는 필요했으니까. 유사시에 다룰 수 있는 무기가 한둘쯤은 있어도 나쁘지 않겠다고 나진은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나진이 제 허리춤에 채워둔 검을 바라봤다.

호겔 영감이 단조해준 롱소드. 지하도시에서 추격자들을 상대할 때부터 시작해, 이반과의 결투, 그리고 핏빛 트롤까지 상대하는 등등.

솔직히 말해서 검을 제법 험하게 굴리고 있다는 자각은 있었다. 언제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진 눈에 띄는 결함은 없었다. 매일 같이 검에 기름을 먹이며 확인하는 거니까.

그래도 혹시 모를 결함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결함이 있다면 수리를 맡기거나, 수리가 불가능하다면 여분용 검을 구매해 두는 것도 괜찮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진은 가장 먼저 대장간을 찾아갔다. 캄브리아에서 이름난 대장장이가 운영하는 대장간. 디에타 상단이 후원하는 대장간이었고, 디에타의 소개가 있었기에 방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대장간에 나진이 제 검을 보여준 순간이다. 검을 이리저리 돌려보던 대장장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휴즈 영감님 불러와야겠는데?”

나진의 검을 돌려보던 대장장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들고 대장간의 깊은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이 애송아.”

대장장이와 함께 찾아온 노인.

이 도시에서 가장 실력 좋은 대장장이이자, 휴즈 영감이라 불리는 노인은 나진의 롱소드를 손에 쥔 채 질문했다.

“이 검 어디서 났냐?”

“아는 대장장이분이 만들어주셨습니다.”

“헛소리는. 어디서 줍거나 뺏은 거겠지.”

휴즈 영감이 눈살을 팍 찌푸렸다.

“아탕가 기사단에게 납품되는 검을, 너 같은 애송이에게 만들어 주는 대장장이가 대체 어딨냐?”

그가 롱소드의 검면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다른 놈들 눈은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인다. 이건 명장의 작품이다. 아탕가 기사단과 계약을 맺고 검을 두들길 정도로 실력 좋은 대장장이의 작품이란 말이다. 이런 건 아무나 못 만들어.”

명장(名匠).

소수의 대장장이에게만 주어지는 칭호.

“만들어 준 사람이 있다면 어디 이름이나 말해봐라. 도대체 누구 작품인지 들어나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