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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전투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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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칸이 준비해 둔 수많은 중독자와, 호르세가 준비한 숱한 함정과 갱도의 미로. 그 모두를 뚫어내고 호르세의 목을 치는 데는 성공했으나 너무 시간을 지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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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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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이 앓는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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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검을 휘둘러댄 나머지 뻐근한 팔을 빙빙 돌리며 오펜은 이반을 흘겨봤다. 이반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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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그럴 만도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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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중 두 사람은 보았다. 지하도시의 하늘에 별이 떠오르는 것을. 자세한 내막까지는 알 수 없지만 나진이 무언가 저질렀음을, 그리고 그건 윗동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고도 남은 것임을 두 사람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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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다시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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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수틀릴 대로 수틀렸단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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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침묵한 채 지하도시의 중심지로 복귀했다. 중심지에는 중독자들의 시체가 가득했고, 피비린내와 약물이 뒤섞인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빈말로도 중심지의 분위기는 평온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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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서 있는 조직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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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 숨어 수군거리는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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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의 귀환에 그들의 시선이 잠시 이반에게 날아와 꽂혔지만, 이윽고 그들의 시선이 움직이는 것을 이반은 확인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광장의 중심, 그곳에는 윗동네에서 보낸 듯한 인물이 하나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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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병사의 복장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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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가죽으로 얼굴과 몸을 감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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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의 암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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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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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의 표정이 조금 더 구겨졌다. 이반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딛자 암부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하여 시선이 마주친 순간 암부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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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 이반은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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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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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휘 교단의 기사 베를로 경께서 너를 뵙고자 한다. 죄인 이반은 부름에 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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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베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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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에 이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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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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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부의 뒤를 따라 이반이 떠나기를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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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펜은 이반이 안 보이게 되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였음을 직감한 까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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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은 용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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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선 언제나 빠르게 판단해야 했다. 오펜은 현재의 상황을 판단했고, 또한 결정을 내렸다. 그것은 그가 오랫동안 미뤄뒀던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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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렇게 되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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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을 내쉰 오펜이 어딘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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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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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석등의 어스름한 빛도 닿지 않는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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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슥한 골목길의 벽에 기대어 앉은 채 나진이 천천히 숨을 골랐다. 이제 막 마나에 익숙해진 주제에 검기를 뽑아가며 싸운 반동이 밀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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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잡아끄는 탈력감과 피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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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하칸과의 전투에서 입은 부상이 더해지니 서 있는 것조차 고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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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인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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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제 팔을 흘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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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을 정면으로 받아냈던 팔. 그 탓에 축 늘어져 있던 한쪽 팔이 지금은 움직일 수 있는 정도까지 회복 돼 있었다. 검을 휘두르긴 힘들겠지만 움직이는데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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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적인 회복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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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어디서 나온 건지 짐작해 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엑스칼리버가 지닌 축복 덕분이겠지. 영웅담 속의 아서왕은 팔이 부러지고 몸에 구멍이 뚫려도 순식간에 회복하며 적을 향해 달려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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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아직 그런 초월적인 회복력은 가지지 못했지만 성검이 지닌 회복력은 큰 도움이 됐다. 지금 겨우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이 성검 덕분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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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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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말 없이 제 오른쪽 손목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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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가늘게 뜨고 흐름을 의식하자 손목 위로 별자리의 형태를 띄는 문양이 나타났다. 이는 엑스칼리버를 숨겨야겠다고 생각하자 일어난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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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으로 변해 몸에 깃든 별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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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을 의식하며 허공을 움켜쥐면 다시 검을 뽑아낼 수 있었다. 손목에 새겨진 별자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나진이 이내 헛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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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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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현실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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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부터 검을 뽑은 대가를 받아야 함을 나진은 알았다. 이반은 선을 넘어도 좋다고 말했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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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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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성검을 뽑아낸 장면을 목격한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들 중에는 윗동네에서 보내온 병사들 역시 섞여 있었으므로, 당연하게도 이 소식은 위에 전해졌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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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어떻게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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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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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묻으려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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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상정했다. 만에 하나 일이 잘 풀릴 경우 같은 건 기대하지도 않는다. 언제나 세상은 소년에게 잔인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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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과 오펜이 적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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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역시 사람이었고, 사람에겐 자신의 안위가 가장 중요한 법이므로. 상황 파악이 될 때까지는 도망치는 걸 최우선으로 둬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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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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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시에 출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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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올라가는 길은 중심지의 창구 하나 뿐이다. 그곳을 통해 올라간다 하더라도 경비병과 기사들의 창칼에 꿰뚫려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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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어떻게, 그리고 어디까지 도망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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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었다. 이제부터 생각해 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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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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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눈꺼풀이 감겼다. 마나를 끌어다 쓴 피곤함에, 엑스칼리버를 휘두르며 축적된 정체 모를 탈력감이 밀려왔다. 조금만 눈을 붙이잔 생각에 나진은 골목길의 벽에 머리를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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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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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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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나진의 눈동자 번쩍 뜨였다. 골목길에 발걸음 소리가, 그리고 무언갈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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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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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죽인 채 나진이 기척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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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을 바라보던 나진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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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피를 질질 흘리고 가면 누가 모르냐, 이 멍청한 애송아. 다 들켰으니 빨리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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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스승, 오펜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곧장 몸을 일으키려던 나진은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그리고 오펜이 무엇을 선택했는지 나진으로선 알 수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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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제자 놈 키워봐야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더니. 의심부터 하고 자빠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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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이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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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품에서 가방 하나를 꺼내 나진이 숨어있는 쪽을 향해 휙,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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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라. 죽일 생각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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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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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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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이 던진 가방을 주워보니 그 안에는 치료를 위한 붕대와 간단한 포션, 그리고 육포 조각들이 잔뜩 채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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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로 상처나 감아. 피 질질 흘리고 가는 놈만큼 추적하기 쉬운 게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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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중얼거리며 오펜은 나진에게 손짓했다. 거기서 비키라는 신호였다. 나진이 옆으로 물러서자 오펜은 이곳까지 끌고 온 중독자의 시체를 나진이 조금 전까지 앉아있던 자리에 던져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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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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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자의 시체를 칼로 쑤셔 나진의 핏물 위에 중독자의 핏물을 덮어 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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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턴 발자국 안 남기고 이동하는 게 좋을 거다. 곧 추적자가 붙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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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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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긴. 너 도망치는 거 도와주려는 거 안보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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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이 나진을 흘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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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말 없이 오펜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 오펜은 길게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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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에서 기사와 암부가 찾아왔다. 딱 보니 널 담가버리려고 보낸 것 같은데, 이반이 불려 갔어. 지금쯤 이야기를 나누고 결정까지 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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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이 제 머리칼을 헝클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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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이 짜증 난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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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은 현실적인 놈이다. 현실적이게 되어버린 놈이지. 이 상황에서 뭐가 최선인지 그놈은 알 거다. 너를 키워보겠다는 이반의 계획은 수틀렸고, 결국 이반에게 남은 수는 한가지 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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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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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죽이는 거. 널 안 죽이면 이반 그놈도 죽고 말테니까. 결국 그놈도 기사이기 전에 사람이야. 사람한텐 자기 목숨이 가장 중요한 거 너도 알잖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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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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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러니까 너무 그놈을 원망하진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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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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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난 그 꼴을 별로 보고 싶지 않거든. 그건 못 할 짓이 잖냐. 그러니까 난 네가 도망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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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검을 들이미는 그 모습을, 오펜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어느 한쪽이 죽는 모습 또한 마찬가지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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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디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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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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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칠 곳이 없잖아요. 결국 이 지하도시를 떠야 하는데, 벗어날 위치는 창구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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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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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이 나진의 말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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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으며, 나진의 가방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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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 지도가 있을 거다. 지하도시의 제일 아래층, 매립지로 쓰레기를 흘려보내는 곳. 그곳에서 조금 더 가면 물길이 떨어지는 절벽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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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은 내려가지 못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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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이나 오펜 쯤 되는 인물도 목숨을 걸고 내려가야 하는 가파른 절벽이 그곳에 있다. 한번 내려가면 결코 다시 올라올 수 없는 절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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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을 내려가 물길을 따라 이동하면 지하도시를 벗어날 수는 있겠지. 목숨을 걸긴 해야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라. 어차피 거기 아니면 길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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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이 도시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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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으로선 알 길이 없을 테지만, 이 가방과 지도는 아주 오래전부터 오펜이 준비해 둔 것이었다. 나진의 재능을 확인했던 그날부터 오펜은 준비했다. 언젠가 일이 수틀릴 경우 나진을 이 도시에서 내보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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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은 용병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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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살아남은 이름난 용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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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에서 이름을 날리던 시절 준비성이 철저했으며, 최악을 상정하며 언제나 제 한 몸 살아남을 길은 기막히게 찾아냈던 오펜이다. 지하도시에 떨어지고 나선 쓸 일이 없었던 자신의 특기를, 오펜은 자신이 가르친 소년을 위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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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나진을 향해 오펜이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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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렇게 보냐. 왜, 감동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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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하고 오펜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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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망쳐 봐야 답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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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이 히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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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로 떨어진 놈들은 모두 성휘 교단에 낙인찍혔어. 별빛이 닿는 곳에 나서는 순간부터 곧장 추격자가 따라붙겠지. 그런데 너는 아니잖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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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지어 도시에 떨어진 게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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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휘 교단의 심판대에서 심판을 받은게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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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이 도시에서 태어났을 뿐인 네게는, 낙인이 붙어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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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넌 도망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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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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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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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이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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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반과 달리 난 삶에 별 미련이 없다. 윗동네에선 잘나가는 용병단 단장이었거든,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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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해준 적이 없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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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접도 받아보고, 해볼 것도 다 해보고, 볼꼴 안 볼 꼴 다 봤지. 살면서 누려볼 것들은 거의 다 누려봤다. 그런데, 딱 하나 못해본 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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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에서의 삶을 오펜은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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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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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이 나진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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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별을 가지는 것. 저 밤하늘의 성좌가 되기 위한 첫 단계. 하늘이 인정할 위업을 쌓아 저 밤하늘에 별을 새기는 것. 그거 하나 못 해봤어,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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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겐 해보려다가 이 도시에 떨어졌지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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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중얼거리며 오펜이 히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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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실패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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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이 손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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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다르잖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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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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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는 재능이 있다. 넌 여기서 썩을만한 놈이 아니야. 이딴 데에서 도전도 못 해보고 썩어가기엔, 너무 아깝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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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 네게는 재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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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도시에 썩어선 안 될 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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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날, 오펜은 소년에게서 자신이 놓아버린 꿈을 엿본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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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지하도시를 밝힌 별. 그거 네가 한 짓 맞지? 조직원 놈들이 떠들기로는 네가 성검을 뽑았다던데 소문이 맞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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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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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제 손목을 의식하며 허공을 움켜쥐었다. 최대한 약하게 움켜쥐었음에도 흐드러지는 별빛이 골목길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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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으로 들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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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검을 마주한 순간 오펜의 눈이 크게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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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롱한 눈동자로 오펜은 나진이 손에 쥐고 있는 별을 향해 무심코 손을 뻗었다. 그러나, 오펜의 손이 닿는 순간 별빛은 흩어졌다. 마치 네게는 자격이 없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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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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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 별. 그렇기에 더욱더 찬란히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오펜은 오랜만에 웃음을 터뜨렸다. 꿈을 꾸던 청년 시절의 자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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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놈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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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함을 감춘 채 오펜이 허리춤에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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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너무 빛나서 도망 다니면서 쓸만한 검은 아닌 거 같다.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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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채워져 있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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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오기 전 대뜸 중심지로 찾아온 호겔 영감이 오펜에게 건넨 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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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송이한테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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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건 부러트려도 수리 안 해 줄 테니 잘 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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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겔 영감이 소년을 위해 벼려낸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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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검을 오펜은 나진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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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겔 영감이 그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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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트리면 죽여버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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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나진은 무심코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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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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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할 것을 전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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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말 역시 했다. 오펜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소년을 등지고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그가 몇걸음이나 옮겼을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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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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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이 뒤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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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천천히 고개를 숙이는 나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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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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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는 스승이라 부르는구만. 깊게 고개를 숙인 소년을 바라보며 오펜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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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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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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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휘 교단의 기사, 베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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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에 협조해라 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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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교단의 사냥개들에게 둘러싸여 무릎을 꿇고 있는 이반을 바라보며 베를로가 낮게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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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검을 뽑은 소년을 찾아 죽여라. 그 시체를 내게 가져오지 못하면 난 너를 죽일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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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같은 기사단에 속했던 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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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를 잃어 아탕가의 기사라 불릴 수 없게 된 제 후배를 바라보며 베를로가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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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온다면 네가 잃어버렸던 명예를 되찾아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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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의 비어버린 한쪽 눈동자를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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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가의 기사로 복권할 수 있도록, 성휘 교단의 이름으로 추천장을 써주겠단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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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로는 대사제 오를랑과 달리 현실과 타협할 줄 알며, 사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아는 인물이다. 인간이든 짐승이든 다를 바 없다. 채찍과 당근만 있다면 어떤 현자든 짐승처럼 부릴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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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해라. 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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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로는 이반에게 제안했고, 또한 협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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