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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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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아, 응? 그렇지.”

부단장 바르거 목소리에 생각에 잠겨있던 로젤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조금 전 청년에게 붙잡혔던 제 손목을 매만지며 미소 지었다.

“보통 놈이 아냐. 뱀년이 눈이 좋긴 하다니까? 저런 놈을 또 어디서 구해왔는지······.”

조금 전 벌어졌던 상황을 로젤린은 곱씹었다.

특출나 봐야 얼마나 특출나겠어.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청년에게 접근했던 로젤린은, 자신의 평가를 곧장 고쳐야만 했다. 녹색 등급의 모험가들조차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압박감 속에서도 청년은 고개를 들었으니까.

‘하물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작정하고 찍어 눌렀음에도.

청년은 고개 숙이긴커녕, 눈을 부릅뜨고선 제 손목을 낚아챘다. 이는 소드 시커가 내뿜는 기세를 정면에서 깨트렸단 뜻이었다.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네.”

로젤린은 흥미롭다는 듯 제 턱을 매만졌다.

분명 청년의 체내에 쌓인 마나의 양은 적었다. 소드 엑스퍼트는커녕, 이제 겨우 마나에 입문한 수준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쥐꼬리만한 마나로 자신의 압박을 떨쳐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없었을 테지만, 로젤린은 보았다.

청년이 압박을 떨쳐내던 그 순간, 자신이 흩뿌려 둔 마나가 청년의 체내로 빨려 들어감을. 그 찰나의 순간 청년이 보인 기세는 자신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것이었다.

난생처음 본 마나 연공법.

로젤린은 숱한 강자들을 만나봤지만 그런 식으로 마나를 다루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어디 귀족 가문의 버려진 자식이라도 되나? 그런 연공법은 처음 보는데. 넌 어떻게 생각하냐, 바르거?”

“저야 뭘 알겠습니까. 깡다구는 있어 보이더군요.”

“그러게 말야. 씁, 생각할수록 마음에 드는데.”

로젤린이 입맛을 다셨다.

그런 그녀를 흘겨보던 바르거는 한숨을 내쉬었다. 금화를 삼키는 뱀이 한번 삼킨 것을 절대 토해내지 않듯이, 제 단장 역시 한번 점찍어 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든 쟁취해 내곤 했으니까.

금화를 삼키는 뱀, 디에타 아르베니아.

그리고 그녀가 점찍어 둔 모험가에게 입맛을 다시는 붉은 눈, 로젤린 아스칼로.

‘귀찮아지겠군.

아무래도, 디에타 상단과의 갈등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바르거는 생각했다.

“거기 너.”

나진이 숲으로 걸음을 옮기려 할 무렵.

등 뒤에서 누군가 나진을 불러세웠다. 나진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부른 인물을 흘겨봤다. 그녀는 녹색으로 물들인 명패를 달고 있었다.

“그래 너 말야. 깜댕이.”

그녀가 나진에게 손짓했다.

아직 떠날 채비를 하고 있던 모험가들의 시선이 다시 나진에게 쏠렸다. 그들은 나진과 대치하고 있는 모험가를 가리키며 수군댔다.

“마르센이 무슨 일로?”

“마음에 안 든다는 거겠지.”

“하기야, 원래 여기서 가장 주목받아야 하는 건 마르센인데······.”

녹색 등급의 모험가 마르센.

캄브리아에서 10년의 세월을 보낸 고참 중의 고참이며, 이번 도첸베르크 삼림 소탕전에 참가한 인물 중 가장 많은 실적을 쌓은 모험가.

이번 소탕전에선 마르센이 1위를 가져갈 거다.

모험가들 사이에서 그런 이야기가 돌 만큼, 본래 이번 소탕전에서 주목을 받아야할 것은 저 흑색 등급의 청년이 아닌 마르센이었다.

“넌 이 바닥이 장난이냐?”

붉은 눈 용병단에 들어서기 위해, 수년 전부터 실적을 차근차근 쌓아온 마르센이다. 그런 그녀의 시선에 나진은 눈엣가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백각 등급의 모험가한테, 그것도 로젤린 님한테 어디 싸가지없게······.”

“말 더럽게 많네.”

“···뭐?”

나진이 인상을 콱 구겼다.

귀찮다는 듯 나진이 제게 손가락질하는 마르센의 검지를 손등으로 밀어냈다.

“할 말은 그게 다예요? 끝났으면 좀 가고 싶은데.”

“너 뭐라 했냐?”

“왜 바쁜 사람 발목을 잡아요. 이럴 시간에 한 마리라도 더 잡지. 그쪽은 순위권에 관심 없습니까?”

나진으로선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다.

나진은 눈앞의 모험가의 이름도, 이 모험가가 1등의 유력 후보라는 사실도 몰랐으니까. 단지 1등을 노리고 있는 나진의 입장에선 이런 영양가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대화에 붙잡혀 있는 게 짜증 났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1등의 유력 후보라 불리는 마르센의 입장에선 명백한 도발이었다. 마르센의 표정이 구겨졌다.

“허, 이거 어이없는 새끼네.”

마르센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나진에게 손가락질했다.

“너 두고보자. 끝나고 다시 보자고. 나보다 순위 낮으면 넌 오늘 각오해라.”

나진은 심드렁하게 마르센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이야기가 드디어 끝났나 싶어 나진은 숲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나진과 마르센의 모습을 지켜보던 모험가들이 저들끼리 수군댈 뿐이었다.

마르센은 그 수군거림에 귀 기울였지만.

나진은 그들의 목소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진의 관심을 끄는 것이라곤 오직 하나. 단상 위에 서 있는 용병단의 단원이 지키고 있는 점수판이었다. 마물의 목을 가져올 때마다 저곳에 실시간으로 점수를 기록해 주는 식이라고 들었다.

저곳의 가장 높은 곳에 이름을 건다.

목표를 곱씹으며 나진이 숲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진은 마물을 사냥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길드에서 간단한 토벌 의뢰를 몇 번 수행하긴 했지만, 마물의 흔적을 쫓아본 경험은 없었으니까. 고블린의 부락이나 동굴 등, 위치가 확정된 마물을 사냥해 본 경험이 전부였다.

‘그러니까, 이번이 처음이라는 거죠.

마물의 흔적을 추격해서 사냥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그렇게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았다. 나진은 숨을 가다듬고 눈을 가늘게 떴다.

결국 마물의 흔적을 추격하는 거라 해봐야··· 인간을 추격하는 거랑 크게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마물을 추격해 본 적은 없었지만, 사람이 남긴 흔적을 쫓아가 족친 경험은 차고 넘치도록 많았다. 이반의 사냥개로서 활동할 때와, 교단의 암부들에게 쫓고 쫓을 때 질리도록 경험해 봤으니까.

잘그락.

나진이 손목에 묶어둔 암기를 매만졌다.

-그거 마음에 들었나 봐? 꽤 애용하네.

‘이게 또 편하더라고요.

암부들에게서 훔쳐낸 암기 투척술.

나진이 암기 하나를 손에 쥔 채 바닥에 남아있는 흔적을 따라 움직였다. 날카롭게 곤두선 감각은 작은 인기척조차 놓치지 않았다.

바스락, 하는 소리가 들린 순간.

나진이 휙 고개를 돌리며 암기를 투척했다.

동시에 고르륵! 하는 고블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고블린에게 다가서 그 목을 베어 자루에 담은 나진은 곧장 움직였다.

그러다가 멈칫.

나진이 잠시 걸음을 멈췄다.

-뭐야 왜 멈춰?

‘생각해 보니까 말이에요.

나진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울창하게 솟은 나무를 바라보며 나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굳이 길로 다닐 필요는 없지 않아요?

-나무 위로 다니기라도 하겠다고? 그거 엘프들이나 하는 짓 아냐? 보통 균형감각으론 안 될······.

대뜸 나무를 타고 나진이 올라섰다.

몇 번 발끝으로 툭툭 나뭇가지를 두들겨 보더니 나진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곤, 탁. 가지를 밟고 나진이 도약했다.

도약 거리는 정확했고 착지는 부드러웠다.

골목길의 벽에 나 있는 좁은 틈을 발판 삼아 움직였던 나진이다. 그런 나진에게 있어 나뭇가지 정도면 충분히 넓고 균형 잡힌 발판이었다.

-허······.

할 말을 잃은 멀린을 뒤로한 채 나진은 나무를 타고 빠르게 움직였다. 고속으로 이동하는 나진의 움직임보다, 나진의 눈동자는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

‘찾았다.

얼핏 보면 목적지 없이 마냥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나진의 눈동자는 마물을 정확히 포착했다.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며 나진은 일격에 마물의 머리를 쪼갰다.

쪼갠 머리를 자루에 담고 자리를 이탈.

같은 과정을 반복할수록 나진의 움직임은 날렵해졌으며, 간결해졌다.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며 마물의 목을 단숨에 낚아채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맹금류의 사냥을 보는 것 같다고 멀린은 생각했다.

도첸베르크 소탕전 게시로부터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노을이 질 무렵이 되자 모험가들은 다시 숲의 초입으로 모여들었다.

슬슬 마감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마물의 목을 자루에 담아 온 이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그들은 단상에서 기다리고 있는 붉은 눈 용병단의 감독관에게 자루를 넘기고 점수를 매겼다. 그렇게 대부분의 모험가가 도착했을 무렵.

그들은 단상에 놓인 점수판을 보았다.

1위는 모두의 예상대로 마르센이다. 조금 전 도착한 마르센은 31 점으로 2등과 다섯 점의 격차를 보이며 1등 자리를 차지했다.

“역시 마르센이 1등이네.”

“그럴 것 같긴 했는데, 31점이라니. 장난 아닌데? 찾아다니는 것만 해도 일이던데······.”

그녀가 1등을 하리라 모두가 예상했기에, 그녀가 사냥한 마물의 수에 주목하면 주목했지 그녀가 1등을 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야, 근데 그 깜댕이 놈도 장난 아닌데? 순위권 봐봐. 12위야.”

“흑색 등급이 12위? 와 씨···.”

오히려 그들이 놀란 것은 흑색 등급의 모험가, 이반의 순위다.

12위. 이반 (14 점).

14 점. 녹색 모험가들에게도 쉽지 않은 수치였다. 이 숲속에 숨은 마물들을 발견해 사냥하는 것은 다양한 감각을 요구 했으니까. 확실히 이목을 끌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그들이 생각하고 있을 무렵이다.

“어? 근데 좀 이상한데?”

어느 모험가가 입을 열었다.

이제 막 숲속에서 돌아온 모험가다. 그가 점수를 정산하며 순위권에 적힌 이반의 이름을 가리켰다.

“쟤 홉 고블린 멱 따고 다니던데? 홉 고블린 한 마리에 3점짜리잖아. 내가 본 것만 해도 넷이 넘었는데? 그것도 한 시간도 더 전 이야기였고.”

“니가 잘못 본 거 아냐?”

“아니야. 홉 고블린 무리 잡으려고 준비하는데, 갑자기 저 나무 위에서 휙 떨어지면서 목을 채가던데?”

순식간에 네 마리를 사냥하고 사라졌다.

그 이야기를 듣던 모험가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안 왔는데?”

마감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초입에 모인 모험가들 중 흑색 등급의 청년은 없었다. 설마 중간에 자루를 하나 제출하고, 다시 숲으로 들어갔단 말인가?

그렇게 그들이 기다리고 있을 무렵이다.

마감 시간이 다 되어서야 숲속에서 땅을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을 진 숲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피 칠갑을 한 청년이었다. 청년의 몸과 머리칼에 묻은 것은 청년의 피가 아니었다.

검푸른 마물의 피.

섬뜩한 분위기마저 풍기는 나진의 모습에 모험가들이 주춤 물러섰다. 그들 사이를 지나쳐 나진은 단상에 올라 감독관에게 자루를 넘겼다.

우수수.

감독관이 자루를 털자 홉 고블린 목 일곱 개가 쏟아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모험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숲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마물들로만 모아서 사냥해 온 것이다.

그들이 시선이 점수판을 향했다.

본래 나진의 점수는 14점. 하지만 여기에 홉 고블린 일곱마리의 21점이 더해진다면······.

“35점······.”

누군가의 중얼거림과 함께 1위에 걸려있던 마르센의 이름이 지워졌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이반이라는 이름이다.

1위. 이반 (35 점).

2위. 마르센 (31 점).

모두의 시선이 마르센에게 향했다.

마르센은 눈을 부릅뜬 채 점수판을, 그 곁에 서 있는 나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흑색 등급의 모험가가 1등을 차지했다.

마르센이 황급히 자루를 쥔 채 숲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감독관이 종을 울렸다.

마감 시간이 끝났다는 뜻이었다. 마르센이 이를 갈며 나진을 노려봤지만, 정작 나진은 마르센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단상에서 내려올 뿐이었다. 애당초 그녀에겐 관심이 없었다는 듯이.

까득.

이를 간 마르센이 나진에게 다가서려는 순간이다. 나진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나진이 고개를 돌린 방향, 숲의 안쪽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허억!”

수풀을 헤치고 뛰쳐나온 모험가들이 있었다. 그들이 숨을 몰아쉬며 삼림의 초입에 엎어지듯 나뒹굴었다. 그들의 안색은 창백해졌으며, 겁에 질린 듯 덜덜 떨고 있었다.

“안에, 숲 안에!”

그들의 외침보다 먼저.

쿵, 쿠웅 하고.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울려 퍼지는 발걸음 소리는 숲의 초입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윽고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뿌리째 뽑힌 나무 한 그루가 모험가들이 모여있는 곳을 향해 날아왔다.

모험가들의 비명 소리.

당황하며 물러서는 발걸음 소리.

식은땀을 흘리며 무기를 뽑아 드는 마찰음.

그런 소음들 사이로, 노을 진 숲에서 마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