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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잘 닿지 않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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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지고, 어둡고, 습하며 시야의 확보는 어렵고 폭이 좁아 크게 움직이기도 힘든 곳. 뒷골목 길, 혹은 슬럼가라 불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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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시에나 존재하며 도시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거대해지는 곳이 바로 이런 곳이다.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에도 당연히 슬럼가는 존재했다. 낙오된 모험가나 용병들이 처박히는 곳이자, 범죄자들이 숨어드는 마치 거대한 미로와도 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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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신이 박힌 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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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실한 삶을 살아가는 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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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슬럼가에 오기만 해도 오한을 느낄 것이며, 자연스레 신경이 곤두서고 움직임이 딱딱해질 것이다.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겠다고 직감할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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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슬럼가란 그런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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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곳에 발을 디딘 소년은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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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마치 고향에 온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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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열흘간 낯선 것들만을 봐오느라 피곤해했던 정신이, 뒷골목에 들어선 순간 ‘여기가 내 집이요’ 하고 느긋하게 드러눕는 게 아닌가. 긴장이 풀리고 몸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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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시 아트만과 비슷한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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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한 공기를 삼키며 나진이 가볍게 몸을 털었다. 몇번의 심호흡을 마친 나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어둠 속에서 노을빛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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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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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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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중얼거린 나진이 가볍게 몇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느릿한 걸음으로 골목길의 안쪽을 향해 접어들던 나진은, 저 멀리서 ‘툭’ 하고 인기척이 느껴지는 순간 들어 올린 발을 땅에 내려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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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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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게 내디딘 발걸음. 직후, 찰나의 순간 나진의 몸에 흐름이 깃들었다. 이젠 마나를 사용한 육체의 강화를 제멋대로 부릴 수 있게 된 나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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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내려찍은 발에 힘을 준 나진이 그대로 땅을 박차고 질주했다. 한순간의 가속. 뒤늦게 이변을 눈치채고 숨어있던 남자가 도망쳤지만, 그땐 이미 코앞까지 나진이 접근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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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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뻗은 손으로 나진이 사내의 목덜미를 움켜쥐어 들어 올렸다. 제법 체격이 있어 보이는 사내였지만, 나진이 팔을 들어 올리자 속절없이 공중에 붕 떴다. 발이 땅에 닿지 않자 사내 또한 위화감을 느낀 듯 시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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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나진과 눈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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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잘 새어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나진의 눈동자는, 야생에서 마주친 맹수의 것을 닮아 있었다. 오금이 저린 듯 사내의 다리가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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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날 감시하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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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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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곧장 답하지 않았고, 나진은 빈손으로 사내의 손가락을 붙잡았다. 입을 열게 하는 법은 잘 알고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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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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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려 퍼지는 비명소리. 같은 과정을 몇 번 반복하고, 다섯손가락 중 멀쩡한 손가락이 두 개 이하로 줄어들었을 때야 사내는 알고 있는 걸 모조리 털어놓았다. 들을 정보를 다 들은 나진은 사내의 턱을 주먹으로 갈겨 기절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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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늘어진 사내를 아무렇게나 던져둔 뒤, 나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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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몇 고용해 놓고 감시자를 배치, 골목길에 들어오는 현상금 사냥꾼이 있으면 거리를 벌리는 식으로 숨어다녔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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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가 털어놓은 건 간단한 정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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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진은 수배범이 어떤 식으로 도망쳐 다녔는지 견적을 잡았다. 고작 몇 개의 정보로 거기까지 유추해 낸 나진의 모습에 멀린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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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몇 개 가지고 거기까지 유추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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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 잡아 족치다 보면 수법이 다 거기서 거기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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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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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수법을 쓰는 놈들을 ‘어떻게’ 잡는지 나진은 잘 알고 있었다. 안전하고 느린 방법과, 빠르고 위험한 방법이 있었는데··· 나진이 그중 선택한 것은 두 번째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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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어떻게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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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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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딛는 걸음의 속도와, 땅에 닿는 신발 밑창의 면적을 의식한 채 나진이 한 걸음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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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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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시에서 자신을 추격하던 암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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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기척을 죽였는지 멀찍이서 관찰했던 나진이다. 그들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나진이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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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다시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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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작은 소리가 들렸지만, 세걸음째 내디뎠을 때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움직임에 익숙해졌을 때 나진은 기척을 죽인 채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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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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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지켜보던 멀린은 눈을 깜빡였다. 조금 전까진 묵직했던 소년의 움직임이, 지금은 암살자들을 방불케 할 만큼 은밀해져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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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속에서 나진이 벽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감시자로 보이는 인물의 머리 바로 위를 지나갔음에도 그는 나진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몇 명의 감시자를 가로질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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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처럼 얽힌 골목길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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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시시덕거리고 있는 사내 하나를 나진은 발견했다. 고용한 경호원으로 보이는 이들과 카드를 치고 있는 사내의 모습. 테이블 위에는 카드와 동전 따위가 널브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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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배범 로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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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의 모습은 디에타가 건네준 수배서에 그려져 있는 용모와 일치했다. 거기까지 확인한 나진은 기척을 죽인 채 로페스의 머리 위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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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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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내리며 로페스의 머리를 움켜쥔 나진이 곧장 사내의 머리를 테이블에 처박았다. 테이블이 박살 나며 카드와 동전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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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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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용주를 테이블에 처박으며 등장한 나진의 모습에 그들이 빠르게 제 허리춤으로 손을 뻗었다. 지하도시에서 칼밥 좀 먹었다는 이들과는 비교하는 게 실례일 정도로 빠른 대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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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속도란 언제나 상대적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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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에게 있어선 그 모든 게 너무나도 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바닥에 내려둔 도끼를 집으려는 사내의 손을 나진은 발로 짓밟았다. 우득, 소리를 내며 손을 부러트리며 나진이 제자리에서 빙글 회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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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춤에서 검을 뽑으려는 사내의 손등을 발로 찍었고, 곧장 단검을 들고 찔러 들어오는 놈의 손목을 붙잡고 역으로 꺾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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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를 뽑으려던 그들의 움직임은 한 차례씩 뒤로 밀렸다. 그리고, 나진에겐 그거면 충분했다. 나진은 그들을 하나씩 제압했다. 검을 쓸 필요는 없었다. 턱을 후리고, 안면에 주먹을 꽂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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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으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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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에 처박혔던 로페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가 제정신을 차렸을 땐, 제 곁에 있던 경호원 셋은 이미 눈을 까뒤집은 채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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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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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진 이들 사이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나진과 눈을 마주친 순간, 로페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가 급히 몸을 돌려 도망치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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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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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페스의 종아리에 비수가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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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의 암부들에게서 빼앗은 뒤, 지금까지도 나진이 애용하고 있는 비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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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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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페스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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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꾸라진 로페스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렸다. 정체 모를 소년을 바라보며 그가 소리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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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 새끼, 잘못 걸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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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은땀을 흘리면서 그가 품에서 뭔갈 꺼내 들었다. 그걸 콱, 하고 움켜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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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이이이이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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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골목길에 퍼져있는 제 동료와 고용한 호위들을 불러 모으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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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나와 브롬 형님 영역이라고. 현상금 사냥꾼 같은데, 넌 좆됐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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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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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페스의 웃음에 나진은 화답했다. 싱긋 미소 짓는 나진을 바라보며 로페스는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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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덜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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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그리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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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수배범 브롬 또한 나진의 표적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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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진이 검을 뽑아 들었다. 챙, 소리를 나며 칼집에서 뽑혀 나온 검을 늘어트린 채 나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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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배범, 로페스가 상황이 뭔가 잘못됐단 걸 깨달은 건 그로부터 몇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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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의 암부. 그리 불리는 전문적인 추격자들을 따돌리고, 때로는 그들을 농락하며 사냥했던 나진이다. 그 과정에서 성장한 나진에게 있어 이런 골목길에서 굴러먹는 부랑배들은 간단한 사냥감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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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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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몰려든 부랑배들을 모조리 제압하고, 멀찍이서 그들을 지휘하던 수배범 브롬의 무릎을 박살 내 로페스의 곁에 던져두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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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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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배범 브롬. 수배범 로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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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을 결박해 던져놓은 나진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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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알았으면 여섯 장 다 받아올 걸 그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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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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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주님, 모험가가 하나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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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비서의 부름에 디에타는 눈을 깜빡였다. 이런 이른 아침부터? 이제 막 상회로 출근해 모닝커피를 홀짝이고 있던 디에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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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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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머리칼의 소년입니다. 듣기로는 어제 상단주님께 의뢰를 받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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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머리칼의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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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자신이 밥을 사준 소년이었다. 제 집무실이 있는 상회의 위치를 알려주긴 했는데, 이렇게 빨리 찾아왔다고? 혹시 수배범에 대한 정보를 더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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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정보는 다 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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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달라고 하는 거면 조금 실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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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며 디에타가 손짓했다. 들여보내라는 신호였다. 뒤이어 계단에서 쿵, 쿵, 쿵··· 하는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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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고 발을 들이민 것은 어제의 그 소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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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소년을 마주한 순간 디에타는 깨달았다. 소년이 더 정보를 달라고 찾아온 것이 아님을. 소년이 이곳에 끌고 들어온 것은 세 명의 수배범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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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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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것은 디에타뿐이 아니었다. 그녀의 곁에 서 있던 호위 기사 파시온 역시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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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세 사람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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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두 사람이 그러거나 멀거나, 나진은 제 등 뒤를 가리켰다. 그곳엔 다리를 절뚝거리는 수배범 셋이 있었다. 묶인 것은 팔뿐이지만 그들은 저항은커녕,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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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뒤를 돌아보자 그 시선을 피하려는 듯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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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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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타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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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롬, 로페스, 마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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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출신의 수배범이며,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빠져나가기로 유명한 그 세 사람이 맞았다. 그러나 들려오던 소문과는 달리 세 남자는 세상 얌전하게 제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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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제 앞에 서 있는 소년에게 공포를 느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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