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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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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엑스칼리버를 불러낸 순간.

지하도시에 다시 한번 별이 떠올랐다.

바위에서 검을 뽑아낼 때만큼은 아니지만, 엑스칼리버가 만들어 내는 빛은 지하도시에 깔린 안개와 어둠 따위로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별빛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지하도시의 주민들이.

소년을 추격하던 암부가.

스스로가 옳다고 믿는 교단의 기사가.

돈과 권력 대신 의리를 선택한 용병이.

그리고.

“하······.”

별을 쫓았던 기사 역시 소년이 움켜쥔 별빛을 보았다. 이반은 감탄 어린 숨결을 토해내며 검을 고쳐 쥐었다. 전설 속의 검과 자신의 검을 맞댈 영광스러운 기회가 찾아왔음에 그는 감사했다.

이반의 검기가 싯푸르게 타올랐다. 그에 답하듯 소년의 검 역시 백금의 검기에 휘감겼다.

별의 검을 휘감은 별빛의 검기. 이 지하도시에 떨어지고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는 별의 빛에 이반은 미소 지었다. 자신이 놓아버렸던 꿈이 저곳에 있었다.

“와라.”

이반은 말했고, 소년은 달렸다.

별을 쥔 소년과 별을 쫓았던 기사가 맞부딪쳤다.

나진은 자신이 가진 최선을 내보였다.

자세를 낮추고, 땅을 박차며 질주해 가속이 붙은 검을 휘두르는 방어 따위 안중에도 없는 기술. 누군가 특별히 가르쳐준 것은 아니며, 기술이라 하기에도 애매했지만······.

이는 분명히 나진이 가진 최선의 일격이었다.

탁, 나진이 땅을 박찼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나진의 몸이 가속했다. 나진이 세걸음째를 내디뎠을 때 이반은 한순간이지만 나진의 움직임을 놓쳤고, 여섯 걸음째를 내디딘 순간 나진의 움직임은 이반을 상회했다.

이반의 눈에 나진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나진이 손에 쥐고 있을 별의 검이 그리는 궤적만이 시야에 들어올 뿐. 그리고, 이반에게 그거면 충분했다.

‘와봐라.

이반은 물러서지 않았다.

‘정면에서 받아쳐 주마.

다가온다. 별의 검이.

다가온다. 별빛이.

쾅!

나진이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디디며 이반에게 파고들었다. 나진이 낼 수 있는 최고속도. 최고점에 도달한 속도를 그대로 받아낸 엑스칼리버가 가속했다. 별빛을 흩뿌리며 밀려드는 검 앞에 이반이 움직였다.

아탕가의 기사, 이반.

그가 한평생 갈고닦은 기술의 정수.

그것은 아탕가의 상징과도 같은 검술이다.

상대의 기술을 정면에서 받아내며, 상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것이야 말로 아탕가의 방식이다. 결코 물러서지 않은 채 이반은 나진의 검을 받아냈다.

카아아아아아아앙!

검과 검이, 검기와 검기가 맞부딪쳤다.

검을 받아낸 순간 이반은 생각했다. 단순하면서도 올곧고, 올곧기에 무거운 검이라고. 나진이 휘두른 검에 실린 무게는 이반의 상상을 초월했다.

강하게 디딘 발이 흔들렸다.

무릎이 굽혀지려고 한다.

허나 아탕가의 기사는 부서질지언정 결코 굽히지도, 기세에 밀려 물러서지도 않는다. 무릎에 힘을 주고 밀려나려는 발을 더욱 강하게 내디디며 이반이 기합을 내질렀다.

카, 가가가각!

조금씩이지만 이반의 검이 앞으로 나아갔다. 나진은 아직 검이란 무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제대로 된 검술을 배우지 못했다. 오랜 세월 검을 휘두르고 기술을 단련해 온 이반의 검은 그 부분을 파고들었다.

나진의 검을 받아내는 듯한 이반의 자세는, 어느샌가 나진의 검을 찍어 누르는 형태로 뒤바뀌어 있었다.

굽혀지려던 이반의 무릎이 펴졌다. 뒤로 밀리려던 이반의 발걸음이, 도리어 앞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갔다. 이반이 나아간 만큼 나진은 뒤로 밀려났다.

“···윽!”

형세가 역전됐다.

점차 밀려나던 나진의 검격이 완전히 꺾이려는 찰나의 순간이다. 나진이 눈을 부릅떴다. 제 몸에 흐르는 흐름을 엑스칼리버에 무식하게 때려 박았다.

기술에서 밀린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출력에서 승부를 보겠다.

쓸 수 있는 모든 걸 써서라도 이기고야 말겠다는 주인의 의지에 반응하듯, 엑스칼리버가 세차게 점멸했다. 한순간에 밀도가 올라간 백금색의 검기가 이반의 기술을 정면에서 깨부쉈다.

“······!”

이반이 눈을 크게 떴다.

나진의 검이 이반의 검을 완전히 밀어냈다. 검을 붙잡은 이반의 손이 머리 위로 들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치명적인 빈틈. 이어질 이격(二擊)을 받아낼 여력이 이반에겐 없었다.

급히 검을 끌어들였지만 치명상은 피할 수 없는 상황. 이반이 그렇게 자신의 패배를 직감한 순간이다.

사락.

이반을 향해 휘두르던 나진의 검이 별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검이 사라져 갈 길을 잃은 검기의 편린이 이반의 몸을 할퀴었을 뿐, 각오했던 치명상은 없었다.

“커윽!”

오히려 치명상을 입은 것은 나진이다.

검을 휘두른 자세 그대로 나진이 고꾸라졌다. 아직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힘을 썼기에. 소년은 엑스칼리버를 뽑아냈지만, 아직 엑스칼리버를 제대로 다루기엔 육체와 영혼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

엑스칼리버를 유지할 힘이 남지 않았기에, 이격째를 휘두르지 못한 채 고꾸라지고 만 것이다.

“······.”

이반은 침묵했다.

투둑, 하고 검기에 스친 상처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떨어치는 핏방울 사이로 무언가 툭 하고 떨어졌다. 그것은 이반의 오른쪽 눈을 가린 안대였다.

떨어진 안대. 떨어진 피.

그리고, 제 앞에 쓰러져 있는 소년.

그 모든 것을 한쪽 눈으로 바라보며 이반은 깨달았다.

자신은 승리했고, 또한 패배했음을.

지하도시의 지배자인 외눈의 이반은 소년에게서 승리했다. 마지막까지 서 있는 것은 자신이었고, 당장 검을 휘두르면 소년을 죽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탕가의 기사 이반은 소년에게 패배했다. 정면에서 결코 굽히지도 물러서지도 않은 채 상대를 꺾는 것이 아탕가의 방식. 하지만 소년의 기세에 눌려 이반은 마지막 순간 물러섰고 굽히고 말았으니까.

외눈의 지배자로서의 승리.

아탕가의 기사로서의 패배.

둘 중 어느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반은 제 앞에 놓인 선택지 앞에 신음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다시 한번 세상은 이반에게 묻는다.

무엇을 선택할 것이고.

무엇으로 남을 것이냐고.

누구나 그렇듯이, 사람에게는 제 목숨이 가장 소중하다. 죽는다면 그걸로 끝이니까. 죽음은 두려운 것이니까. 그것은 인간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을 근원적인 공포다.

그렇기에.

죽음의 위기에서 인간은 얼마든지 비굴해지고, 잔인해지며, 모순적이게 변하고 만다. 삶을 향한 욕구를 내비치는 그 모습을 감히 그 누구도 비웃지 못하리라. 그건 모두가 가지고 있을 이면성이므로.

이반 역시 마찬가지다.

이반은 살고 싶다.

그는 이런 곳에서 죽고 싶지 않았다.

다시 한번 별을 보고 싶었고, 다시 한번 태양을 보고 싶었으며, 다시 한번 기사가 되고 싶었다. 그것이 이루어질 확률은 한없이 낮지만······.

살아남는다면 만약은 있다.

하지만 죽음은 그걸로 끝이다.

이반은 이를 악물었다. 제 앞에 쓰러져있는 소년을 죽여야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니, 검을 휘둘러 끝장을 보는 것이 옳다. 그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

이해하고 있지만.

검은 움직이지 않는다. 들어 올린 검은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쓰러져있는 나진이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봤다. 나진과 눈이 마주친 순간 이반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자신과는 다른 소년.

별을 쥔 채 빛나는 소년.

감히 자신이 짓밟아선 안 될 빛을 지닌 소년을 바라보며 이반은 신음했다. 무엇으로 남을 것이냐. 무엇이 될 것이냐.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에 이반은 답을 미루고 있었지만 이젠 답을 정해야만 했다.

차라리 나진의 검이 자신을 베어버렸다면 좋았을 텐데. 차라리, 그렇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이반은 신음했다.

「아탕가의 기사, 이반의 긍지에 걸고 맹세하지.」

귓가에 울린 것은 자신의 긍지에 걸고 맹세한 이야기. 이 검을 내려친 순간 자신은 긍지를 잃는다.

명예와 긍지를 잃은 이.

그런 이를 기사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물론 세상에는 명예도 긍지도 모르는 기사도 많다. 많지만, 적어도 이반은 그런 자를 기사라 여길 수 없었다. 이 자리에서 긍지마저 잃는 순간 자신은 기사가 아니게 된다.

그 사실을 이반은 알았다.

설령 이 자리에서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긍지를 져버리고 거짓된 명예를 품은 채 자신은 여전히 별을 쫓을 수 있는가? 당당하게, 자신을 아탕가의 기사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

아니, 아니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기사로서 별을 가지는 것.

더럽혀지고 명예를 잃은 쓰레기가 아닌.

‘긍지와 명예를 품은 기사로서.

그런 기사로서 별을 가지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

이반은 고민했고.

고뇌했으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망설였다.

······사람은 누구나 제 목숨이 소중하다.

‘하지만 기사는.

내가 되고 싶었던 기사는.

‘명예와 긍지를 위해, 얼마든지 제 목숨을 내던지는 미련한 족속들.

미련하지만, 그렇기에 그 무엇보다 빛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 어렸을 적 기사를 동경하며 품었던 꿈을 떠올린 이반은 선택했다.

“염병할.”

이반이 제 머리칼을 헝클어트렸다.

“진짜, 빌어먹을.”

욕을 내뱉으며 그가 검을 납도 했다.

허리춤에 검을 채운 채 이반은 쓰러진 나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진은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이반이 뻗은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움직일 수는 있냐?”

살기는 사라졌다.

이반의 물음에 나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반은 제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마치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말하기가 쉽지 않다는 듯이.

“그, 나진.”

이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폭포를 내려갈 땐 물기를 조심해라. 발판이 자꾸 미끄러질 테니 그 부분을 주의해. 자칫했다간 훅 가니까. 그리고··· 아니. 아니지. 이게 아니야.”

길게 한숨을 내쉰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진.”

“···듣고 있어요.”

“내가 늘 했던 말 기억하냐?”

“선을 넘지 말라는 그거요?”

“그래. 그거.”

선을 넘지 마라. 주제를 알아라.

닿지 않는 것에 손을 뻗지 마라.

“그거 말이다.”

이반은 잃어버린 제 오른쪽 눈을 매만졌다.

이 도시에 떨어진 지 십년이 넘게 흘렀다.

그 세월 동안 이반은 꿈을 버렸고, 기사로서의 자신을 깎아냈다. 선을 넘지 말고 주어진 대로 살라는 이야기를 말버릇처럼 달고 살았지만··· 그것은 이반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더는 위로 오를 수 없게 된 자신에게 던지는 말.

“정정하마.”

그 말을 이반은 오늘에서야 고치기로 결심했다.

“잘 들어라. 나 두 번 말하는 거 싫어하잖냐.”

이반이 웃었다.

“선을 넘어라. 나진.”

웃으며 말했다.

“닿을 수 없는 곳에 손을 뻗어라. 주제를 알라고 중얼거리는 놈들 얼굴에는 주먹을 꽂아버려라. 네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는, 오직 너만이 아는 거다.”

자신이 뱉었던 말들을 이반은 부정했다.

“높은 곳을 바라보고 달려라. 저 높이, 그 누구보다도 높게 올라라. 네게는 그럴 재능이 있으니까. 네가 가진 재능을 믿어라.”

한쪽 눈동자밖에 없지만.

그에겐 미래를 내다보는 눈동자도, 미래를 예감하는 날카로운 감각도, 그 무엇도 없었지만.

“네가 가장 높은 곳에 올랐을 때.”

이반은 확신했다.

눈앞의 소년은 가장 높은 곳에 오를 것이라고. 자신만의 별을 저 밤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 걸어놓을 것이라고. 이반은 그 미래가 반드시 오리라 확신했다.

확신했기에 이반은 말했다.

“그곳에서 외쳐라.”

무엇을?

“내가 있었음을.”

너의 이야기의 시작점에 내가 있었음을.

“아탕가의 기사, 이반이 있었음을 말이다.”

영웅의 이야기의 서장을 장식할 수 있다면, 별을 쫓는 기사로서 과분한 영광이 아니겠는가. 긍지를 품은 채 영광을 탐하는 것. 기사로서 이보다 더 멋진 최후가 어디 있겠는가.

“가봐라.”

이반이 나진의 등을 갱도 안쪽으로 떠밀었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고, 또한 망설이는 소년의 모습을 이반은 더는 눈에 담지 않았다. 소년에게 등을 돌린 채 갱도의 입구를 지키고 섰다.

자신이 소년에게서 빼앗은 시간만큼은 벌어주기 위해서.

“···고마워요. 이반.”

그 목소리를 끝으로 멀어지는 소년의 발걸음 소리. 그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앞쪽에서 새로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온다. 추격자들이.

빛에 이끌린, 빛을 묻어버리려는 추격자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 그들은 교단의 암부였고 또한 교단의 기사였으며 또한 오래전 자신의 선배이기도 했다.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에 귀 기울이고.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흘려보내며.

이반은 다시 한번 칼을 뽑았다. 이번엔 멀어지는 소년이 아닌 소년을 쫓아온 추격자들을 향해서.

‘외눈의 이반이 아닌.

바닥에 떨어진 안대를 이반이 짓밟았다.

‘아탕가의 기사 이반으로서.

별을 쫓는 기사는 미소 지었다.

그 어느 때보다 가벼운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