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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시를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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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로 통하는 갱도의 입구를 지키고 선 이반을 바라보며 나진이 이를 악물었다. 그것은 나진이 애써 외면하고 있던 현실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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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이 자신을 추격하고 있다는 건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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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이 말해줬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나진은 기대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반이 자신을 놓아주려는 게 아닐까. 일부로 자신을 쫓지 않고 있는 게 아닐까. 그것은 나진의 기대이자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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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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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에게 검을 겨누고 싶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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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과 죽일 각오로 싸우고 싶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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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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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은 소년의 눈앞에 들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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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상정하던 최악의 상황이 닥쳐왔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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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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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를 벗어나려거든 저 거대한 벽을 넘어보라고. 네게 선을 긋고 너를 제한해 왔던 저 사내를 넘어야만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고. 다가온 현실 앞에 나진의 표정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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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아라.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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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이 칼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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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은 검례(劍禮)를 올리지 않았다. 다만 그 칼끝을 나진에게 겨눌 뿐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서늘한 눈동자와, 낮게 깔린 목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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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를 짓누르는 압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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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껴지는 것은 질척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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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법이 없음을 나진은 직감했다. 싸우고 싶지 않지만, 두렵지만, 그럼에도 방법이 없기에 나진은 검을 뽑아 들었다. 검집을 긁으며 거칠게 뽑혀 나온 칼날이 이반을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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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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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이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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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을 할때와는 달리 이반은 나진이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싯푸른 검기를 끌며 이반이 나진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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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은 나진에게 강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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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각오로 덤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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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으면, 나는 너를 벨 수밖에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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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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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가의 기사, 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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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은 31세의 나이에 소드 엑스퍼트의 경지에 올랐고, 8년간 아탕가의 기사로서 활동했다. 하물며 명예를 잃고 지하도시에 떨어졌음에도 그는 지난 십년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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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엑스퍼트의 경지에 이른 지 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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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아탕가 기사단의 유망주라 불렸던 이반이다. 제대로 된 지원과 교육을 받았더라면 소드 시커(Sword Seeker)가 됐을지도 모를 기사. 그런 인물이 하나의 경지에서 18년의 세월을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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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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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은 소드 엑스퍼트 중에서도 상위권에 위치한 인물이다. 어지간한 엑스퍼트를 상대로 승리를 점칠 수 있단 뜻이며, 그의 검술과 전투기술은 오랜 세월에 거쳐 완성의 영역에 근접했단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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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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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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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소드 엑스퍼트에 근접한 나진에게 있어선 이반은 너무나도 과분한 적이다. 이반이 휘두른 검을 받아친 순간 나진의 몸이 붕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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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다. 검에 실린 무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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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다. 검기의 밀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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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를 둘렀음에도 밀려난 나진은 바닥을 구르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숨을 돌릴 틈은 당연하게도 없다. 곧장 추격해 온 이반이 휘두른 검이 콰앙! 하고 방금까지 나진이 서 있던 땅을 찍어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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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깊게 파이고 흙먼지가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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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오른 흙먼지에 시야가 가려진 순간, 흙먼지를 가르며 이반의 검이 솟구쳤다. 카아아앙! 간신히 검을 막아냈음에도 나진은 또다시 밀려났다. 검을 쥔 손아귀가 얼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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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깨달았다. 지금까지의 대련에서 이반이 자신을 얼마나 봐줬는지, 얼마나 손속을 두고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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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두세번 검을 맞부딪쳤을 뿐인데도 손가락이 떨렸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나진은 이를 악물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눈을 부릅뜬 채로 이반의 움직임을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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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다. 묵직하다. 그리고, 끊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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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의 동작과 동작은 끊어지는 듯싶으면서도 그 모두가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흐름에 나진은 휩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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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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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막아냈으나 무릎에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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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흘려보내려 했으나, 기술이 파훼 당하며 폼멜에 관자놀이를 찍혔다. 시야가 흔들린 순간 뻗어 나온 이반의 각반이 배를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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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이 흐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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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트러졌으므로, 자세 또한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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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을 노리고 파고든 검격을 간신히 몸을 비틀어 피해냈으나 칼끝에 스쳐 핏물이 튀었다. 튀어 오르는 핏물 사이로 나진은 신음했다. 이대로 흐름에 휩쓸려선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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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격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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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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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기술, 잡기술, 눈속임, 상대의 방심을 유도해 내는 방법··· 나진이 여태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이반에게 먹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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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게 이반에게서 비롯된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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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은 이반이 나진에게 가르친 것이었고, 당연하게도 이반이 나진보다 앞서는 것들이었다. 검기의 밀도, 기술의 완성도, 검의 무게, 자세, 잡기술··· 모든 분야에서 이반은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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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전장에서 싸워주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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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너보다 약한 놈과 싸울 수는 없는 법이지. 그렇다면, 강자와는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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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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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전장으로 끌어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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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상대보다 앞서는 곳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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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이반보다 앞설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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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을 과신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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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믿고 걸어볼 만한 것은 하나뿐이었다. 나진이 이반보다 앞설 수 있는 유일한 것. 그것은 나진이 지닌 재능이자 특기다. 나진이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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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발이 선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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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했던 그때도, 그리고 밀리고 있는 지금조차도 나진의 눈동자는 정확하게 이반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 나진은 조금 더 힘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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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부릅뜨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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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의 움직임과 움직임 사이의 틈이. 동작과 동작을 이을 때 발생하는 미묘한 시간 차이가. 그 틈을 정확하게 찌를 기술이 아직 나진에게는 없다. 그런 건 배우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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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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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지 못했다 하여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제부터 자신이 배움에 의존했던가. 배워온 기술들은 선택지를 늘려줄 뿐, 제 살길을 찾아왔던 것은 언제나 빠른 판단과 과감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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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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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 가가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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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 검면을 타고 흐르고, 검을 흘려보내려는 듯한 나진의 움직임에 이반이 기술을 파훼하려는 순간이다. 나진이 이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과감하게 파고들며 몸을 비튼 나진이 폼멜로 이반의 어깨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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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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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빈틈. 자세와 자세를 연결하는 이음새를 나진은 타격했다. 이반이 만들어 내던 흐름이 처음으로 끊어졌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진은 땅을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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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의 옆으로 선회하며 나진이 검을 휘둘렀다. 카앙, 하고 처음으로 이반이 뒤로 물러섰다. 자신이 휘두르는 검에 몰입했기에 나진은 알지 못했지만, 그 순간 이반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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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쳐준 적도 없는 기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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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이 웃음을 감추며 대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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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알아서 쓰고 앉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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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여전히 이반보다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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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나진은 미숙하고, 검이란 무기에 대한 이해도 역시 낮다. 그러나 그 모든 걸 나진은 자신의 감각과 눈동자에 의지해 메꿔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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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쳐 준 적도 없는 기술을 쓴다. 즉흥적으로 기술을 만들어 내서 쓰는 나진의 움직임에 이반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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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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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단서를 주고 있는데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이반은 계속해서 따라붙는 나진을 힘껏 쳐내며 거리를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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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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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난 나진은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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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에게서 느껴지던 살기가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고 있었으므로. 죽이려는 것 같기도, 자신을 가르치려는 것 같기도 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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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그 어느 것도 가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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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은 진심으로 나진을 죽이려 하고 있었고, 동시에 진심으로 나진을 가르치려 하고 있었다. 인간의 마음이란 한갈래로 정리할 수 없는 것. 갈피를 잡지 못한 나진이 위화감을 느끼는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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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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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이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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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전투 중 몇번이나 취했던 무의미한 동작을 반복했다. 그것은 검을 들어 올린 채 숨을 가다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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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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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의 검기가 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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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트러지려던 이반의 검기가 정갈해졌고, 사그라들던 푸른 불길이 다시 한번 타올랐다. 몇번이고 반복된 그 동작. 나진은 말없이 그 동작을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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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이 다가온다. 검을 휘두르고, 나진은 자신의 방식대로 이반의 검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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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내고. 베이고. 걷어차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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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내고, 빈틈을 파고들고, 다시 물러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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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가 계속되는 가운데 나진은 깨닫는다. 다른 요소는 즉흥적으로 메꿀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자신이 이반에게 밀리는 요소가 있음을. 그것은 다름 아닌 이반이 검에 두른 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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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의 검기는 선명하고 정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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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검기는 흐릿하고 거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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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무리된 완벽한 검기와, 그렇지 않은 검기의 편린. 그것이 이반과 자신 사이에 놓인 간극이었다. 그 간극을 어떻게 매워야만 하는가. 나진이 답을 찾아 헤매는 가운데 이반이 또다시 자세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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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이고 취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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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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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면 검기를 다루는 법을 알려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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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가의 기사, 이반의 긍지를 걸고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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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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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이반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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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부터 이반은 무의미한 동작을 반복했다. 마치 자신에게 보라는 듯이. 그 모습에 나진은 무심코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이제야 알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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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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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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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장단에 맞추란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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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이 취하는 저 자세를, 이반의 몸에서 움직이는 흐름과 검을 휘감는 흐름을 나진은 몇번이고 가까이에서 보았다. 보았으므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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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뒤로 크게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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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은 나진을 추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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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해보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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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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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숨을 길게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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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을 가다듬으며 나진은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자세를 취했다. 검을 허리 뒤로 늘어트리고 몸을 낮추는, 돌진을 위한 자세. 자세를 잡은 채로 나진은 몸 안에 흐르는 흐름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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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을 다만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붙잡아 휘어잡는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길을 따라 흐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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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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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몇 번 본 것으로 따라 할 만큼 간단한 과정이 아니다. 이는 본래 가부좌를 틀고 오랜 시간 명상을 통해 깨닫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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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이 그랬고. 이반의 스승이 그랬으며. 아탕가의 기사단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깨우쳤다. 하지만, 이반은 알고 있었다. 눈앞의 소년이 단순히 재능이 있는 이들과는 거리가 먼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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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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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은 그 사실을 안다. 누구보다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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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번 말해주는 것보다 한번 보여주는 것이, 몸으로 직접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 저 소년에게 맞는 가르침이다. 나진을 지켜보던 이반은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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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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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이반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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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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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트린 나진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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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의 검기에 휘감겨 있던 나진의 칼날 위로 금색의 입자가 피어올랐다. 피어오른 입자는 백색이 다 뒤덮지 못했던 부분을 메꾸며 백색과 뒤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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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의 검기에 금색의 입자가 뒤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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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백색 속에서 금빛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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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은 백금색의 검기. 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별을 동경해 온 소년의 검을 물들인 것은 백금(白金). 별빛과 같은 색을 지닌 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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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검을 물들인 검기를 확인한 순간 이반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이내 이반은 웃음을 터뜨렸다. 백금색의 검기. 이반이 기억하기로 그것은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색의 검기였다. 별빛과 닮은 검기는 오직 아서왕의 전유물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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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왕이 남긴 검을 뽑아내고, 아서왕과 같은 검기를 지닌 소년이 제 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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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색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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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린을 넘어 완전히 검을 휘감은 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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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소년이 완전한 소드 엑스퍼트의 경지에 올랐단 증거다. 이반은 검을 고쳐 쥔 채 나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 개의 검기가 서로를 물어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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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색의 검기와, 싯푸른 검기가 맞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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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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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 맞부딪칠 때마다 싯푸른 불길과, 백금색의 별빛이 튀어 올랐다. 몇번의 맞부딪침 끝에 이반과 나진은 동시에 뒤로 물러섰다. 이제는 자신을 거의 다 따라잡은 소년을 바라보며 이반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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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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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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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으로서의 의무는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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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일 각오로 덤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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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이 검을 늘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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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나진에게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자세이자, 이반의 자랑과도 같은 기술을 펼치기 위한 자세다. 아탕가의 기사로서 명예와 긍지를 잃은 악인들을 처단했던 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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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검술을 펼치기에 앞서 이반은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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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꺼내 너를 죽이려 할 테니, 너 또한 그래야 할 것이라고. 네가 가진 가장 빛나는 것을 내게 겨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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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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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에게 남은 것은 살기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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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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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말없이 자신의 검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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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 반대다. 허리춤에 검을 납도한 채, 나진은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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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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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허공을 움켜쥐었다. 자신이 가진 가장 빛나는 것을 내보이기 위해서. 허공이 일렁이며 별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년의 손에 나타난 것은 별의 검, 엑스칼리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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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이 지하도시를 환히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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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칼리버를 뽑아낸 순간 나진이 휘청였다. 검을 불러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소모를 요구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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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진은 이내 자세를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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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가로막은 벽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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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쥔 소년과 별을 쫓는 기사가 서로를 마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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