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 KiB
볼크만의 반응을 본 나진은 확신했다.
자신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먹혀들었음을.
‘계획은 먹힌 모양이네요.’
-그런 것 같네.
볼크만의 의뢰를 받은 직후 나진은 검의 교단에 대해 조사했었다. 멀린이 가진 지식과 교단에 대한 소문, 그리고 관련된 서적까지. 검의 교단에 관한 정보는 비교적 간단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폐쇄되지 않은 공개적인 집단이었으니.
그리하여 관련된 정보들을 부합한 나진은 의뢰를 시작하기 전 한 가지 결론을 냈었다.
‘어느 정도는 내 재능을 드러내도 된다.’
물론 자신이 가진 재능이 ‘위험 요소’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야 나진도 알고 있다. 무턱대고 귀족가의 비전 검술을 훔쳐서 눈앞에서 따라 하기라도 했다간, 일이 굉장히 복잡해지리란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볼크만 앞에서 재능을 드러낸 것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검의 교단에게 만큼은 그래도 된다는 확신.
「하하. 열정이 넘치는 청년이로군.」
「얼마든지 봐도 좋네. 다만, 너무 가까이 오지는 말게. 위험할 수도 있으니.」
앞선 볼크만의 대화에서 나진은 확인했다. 자신이 찾은 교단에 대한 정보가 틀리지 않았음을.
‘검의 교단은 제 검술을 숨기지 않는다.’
십수 년, 혹은 제 한평생을 검술의 증진에 바치는 그들은 자신들의 검이 바깥에 노출되는 것을 그리 꺼려하지 않았다.
하물며 누군가 교단의 검술을 훔쳐 자신만의 방식으로 발전시킨다 한들, 교단은 도리어 박수를 치며 그 사실을 축하하곤 했다. 검술에 새로운 길이 열렸으니 그걸로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말했잖아. 좀 이상한 애들이 모인 곳이라고.
멀린이 말했다.
-검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하는 또라이들이야. 사고방식 자체가 조금 다르다는 거지.
검의 교단의 사제들.
그들이 가장 우선시하는 가치는 검술의 발전과 검사의 양성이다. 그 부분을 곱씹으며 나진은 서적에서 확인했던 검의 교단의 계율을 떠올렸다.
볼크만에게 흥미를 끄는 데는 성공했다.
남은 것은, 그 계율을 이용해 볼크만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미리 세워뒀던 계획을 떠올리며 나진이 칼자루를 매만졌다.
‘운이 좋다면······.’
더 다양한 검술을 모방할 수 있겠지.
검을 휘두르는 볼크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진이 입맛을 다셨다. 간단한 기술 몇 개를 배우고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아직 볼크만에겐 숨겨둔 기술이 잔뜩 있는 것 같았으니까.
‘기왕 훔치기로 작정한 거.’
나진이 미소 지었다.
‘바닥까지 탈탈 털어먹죠.’
남은 오크들의 정리를 마친 볼크만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있었고, 내뱉는 숨은 거칠었다. 제아무리 소드 엑스퍼트라곤 하나 검기 없이 오크를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그러나, 그렇기에 단련이 되는 것이다.
뛰어난 절삭력을 가진 검기에 의존하다 보면 칼 그 자체가 지닌 날카로움이 무뎌지는 법이다. 이런 단련을 통해 오랜 세월 갈고닦은 검술의 날카로움을 확인할 때마다 볼크만은 즐거움을 느끼곤 했다.
그러니 평소대로라면 지금 역시 기분 좋게 웃고 있을 테지만······.
“······.”
볼크만은 웃지 못했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으니까. 그곳에는 볼크만이 썰어둔 오크의 목을 자루에 담고 있는 청년이 하나 있었다.
스스로를 이반이라고 밝힌 청년.
오크 사냥을 시작하기 전, 검술을 가까이서 봐도 되겠냐는 청년의 물음에 볼크만은 흔쾌히 ‘그래도 좋다’ 라고 답했다.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청년 같았고, 배움을 원하는 청년의 자세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그래서 봐도 좋다고 허락한 것인데.’
볼크만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조금 전 청년이 펼쳤던 움직임이 그의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시야의 사각에서 달려들던 고블린의 기척을 느끼기라도 한 듯, 자신이 소리치는 것보다 먼저 움직이던 청년의 모습.
거기까지야 감이 좋다고 넘어갈 수 있지만.
문제는 그다음 청년이 펼친 검술이었다.
자세의 연계와 순환. 그 순환을 통해 만들어 내는 공방일체의 흐름. 그건 볼크만이 청년에게 보여준 검술이었고, 검의 교단의 기본이 되는 검술이었다.
물론 그 검술 자체가 보기 드문 건 아니었다.
교단의 검술은 널리 알려져 있으며, 특히나 기본이 되는 네 가지 자세는 세간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검술 교본에서도 다뤄지곤 했으니까.
‘하지만······.’
볼크만이 제 미간을 꾸욱 눌렀다.
교단이 검술의 공개를 꺼리지 않는 이유는 아무나 따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교단의 검(劍)은 오랜 세월의 훈련과 반복으로써 완성되는 것이었으니.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를 깎아내고, 하나의 자세에 숙달하기 위해 수년간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그렇게 완성한 자세가 지닌 정교함이야말로 교단의 검술의 정수였다.
‘오직 노력과 시간만이 완성시킬 수 있는 검술.’
그건 단순히 본다고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검술을 훔쳐도, 검술의 단련에 들인 시간까지 훔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분명 그럴 텐데.’
조금 전 저 청년이 보인 움직임은 어땠지?
검을 휘두르는 것은 잠깐에 불과했지만, 볼크만은 분명히 보았다. 청년의 자세는 완벽하게 각이 잡혀있었고 자세와 자세의 연계는 부드러웠다.
내디디는 발에 실린 힘.
팔을 움직이는 각도와 칼끝이 그리는 궤적.
내뱉는 숨과 시선이 향하는 방향.
하물며, 검을 쥐는 파지법까지.
그 모든 게 완벽히 숙달돼 있었다. 청년이 보인 정교한 움직임은 하루이틀사이에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수십년간 같은 동작을 반복해 온, 중위 사제들이나 지닐만한 정교함이었다. 자신과는 체격도, 외모도 다른 청년이지만 볼크만은 청년의 움직임을 볼 때 마치 거울을 보는듯한 착각마저 느꼈다.
그만큼이나 자신과 닮아있었으니까.
움직임과 아주 미세한 버릇까지도.
그 사실에 볼크만은 위화감을 느꼈다. 그 잠깐 보여준 걸 가지고 보고 베꼈다고? 아니, 그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교단의 검술을 어디선가 배운 적이 있단 뜻인가?
아무리 고민해 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반이라 했나.”
고민 끝에 볼크만은 결국 입을 열었다.
청년을 향해 다가선 볼크만이 질문했다.
“교단의 검술을 혹시 어디선가 배운 적이 있나? 방금 보인 움직임은 교단의 검술이고, 또 하루 이틀 사이에 완성되는 것이 아닐 텐데. 오랫동안 훈련을 한 것 같네만······.”
청년은 침묵했고.
볼크만은 계속해서 물었다.
“혹시 검술을 지도해 준 스승이 계신다면, 그분의 성함을 물어봐도 되겠는가?”
만일 이 청년에게 스승이 있다면.
그자는 필시 고명한 검사일 것이다. 저 나이대의 청년이 저만큼 완벽한 자세를 잡으려면, 자세를 교정해 줄 좋은 스승을 두어야 할 테니까.
‘교단의 고위 사제? 아니면 이름을 날리던 방랑 검사? 어느 쪽이든 교단의 검술을 잘 알고 있는 자일 것이다.’
과연 누구일까.
자신이 아는 검사일 수도 있다. 그렇게 볼크만은 청년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지만······.
“······.”
여전히 청년은 침묵했다.
답하지 않는 청년의 모습에 볼크만이 답답함을 느끼며, 다시 질문하려던 순간이다.
“검의 교단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청년이 입을 열었다.
그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볼크만이 기대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청년이 입에 담은 어느 단어에 볼크만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곳에는 이런 계율이 있다지요.”
검의 계율(戒律).
아탕가의 기사단이 오랜 기사의 계율을 지키듯, 검의 교단은 최초의 검성이 남긴 몇 가지 규칙을 계율 삼아 지켜오고 있었다.
그 계율 중 하나를 청년은 발음했다.
“검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면, 검으로서 논해라.”
볼크만이 눈을 크게 떴다.
이내 그의 입가를 비집고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새어 나온 헛웃음이 호탕한 웃음소리로 바뀌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검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면, 검으로서 논해라.』
호탕하고 거침없는 성격을 지녔던 최초의 검성께선 언제나 말보다 검이 앞서는 사내였고, 검사라면 응당 검으로서 이야기해야 함을 주장하던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저 계율은 이런 뜻이나 다름없었다.
이리저리 말을 늘어놓느니 그냥 검을 맞대보면 알지 않겠는가? 이것저것 잴 시간에 검이나 들고 달려들어봐라. 몇 합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테니.
즉, 검투(劍鬪)나 한판 뜨자는 뜻이었다.
“당돌한 청년이로군.”
볼크만의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모든 사제들이 계율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볼크만 또한 계율을 기억하고 있을 뿐 계율에 얽매이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제 앞에서 검의 계율을 언급하는 검사의 말을 외면할 만큼 볼크만은 계율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볼크만이 생각하기에도 청년의 말이 맞았다.
“확실히 자네 말이 맞아.”
눈앞의 청년에게 볼크만은 흥미를 느꼈으며, 청년의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이를 해소하는 데 있어 대련만 한 게 없음을 볼크만은 잘 알고 있었다.
콱.
볼크만이 허리춤에서 검집째 검을 뽑아 들었다. 허리띠로 검집과 검을 단단히 묶은 볼크만이 청년에게 검을 겨눴다.
“검의 사제라는 자가 계율을 어길 수는 없는 법이지. 내 자네의 검술에 흥미가 좀 있네만, 대련을 청해도 되겠는가?”
청년이 말없이 검례를 올렸다. 그 또한 검과 검집을 강하게 묶은 뒤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대련이 끝난다면 질문에 답해줄 수 있겠나?”
“대련을 하시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입니다.”
“거 한마디를 안 지는군.”
어디 실력 좀 보도록 하지.
그리 중얼거리며 볼크만이 검을 까딱였다. 첫수는 양보하겠다는 신호였다. 여유로운 볼크만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진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흥미를 끌고, 계율을 언급해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다. 남은 것은 볼크만을 몰아붙여 그가 아직 보여주지 않은 기술을 끌어내는 것뿐.
그렇기 위해선 일단 저 여유를 빼앗아야 하리라.
나진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자세를 낮췄다. 볼크만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것은 볼크만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자세였으니. 그야 그럴 수밖에 없다. 이것은 교단의 검술도, 그 누구의 검술도 아니었으니.
초격에 최적화된 검.
첫 일격으로 흐름을 휘어잡는 검.
지하도시에서 단숨에 승패를 가르고, 기세를 휘어잡기 위해 나진이 자체적으로 만들어 낸 기술이었다. 검술이라 부르기도 뭣한 날것 그 자체의 검술.
하지만.
나진이 가진 천부적인 감각이 함께하는 이상, 그것은 무엇보다도 날카로운 일격이 된다. 나진이 박아 넣은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마나로 육체를 강화하지 않았음에도 그 일격은 놀라우리만치 빠르다.
“······!”
볼크만의 눈이 크게 뜨였다.
한순간의 가속과 동시에 시야의 사각으로 파고드는 청년의 모습. 낮게 끌던 검을 위로 올려 칠 거라 예상했으나, 예상과 달리 청년은 코앞에서 도약했다.
가속을 실은 검의 궤적이 비틀린다.
아래에서 위가 아닌, 위에서 아래로 사선으로 내려찍는 검의 궤적. 한순간에 비틀린 검의 궤적에 볼크만의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카, 가가각!
수천, 수만번이고 반복해 온 자세를 잡으며 그가 나진의 검을 받아냈다. 손을 타고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에 볼크만이 당황할 틈도 없이, 곧장 나진은 다음 검격을 이어 붙였다.
휘어잡은 기세를 놓치지 않겠다는 양.
대련이 이어질수록 볼크만은 위화감을 느꼈다.
눈앞의 청년은 검기도, 마나도 다루지 않고 있다. 체내에서 마나가 느껴지긴 하지만 아직 소량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마나를 다루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움직임이 빨랐다.
‘아니, 아니다.’
볼크만은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은 빠르게 움직이는 청년의 눈동자다. 그제야 볼크만은 이해했다. 청년은 빠른 것이 아니라 ‘먼저’ 움직이는 것이었다.
어디로 검이 휘둘러져 올지.
어디로 볼크만이 파고들지.
그 모든 게 보인다는 것처럼 청년은 볼크만보다 한 걸음 먼저 내딛고, 한걸음 먼저 물러섰다. 그 정확한 간격에 볼크만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미숙하고, 정제되지 않았지만···.’
날것의 날카로움이 있다.
맹수의 송곳니와도 같은 예리한 검격이 순간순간 번뜩였다. 그 모든 것을 볼크만은 여유롭게 쳐내고 있으나, 다음으로 나진이 취하는 자세에 그 여유는 무너지고 말았다.
쿠웅.
발을 땅에 내려찍으며 나진이 검을 들어 올렸다. 그것은 볼크만에게서 훔쳐낸 자세다. 자신의 검을 몇차례고 막아낸 방어에 치중된 자세를 잡으며 나진이 볼크만의 검을 막아냈다.
막아내며 곧장 자세를 연계한다.
마치, 볼크만의 움직임을 흉내 내듯이.
그것은 교단의 검술이다. 하지만, 나진이 자세와 자세를 이어 붙이는데 내디딘 걸음과 힘의 분배는 오직 볼크만의 것이다. 십수년간의 단련 끝에 볼크만이 만들어 낸 그의 버릇과도 같은 것.
“···!”
볼크만의 시선이 흔들렸다.
조금 전에는 멀리서 보아 확신할 수 없었으나, 코앞에서 검을 맞대고 있자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건 자신의 검이었다.
캉, 카아앙!
검과 검이 맞부딪칠수록 볼크만은 기이함을 느꼈다. 마치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다. 볼크만이 새로운 응용기를 보이면 거울은 박살 나지만, 순식간에 새로운 거울이 눈앞에 나타난다.
거울에 비춘 청년은 볼크만이 선보인 응용 기술을 곧장 따라 했다.
첫 일격은 미숙하다. 그러나 두 번째로 같은 기술을 보였을 때, 청년이 그리는 검의 궤적은 완벽했다. 그 궤적에는 볼크만이 단련해 온 십수 년의 세월이 녹아들어 있었다.
“하···!”
어이가 없어서. 이해할 수가 없어서.
볼크만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계속해서 검을 맞부딪치는 가운데 볼크만은 깨달을 수 있었다. 대련을 하기 전에 청년이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스승이 누구냐고 물었던 자신의 질문에, 청년은 이렇게 답했었다.
대련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라고.
‘그것이 이런 뜻이었나!’
볼크만은 팔뚝에 소름이 돋음을 느꼈다.
스승에 대해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지금 저 청년과 검을 맞대고 있는 자신이 곧 청년의 스승이었으므로.
기술을 보여주는 곧장 베껴낸다. 단순히 기술만을 베끼는 것이 아닌, 그 기술을 단련하기 위해 볼크만이 투자한 십수 년의 세월을 나진은 모조리 훔쳐내고 있었다.
그 사실을 볼크만이라고 모르지 않는다.
제 밑천이 털려감을 눈치챘음에도 볼크만은 검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이 검투(劍鬪)를 볼크만 역시 즐기고 있었으므로.
‘천재라 불리는 이들은 숱하게 봐 왔다.’
타인의 한평생을 한순간에 따라잡는 괴물 같은 이들. 눈앞의 청년도 그런 이들 중 하나이리라. 청년과 검을 맞대며 볼크만은 어느 사내를 떠올렸다.
자신과 같이 교단에 입문했지만.
지금은 닿을 수 없는 곳까지 가버린 친우.
최연소 소드 엑스퍼트, 최연소 소드 시커, 최연소 소드 마스터··· 기록을 차례로 갈아엎으며 정점에 선 불세출의 천재.
‘검의 교단의 주인 검성(劍聖) 카론.’
아직 카론이 엑스퍼트였던 시절, 그와 검을 맞부딪쳤을 때 느꼈던 감각을 볼크만은 지금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노력이 부정당하는 감각. 그 사실에 볼크만은 불쾌해하지 않았다.
‘더 보여봐라.’
이는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으니.
예측불허한 움직임을 보이는 나진의 검에 대응하는 것은 볼크만으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검기와 마나를 다룬다면 쉽겠지만, 순수한 검술만으로 대응하기엔 까다로운 상대.
하물며 저 청년은 자신의 검술을 모방하고 있다.
거울에 비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착각이 들 정도로 정교한 모방. 자신을 모방하는 청년의 움직임에서 볼크만은 그간 찾아내지 못했던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냈다. 어느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좋은 경험이었고 좋은 대련 상대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끝이 다가온다. 파각, 소리를 내며 검집에 금이 갔다. 볼크만은 마지막으로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것은 마지막까지 나진에게 보이지 않았던 볼크만이 가진 가장 최강의 일격이다.
촤아아악···.
들판에 볼크만의 발자국이 어지러이 찍혔다. 빠르게 움직이는 나진의 눈동자로도 다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의 정교하고도 복잡한 보법. 미끄러지듯 나진의 품으로 파고든 볼크만이 검을 휘둘렀다.
잔상을 흩뿌리며 번뜩이는 검격.
콰직!
검이 맞부딪치는 순간 볼크만의 검집이 부서졌다. 간신히 방어해냈지만 나진은 검격에 떠밀려 바닥을 나뒹굴어야만 했다. 나진이 몸을 일으켜 세웠을 때, 그곳에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볼크만이 있었다.
“좋은 대련이었네, 이반.”
그가 미소 지었다.
“자네가 검기를 다룰 수 있게 되면··· 그때는 검기를 두른 채로 검을 맞대보고 싶군.”
나진에게 다가온 볼크만이 손을 뻗었다. 그 손을 붙잡고 나진이 일어섰다. 얼얼한 손아귀를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고 있는 나진에게 볼크만이 말했다.
“자네, 검의 교단에 입문해 볼 생각이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