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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라고 했습니까, 저기 저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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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꼬챙이 사이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목 잘린 기사를 가리켰다. 저걸 과연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투구기사의 동료였다고 하니 나진은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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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금빛 뿔 기사단의 부관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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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투구의 뿔 저 사람이 꺾었다면서요? 당연히 악연인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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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이라면 악연이긴 한데, 뿔을 박살 낸 건 저렇게 변해버린 다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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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기사가 바위에 머리를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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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가 바위에 닿아 덜그럭,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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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녀석을 한번 막아보려 했었거든. 그래도 내 부관이니까. 엇나가는 제 부하 하나 막지 못하는 게 어디 기사단장이겠나? 그래서 막아보려 했지.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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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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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꼴사납게도 실패했지. 말했었지? 생전에 높은 경지에 올랐던 망자를 죽이려거든 순수한 별빛이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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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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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별은 이미 얼룩졌다. 무슨 수를 써도 저 녀석을 죽일 수가 없었다. 팔을 잘라도, 다리를 끊어도, 몸을 꿰뚫어도 금세 일어나선 짐승처럼 달려들더군. 하다 보니 그것도 못 할 짓이다 싶어서 관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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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진 별빛으론 망자의 눈을 감게 해줄 수 없다. 압도적인 물리력으로 몇 번이고 난도질하다 보면 움직일 수 없게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 역시 안식과는 거리가 멀다. 아주 작은 조각에도 영혼은 깃들며, 수십 수백 년의 세월에 거쳐 재생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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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불사.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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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륙의 땅은 죽음에서 도망친 이들에게 결코 안식을 안겨주지 않았다. 영원토록 살기를 선택했는가? 그렇다면, 어디 영원을 견뎌보아라. 외륙에 발을 디딘 이들은 영원을 견딜 각오를 다져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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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빛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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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잃고 추락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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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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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저놈은 성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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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별을 가졌던 성좌, 호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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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가 추락해선 망자가 되어버리면 말야, 그건 이미 인간이라 부를 수 없어. 살점이 뜯어져 나가? 팔이 끊어져? 몸이 갈려 나가? 그런 물리적인 수단으론 낙성(落星)을 죽이긴커녕 멈추게 만들 수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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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기사가 호각성을 가리켰다. 호각성의 갑옷에는 검은 핏줄이 박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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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에 가까워질수록 인간의 영혼은 육체에 구애받지 않게 된다. 떨어져 나간 부분이야 별빛으로 메꾸면 그만이거든. 다른 망자들과는 달리 심장조차 무의미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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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호각성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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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각성의 몸에는 여섯 개의 심장이 존재했다. 그것이 그가 생전에 가지고 있던 별이었다. 추락해서, 본질을 잃어서, 검게 물들어 더는 빛나지 않는 별이 그의 갑옷에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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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에게 육체적인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아. 육체의 손상이 반복될수록 괴물에 가까운 형태로 변할 뿐이지. 심장이 없어도, 머리가 없어도 움직이는 괴물이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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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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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들에게 안식을 안겨줄 수 있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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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기사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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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 올린 손가락이 나진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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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별, 너처럼 순수한 별을 가진 신성(新星)뿐이지. 뭐, 이제 막 떠오른 샛별이 별을 몇 개씩이나 가졌던 성좌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문제지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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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고 투구기사가 이어서 자신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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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도움을 받는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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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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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냐? 한때 소드마스터였으며, 한때 초월자였고, 제국 제일의 기사단이었던 금빛 뿔 기사단을 이끌던 기사단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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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한때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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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만큼은 남아있다 이거지. 어지간한 소드마스터 상대로 꿀리진 않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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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못 미덥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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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툴거리면서도 나진은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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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뭐, 승자의 요구이니 패자는 따라야겠죠. 계획은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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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부터 설명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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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하고 투구기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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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물어봐도 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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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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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별에 붙은 이름이 뭐냐? 여태까지 그걸 안 물어봤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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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성(黎明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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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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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끝을 알리는 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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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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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무덤, 황무지를 나진은 걸었다. 나진의 허리춤에는 언제나 그렇듯 한 자루의 검이 묶여있었는데, 검은 아직 검집에서 뽑히지 않았다. 아직은 검을 뽑을 때가 아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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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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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향해 걸으며 나진은 정면을 봤다. 그곳에는 죽을 때를 놓쳐버린 망자가 있다. 자신을 잊어 더는 빛나지 않게 된 망성(忘星)이 있었다. 그는 나진이 다가옴에도 경계하긴커녕 창대 사이를 배회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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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아직 그의 영역에 발을 디디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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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각성은 자신의 영역을 수호한다. 제 영역에 발을 디딘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그건 달리 말하자면 영역을 침범하지만 않는다면 먼저 공격해 오진 않는단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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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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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경계선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 선을 넘는 순간 호각성의 영역이다. 호각성 역시 걸음을 멈춘 채 나진 쪽으로 몸을 돌린 채였다. 한 발짝만 넘어오면 즉시 공격하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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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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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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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뽑아 들었다. 뽑아 든 검을 하늘을 향해 세운 채 나진이 눈을 감았다. 짧은 검례(劍禮)였으며, 이반에게 배운 자세였고, 나진이 자신의 심상을 강하게 끌어낼 때 거치는 과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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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검에서 검기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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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오른 검기는 별자리의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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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이 떨어져 묻힌 땅, 더는 빛나지 못하게 된 별들이 가득한 무덤 위에 소년이 피워낸 검기는 새하얗게 빛났다. 별자리를 두른 검을 세운 채 나진은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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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었다. 호각성의 영역에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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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호각성이 움직였다. 그의 갑옷에 박혀있는 검은 별들이 심장처럼 박동하고, 비어버린 머리 위로 검은 별이 떠올랐다. 그가 자신의 별에 붙여진 이름대로 호각(號角), 뿔피리를 불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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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우우우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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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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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각성의 몸이 짧게 굳었다. 그는 뿔피리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제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뿔피리를 들고 있는 투구기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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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크륀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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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뿔피리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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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은 거냐? 뿔피리를 가장 먼저 부는 건 단장의 특권이야.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다, 이 건방진 녀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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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웅! 투구기사가 창대를 내려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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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피리를 불어라, 금빛 뿔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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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피리를 하늘을 향해 집어 던지며 그가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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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전에는 그가 뿔피리를 하늘에 던진 순간 12개의 음색이 뒤따랐었다. 금빛 뿔 기사단 전원이 불어 재끼는 뿔피리의 음색이, 그 진동이 전장을 가득 메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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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피리 소리가 메아리칠 적 제국의 적들은 공포에 질렸으며 제국군은 승리를 확신했다. 뿔피리를 불며 금빛 뿔 기사단은 영광스럽게 돌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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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것이 지금은 과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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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투구기사의 뒤에는 그 누구도 서 있지 않다. 그와 함께 해야 할 12명의 기사는 모두 망자가 되어버렸으니. 가장 신나게 뿔피리를 불어 재꼈을 사내는 투구기사의 뒤가 아닌 앞에서 그를 향해 창을 겨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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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다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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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 침묵이 감돌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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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우우우우우우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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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전과 마찬가지로, 전장에는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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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기사의 말에 답하듯 호각성이 뿔피리를 불었다. 그의 몸에 박혀있는 뿔피리들이 일제히 진동했다. 투구기사의 말을 이해해서가 아니다. 망자로 변해버린 호각성에게 이성은 없다. 단지 본능만이 남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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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본능은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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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피리를 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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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음색에 답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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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이성을 잃었을지언정 그는 뿔피리를 부는 별이었다. 그 본질만큼은 그는 잊지 않았다. 그리하여 뿔피리 소리가 메아리치는 가운데 투구기사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저 꼴이 되어서도 잊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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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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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곁에 투구기사가 바로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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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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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가 달리 필요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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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이래서 잘난 놈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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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기사가 자세를 잡았다. 나진 역시 무릎을 굽히고 검을 등 뒤로 당겼다. 그와 동시에, 호각성이 창대를 뽑아 들며 포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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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시끄럽게도 울부짖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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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훔쳐 간 놈을 봐서 화난 모양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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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훔친 거 아니라니까? 빌린 거야. 빌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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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는 받았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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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부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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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답잖은 농담을 나누면서도 둘의 자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포효하며 달려드는 호각성을 향해, 두 사람은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돌진하는 적을 두고 뒤돌아 도망치는 건 기사가 할만한 행동이 아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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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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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피리를 불어라, 금빛 뿔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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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적을 꿰뚫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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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깃발을 걸고 앞을 향해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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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럽게 승리하고, 긍지 높게 진군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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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피리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뿔피리를 불며 평야를 질주하던 장면들이 눈앞에 스쳐 지나간다. 귀가 없고, 눈이 없으며, 무언갈 떠올릴 머리조차 사라졌거늘 그 풍경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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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각성은 뿔피리를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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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외에는 기억나는 게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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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는 알 수 없다.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도 그는 모른다. 짐승이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지 않듯, 그 역시 마찬가지다. 행동에 의미는 없다. 가치 역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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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제게 남은 것이라곤 그것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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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각성은 뿔피리를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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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피리를 불며 창을 내질렀다. 그가 한 자루의 창을 내지를 때마다 ‘퍼억!’ 하고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창대에 꿰여있던 인간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터진 것이다. 살점과 핏물이 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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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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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날에 닿지도 않은 땅이 갈라지고, 터지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가 몸을 한번 움직일 때마다 땅에 구덩이가 하나씩 만들어졌다. 자신을 잊어버렸다 한들, 그의 육신에 새겨진 기술마저 사라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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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각성은 일찍이 초월에 오른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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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 자루의 창으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으며, 창을 내질러 수많은 별들을 상대했다. 한 자루의 창으로 저 밤하늘의 별마저 꿰뚫었던 그의 기술은, 설령 육신이 망가지고 별이 추락했을지언정 소실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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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드드드드드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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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창을 한 뼘 앞으로 움직이면 반경 수 미터의 땅이 갈라져 뒤집혔다. 그의 손에 들린 조잡한 창대는 그의 기술을 한 번도 채 버티지 못하고 부러지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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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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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창을 뽑아 들면 그만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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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그의 성역이다. 땅에 빼곡하게 박혀있는 창대가 모두 그를 위한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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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아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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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지른 창을 맞받아친 순간 나진은 무릎이 꺾일 뻔했다. 기술 하나를 받아내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뒤로 쭉 미끄러지며 나진이 숨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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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초월자는 초월자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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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추락해서 약해졌을지언정 호각성의 기술은 나진이 보기에도 놀라운 것이었다. 창을 내지르는 것만으로 땅을 후벼 파고, 폭풍을 일으킨다. 저자가 생전에 얼마나 고강한 기사였을지 상상해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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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런 기사조차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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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기사는 말했다. 수많은 영웅들이 이 땅에서 추락했노라고. 그들은 죽음보다 더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이곳은 별들이 태어나는 곳이 아닌, 별들이 죽어 묻히는 별들의 무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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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가 그렇게 표현했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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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그 표현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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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외륙이란 땅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간의 고결함을 비웃고, 그들을 극한으로 몰아붙여 타락시키며, 죽음조차 허락하지 않는 외륙의 환경이 나진은 싫었다. 이건 이 땅에 발을 디딘 영웅들에 대한 모욕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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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에겐 그에 걸맞은 최후가 주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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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마지막 순간만큼은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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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별을 보여주었던 어느 기사가 최후에 빛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영웅담을 읽으며 자라왔기 때문일까, 영웅들을 동경했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라면 단지 나진의 심성이 그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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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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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나진은 그들이 최후의 순간만큼은 빛나기를 바랐다. 그들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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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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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검을 고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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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물러선 만큼 앞으로 나선 투구기사가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나진은 숨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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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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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기사, 어쩌면 투구기사를 보며 나진은 말했다. 아직 나진은 짐승으로 변해버린 저 호각성이라는 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침묵의 기사 크륀벨이 무슨 위업을 세웠는지도, 어떠한 과정을 거쳐 저런 모습이 되어버렸는지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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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지금부터 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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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별만이 떨어진 별을 표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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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눈을 감은 채 제 내면에 집중했다. 어른거리는 지하도시의 풍경. 낮게 뜬 별과 높게 뜬 별. 푸른 별, 그리고 백금색의 별. 그곳에 걸터앉아있는 멀린은 나진을 향해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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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봐, 하고 그녀가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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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감 잡을 거라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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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끝을 낮게 끌며 나진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칼끝에 맺힌 별자리가 점멸했다. 하늘 위에선 나진이 가진 별 두 개가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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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심상에 심어진 씨앗들이 발아(發芽)를 앞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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