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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진 숲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한 체구의 마물이다. 사람의 세 배는 돼 보이는 체구와 굵은 팔다리. 칼로 벨 수 없을 것 같은 굵직한 목까지. 널리고 깔린 마물들과는 내뿜는 기세조차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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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 그렇게 불리는 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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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들 사이에선 청색 등급의 마물로 분류되며, 청색 모험가 서너 명이 달려들면 사냥할 수 있는 마물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니 이곳에 모인 청색 모험가들이 짝을 이루면 능히 사냥할 만한 마물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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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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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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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트롤이잖아. 저게 왜 여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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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평범한 트롤이 아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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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트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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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불리는 트롤의 변이종이자, 몇개월 전 청색 모험가 열다섯을 살해하곤 행적을 감춰 현상 수배된 마물이었다. 보통의 트롤과는 달리 영악하며 지능이 높은 특수 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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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브리아의 중앙길드에서 핏빛 트롤에게 매긴 등급은 적(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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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자, 청, 녹, 적,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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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개로 분류된 등급에서 상위권에 위치한 등급이며, 녹색 등급 모험가 여덟 이상이 모여야 상대할 만하다고 여겨지는 등급의 마물. 그 사실을 알기에 모험가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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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 수준에 맞지 않는 마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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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이곳에서 가장 등급이 높은 녹색 등급의 모험가, 마르센이라 한들 마찬가지다.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이 사전에 ‘핏빛 트롤’을 사냥하겠다고 모인 토벌대라면 그녀가 앞장섰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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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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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센은 주변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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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발을 빼고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저들은 어디까지나 모험가였고 용병이었으며, 제 안위를 가장 우선시하는 존재였으니. 마르센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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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일에 나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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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 볼 일에 도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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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언제나 자신의 목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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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이 도시의 불문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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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기적이라며 비웃을 테지만,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모험가나 용병이지··· 위험한 전장에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기사나 영웅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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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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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센이 혀를 차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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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가장 강한 그녀조차 도망칠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모험가들은 천천히 트롤과 거리를 벌렸다. 핏빛 트롤은 이쪽을 노려보고 있을 뿐 아직 움직이진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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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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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윽고 트롤의 움직임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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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들이 뒤로 물러서기 시작하자 입꼬리를 축 치켜올린 핏빛 트롤이 걸음을 내디뎠다. 쿵, 소리를 내며 땅이 울린 순간 모험가들은 아예 뒤를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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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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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단, 붉은 눈 용병단은 뭐 하는데! 저건 용병단이 상대해야 할 마물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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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은 전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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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들이 욕설을 내뱉으며 도망치던 와중, 누군가에게 떠밀린 모험가가 바닥에 엎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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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씨발! 어떤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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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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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트롤은 노련한 사냥꾼이었고, 빈틈을 보인 사냥감을 놓치지 않았으므로. 쿵, 소리를 내며 트롤이 바닥에 엎어진 모험가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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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 흐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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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째 뽑아낸 나무를 닮은 곤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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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곤봉이 모험가를 향해 휘둘러지려는 순간이다. 누군가 엎어진 모험가를 향해 달려들어, 콱 하고 그 목덜미를 잡아 뒤로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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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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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봉이 땅에 처박히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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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오른 흙먼지가 걷혀갈 무렵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핏빛 트롤과 대치하는 한 명의 모험가다. 도망치던 모험가들은 거리를 벌린 채 그곳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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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정신 나간 놈인가. 어떤 미친놈이, 스스로 미끼가 되기를 자처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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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서 있는 것은 흑색 등급의 모험가다. 아직 이 도시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의 불문율조차 알지 못하는 초짜 중의 초짜다. 이번 소탕전의 관심을 독차지한 정체 모를 청년이 그곳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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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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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칼집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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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핏빛 트롤과 싸우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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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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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뽑아 든 나진은 단상에 서 있는 감독관을 바라봤다. 감독관 또한 당황한 듯 구조 신호를 날리고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나진의 기세에 눌려 걸음을 멈춘 채 그는 나진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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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몇점짜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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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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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질문에 감독관은 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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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모인 모험가들조차 나진이 내뱉은 말을 한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점수를 묻는다고?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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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쓱 보니 덩치가 좀 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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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제 앞에 서 있는 트롤에게 칼끝을 겨누며 히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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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점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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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진의 점수에 30점을 더하면 6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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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역대 도첸베르크 삼림 소탕전의 최고 득점, 현재는 붉은 눈 용병단의 부단장 자리에 오른 바르거의 57점을 초과하는 점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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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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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뢰에 참가하기 전에 나진이 확인한 것은 토벌의 참가 인원이 아닌, 역대 도첸베르크 삼림 소탕전의 최고 득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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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1위가 확정된 상황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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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어중간한 1등에는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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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과 근소한 점수 차이로 따낸 1등에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나진이 노리는 것은 압도적인 1등이다. 역대 최고점을 갈아치우는, 그 누구도 깎아내리지 못할 완벽한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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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쳐주면 고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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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며 나진이 옆으로 미끄러지듯 도약했다. 트롤이 휘두른 곤봉이 다시 한번 땅을 후려쳤다. 또다시 높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하지만, 이번엔 흙먼지가 걷히기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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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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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먼지를 가르며 휘둘러진 검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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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칼날이 흙먼지를 갈랐다. 가른 것은 흙먼지뿐이 아니었다. 핏빛 트롤의 살가죽을 나진의 칼은 얕게나마 베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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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어 오르는 핏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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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튀어 오르는 핏물보다 이곳에 모인 모험가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달리 있다. 흙먼지를 갈라내며 튀어나온 나진이 쥐고 있는 검. 나진이 늘어트린 검날에 맺힌 광채에 모험가들은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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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얗게 빛나는 백색의 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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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검기에 가까운 그것은, 노을빛으로 물든 숲에서 홀로 자신만의 색(色)을 빛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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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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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도시, 캄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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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에 온 아래 나진은 아직 강자와 전투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볼크만과 대련을 해보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련이었지 목숨을 건 전투가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나진은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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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대등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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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상의 상대와의 목숨을 건 전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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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제 실력을 빠르게 늘리는 길이라는 것을 나진은 알고 있었다. 강자와의 전투 경험만큼이나 값진 것은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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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상대를 파악하면서 걸긴 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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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눈앞의 핏빛 트롤을 흘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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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무척이나 강한 상대다. 엑스칼리버와, 백금색의 완전한 검기를 감춘 채로는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상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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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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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을 쓰지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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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질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머지않아 숲의 중심에 있던 용병단이 지원을 올 테니 최악의 상황에는 몸을 빼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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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일이 꼬였을 때의 이야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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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나진이 노리는 것은 승리다. 나진이 눈을 부릅떴다. 핏발이 선 눈동자로 읽어내는 것은 핏빛 트롤의 움직임. 곤봉의 움직임을 읽으며 나진이 땅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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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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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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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뱉은 숨을 다시 삼킬 적, 나진은 사방에 퍼져있는 마나를 빨아들였다. 나진의 체내에 쌓인 마나는 극히 소량에 불과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수치는 아무짝에도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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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그것은 잔여물에 불과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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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가르쳐 준 마나 연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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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공법은 마나를 쌓는 것을 제 1 목적으로 두지 않는다. 마나가 흐를 통로를 강화하고, 육체 자체를 강화해 마나에 최적화된 육체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둔 연공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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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나진의 체내에 쌓인 마나는 육체를 강화하고 남은 잔여물일 뿐. 나진이 다룰 수 있는 마나의 양이 드러나는 것은 나진이 ‘호흡’을 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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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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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을 마친 나진이 한순간 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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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어진 통로와 마나에 적응된 육체. 그것이 맞물리며 만들어 내는 속력은, 경지에 오른 지 십수 년이 지난 소드 엑스퍼트들과 비교해도 조금도 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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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숙한 소드 엑스퍼트, 그 이상의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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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가속한 나진의 검이 번뜩였다. 핏빛 트롤의 곤봉을 피해내며 그 살가죽을 그었다. 그러나 검을 휘두른 순간 나진은 느꼈다. 얕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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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베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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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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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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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의 가죽은 질겨. 마법으로 지지려해도 잘 안 태워지는 게 저 가죽이야. 기본적으로 저항력이 높으니까. 검기로 베려면 요령이 필요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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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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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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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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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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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를 빠르게 움직이며 나진은 다음 행동을 예측했다. 트롤이 들어 올린 곤봉, 트롤이 내디디는 걸음을 의식하며 나진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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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알 것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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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검을 고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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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얼마 전 보았다. 검기를 뽑아내지도 않은 채 오크를 썰어대던 중위 사제 볼크만의 검을. 물론 오크의 가죽보다 트롤의 가죽이 더 질기다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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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검에는 검기가 맺혀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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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저 트롤의 가죽 정도는 능히 썰어재껴야 하리라. 나진이 자세를 고쳐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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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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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발을 내디딘 순간 그 기세가 뒤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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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렵하고 빈틈을 노리는 사냥꾼이 아닌, 오랜 세월 검술을 단련해 온 검의 사제와 같은 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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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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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된 육체와 검기를 두른 검으로 펼치는 검술의 위력은 이전과 비할 바가 못 된다. 완벽한 자세에서 펼친 검술. 번뜩이는 검이 트롤이 휘두르는 곤봉의 옆면을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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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력을 지닌 것은 트롤의 가죽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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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봉은 나무로 이루어진 둔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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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검기를 견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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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절삭음과 함께 곤봉이 반으로 갈라졌다. 매끄러운 절단면을 내리며 곤봉이 떨어졌다. 한순간 사라진 곤봉의 무게에 트롤의 자세에 빈틈이 생겼고, 그 틈을 나진은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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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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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발걸음이 어지러이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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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러지듯, 혹은 춤을 추는듯한 발걸음. 그것은 중위 사제 볼크만의 검술이다. 네 개의 기본자세에 완전히 숙달된 중위 사제만이 전수받을 수 있는 응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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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검술로 볼크만은 일격에 오크를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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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볼크만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나진이 굽혔던 무릎을 폈다. 튀어 오르듯이 검을 휘둘렀다. 누적된 발걸음으로 쌓인 흐름, 힘의 축적이 한 번의 휘두름을 통해 방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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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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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베는 감각이 느껴졌다. 트롤의 살가죽을 찢어발기며 선혈이 튀어 올랐다. 어지간한 트롤이라면 비명을 지르며 움츠러들었을 치명적 일격. 그러나 핏빛 트롤은 일반적인 트롤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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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오오오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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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이 괴성을 내지르며 주먹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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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순간 공중에서 몸을 비틀며 검으로 주먹을 받아냈지만, 충격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쏘아지듯 날아간 나진이 나무에 콰직 하고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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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진은 곧장 몸을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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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란 것처럼. 컥, 퉷 하고 웅어리진 핏물을 뱉어낸 나진이 입가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닦아냈다. 고통으로 표정이 일그러지긴커녕, 나진의 입가에는 웃음이 맺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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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감이 잡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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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두꺼운 가죽을 어떻게 베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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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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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려던 모험가들은, 걸음을 멈춘 채 핏빛 트롤과 단신으로 전투를 벌이는 나진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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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나진을 미끼 삼아 도망칠 궁리를 하던 그들이었지만, 지금은 다만 침묵한 채 나진의 전투를 지켜볼 뿐이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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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도 적색 등급의 마물, 핏빛 트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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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단신으로 상대하고 있는 청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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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과 트롤은 호각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흑색 등급을 달고 있을 뿐, 적색 등급의 실력자라도 됐단 말인가? 모험가들의 시선은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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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줘야 하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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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그리 말하며 앞으로 움직이려 했지만, 그 순간 휙 뒤를 돌아본 나진의 서늘한 눈동자가 모험가의 걸음을 멈춰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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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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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 사냥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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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외치는듯한 섬뜩한 시선. 남의 사냥감을 가로채거나 건드리는 것은 해선 안 될 일. 그 또한 모험가들의 불문율이었다. 결국 모험가들은 말없이 나진의 사냥을 지켜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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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오오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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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이 울부짖으며 뿌리째 뽑아낸 나무를 휘둘렀다. 휘두른 나무가 땅에 처박히며 흙먼지를 일으킬 무렵, 나진은 이미 그 위치에 없었다. 옆으로 미끄러지듯 파고든 나진이 도약해 트롤이 쥔 나무에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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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듬한 나무를 타고 나진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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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의 목덜미에 올라탄 나진이 한 손으로 검을 쥐었다. 다른 한손으로 움켜쥔 비수를 콱, 하고 트롤의 눈구멍에 박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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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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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의 비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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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으로 보호받지 않는 눈동자는 날카로운 비수에 너무나도 쉽게 꿰뚫렸다. 트롤의 눈구멍에 깊게 박아 넣은 비수에 의지해 트롤의 목덜미에 매달린 나진이 한손으로 쥔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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촥, 촤악, 촤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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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검기가 연신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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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 휘두른 검날이 핏빛 트롤의 두꺼운 목을 몇번이고 할퀴었다. 두꺼운 목 가죽이 너덜너덜해지고, 사방으로 핏물이 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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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이 거칠게 몸을 흔들어도 나진은 떨어지지 않았고, 트롤이 손을 뻗어 움켜쥐려 해도 붙잡히지 않았다. 결국 트롤은 비명을 지르며 나무에 연신 제 몸을 들이받았다. 그제서야 나진은 트롤의 어깨를 박차며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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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륵, 그르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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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거품을 무는 핏빛 트롤이 나진을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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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눈에는 비수가 꽂혀있었으며, 그 목 가죽은 너덜너덜해져 피가 흘러내렸다. 아마도 한두 번만 더 검을 휘두르면 완전히 베일 것 같은 모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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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지켜보던 모험가들은 섬뜩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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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는 오랜 세월 검을 휘둘러온, 노련한 검사 같은 움직임을 보이다가··· 또 어느 때는 사냥감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사냥개처럼 섬뜩한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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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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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청년의 모습에 모험가들은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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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흑색 등급인 저 모험가는 결코 초짜라 부를 수 없는 존재임을. 초짜가 아니다. 이 모험가 도시의 정점에 오른 이들이 그렇듯, 순식간에 저 높은 곳에 다다를 신성(新星)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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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에 새로이 떠오르는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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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별을 지켜보는 건 모험가들뿐이 아니다. 구조 신호를 받고 조금 전 이곳에 도달한, 캄브리아의 다섯 정점 중 하나 역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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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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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 아스칼로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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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이네, 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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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중얼거리는 로젤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자신과 동류(同類)를 찾아낸 이의 웃음이었다. 로젤린은 웃음을 흘리며 나진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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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자세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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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일격을 준비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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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보았던 가장 강력한 일격. 그 일격을 흉내 내기 위해 나진이 자세를 잡는 순간, 로젤린이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저 자세를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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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지켜보려 했지만 이젠 그럴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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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청년은 모르고 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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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청년이 쓸 수 있어서도, 저런 마물에게 써서도 안 될 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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