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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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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라고 했습니까, 저기 저 사람이?”
나진이 꼬챙이 사이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목 잘린 기사를 가리켰다. 저걸 과연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투구기사의 동료였다고 하니 나진은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기로 했다.
“그래. 금빛 뿔 기사단의 부관이었지.”
“그 투구의 뿔 저 사람이 꺾었다면서요? 당연히 악연인 줄 알았는데.”
“악연이라면 악연이긴 한데, 뿔을 박살 낸 건 저렇게 변해버린 다음의 이야기다.”
투구기사가 바위에 머리를 기댔다.
투구가 바위에 닿아 덜그럭, 소리를 냈다.
“저 녀석을 한번 막아보려 했었거든. 그래도 내 부관이니까. 엇나가는 제 부하 하나 막지 못하는 게 어디 기사단장이겠나? 그래서 막아보려 했지. 했는데···.”
“했는데?”
“뭐, 꼴사납게도 실패했지. 말했었지? 생전에 높은 경지에 올랐던 망자를 죽이려거든 순수한 별빛이 필요하다고.”
“그랬었죠.”
“내 별은 이미 얼룩졌다. 무슨 수를 써도 저 녀석을 죽일 수가 없었다. 팔을 잘라도, 다리를 끊어도, 몸을 꿰뚫어도 금세 일어나선 짐승처럼 달려들더군. 하다 보니 그것도 못 할 짓이다 싶어서 관뒀다.”
얼룩진 별빛으론 망자의 눈을 감게 해줄 수 없다. 압도적인 물리력으로 몇 번이고 난도질하다 보면 움직일 수 없게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 역시 안식과는 거리가 멀다. 아주 작은 조각에도 영혼은 깃들며, 수십 수백 년의 세월에 거쳐 재생되기 마련이다.
불멸. 불사. 재생.
이 외륙의 땅은 죽음에서 도망친 이들에게 결코 안식을 안겨주지 않았다. 영원토록 살기를 선택했는가? 그렇다면, 어디 영원을 견뎌보아라. 외륙에 발을 디딘 이들은 영원을 견딜 각오를 다져야만 했다.
영원히 빛나거나.
빛을 잃고 추락하거나.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물며 저놈은 성좌다.”
6개의 별을 가졌던 성좌, 호각성.
“성좌가 추락해선 망자가 되어버리면 말야, 그건 이미 인간이라 부를 수 없어. 살점이 뜯어져 나가? 팔이 끊어져? 몸이 갈려 나가? 그런 물리적인 수단으론 낙성(落星)을 죽이긴커녕 멈추게 만들 수조차 없다.”
투구기사가 호각성을 가리켰다. 호각성의 갑옷에는 검은 핏줄이 박동하고 있었다.
“성좌에 가까워질수록 인간의 영혼은 육체에 구애받지 않게 된다. 떨어져 나간 부분이야 별빛으로 메꾸면 그만이거든. 다른 망자들과는 달리 심장조차 무의미해져.”
나진은 호각성을 바라봤다.
호각성의 몸에는 여섯 개의 심장이 존재했다. 그것이 그가 생전에 가지고 있던 별이었다. 추락해서, 본질을 잃어서, 검게 물들어 더는 빛나지 않는 별이 그의 갑옷에 박혀 있었다.
“낙성에게 육체적인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아. 육체의 손상이 반복될수록 괴물에 가까운 형태로 변할 뿐이지. 심장이 없어도, 머리가 없어도 움직이는 괴물이 말야.”
“······.”
“그런 이들에게 안식을 안겨줄 수 있는 건.”
투구기사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들어 올린 손가락이 나진을 가리켰다.
“다른 별, 너처럼 순수한 별을 가진 신성(新星)뿐이지. 뭐, 이제 막 떠오른 샛별이 별을 몇 개씩이나 가졌던 성좌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문제지만 말야.”
하지만, 하고 투구기사가 이어서 자신을 가리켰다.
“내 도움을 받는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지.”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누구냐? 한때 소드마스터였으며, 한때 초월자였고, 제국 제일의 기사단이었던 금빛 뿔 기사단을 이끌던 기사단장이다.”
“다 한때이지 않습니까.”
“경험만큼은 남아있다 이거지. 어지간한 소드마스터 상대로 꿀리진 않을걸?”
“영 못 미덥습니다만······.”
툴툴거리면서도 나진은 일어섰다.
“그래도 뭐, 승자의 요구이니 패자는 따라야겠죠. 계획은 있으십니까?”
“물론. 지금부터 설명할 생각이었다.”
그 전에, 하고 투구기사가 말했다.
“하나 물어봐도 되냐?”
“뭡니까?”
“네 별에 붙은 이름이 뭐냐? 여태까지 그걸 안 물어봤더라고.”
“여명성(黎明星).”
나진이 답했다.
“밤의 끝을 알리는 별입니다.”
2.
별들의 무덤, 황무지를 나진은 걸었다. 나진의 허리춤에는 언제나 그렇듯 한 자루의 검이 묶여있었는데, 검은 아직 검집에서 뽑히지 않았다. 아직은 검을 뽑을 때가 아니었으므로.
탁.
앞을 향해 걸으며 나진은 정면을 봤다. 그곳에는 죽을 때를 놓쳐버린 망자가 있다. 자신을 잊어 더는 빛나지 않게 된 망성(忘星)이 있었다. 그는 나진이 다가옴에도 경계하긴커녕 창대 사이를 배회할 뿐이었다.
나진이 아직 그의 영역에 발을 디디지 않았으니까.
호각성은 자신의 영역을 수호한다. 제 영역에 발을 디딘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그건 달리 말하자면 영역을 침범하지만 않는다면 먼저 공격해 오진 않는단 뜻이었다.
턱.
나진이 경계선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 선을 넘는 순간 호각성의 영역이다. 호각성 역시 걸음을 멈춘 채 나진 쪽으로 몸을 돌린 채였다. 한 발짝만 넘어오면 즉시 공격하겠다는 듯이.
그리고, 나진은.
스릉.
검을 뽑아 들었다. 뽑아 든 검을 하늘을 향해 세운 채 나진이 눈을 감았다. 짧은 검례(劍禮)였으며, 이반에게 배운 자세였고, 나진이 자신의 심상을 강하게 끌어낼 때 거치는 과정이기도 했다.
나진의 검에서 검기가 피어올랐다.
피어오른 검기는 별자리의 형태.
별들이 떨어져 묻힌 땅, 더는 빛나지 못하게 된 별들이 가득한 무덤 위에 소년이 피워낸 검기는 새하얗게 빛났다. 별자리를 두른 검을 세운 채 나진은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뎠다.
선을 넘었다. 호각성의 영역에 발을 디뎠다.
그 순간 호각성이 움직였다. 그의 갑옷에 박혀있는 검은 별들이 심장처럼 박동하고, 비어버린 머리 위로 검은 별이 떠올랐다. 그가 자신의 별에 붙여진 이름대로 호각(號角), 뿔피리를 불려는 순간이다.
————부우우우우우.
어디선가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호각성의 몸이 짧게 굳었다. 그는 뿔피리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제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뿔피리를 들고 있는 투구기사가 있었다.
“이봐, 크륀벨.”
그가 뿔피리를 흔들었다.
“잊은 거냐? 뿔피리를 가장 먼저 부는 건 단장의 특권이야.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다, 이 건방진 녀석아.”
쿠웅! 투구기사가 창대를 내려찍었다.
“뿔피리를 불어라, 금빛 뿔들아.”
뿔피리를 하늘을 향해 집어 던지며 그가 외쳤다.
150년 전에는 그가 뿔피리를 하늘에 던진 순간 12개의 음색이 뒤따랐었다. 금빛 뿔 기사단 전원이 불어 재끼는 뿔피리의 음색이, 그 진동이 전장을 가득 메웠었다.
뿔피리 소리가 메아리칠 적 제국의 적들은 공포에 질렸으며 제국군은 승리를 확신했다. 뿔피리를 불며 금빛 뿔 기사단은 영광스럽게 돌진했었다.
그 모든 것이 지금은 과거일 뿐이다.
지금 투구기사의 뒤에는 그 누구도 서 있지 않다. 그와 함께 해야 할 12명의 기사는 모두 망자가 되어버렸으니. 가장 신나게 뿔피리를 불어 재꼈을 사내는 투구기사의 뒤가 아닌 앞에서 그를 향해 창을 겨누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
전장에 침묵이 감돌지는 않았다.
부우우우우우우우우——————.
150년 전과 마찬가지로, 전장에는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투구기사의 말에 답하듯 호각성이 뿔피리를 불었다. 그의 몸에 박혀있는 뿔피리들이 일제히 진동했다. 투구기사의 말을 이해해서가 아니다. 망자로 변해버린 호각성에게 이성은 없다. 단지 본능만이 남았을 뿐.
그의 본능은 외친다.
뿔피리를 불라고.
저 음색에 답하라고.
설령 이성을 잃었을지언정 그는 뿔피리를 부는 별이었다. 그 본질만큼은 그는 잊지 않았다. 그리하여 뿔피리 소리가 메아리치는 가운데 투구기사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저 꼴이 되어서도 잊지 않았는가.
턱.
나진의 곁에 투구기사가 바로 섰다.
“준비됐냐.”
“준비가 달리 필요합니까?”
“하여간, 이래서 잘난 놈들은.”
투구기사가 자세를 잡았다. 나진 역시 무릎을 굽히고 검을 등 뒤로 당겼다. 그와 동시에, 호각성이 창대를 뽑아 들며 포효했다.
“거 시끄럽게도 울부짖는군.”
“창 훔쳐 간 놈을 봐서 화난 모양인데요.”
“거 훔친 거 아니라니까? 빌린 거야. 빌린 거.”
“언제는 받았다면서요?”
“사소한 부분이지.”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면서도 둘의 자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포효하며 달려드는 호각성을 향해, 두 사람은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돌진하는 적을 두고 뒤돌아 도망치는 건 기사가 할만한 행동이 아니었으므로.
3.
뿔피리를 불어라, 금빛 뿔들아.
제국의 적을 꿰뚫어라.
제국의 깃발을 걸고 앞을 향해 나아가라.
영광스럽게 승리하고, 긍지 높게 진군하리라.
뿔피리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뿔피리를 불며 평야를 질주하던 장면들이 눈앞에 스쳐 지나간다. 귀가 없고, 눈이 없으며, 무언갈 떠올릴 머리조차 사라졌거늘 그 풍경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호각성은 뿔피리를 분다.
그것 외에는 기억나는 게 없기에.
이 모든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는 알 수 없다.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도 그는 모른다. 짐승이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지 않듯, 그 역시 마찬가지다. 행동에 의미는 없다. 가치 역시 없다.
단지 제게 남은 것이라곤 그것뿐이기에.
호각성은 뿔피리를 분다.
뿔피리를 불며 창을 내질렀다. 그가 한 자루의 창을 내지를 때마다 ‘퍼억! 하고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창대에 꿰여있던 인간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터진 것이다. 살점과 핏물이 비산했다.
쩌억.
창날에 닿지도 않은 땅이 갈라지고, 터지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가 몸을 한번 움직일 때마다 땅에 구덩이가 하나씩 만들어졌다. 자신을 잊어버렸다 한들, 그의 육신에 새겨진 기술마저 사라지진 않는다.
호각성은 일찍이 초월에 오른 기사다.
그는 한 자루의 창으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으며, 창을 내질러 수많은 별들을 상대했다. 한 자루의 창으로 저 밤하늘의 별마저 꿰뚫었던 그의 기술은, 설령 육신이 망가지고 별이 추락했을지언정 소실되지 않았다.
드, 드드드드드드득!
그가 창을 한 뼘 앞으로 움직이면 반경 수 미터의 땅이 갈라져 뒤집혔다. 그의 손에 들린 조잡한 창대는 그의 기술을 한 번도 채 버티지 못하고 부러지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콱.
새로운 창을 뽑아 들면 그만이었으니.
이곳은 그의 성역이다. 땅에 빼곡하게 박혀있는 창대가 모두 그를 위한 무기였다.
카아아아아아앙!
그가 내지른 창을 맞받아친 순간 나진은 무릎이 꺾일 뻔했다. 기술 하나를 받아내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뒤로 쭉 미끄러지며 나진이 숨을 가다듬었다.
확실히, 초월자는 초월자라는 건가?
비록 추락해서 약해졌을지언정 호각성의 기술은 나진이 보기에도 놀라운 것이었다. 창을 내지르는 것만으로 땅을 후벼 파고, 폭풍을 일으킨다. 저자가 생전에 얼마나 고강한 기사였을지 상상해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저런 기사조차 추락했다.
투구기사는 말했다. 수많은 영웅들이 이 땅에서 추락했노라고. 그들은 죽음보다 더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이곳은 별들이 태어나는 곳이 아닌, 별들이 죽어 묻히는 별들의 무덤이라고.
왜 그가 그렇게 표현했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나진은 그 표현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사실, 이 외륙이란 땅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간의 고결함을 비웃고, 그들을 극한으로 몰아붙여 타락시키며, 죽음조차 허락하지 않는 외륙의 환경이 나진은 싫었다. 이건 이 땅에 발을 디딘 영웅들에 대한 모욕이지 않은가.
영웅에겐 그에 걸맞은 최후가 주어져야 한다.
최소한, 마지막 순간만큼은 그래야 한다.
그에게 별을 보여주었던 어느 기사가 최후에 빛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영웅담을 읽으며 자라왔기 때문일까, 영웅들을 동경했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라면 단지 나진의 심성이 그런 것일까.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다.
단지, 나진은 그들이 최후의 순간만큼은 빛나기를 바랐다. 그들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그러니까.
나진이 검을 고쳐 쥐었다.
나진이 물러선 만큼 앞으로 나선 투구기사가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나진은 숨을 가다듬었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침묵의 기사, 어쩌면 투구기사를 보며 나진은 말했다. 아직 나진은 짐승으로 변해버린 저 호각성이라는 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침묵의 기사 크륀벨이 무슨 위업을 세웠는지도, 어떠한 과정을 거쳐 저런 모습이 되어버렸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니, 지금부터 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순수한 별만이 떨어진 별을 표백한다.
나진은 눈을 감은 채 제 내면에 집중했다. 어른거리는 지하도시의 풍경. 낮게 뜬 별과 높게 뜬 별. 푸른 별, 그리고 백금색의 별. 그곳에 걸터앉아있는 멀린은 나진을 향해 미소 지었다.
거봐, 하고 그녀가 속삭였다.
-금방 감 잡을 거라 했지?
칼끝을 낮게 끌며 나진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칼끝에 맺힌 별자리가 점멸했다. 하늘 위에선 나진이 가진 별 두 개가 반짝였다.
소년의 심상에 심어진 씨앗들이 발아(發芽)를 앞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