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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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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시를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관문.
폭포로 통하는 갱도의 입구를 지키고 선 이반을 바라보며 나진이 이를 악물었다. 그것은 나진이 애써 외면하고 있던 현실이었으므로.
···이반이 자신을 추격하고 있다는 건 알았다.
오펜이 말해줬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나진은 기대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반이 자신을 놓아주려는 게 아닐까. 일부로 자신을 쫓지 않고 있는 게 아닐까. 그것은 나진의 기대이자 바람이었다.
이반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반에게 검을 겨누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반과 죽일 각오로 싸우고 싶지 않았으니까.
“왔냐.”
하지만 현실은 소년의 눈앞에 들이민다.
네가 상정하던 최악의 상황이 닥쳐왔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도시를 벗어나려거든 저 거대한 벽을 넘어보라고. 네게 선을 긋고 너를 제한해 왔던 저 사내를 넘어야만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고. 다가온 현실 앞에 나진의 표정이 구겨졌다.
“뽑아라. 검.”
이반이 칼을 뽑아 들었다.
이반은 검례(劍禮)를 올리지 않았다. 다만 그 칼끝을 나진에게 겨눌 뿐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서늘한 눈동자와, 낮게 깔린 목소리와 함께.
어깨를 짓누르는 압박감.
느껴지는 것은 질척한 살기.
다른 방법이 없음을 나진은 직감했다. 싸우고 싶지 않지만, 두렵지만, 그럼에도 방법이 없기에 나진은 검을 뽑아 들었다. 검집을 긁으며 거칠게 뽑혀 나온 칼날이 이반을 겨누었다.
그리고, 쾅.
이반이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대련을 할때와는 달리 이반은 나진이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싯푸른 검기를 끌며 이반이 나진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반은 나진에게 강요했다.
죽을 각오로 덤비라고.
그렇지 않으면, 나는 너를 벨 수밖에 없다고.
2.
아탕가의 기사, 이반.
이반은 31세의 나이에 소드 엑스퍼트의 경지에 올랐고, 8년간 아탕가의 기사로서 활동했다. 하물며 명예를 잃고 지하도시에 떨어졌음에도 그는 지난 십년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소드 엑스퍼트의 경지에 이른 지 18년.
한때는 아탕가 기사단의 유망주라 불렸던 이반이다. 제대로 된 지원과 교육을 받았더라면 소드 시커(Sword Seeker)가 됐을지도 모를 기사. 그런 인물이 하나의 경지에서 18년의 세월을 머물렀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다.
이반은 소드 엑스퍼트 중에서도 상위권에 위치한 인물이다. 어지간한 엑스퍼트를 상대로 승리를 점칠 수 있단 뜻이며, 그의 검술과 전투기술은 오랜 세월에 거쳐 완성의 영역에 근접했단 뜻이다.
달리 말하자면.
“···윽!”
이제 겨우 소드 엑스퍼트에 근접한 나진에게 있어선 이반은 너무나도 과분한 적이다. 이반이 휘두른 검을 받아친 순간 나진의 몸이 붕 떴다.
다르다. 검에 실린 무게가.
다르다. 검기의 밀도가.
검기를 둘렀음에도 밀려난 나진은 바닥을 구르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숨을 돌릴 틈은 당연하게도 없다. 곧장 추격해 온 이반이 휘두른 검이 콰앙! 하고 방금까지 나진이 서 있던 땅을 찍어 눌렀다.
땅이 깊게 파이고 흙먼지가 솟구쳤다.
피어오른 흙먼지에 시야가 가려진 순간, 흙먼지를 가르며 이반의 검이 솟구쳤다. 카아아앙! 간신히 검을 막아냈음에도 나진은 또다시 밀려났다. 검을 쥔 손아귀가 얼얼했다.
나진은 깨달았다. 지금까지의 대련에서 이반이 자신을 얼마나 봐줬는지, 얼마나 손속을 두고 있었는지.
고작 두세번 검을 맞부딪쳤을 뿐인데도 손가락이 떨렸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나진은 이를 악물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눈을 부릅뜬 채로 이반의 움직임을 쫓았다.
빠르다. 묵직하다. 그리고, 끊어지지 않는다.
이반의 동작과 동작은 끊어지는 듯싶으면서도 그 모두가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흐름에 나진은 휩쓸리고 있었다.
“컥!”
검을 막아냈으나 무릎에 찍혔다.
검을 흘려보내려 했으나, 기술이 파훼 당하며 폼멜에 관자놀이를 찍혔다. 시야가 흔들린 순간 뻗어 나온 이반의 각반이 배를 걷어찼다.
호흡이 흐트러졌다.
흐트러졌으므로, 자세 또한 무너졌다.
그 순간을 노리고 파고든 검격을 간신히 몸을 비틀어 피해냈으나 칼끝에 스쳐 핏물이 튀었다. 튀어 오르는 핏물 사이로 나진은 신음했다. 이대로 흐름에 휩쓸려선 안 됐다.
‘반격해야만 한다.
하지만 어떻게?
전투 기술, 잡기술, 눈속임, 상대의 방심을 유도해 내는 방법··· 나진이 여태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이반에게 먹히지 않았다.
그 모든 게 이반에게서 비롯된 것이었으니까.
그것들은 이반이 나진에게 가르친 것이었고, 당연하게도 이반이 나진보다 앞서는 것들이었다. 검기의 밀도, 기술의 완성도, 검의 무게, 자세, 잡기술··· 모든 분야에서 이반은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상대의 전장에서 싸워주지 마라.」
「언제나 너보다 약한 놈과 싸울 수는 없는 법이지. 그렇다면, 강자와는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나진은 떠올렸다.
「네 전장으로 끌어들여.」
「네가 상대보다 앞서는 곳을 찾아.」
자신이 이반보다 앞설 수 있는 곳.
‘···재능을 과신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나진이 믿고 걸어볼 만한 것은 하나뿐이었다. 나진이 이반보다 앞설 수 있는 유일한 것. 그것은 나진이 지닌 재능이자 특기다. 나진이 눈을 부릅떴다.
핏발이 선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이반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했던 그때도, 그리고 밀리고 있는 지금조차도 나진의 눈동자는 정확하게 이반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 나진은 조금 더 힘을 줬다.
눈을 부릅뜨자 보인다.
이반의 움직임과 움직임 사이의 틈이. 동작과 동작을 이을 때 발생하는 미묘한 시간 차이가. 그 틈을 정확하게 찌를 기술이 아직 나진에게는 없다. 그런 건 배우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배우지 못했다 하여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제부터 자신이 배움에 의존했던가. 배워온 기술들은 선택지를 늘려줄 뿐, 제 살길을 찾아왔던 것은 언제나 빠른 판단과 과감함이었다.
나진이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카, 가가가각!
검이 검면을 타고 흐르고, 검을 흘려보내려는 듯한 나진의 움직임에 이반이 기술을 파훼하려는 순간이다. 나진이 이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과감하게 파고들며 몸을 비튼 나진이 폼멜로 이반의 어깨를 찍었다.
쩌억.
나진이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빈틈. 자세와 자세를 연결하는 이음새를 나진은 타격했다. 이반이 만들어 내던 흐름이 처음으로 끊어졌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진은 땅을 박찼다.
이반의 옆으로 선회하며 나진이 검을 휘둘렀다. 카앙, 하고 처음으로 이반이 뒤로 물러섰다. 자신이 휘두르는 검에 몰입했기에 나진은 알지 못했지만, 그 순간 이반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가르쳐준 적도 없는 기술을···.
이반이 웃음을 감추며 대응했다.
‘저 알아서 쓰고 앉았어.
나진은 여전히 이반보다 부족하다.
아직 나진은 미숙하고, 검이란 무기에 대한 이해도 역시 낮다. 그러나 그 모든 걸 나진은 자신의 감각과 눈동자에 의지해 메꿔가고 있었다.
가르쳐 준 적도 없는 기술을 쓴다. 즉흥적으로 기술을 만들어 내서 쓰는 나진의 움직임에 이반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생각한다.
부족하다고.
이렇게까지 단서를 주고 있는데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이반은 계속해서 따라붙는 나진을 힘껏 쳐내며 거리를 벌렸다.
“······.”
밀려난 나진은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이반에게서 느껴지던 살기가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고 있었으므로. 죽이려는 것 같기도, 자신을 가르치려는 것 같기도 하다고.
둘 중 그 어느 것도 가짜가 아니었다.
이반은 진심으로 나진을 죽이려 하고 있었고, 동시에 진심으로 나진을 가르치려 하고 있었다. 인간의 마음이란 한갈래로 정리할 수 없는 것. 갈피를 잡지 못한 나진이 위화감을 느끼는 가운데······.
“후우······.”
이반이 숨을 내뱉었다.
그리곤, 전투 중 몇번이나 취했던 무의미한 동작을 반복했다. 그것은 검을 들어 올린 채 숨을 가다듬는 것.
키잉!
이반의 검기가 선명해졌다.
흐트러지려던 이반의 검기가 정갈해졌고, 사그라들던 푸른 불길이 다시 한번 타올랐다. 몇번이고 반복된 그 동작. 나진은 말없이 그 동작을 관찰했다.
이반이 다가온다. 검을 휘두르고, 나진은 자신의 방식대로 이반의 검을 받아냈다.
받아내고. 베이고. 걷어차이고.
밀어내고, 빈틈을 파고들고, 다시 물러서고.
전투가 계속되는 가운데 나진은 깨닫는다. 다른 요소는 즉흥적으로 메꿀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자신이 이반에게 밀리는 요소가 있음을. 그것은 다름 아닌 이반이 검에 두른 검기다.
이반의 검기는 선명하고 정갈하다.
나진의 검기는 흐릿하고 거칠다.
갈무리된 완벽한 검기와, 그렇지 않은 검기의 편린. 그것이 이반과 자신 사이에 놓인 간극이었다. 그 간극을 어떻게 매워야만 하는가. 나진이 답을 찾아 헤매는 가운데 이반이 또다시 자세를 잡았다.
몇번이고 취하는 자세.
나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돌아오면 검기를 다루는 법을 알려주마.」
「아탕가의 기사, 이반의 긍지를 걸고 말야.」
······설마.
나진은 이반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조금 전 부터 이반은 무의미한 동작을 반복했다. 마치 자신에게 보라는 듯이. 그 모습에 나진은 무심코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이제야 알 수 있었으니까.
그곳에 답이 있었다.
‘···도대체가.
어느 장단에 맞추란 건지.
이반이 취하는 저 자세를, 이반의 몸에서 움직이는 흐름과 검을 휘감는 흐름을 나진은 몇번이고 가까이에서 보았다. 보았으므로 깨달았다.
나진이 뒤로 크게 물러섰다.
이반은 나진을 추격하지 않았다.
마치, 해보라는 듯이.
“후우······.”
나진이 숨을 길게 내뱉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진은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자세를 취했다. 검을 허리 뒤로 늘어트리고 몸을 낮추는, 돌진을 위한 자세. 자세를 잡은 채로 나진은 몸 안에 흐르는 흐름에 집중했다.
흐름을 다만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붙잡아 휘어잡는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길을 따라 흐르게 만든다.
당연하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고작 몇 번 본 것으로 따라 할 만큼 간단한 과정이 아니다. 이는 본래 가부좌를 틀고 오랜 시간 명상을 통해 깨닫는 것이므로.
이반이 그랬고. 이반의 스승이 그랬으며. 아탕가의 기사단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깨우쳤다. 하지만, 이반은 알고 있었다. 눈앞의 소년이 단순히 재능이 있는 이들과는 거리가 먼 것을.
나진은 눈이 좋다.
이반은 그 사실을 안다. 누구보다도 잘.
백번 말해주는 것보다 한번 보여주는 것이, 몸으로 직접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 저 소년에게 맞는 가르침이다. 나진을 지켜보던 이반은 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제야 이반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쓰는 거다.”
늘어트린 나진의 검.
백색의 검기에 휘감겨 있던 나진의 칼날 위로 금색의 입자가 피어올랐다. 피어오른 입자는 백색이 다 뒤덮지 못했던 부분을 메꾸며 백색과 뒤섞였다.
백색의 검기에 금색의 입자가 뒤섞였다.
짙은 백색 속에서 금빛이 반짝였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은 백금색의 검기. 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별을 동경해 온 소년의 검을 물들인 것은 백금(白金). 별빛과 같은 색을 지닌 검기다.
소년의 검을 물들인 검기를 확인한 순간 이반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이내 이반은 웃음을 터뜨렸다. 백금색의 검기. 이반이 기억하기로 그것은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색의 검기였다. 별빛과 닮은 검기는 오직 아서왕의 전유물이었으므로.
아서왕이 남긴 검을 뽑아내고, 아서왕과 같은 검기를 지닌 소년이 제 앞에 있었다.
자신만의 색을 가지고.
편린을 넘어 완전히 검을 휘감은 검기.
그것은 소년이 완전한 소드 엑스퍼트의 경지에 올랐단 증거다. 이반은 검을 고쳐 쥔 채 나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 개의 검기가 서로를 물어뜯었다.
백금색의 검기와, 싯푸른 검기가 맞부딪쳤다.
3.
검이 맞부딪칠 때마다 싯푸른 불길과, 백금색의 별빛이 튀어 올랐다. 몇번의 맞부딪침 끝에 이반과 나진은 동시에 뒤로 물러섰다. 이제는 자신을 거의 다 따라잡은 소년을 바라보며 이반은 생각했다.
이 정도면 됐다고.
“나진.”
스승으로서의 의무는 다했다.
“죽일 각오로 덤벼라.”
이반이 검을 늘어트렸다.
그것은 나진에게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자세이자, 이반의 자랑과도 같은 기술을 펼치기 위한 자세다. 아탕가의 기사로서 명예와 긍지를 잃은 악인들을 처단했던 검술.
그 검술을 펼치기에 앞서 이반은 경고했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꺼내 너를 죽이려 할 테니, 너 또한 그래야 할 것이라고. 네가 가진 가장 빛나는 것을 내게 겨누라고.
흔들림은 사라졌다.
이반에게 남은 것은 살기뿐.
“······.”
나진은 말없이 자신의 검을 내려놓았다.
그것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 반대다. 허리춤에 검을 납도한 채, 나진은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콱.
나진이 허공을 움켜쥐었다. 자신이 가진 가장 빛나는 것을 내보이기 위해서. 허공이 일렁이며 별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년의 손에 나타난 것은 별의 검, 엑스칼리버다.
별빛이 지하도시를 환히 밝혔다.
엑스칼리버를 뽑아낸 순간 나진이 휘청였다. 검을 불러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소모를 요구하기에.
하지만, 나진은 이내 자세를 다잡았다.
자신을 가로막은 벽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별을 쥔 소년과 별을 쫓는 기사가 서로를 마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