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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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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은 시선을 길게 늘어트렸다.

그녀는 나진을 바라보는 모험가들의 표정을 살폈고, 또한 확신했다. 지금 저 청년이 쓰려는 기술을 알아본 모험가는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하기야,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는 기술은 아니다.

로젤린 그녀조차 저 기술을 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으니까. 세 번, 혹은 네 번 정도. 하지만 설령 본 것이 한 번뿐이라 한들 로젤린은 저 기술을 단번에 알아봤을 것이다. 그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 기술이었으니까.

가장 기사다운 기사.

아탕가의 수장, 고디프.

그가 펼쳤던 검술을 로젤린은 잊지 못한다.

아탕가의 이념 그 자체와 같은 검술.

그것은 결코 물러서지 않고 다만 정면에서 꺾어낸다는 고집스럽기 짝이 없는 검술이지만, 그렇기에 가장 기사다운 검이었다.

탁.

그날의 기억을 곱씹으며.

로젤린은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지금 저 청년이 펼치려는 검술은, 한낱 마물 따위에게 쓰여선 안 되는 것이었으므로.

청년이 보이려는 것은 아탕가의 검술.

그중에서도 계율에 묶인 검이었다.

로젤린이 기억하기로 저 검술은 특정한 조건을 만족한 상대에게만 선보이는 기술이었다.

‘명예도, 긍지도 잃은 기사의 이름을 더럽힌 이들을 벌하기 위해서거나···.

혹은, 상대를 자신의 호적수로 인정했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부딪칠 만한 긍지 높은 상대라고 인정했을 때만 펼치는 검술이었다.

그오오오오오!

비명을 지르는 저런 트롤 따위에게 쓰여선 안 될 검술이었다. 물론 자신이 참견할 바는 아니겠지만, 로젤린은 저 검술이 트롤 따위에게 쓰이는 광경을 썩 보고 싶지 않았다.

탁, 하고.

로젤린이 땅을 가볍게 박찼다.

그녀와 나진 사이의 거리는 제법 됐지만, 도약 한 번으로 로젤린은 나진의 바로 뒤에 섰다. 나진이 기척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이다.

“애송아.”

그녀가 나진의 어깨를 붙잡아 뒤로 당겼다.

“아탕가의 검술은, 저런 마물을 상대로 써선 안 되는 거야. 나중에 이야기 좀 하자고.”

그리 중얼거리며 그녀가 미소 지었다. 저 ‘이반’이란 이름의 청년이 조금 더 마음에 들었으니까. 핏빛 트롤에게 덤비는 깡다구도, 악착같이 달려들어 승리를 쟁취하려는 집념도 마음에 들었다.

훽.

나진을 뒤로 밀치곤 로젤린이 앞장섰다.

그 순간 나진에게 달려들려던 핏빛 트롤은 주춤, 하고 뒤로 물러섰다. 트롤 또한 느끼고 있었으므로. 눈앞의 상대는 자신이 덤벼선 안 될 존재라는 것을.

그오오오오오!

트롤이 뒷걸음질 치며 울부짖었다.

숲을 뒤흔드는 하울링. 직후 숲이 요란스레 흔들리며 트롤의 외침에 반응하듯, 마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로젤린은 그런 것들에 관심이 없다는 듯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녀가 바라보는 것은 나진.

나진 역시 로젤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냥감을 빼앗긴 것이 불만이라는 듯, 혹은 한창 몰입해 있던 싸움을 방해받은 것이 기분 나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린 나진의 모습에 로젤린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기야, 모험가라면 이래야지.

‘갈수록 마음에 드는데.

허리춤의 롱소드를 뽑아 들려던 로젤린은 이내 웃음을 흘렸다. 이걸 썼다간 부단장 바르거가 또 한 소리 할 테지만, 그거야 뭐 알바인가.

“씁, 이거 원래 잘 안 보여주는 건데······.”

그녀가 나진에게 말했다.

“간만에 좋은 걸 봤으니 보답은 해야겠지.”

로젤린이 제 등허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허리춤에 매어둔 평범한 검이 아닌, 등허리에 일자가 되도록 묶어둔 두 개의 검집.

캉! 소리를 내며 두 개의 검이 뽑혀 나왔다.

롱소드의 절반만큼의 길이를 가진 짧은 두 자루의 검. 새까만 칼날을 가진 두 자루의 검이 요사스레 번뜩였다.

-걸작이네 저거.

로젤린이 허리춤에서 쌍검을 뽑아든 순간, 나진의 귓가에 멀린의 목소리가 울렸다.

‘걸작이요?

-그래. 잘 봐둬. 쉽게 볼 수 있는건 아니니까.

나진은 몰려드는 마물과 핏빛 트롤을 향해 걸어가는 로젤린을 보았다. 그녀가 늘어트린 새까만 칼날을 가진 쌍검. 멀린은 저것을 가리켜 걸작이라 불렀다.

‘걸작이 뭔데요?

-태초의 대장장이가 신비(神秘)를 벼려내 만든 47개의 무구.

멀린이 말했다.

-설명하자면 좀 복잡한데, 간단하게 말하면 그거야. 마법은 전혀 개입되지 않았는데 마법과 같은 효과를 일으키는 무기지.

아서가 활동했던 시대보다 더 이전.

태초의 시대에 살았던 대장장이가 단조해냈다 알려진 47개의 무구. 어떠한 인간도, 별자리도 흉내 내지 못하는 신비 그 자체라고 멀린은 이야기했다.

-엑스칼리버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래도 신기한 무기야. 내 시대 때도 걸작을 다루는 놈들은 예상외의 변수를 만들곤 했거든.

그리고, 하고 멀린이 말했다.

-지금 저 여자가 들고 있는 걸작은 본 적이 있는 거네. 수백 년 전 연합국의 용사가 썼던 거 같은데··· 무기 이름이 분명 메아리였나?

나진이 멀린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을 무렵, 로젤린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몰려드는 마물과 트롤을 향해 다가서며 그녀가 두 자루의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카앙.

로젤린이 두 개의 검을 맞부딪쳤다.

검이 맞부딪치며 울려 퍼진 ‘카앙’ 소리는 한 번으로 끊이질 않았다. 검을 맞부딪친 것은 한 번뿐이나 소리는 몇겹으로 겹쳐 울려 퍼졌다.

마치 메아리가 치듯이.

울려 퍼진 소음에 모험가들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나진은 눈을 부릅떴다. 나진의 감각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으니까. 눈을 부릅뜬 채 나진은 로젤린을 보았다.

파스슷···.

그녀가 늘어트린 쌍검 위로 검기가 치솟았다. 치솟은 검기는 여태껏 나진이 봐온 검기들과는 달랐다. 나진이 보아왔고, 만들어 낼 줄 아는 검기는 빛을 엮어 만든 단순한 섬광이라면······.

키이이이이잉!

로젤린의 쌍검을 휘감은 검기는 톱날과 같은 형상을 띠고 있었다. 짐승의 발톱 같기도, 어금니 같기도 한 기이한 형태를 가진 검기. 그것은 로젤린의 심상이 담긴, 오직 그녀만의 검기다.

검기에 심상을 담아 형태를 변화시키는 것.

소드 시커(Sword Seeker)의 경지.

검기를 끌며 로젤린이 움직였다. 쿵, 땅에 발을 내려찍으며 그녀의 움직임이 한순간 가속했다. 부릅뜬 나진의 눈동자로도 쫓기 어려운 움직임. 그렇게 로젤린이 휘두른 쌍검이 완전한 궤적을 그린 순간이다.

카아아앙···.

메아리치던 검의 마찰음이.

카아아아아아아아앙!

한순간 거세게 울려 퍼졌다.

울려 퍼지는 소음 속에서 나진은 보았다. 자신과 혈투를 벌이던 핏빛 트롤의 몸에 수많은 절단선이 내달리는 광경을. 트롤의 하울링에 모여들었던 마물들의 몸에 얇은 선이 그어지는 모습을.

메아리가 잦아들 무렵.

마물의 몸에 새겨진 얇은 선들이 붉게 물들었다.

촤아아아아아아악!

직후 핏줄기가 사방으로 치솟았다. 얇은 선을 따라 잘게 조각난 마물들의 시체가 허물어졌다. 일격이었다. 고작 한 번 검을 휘둘러 만들어 냈다곤 믿을 수 없는 광경. 나진은 눈을 크게 뜬 채 로젤린을 바라봤다.

처음이었다.

두 눈으로 보고도 이해할 수 없는 검격은.

저 동작이야 따라 할 수는 있겠지만, 저 동작이 어떻게 저런 현상을 만들어 내는지 나진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진은 아직 검기(劍氣)에 대해 잘 알지 못했으므로.

로젤린이 선보인 것은 자신의 검기와, 걸작의 특수성을 활용한 오직 그녀만의 기술이다. 검기에 대해 깊게 이해하고, 검로라는 개념을 깨우친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올라야만 다룰 수 있는 기술이란 뜻이다.

처음으로 마주한 미지의 개념.

자신이 도달해야 할 첫 번째 목표를 마주한 나진의 눈동자가 빛났다.

‘저것이···.

저것이 소드 시커(Sword Seeker).

저것이, 이 도시의 정점.

검을 한 바퀴 돌려 납도 한 로젤린이 뒤를 돌아봤다. 눈을 크게 뜬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진의 모습에 로젤린이 미소 지었다. 그녀는 소리 내 발음하지 않고 입 모양으로 나진에게 말했다.

어때. 개쩔지?

자신만만해 보이는 그 모습은 썩 멋지지 않았지만, 로젤린의 검격에 압도됐단 사실만큼은 나진 역시 부정할 수 없었다.

약간의 소동이 있긴 했지만 도첸베르크 삼림 소탕전은 마무리됐다. 삼림의 초입으로 모여든 용병단의 관리하에 모험가들은 보수를 받아 갔다.

본래 약속했던 보수보다 조금 더 얹어주며 로젤린은 이야기했다.

“이건 우리 용병단의 실수야. 핏빛 트롤이란 특수 개체의 등장은 변수였고, 변수를 통제하지 못한 건 용병단의 책임이지. 추가금과 더불어 사과하도록 할게.”

다행히도 핏빛 트롤의 등장으로 인해 부상자나,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 한 명의 모험가가 핏빛 트롤을 막아선 덕분이었다.

“······.”

보수를 받아 가며 모험가들은 점수가 적힌 게시판을 곁눈질했다. 핏빛 트롤의 등장 전과 순위권은 바뀐 게 없지만, 그곳에 적힌 점수만은 바뀌어 있었으니까.

1위. 이반. (85 점)

본래의 점수인 35점에 50점이 추가된 점수.

로젤린은 자신이 개입했을 뿐, 핏빛 트롤은 이반이 잡은 거나 다름없다 이야기했으며··· 핏빛 트롤의 점수를 50점으로 매겼다.

그 누구도 그 의견에 부정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호각을 이루는 듯싶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진은 핏빛 트롤을 압도하고 있었으니까. 그 과정을 목격한 모험가들은 로젤린의 의견에 동의했다.

50점이란 점수 역시, 추정 적색 등급인 핏빛 트롤에게 걸맞은 점수였고.

85점······.

점수판을 보며 모험가들은 혀를 내둘렀다.

역대 최고점이었던, 현재 붉은 눈 용병단의 부단장인 바르거의 기록을 압도하는 점수. 감히 범접할 수조차 없는 압도적인 기록이었다.

그들은 말없이 나진을 흘겨봤다.

옷과 머리에 묻은 핏물을 닦아내며 휴식하고 있는 청년. 그가 목에 매달아 둔 명패는 흑색이었지만, 그 누구도 좀 전처럼 나진을 비웃거나 깜댕이라고 깎아내리진 못했다.

그는 모두의 앞에서 실력을 증명했으며.

실적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보였으므로.

핏빛 트롤에게 망설임 없이 달려들던 나진의 모습을 보고서도 그의 자격을 의심할 만큼 눈치 없는 모험가는 없었다. 나진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 더는 경멸과 짜증은 없었다. 오직 경외만이 그 자리를 대신할 뿐.

“구해줘서 고맙다. 나중에 술 한잔 사지.”

조금 전 나진 덕분에 목숨을 구한 모험가는, 휴식하고 있는 나진에게 제 명함을 건네곤 자리를 떴다. 다른 모험가들 역시 나진의 곁을 지나가며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초짜가 아닌, 제 실력을 증명한 모험가.

제 동업자로 인정한단 뜻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나진에게 경외를 표하며 자리를 뜨는 가운데··· 오직 한 명의 모험가만큼은 그리하지 못했다.

“······.”

녹색 등급의 모험가.

나진에게 밀려 2위에 안착한 마르센. 그녀는 이를 악물고 나진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쟤 눈 좀 봐라? 싸가지 없긴.

‘쟤가 누군데요?

-거 왜 있잖아. 아까 시작 전에 너한테 시비 걸었던.

나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야 나진은 2위가 누구인지 이름조차 확인하지 않았으니까. 딱히 알아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그런 나진의 반응에 멀린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반.”

그렇게 나진이 휴식하고 있을 무렵, 마지막으로 나진의 이름이 호명됐다. 단상의 위로 올라간 나진은 로젤린이 건네는 보상금을 수령했다. 주머니의 무게가 꽤 묵직했다.

“점수에 맞게 정산했고, 거기에 수고금도 좀 더 넣었어. 고맙다. 네 덕분에 용병단 명성에 피해가 가는 일은 피할 수 있었네.”

로젤린이 나진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핏빛 트롤의 등장은 용병단이 파악하지 못했던 변수였고, 변수로 인해 피해가 발생할 뻔했으나··· 나진이 막아선 덕분에 아무런 인명피해도 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상황을 쉽게 정리할 수 있었다고.

그 사실에 로젤린은 감사를 표했다.

“그건 그거고.”

로젤린이 나진에게 목함을 건넸다. 건넨 목함을 열어보자 곱게 접힌 검붉은 색의 가죽이 들어 있었다.

“네가 사냥한 핏빛 트롤의 가죽이다. 트롤의 가죽은 고급품이거든. 하물며 핏빛 트롤 같은 변이 개체의 가죽은··· 부르는 게 값인 수준이고.”

질기며 저항력까지 높은 트롤의 가죽.

방어구를 만드는 데 자주 쓰여 본래도 값이 꽤 나가는 소재가 바로 트롤의 가죽이다. 변이종인 핏빛 트롤의 가죽의 값어치야 말할 것도 없었다.

“본래 이 도첸베르크 삼림에서 사냥한 마물들의 소재의 소유권은 우리 용병단에 귀속되지만···.”

그것이 본래 의뢰의 조건.

“이건 별개지. 토벌 내용에 공지되지 않았던 마물이고, 길드에서 현상 수배를 건 마물이니까. 이건 온전한 네 사냥감이니 네 것이야.”

그건 달리 말하자면···.

로젤린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나진은 눈치챘다.

“넌 도첸베르크 삼림 소탕전과 동시에, 적색 등급의 현상 수배 의뢰를 완수한 거지. 우리 용병단과 길드까지 동행하도록 해. 네가 핏빛 트롤을 토벌했다는 증인을 서줄 테니까.”

로젤린이 씨익, 미소 지었다.

“여기까지가 전해야 할 말들.”

어느샌가 나진의 옆에 선 그녀가 나진과 어깨동무를 했다. 확, 하고 목에 감겨오는 팔에 나진이 저항하려는 순간이다.

“남은 건 술이나 한잔하면서 이야기나 하자고.”

로젤린이 나진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탕가의 검술. 그거 가지고 해야 할 대화가 좀 있잖아? 겸사겸사 1위 보상도 줘야 하고.”

그러니까 잔말 말고 따라와, 꼬맹아.

나진과 어깨동무를 한 채 로젤린은 나진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바르거와 용병단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지간히도 마음에 드셨나 보군.

그들은 어깨를 으쓱이며, 앞장서 걷는 단장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