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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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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잘 닿지 않는 곳.

후미지고, 어둡고, 습하며 시야의 확보는 어렵고 폭이 좁아 크게 움직이기도 힘든 곳. 뒷골목 길, 혹은 슬럼가라 불리는 곳.

어느 도시에나 존재하며 도시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거대해지는 곳이 바로 이런 곳이다.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에도 당연히 슬럼가는 존재했다. 낙오된 모험가나 용병들이 처박히는 곳이자, 범죄자들이 숨어드는 마치 거대한 미로와도 같은 곳.

제정신이 박힌 이라면.

건실한 삶을 살아가는 이라면.

이런 슬럼가에 오기만 해도 오한을 느낄 것이며, 자연스레 신경이 곤두서고 움직임이 딱딱해질 것이다.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겠다고 직감할 테고.

애초에 슬럼가란 그런 곳이니까.

하지만, 이곳에 발을 디딘 소년은 조금 달랐다.

나진은 마치 고향에 온 기분을 느꼈다.

지난 열흘간 낯선 것들만을 봐오느라 피곤해했던 정신이, 뒷골목에 들어선 순간 ‘여기가 내 집이요’ 하고 느긋하게 드러눕는 게 아닌가. 긴장이 풀리고 몸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지하도시 아트만과 비슷한 환경.

탁한 공기를 삼키며 나진이 가볍게 몸을 털었다. 몇번의 심호흡을 마친 나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어둠 속에서 노을빛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찾았다.

-···뭐?

속으로 중얼거린 나진이 가볍게 몇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느릿한 걸음으로 골목길의 안쪽을 향해 접어들던 나진은, 저 멀리서 ‘툭’ 하고 인기척이 느껴지는 순간 들어 올린 발을 땅에 내려찍었다.

쿵.

강하게 내디딘 발걸음. 직후, 찰나의 순간 나진의 몸에 흐름이 깃들었다. 이젠 마나를 사용한 육체의 강화를 제멋대로 부릴 수 있게 된 나진이다.

콰앙! 내려찍은 발에 힘을 준 나진이 그대로 땅을 박차고 질주했다. 한순간의 가속. 뒤늦게 이변을 눈치채고 숨어있던 남자가 도망쳤지만, 그땐 이미 코앞까지 나진이 접근한 뒤였다.

“커흑!”

뻗은 손으로 나진이 사내의 목덜미를 움켜쥐어 들어 올렸다. 제법 체격이 있어 보이는 사내였지만, 나진이 팔을 들어 올리자 속절없이 공중에 붕 떴다. 발이 땅에 닿지 않자 사내 또한 위화감을 느낀 듯 시선을 내렸다.

그리곤, 나진과 눈을 마주쳤다.

빛이 잘 새어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나진의 눈동자는, 야생에서 마주친 맹수의 것을 닮아 있었다. 오금이 저린 듯 사내의 다리가 파르르 떨렸다.

“왜 날 감시하고 있었지?”

나진은 질문했다.

사내는 곧장 답하지 않았고, 나진은 빈손으로 사내의 손가락을 붙잡았다. 입을 열게 하는 법은 잘 알고 있었으므로.

우득.

울려 퍼지는 비명소리. 같은 과정을 몇 번 반복하고, 다섯손가락 중 멀쩡한 손가락이 두 개 이하로 줄어들었을 때야 사내는 알고 있는 걸 모조리 털어놓았다. 들을 정보를 다 들은 나진은 사내의 턱을 주먹으로 갈겨 기절시켰다.

축 늘어진 사내를 아무렇게나 던져둔 뒤, 나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람을 몇 고용해 놓고 감시자를 배치, 골목길에 들어오는 현상금 사냥꾼이 있으면 거리를 벌리는 식으로 숨어다녔나 보네요.

사내가 털어놓은 건 간단한 정보뿐.

그러나 나진은 수배범이 어떤 식으로 도망쳐 다녔는지 견적을 잡았다. 고작 몇 개의 정보로 거기까지 유추해 낸 나진의 모습에 멀린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 몇 개 가지고 거기까지 유추가 돼?

‘여럿 잡아 족치다 보면 수법이 다 거기서 거기더라고요.

나진이 걸음을 옮겼다.

이런 수법을 쓰는 놈들을 ‘어떻게’ 잡는지 나진은 잘 알고 있었다. 안전하고 느린 방법과, 빠르고 위험한 방법이 있었는데··· 나진이 그중 선택한 것은 두 번째의 것이었다.

‘그걸 어떻게 하더라.

나진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내딛는 걸음의 속도와, 땅에 닿는 신발 밑창의 면적을 의식한 채 나진이 한 걸음 내디뎠다.

‘이런 식으로 했던 것 같은데.

지하도시에서 자신을 추격하던 암부들.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기척을 죽였는지 멀찍이서 관찰했던 나진이다. 그들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나진이 걸음을 내디뎠다.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처음에는 작은 소리가 들렸지만, 세걸음째 내디뎠을 때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움직임에 익숙해졌을 때 나진은 기척을 죽인 채 달리기 시작했다.

-···뭐야?

그 모습을 지켜보던 멀린은 눈을 깜빡였다. 조금 전까진 묵직했던 소년의 움직임이, 지금은 암살자들을 방불케 할 만큼 은밀해져 있었으므로.

침묵 속에서 나진이 벽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감시자로 보이는 인물의 머리 바로 위를 지나갔음에도 그는 나진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몇 명의 감시자를 가로질렀을까.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길의 중심.

그곳에서 시시덕거리고 있는 사내 하나를 나진은 발견했다. 고용한 경호원으로 보이는 이들과 카드를 치고 있는 사내의 모습. 테이블 위에는 카드와 동전 따위가 널브러져 있었다.

수배범 로페스.

사내의 모습은 디에타가 건네준 수배서에 그려져 있는 용모와 일치했다. 거기까지 확인한 나진은 기척을 죽인 채 로페스의 머리 위로 뛰어내렸다.

그리곤, 콱.

뛰어내리며 로페스의 머리를 움켜쥔 나진이 곧장 사내의 머리를 테이블에 처박았다. 테이블이 박살 나며 카드와 동전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

제 고용주를 테이블에 처박으며 등장한 나진의 모습에 그들이 빠르게 제 허리춤으로 손을 뻗었다. 지하도시에서 칼밥 좀 먹었다는 이들과는 비교하는 게 실례일 정도로 빠른 대응이었다.

하지만 속도란 언제나 상대적인 것.

나진에게 있어선 그 모든 게 너무나도 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바닥에 내려둔 도끼를 집으려는 사내의 손을 나진은 발로 짓밟았다. 우득, 소리를 내며 손을 부러트리며 나진이 제자리에서 빙글 회전했다.

허리춤에서 검을 뽑으려는 사내의 손등을 발로 찍었고, 곧장 단검을 들고 찔러 들어오는 놈의 손목을 붙잡고 역으로 꺾어버렸다.

무기를 뽑으려던 그들의 움직임은 한 차례씩 뒤로 밀렸다. 그리고, 나진에겐 그거면 충분했다. 나진은 그들을 하나씩 제압했다. 검을 쓸 필요는 없었다. 턱을 후리고, 안면에 주먹을 꽂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끄으으으윽···.”

테이블에 처박혔던 로페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가 제정신을 차렸을 땐, 제 곁에 있던 경호원 셋은 이미 눈을 까뒤집은 채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

늘어진 이들 사이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나진과 눈을 마주친 순간, 로페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가 급히 몸을 돌려 도망치려는 순간이다.

푹.

로페스의 종아리에 비수가 박혔다.

교단의 암부들에게서 빼앗은 뒤, 지금까지도 나진이 애용하고 있는 비수였다.

“크아아아악!”

로페스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고꾸라진 로페스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렸다. 정체 모를 소년을 바라보며 그가 소리 질렀다.

“너 이 새끼, 잘못 걸린 거야.”

식은땀을 흘리면서 그가 품에서 뭔갈 꺼내 들었다. 그걸 콱, 하고 움켜쥔 순간이다.

삐이이이이이이익!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골목길에 퍼져있는 제 동료와 고용한 호위들을 불러 모으는 신호였다.

“여긴 나와 브롬 형님 영역이라고. 현상금 사냥꾼 같은데, 넌 좆됐어 새끼야.”

그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로페스의 웃음에 나진은 화답했다. 싱긋 미소 짓는 나진을 바라보며 로페스는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일을 덜어주네.”

나진이 그리 중얼거렸다.

그야, 수배범 브롬 또한 나진의 표적이었으므로.

사방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진이 검을 뽑아 들었다. 챙, 소리를 나며 칼집에서 뽑혀 나온 검을 늘어트린 채 나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수배범, 로페스가 상황이 뭔가 잘못됐단 걸 깨달은 건 그로부터 몇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교단의 암부. 그리 불리는 전문적인 추격자들을 따돌리고, 때로는 그들을 농락하며 사냥했던 나진이다. 그 과정에서 성장한 나진에게 있어 이런 골목길에서 굴러먹는 부랑배들은 간단한 사냥감에 불과했다.

5분.

나진이 몰려든 부랑배들을 모조리 제압하고, 멀찍이서 그들을 지휘하던 수배범 브롬의 무릎을 박살 내 로페스의 곁에 던져두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이걸로 둘.”

수배범 브롬. 수배범 로페스.

둘을 결박해 던져놓은 나진이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여섯 장 다 받아올 걸 그랬네.”

“상단주님, 모험가가 하나 찾아왔습니다.”

이른 아침, 비서의 부름에 디에타는 눈을 깜빡였다. 이런 이른 아침부터? 이제 막 상회로 출근해 모닝커피를 홀짝이고 있던 디에타다.

“누군데?”

“회색 머리칼의 소년입니다. 듣기로는 어제 상단주님께 의뢰를 받았다고······.”

회색 머리칼의 소년.

어제 자신이 밥을 사준 소년이었다. 제 집무실이 있는 상회의 위치를 알려주긴 했는데, 이렇게 빨리 찾아왔다고? 혹시 수배범에 대한 정보를 더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려는 걸까.

줄 정보는 다 줬는데.

더 달라고 하는 거면 조금 실망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디에타가 손짓했다. 들여보내라는 신호였다. 뒤이어 계단에서 쿵, 쿵, 쿵··· 하는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고 발을 들이민 것은 어제의 그 소년이다.

다만,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소년을 마주한 순간 디에타는 깨달았다. 소년이 더 정보를 달라고 찾아온 것이 아님을. 소년이 이곳에 끌고 들어온 것은 세 명의 수배범이었으니까.

디에타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놀란 것은 디에타뿐이 아니었다. 그녀의 곁에 서 있던 호위 기사 파시온 역시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여기 세 사람 맞죠?”

그 두 사람이 그러거나 멀거나, 나진은 제 등 뒤를 가리켰다. 그곳엔 다리를 절뚝거리는 수배범 셋이 있었다. 묶인 것은 팔뿐이지만 그들은 저항은커녕,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나진이 뒤를 돌아보자 그 시선을 피하려는 듯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맞···네요.”

디에타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브롬, 로페스, 마일즈.

뒷골목 출신의 수배범이며,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빠져나가기로 유명한 그 세 사람이 맞았다. 그러나 들려오던 소문과는 달리 세 남자는 세상 얌전하게 제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마치, 제 앞에 서 있는 소년에게 공포를 느끼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