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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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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들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나진은 어렴풋이 그 사실을 눈치챘다. 흩어져서 단독 행동을 하던 이들이 지금은 최소 둘, 많으면 셋에서 넷까지 짝을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이틀간 여섯을 죽인게 효과가 있긴 하나 보네.
검을 뽑고 도주를 시작한 지 2일 차.
이틀 동안 나진은 단독으로 행동하는 추격자를 여섯 죽였다. 한두놈 잡아 족치다 보니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감이 잡혔기에 여섯을 죽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급습하고, 방심을 유도하고.
힘을 숨기다가 한순간에 몰아붙였다.
이반과 오펜에게 배웠던 전투법은 교단의 암부들을 상대로도 유효했다. 꼭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지만.
꽉.
나진이 말없이 제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약쟁이 하칸과의 전투에서 입었던 부상. 움직이는 게 고작이었던 팔은, 이젠 검을 휘두를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
‘회복 속도만 올라간 건 아닌 것 같은데.
몸에 힘이 넘쳤고 머리가 맑았다.
눈을 부릅뜨면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지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졌고, 몸을 떠미는 흐름도 이젠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됐다. 혹시 이것도 엑스칼리버의 영향인 걸까.
···아서왕이 대단한 게 아니라, 사실 엑스칼리버가 그냥 사기였던 게 아닐까?
머릿속으로 나진은 잠깐, 아주 잠깐이지만 불손한 생각을 품었다. 물론 그것은 나진의 착각이다. 엑스칼리버가 나진에게 가져다준 것은 빠른 회복력뿐. 그 외의 요소는 본래부터가 나진이 가지고 있던 것들이다.
단지 선을 넘어 달릴 각오를 다졌기에.
스스로에게 걸고 있던 제약을 풀었기에.
그렇기에, 본래 나진이 가지고 있던 재능들이 빠르게 개화하기 시작한 것에 불과했다. 경험은 이미 충분히 쌓였다. 개화를 앞둔 나진의 성장곡선은 가파르게 치솟고 있었다.
“···후우.”
추격자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나진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지난 이틀간 지하도시를 목적 없이 돌아다니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마치, 탈출이 아닌 사냥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처럼.
그 연출이 제대로 먹혀든 듯싶었다.
나진의 목적을 사냥이라 오해한 듯, 추격자들은 모여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결과 그들이 지하도시에 쳐둔 그물망에 빈틈이 생겼다. 이제는 슬슬 본래의 목적으로 들어가도 되리라.
마지막으로 딱 한 번.
확실하게 종지부를 찍으면 된다.
셋이 모여 움직이는 추격자. 그들이 어두운 골목길에 들어서고 나서야 나진은 거리를 좁혔다. 지하도시에는 좁은 골목길이 많았고, 골목길의 벽에는 당연하게도 발 디딜 틈이 많다. 틈과 틈을 밟으며 나진은 그들에게 접근했다.
다수를 한 번에 상대하는 법.
약쟁이 하칸과의 전투에서 정말 질릴 만큼 몸에 새겼던 전투 경험을 떠올리며 나진이 쓰게 웃었다.
물론 이성 없는 중독자와 교단의 암부를 비교하는 것은 저들에게 굉장히 실례되는 이야기겠지만··· 뭐, 아무렴 어떤가.
‘쟤들이 중독자처럼 폭발하진 않잖아.
죽인다고 주변에 들킬 일은 없네.
그런 생각을 하며 나진이 골목길의 벽을 박차고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낙하하는 나진의 인기척을 눈치챈 추격자 셋이 단숨에 대열을 갖췄다.
선두에 선 이가 나진을 향해 검을 휘둘러 맞받아치고, 그렇게 만들어 낸 틈새를 남은 둘이 찌르려는 듯한 움직임. 그 모든 움직임을 나진은 시야에 담았다.
담고서, 나진은 깨달았다. 아직 자신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안 전해졌음을.
‘받아치는 게 아니라.
낙하하는 나진의 검이 추격자가 휘두른 검과 맞부딪치려는 찰나의 순간, 백색으로 점멸했다. 한순간에 끌어올린 검기의 편린이 나진의 검을 휘감았다.
‘피했어야지.
편린이라곤 하나 나진이 검에 두른 것은 분명한 검기다. 그리고, 이 검기의 절삭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나진은 잘 알고 있었다. 이반의 검기에 잘려 나가던 자신의 철검,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던 그 순간을 나진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므로.
검기를 두르지 않은 검으론.
검기를 두른 검을 받아칠 수 없다.
콰득!
검과 검이 맞부딪친 순간, 추격자가 쥔 검이 박살 났다. 검을 박살 내고도 더 나아간 나진의 검은 곧장 추격자의 어깻죽지에 파고들어 몸을 가르며 튀어나왔다.
‘하나.
저들이 그린 전투 양상은 한명이 나진의 검을 받아냄으로써 성립하는 것. 첫 번째 조건을 박살 냄으로써 나진은 저들의 계획을 완전히 무너트렸다.
후두둑.
튀어 오르는 핏방울 사이로 나진이 곧장 자세를 낮췄다. 어둠 속에서 찔러 들어오는 두 개의 검을 피해내며 나진이 검기를 두른 검을 낮게 끌었다.
검기를 두르지 못하는 추격자들은 좁은 골목길에서의 공격수단이 한정된다. 그들의 칼날은 벽에 튕기고 말테니까. 하지만 나진은 아니다. 나진이 자세를 낮춘 채 수평으로 검을 휘둘렀다.
스걱.
검기의 도움을 받아 벽을 가르며 튀어나오는 칼날. 한 명은 피했지만, 남은 한명은 피하지 못했다. 발목이 잘려 기울어지는 추격자. 그 목덜미에 나진은 검을 짧게 찔렀다가 뽑았다.
‘둘.
튀어 오르는 핏물. 기울어 넘어지는 시체.
둘을 처리한 나진이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친 것은 한순간에 동료 둘을 잃은 추격자. 깊게 눌러쓴 로브 탓에 그 표정이 보이진 않지만,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음을 나진은 알아차렸다.
탁.
나진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딛자 추격자는 뒷걸음질 쳤다. 정보의 불균형에서 온 불리함. 검기를 뽑아낸 채 자신에게 다가오는 소년의 모습에 추격자는 대뜸 뒤를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사냥감과 사냥꾼이 역전됐다.
나진은 도망치는 사냥감을 추격하지 않았다.
그 대신 팔목에 묶어둔 팔찌에서 암기를 하나 뽑아 들었다. 추격자들을 사냥하고 약탈한 것. 그것을 손에 쥔 채 나진이 도망치는 추격자를 겨냥했다.
암기를 다뤄본 적은 없지만, 그들이 이걸 어떤 식으로 다루고 어떤 식으로 투척하는지 나진은 보았다. 보았으므로 흉내 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쿵.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나진이 암기를 투척했다. 쐐에에엑, 소리를 내며 날아간 암기가 추격자의 다리에 깊게 박혔다.
“끄윽!”
단발마와 함께 넘어지는 추격자. 그를 향해 한 번 더 암기를 투척함으로써 나진은 마무리를 지었다.
‘셋.
시체를 뒤져 필요한 물건들을 약탈한 나진은 골목길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나진은 이제 진짜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오펜이 알려준 곳.
이 지하도시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를 향해서.
2.
나진이 골목길을 뜨고 잠시 뒤.
골목길에 접어든 추격자 둘은 동료들의 시체를 보고선 표정을 잔뜩 구겼다. 셋이 뭉쳐있었음에도 당했단 말인가. 이런 지하도시에서 나고 자란 소년 하나한테?
‘이틀간 아홉이 당했다.
아홉에 더해 셋.
자그마치 열둘이 죽었다. 암부로서의 자긍심 같은 건 없지만, 최소한의 자존심은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임무는 수행해야 하는 것. 그들은 분을 삭이고 나진이 남기고 간 자국을 조사했다. 조사하던 도중 그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이상한 흔적이 발견됐으므로.
‘검이 박살 나 있다.
동료가 쓰던 검이 완전히 박살 나 있다.
심지어 벽이 갈라진 듯한 흔적이 길게 남아있었다. 평범한 검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흔적. 검기(劍氣)의 흔적이었다.
대상의 나이는 18세였을 텐데.
18세의 소년이 검기를?
엑스칼리버를 쓴 것이 아닌가? 아니 그렇다면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나왔을 텐데. 그들이 쉽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와중.
탁, 하고 누군가 골목길에 들어섰다.
인기척이 들려온 곳을 향해 그들이 고개를 휙 돌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들이 목적으로 하던 소년은 아니었다. 이번 일에 협력하겠다며 자원한 용병 하나가 그곳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지?”
보고 할 것이 있나.
암부가 던진 질문에 오펜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급히 알려야 할 것이···.”
그럴싸한 단어와 단어를 이어 붙이며 오펜은 그들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그들이 맥락 없는 오펜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을 때, 오펜은 이미 다섯걸음 안팎으로 거리를 좁힌 뒤였다.
다섯 걸음.
오펜이 그어둔 자신의 간격.
오펜이 한 걸음 크게 내디디며 검을 뽑아 들었다. 발검과 동시에 검에 깃드는 검기. 기세가 급변한 오펜의 모습에 암부들이 뒤늦게 움직였지만 그땐 이미 너무 늦어있었다.
검이 몇차례 맞부딪치고.
몇번의 피가 튀었다.
시체 둘을 만들어 낸 오펜은 짧게 숨을 뱉어내며 자리를 이탈했다. 자리를 이탈하기 전, 나진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검기의 흔적을 확인한 오펜은 미소 지었다. 아무래도 제 예상보다 나진은 더 잘하고 있는 것 같았으니.
나진이 이틀간 죽인 추격자는 여섯.
그러나 추격자들이 알고 있는 수는 아홉이다.
남은 셋은 바로 오펜의 소행이었다.
협력하는 척 그들의 동선을 읽어두었다가, 그들이 고립됐을 때 오펜은 그들의 뒤를 쳤다. 나진이 한 것처럼 꾸미면서.
이 정도면 충분하리라. 이렇게까지 연막을 쳤으면 나진의 진짜 목적은 완벽하게 숨겨졌을 테니까.
남은 것은 만에 하나를 대비하는 것뿐.
최악의 최악을 상정하며 오펜은 나진이 향했을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오펜이 경계하는 것은 이런 암부들 따위가 아니다.
기사, 베를로.
그 또한 나진을 추격하고 있었으니까.
아직 나진의 진짜 목적지를 눈치채진 못한 것 같지만, 만에 하나의 경우를 무시해선 안 됐다. 기왕 하기로 했다면 오펜은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이게 뭔 고생인지 모르겠군.
하지만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이 도시에 떨어진 이후 죽은 것처럼, 하루하루를 술에 취해 살아갔던 오펜이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시간을 허비해 왔지만, 허비해 온 시간 속에서도 분명히 빛나는 것은 있었다.
이 지하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빛.
자신은 가질 수 없었던 빛.
오펜은 어쩌면 그 빛에 자신의 과거를 투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손을 뻗었지만, 결코 움켜쥐지 못했던 별빛. 그렇기에 오펜은 바랐다.
부디 그 빛이 짓밟히지 않기를.
3.
오펜이 알려준 길을 따라 나진은 달렸다.
목적지가 가까워졌음을 나진은 깨달았다. 쏴아아아, 하고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으니까. 나진은 머릿속으로 지도를 떠올렸다.
지도에 표시된 폭포.
그 폭포로 가기 위해선 갱도를 통과해야 했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오래된 갱도. 갱도의 끝이 폭포로 이어졌기에 갱도에 접어드는 순간 도주는 성공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갱도의 입구가 있을 곳을 향해 달리는 나진은 제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머지않았다.
조금 후면 이 도시를 벗어날 수 있었다.
아직 폭포를 건너지도 않았지만 들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진의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딱한 것.」
「왜 이런 곳에서 태어나서.」
그것은, 소년이 한평생 들어왔던 이야기였고.
「너는 평생 이곳에서 썩어가게 될 거다.」
「넌 결코 바깥에 나갈 수 없어. 한평생 우리 같은 쓰레기들 사이에 뒤섞이다 죽게 될 운명······.」
한평생 소년이 들어왔던 조롱이다.
죽어가며 트릭시가 내뱉던 말이, 자신의 손에 처리당한 조직원들의 비웃음이, 약쟁이 하칸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진의 귀를 맴돌았다.
너는 올라갈 수 없다.
너는 평생 이곳에서 썩게 될 거다.
네가 가진 재능은, 너를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여태까지 무시하거나, 때로는 말을 끊어버리며 외면했던 이야기들. 그러나 이젠 아니었다. 마음껏 떠들어봐라. 마음껏 비웃어봐라. 나는 이곳을 벗어나 바깥으로 나갈 테니까.
나진의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갱도에 한 걸음씩 다가갈 때마다, 귓가에 울리던 목소리는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달리고 달리던 나진은 갱도의 입구에 도착했다. 모든 목소리가 사라지고 귓가에 남은 목소리는 하나뿐이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나진이 떨쳐내지 못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진의 귀에 울렸다.
「선을 넘지 마라, 나진.」
「네가 선을 넘으면 난 널 죽여야만 하니까.」
나진이 걸음을 멈췄다.
갱도의 입구가 눈앞에 보였지만, 더는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그곳을 지키고 있는 인물이 있었으니까.
“왔냐.”
나진에게 선을 그어둔 존재.
귓가에 여전히 울리고 있는 목소리의 주인.
“기다리고 있었다.”
외눈의 이반.
나진이 넘어야 할 마지막 선이자, 거대한 벽이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