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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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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별을 토벌하러 가는 와중 나진에겐 의문이 하나 생겼다. 그 성좌라는 거, 정확하게 어떤 존재를 표현하는 건가? 여태까지 단어는 참 많이도 들었는데 정작 그 뜻을 잘 알지 못했다.
성좌(星座)란 무엇인가?
별을 가진 자신과 성좌의 차이는 또 뭔가?
여기, 나진의 옆에는 그 질문에 대해 답해줄 수 있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무려 11개의 별을 가지고 있는 성좌 중의 성좌, 자칭 대성좌 멀린이 입을 열었다.
-단순히 별을 가진 사람과 성좌 사이에는 그렇게 큰 차이가 있진 않아. 기껏 해봐야 별의 개수 정도겠지. 별을 띄우는 데 그치지 않고 별과 별을 이어 별자리로 만들면 그때 성좌가 되는 거야.
별과 별을 이어 별자리로 만든다.
거기에 필요한 최소 개수가 정해져 있냐는 나진의 질문에 멀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렇다 정해진 건 없어. 별이 세 개만 있어도 별자리를 만들 수 있긴 한데, 그렇게 한 애는 내가 딱 한 명밖에 못 봤고··· 걔는 좀 특이한 경우라서. 일반적으론 별을 네다섯 개쯤 모았을 때 성좌가 돼.
나랑 아서도 그쯤 해서 성좌가 됐고.
그리 말하며 멀린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녀의 손끝에서 반짝이는 별들이 이어지며 별자리가 됐다.
-승천이니 권능이니 하는 개념도 있긴 한데, 이건 뭐 나중에 설명해 줘도 되는 거고······ 당장 궁금한 건 그거지? 낙성(落星)이 뭔지. 망성(忘星)이 뭔지 말야.
나진이 고개를 끄덕였고 멀린은 위에서 아래로 손가락을 그었다. 반짝이던 별이 아래로 추락했다.
-성좌라 한들 영원하진 않아. 별을 잃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거든. 별 하나를 잃을 때마다 정신에 큰 충격이 오는데, 그걸 연달아 겪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
미쳐버리지. 제정신으론 못 버텨.
꼭 경험해 봤다는 듯한 말투였다. 멀린이 상상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많은 별을 가진 성좌일수록, 격이 높은 성좌일수록 충격은 커져. 그런 충격을 연달아 받다가··· 아예 모든 별을 잃어버리면 말야, 더 이상 자신을 유지할 수 없게 돼.
‘자신을 유지 못 한다는 게 뭔 뜻입니까?
-망자가 된다는 뜻이야.
추락하여선 자신을 잊어버린 성좌.
낙성(落星)이자 망성(忘星).
망자가 되어버린 별, 멀린은 그렇게 표현했다.
-그리고 본디 성좌란 인간의 육신을 초월한 존재들이지. 그런 존재들이 망자가 된다면, 글쎄. 최소한 네가 알고 있는 ‘인간’이란 범주에 묶이는 존재는 아닐걸?
2.
나진은 투구기사와 함께 외륙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투구기사가 ‘그 선은 넘지 마라. 그 선 너머는 성좌의 영역이니’ 하며 경고하는 일이 많아졌다.
수많은 성역(星域)이 존재하는 곳.
성좌들의 영역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곳.
그곳에서 더 나아가던 투구기사는 비탈길을 타고 내려갔다. 깎아지른 절벽을 내려갔으며,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렇게 투구기사의 뒤를 따라 며칠에 걸쳐 이동한 나진은 어느 널따란 황무지에 도착했다.
숲, 초원, 설산, 들판··· 그 외에도 수많은 지형이 뒤섞여 있는 게 외륙이다. 하지만 지금 나진이 도착한 곳에는 어떠한 지형도 섞여 있지 않았다. 단 하나의 풍경만이 지평선 저 너머까지 이어져 있었다.
거대한 황무지.
살아있는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황폐해진 땅.
그 땅에 존재하는 건 어지럽게 꽂혀있는 수많은 무기들과, 땅에 박혀있는 거대한 돌뿐이었다. 단순히 거대하기만 한 돌은 아니었다. 돌에선 별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별빛은 저 하늘 위까지 이어져 있었으니까.
별의 꼬리를 물고 떨어진 돌들.
꼭 떨어진 별을 연상케 하는 풍경이었다.
그 풍경에 압도된 나진은 잠시 침묵했다. 침묵을 깬 건 투구기사였다. 그는 드넓은 황무지를 바라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바깥에선 외륙을 별들의 전장이라고 부른다더군.”
하지만, 하고 그가 말했다.
“외륙에서 살아가는 별들은 이렇게 부른다.”
드넓은 황무지를 가리키며.
떨어진 별들을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별들의 무덤이라고.”
“······.”
“여긴 별들이 추락하는 곳이다. 한때는 영웅이었고, 한때는 빛나는 별이었지만 결국에 추락해버린 별들이 가득한 곳이지.”
어깨를 으쓱인 그가 나진에게 눈짓했다.
“알고 있는 영웅들이 있나? 그중에서 대륙에선 ‘명예롭게 죽었다’고 알려진 영웅들 말이다.”
“좀 많습니다.”
“몇 명만 말해봐라. 대충 3~400년 전 인물로.”
“성목의 수호자, 아르타 트리가디언.”
전쟁영웅 아르타 트리가디언.
아르베니아 공작가의 기사단장이 쓰는 검술을 창시해 낸 성목의 수호자. 그 이름을 듣자 몇 초의 고민 후 투구기사가 답했다.
“가시나무의 수호자로군. 170년 전에 추락했다. 그리고 망성(忘星)이 됐지. 키르호프가 토벌했다.”
“······예?”
“대륙에는 안 알려졌나? 그럴 수도 있지. 다른 이름은 더 없나?”
“킨부르가 알젠.”
“수호자 킨부르가. 200년 전에 떨어진 별이다. 악마들에게 파먹혔지. 지금쯤 악마들의 배 속에 있겠군.”
“···사피아.”
“백화의 사피아. 환락제가 떨어트렸다. 비교적 최근이군. 100년쯤 전이니.”
“렉디르.”
“정복자 렉디르? 그자도 환락제에 의해 떨어졌지. 지금은 환락제의 광대다. 양 팔다리가 잘린 채 환락제의 궁전에 전시돼 있지.”
나진이 영웅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투구기사는 비슷한 답을 들려줄 뿐이었다. 그 이름이 열 개가 넘어가고, 스무 개가 넘어가서야 ‘아 그자는 명예롭게 죽은 게 맞아. 대륙에서 죽었을걸? 이란 답을 한번 들을 수 있었다.
“뭐, 그런 거다. 대륙에선 명예롭게 죽었다. 순교했다. 그런 식으로 포장했을 테지만··· 외륙에서의 죽음이 어디 명예로울 수 있을 리가?”
투구기사가 황무지를 가리켰다.
“다 이곳, 별들의 무덤에 묻혀있다. 혹은 망성이 되어선 아직도 떠돌아다니고 있겠지. 아니면 환락제의 광대가 됐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악마나 별을 탐하는 짐승들에게 먹혔을 거고.”
별들의 무덤.
“영웅들이 향하는 땅이니, 별들의 전장이니, 새로운 별이 탄생하는 곳이니······ 암만 거창하게 포장해도 한 꺼풀 까고 보면 여기만큼 끔찍한 곳이 없어. 인간을 초월해 죽음으로부터 도망친 이들이 도착하는 저승이 바로 이곳이다.”
별들을 위해 마련된 저승이자 지옥.
“그럼 저승을 떠도는 망자를 사냥하러 가 보실까.”
투구기사는 앞장서 걸었다. 그 뒤를 따라 걸으며 한동안 침묵하던 나진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침묵의 기사, 크륀벨이라 했죠?”
“어. 지금 우리가 잡으러 가는 놈의 이름이지.”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그렇겠지.”
투구기사가 담담히 말했다.
“망각의 안개를 정면에서 맞은 놈이다. 이 땅에서 망각의 권능만큼 지랄 같은 게 또 없어. 남들에게 잊혀지던, 내가 나를 잊어버리던, 어느 쪽이든 급속도로 마모되고 마니까.”
“론디넬을 지워버린 그 성좌의 짓입니까?”
“그 성좌 맞다. 소각과 망각의 성좌.”
그 성좌에 대해선 더 이야기하기 싫어 보였기에 나진은 화제를 돌렸다. 확인해야 할 게 있긴 했으니까.
“크륀벨이란 기사, 별을 여섯 개 가지고 있었다 했습니까?”
“그래. 여섯 개. 왜, 긴장되냐?”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리라.
여섯 개의 별.
대륙에서 나진이 만났던 검성 카론과 처형인 유엘 라지안이 가진 별이 여섯 개였다. 그 둘의 경지를 떠올려보면 지금의 자신이 상대가 될 것 같진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만한데, 그렇게 강하진 않을 거다. 별이 떨어진다는 건 약해진단 뜻이고, 초월을 박탈당한단 뜻이기도 하니까.”
“별과 초월은 관련이 없지 않습니까? 초월자가 많은 별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뭐,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 하지만 초월자의 기본 전제가 뭐냐? 자신(自身)을 자신(自信)하는 것이지. 별을 잃는다는 건 자신을 잃는다는 거다. 스스로를 확신하지 못하게 되니 초월을 박탈당하는 거지.”
투구기사가 자신을 가리켰다.
“그러니 크륀벨 그놈, 나하고 비슷할걸?”
“그럼 해볼 만하겠군요.”
움찔, 자존심이 긁힌 투구기사가 걸음을 멈추고 나진을 돌아봤다.
“설마 너와 싸울 때 내가 전력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겠지?”
“이쪽도 전력은 아니었습니다.”
“이봐. 난 창이 주무기가 아니야. 검이 주무기지. 검을 쓰지도 않은 나한테 져놓고 쓰읍······.”
“저도 이게 주무기 아닙니다.”
“뭐 어디 꿍쳐놓은 무기라도 있나 보지? 자고로 기사란 무기에 의존하면 안 되는 법이야.”
묘한 신경전이 오가는 가운데, 투구기사가 끌끌 혀를 찼다.
“네가 내가 검을 쓰는 걸 보면 그런 말을 못 할 텐데.”
“왜 안 쓰십니까, 그럼.”
나진이 투구기사의 허리춤에 묶여있는 검을 가리켰다. 검은 검집과 함께 쇠사슬로 칭칭 감겨 있었다.
“써선 안 되니까.”
“그러니까, 왜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내가 이걸 쓴다는 건 나 스스로를······ 됐다. 아무튼 못 쓸 이유가 있어.”
대화를 나누며 얼마나 걸었을까.
“멈춰라.”
투구기사가 손을 뻗어 나진을 제지했다.
그리곤 턱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나진은 투구기사가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수많은 창대가 바닥에 꽂혀 있었다. 아니, 저게 창은 맞을까? 차라리 꼬챙이에 가까웠다. 무성의하게 깎아낸 나뭇가지 같기도 했다. 무언갈 꿸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듯 뭉툭한 봉이 땅에 박혀 있기도 했다.
제각각의 형태. 제각각의 무기.
그러나, 그것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그 끝에 사람이 꿰여있다는 점이었다. 무기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바닥에 꽂혀있는 것들에는 사람이 하나씩 꿰여 있었다.
깃발을 잃어버린 깃 창은 사람의 시체로 깃발을 대신했고, 창날을 잃어버린 장창은 사람의 손으로 창날을 대신했으며, 머리를 잃어버린 망치는 사람의 머리로서 그것을 대신했다.
그런 시체가 수십, 수백 구가 넘어갔다.
꼬챙이에 꿰뚫린 시체들로 장식된 땅.
그것이 지금부터 상대할 성좌의 성역인 듯싶었다.
하지만 나진의 눈에는 성역의 주인이 보이질 않았다. 어딜 보아도 시체밖에 없었으니.
“그래서, 그 침묵의 기사는 어디 있습니까?”
“어딨긴. 저깄잖냐.”
투구기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본 나진은 눈을 깜빡였다. 뭘 가리키는 건가. 저긴 시체밖에 없는데? 투구기사가 가리킨 것은 창대 사이에 서 있는 시체였다. 모든 시체가 꼬챙이에 꿰여있지만, 그 시체만큼은 땅에 발을 디디고 서 있었다.
‘시체가 서 있다는 게 좀 이상하긴 한데.
목 위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인간을 시체 말고 달리 뭐라 불러야 할지 나진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눈을 깜빡이고 있자니.
절그럭.
시체가 움직였다. 그 순간 나진은 무심코 뒤로 물러설 뻔했다. 아니, 저게 왜 움직이나? 내가 잘못 봤나?
절그럭.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나진은 제대로 봤다. 목 위로는 아무것도 없는, 그러니까 머리를 잃은 시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절그럭’ 소리를 내며 걸치고 있는 갑옷이 흔들렸다.
그가 나진과 투구기사 쪽을 바라봤다.
머리가 없지만 시선이 마주했다는 것을 나진은 느꼈다. 직감이었으며, 나진의 직감은 대체로 명중했다.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였고.
드, 드드드드드드드득.
머리를 잃은 기사의 몸이 진동했다.
나진은 문득 그가 몸에 걸치고 있는 갑옷들을 바라봤다. 머리를 잃었지만 기사는 투구를 입고 있었다. 보통 투구에 ‘입다’라는 동사를 쓰지는 않았지만 이 경우에는 ‘투구를 입다’라는 표현이 쓰일 수 있었다.
머리를 잃어 투구를 못 쓰게 된 저 기사는, 자신의 갑옷과 어깨에 투구를 여럿 매달아 놓았다. 그건 꼭 투구를 입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드드드득······.
진동하던 기사의 몸이 돌연 멈췄다. 그리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기사가 입고 있던 투구의 덮개가 일제히 열렸다. 마치 짐승이 입을 벌리듯이.
쩌억.
벌어진 투구 사이에서 검은 구정물이 침처럼 늘어졌다. 투구들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투구 사이 사이에 꽂혀있는 뿔피리들이 덩달아 진동했다.
부우우우우우우우————.
뿔피리 소리가 메아리쳤다. 사라진 자신의 머리 대신 시체들의 머리를 통해 기사는 뿔피리를 불었다. 뿔피리의 웅장한 음색이 황무지에 메아리쳤다.
“이런.”
투구기사가 신음했다.
“저 친구, 오늘 기분이 좀 안 좋은 모양인데.”
그리곤 콱. 그가 대뜸 나진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투구기사가 나진을 하늘을 향해 집어 던졌다. 그것과 거의 동시에 영원히 울릴 것 같던 뿔피리 소리가 갑작스레 그쳤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건.
—————————!
망자의 울부짖음이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짐승의 울부짖음에 나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귀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공중에 뜬 채 나진은 포효하는 기사를 바라봤다. 그 몸에서 검은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빛은 그의 머리가 위치해야 할 곳에 뭉쳐졌다.
머리를 대신하듯,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 검은빛이 번뜩였다. 꼭 밤하늘의 별을 닮은 모양이었다.
-망성(忘星), 자신을 잊어 검게 물들어버린 별.
망자가 된 성좌의 상징.
나진은 어째서 투구기사가 자신을 공중으로 집어 던졌는지 곧 알게 됐다. 포효하며 침묵의 기사는 주변에 꽂혀있는 창대 하나를 뽑아 들었다. 그 끝에는 사람이 하나 꿰여 있었는데, 거기에 하나를 더하겠다는 양 그 창대를 투구기사를 향해 투척했다.
쐐에에에에에에에엑!
바람을 가르며 쏘아진 창. 창이 지나가는 궤적을 따라 땅이 갈려 나갔다. 그 창을 투구기사가 받아친 순간 투구기사의 몸 역시 공중에 붕 떴다. 쩌억, 소리를 내며 충돌 점을 중심으로 땅이 갈라졌다. 창대에 매달려 있던 시체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터졌다.
“환장하겠군.”
투구기사가 저 멀리 날아가며 나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 손이 좀 심하게 덜렁거렸다.
“안 되겠다. 잠깐 정비 좀 해야겠는데. 방금 창을 잘못 받았어. 손목이 꺾인 것 같다.”
“예?”
“저 뒤에서 만나지. 저기 숨기 좋은 돌이 하나 있더라고.”
“아니.”
“먼저 간다.”
투구기사가 바닥을 구르며 일어서선 ‘탁탁탁! 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거인의 식량창고를 털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히 완벽한 자세의 달리기였다.
‘이런 시발.
나진이 착지함과 동시에 투구기사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침묵의 기사가 괴성을 내지르며 창을 집어던져 댔지만, 참 다행히도 그는 자신의 성역을 벗어나진 않았다. 격한 배웅을 받으며 나진은 도주했다.
아니, 기사는 도주하지 않는 법.
전략적인 후퇴였다.
3.
“아니, 당신보다 좀 약하다면서요? 저게 어딜 봐서?”
“내가 좀 세긴 하지.”
“도망쳤잖아요.”
“전략적 후퇴다.”
투구기사가 덜렁거리는 제 손목을 맞추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저 친구, 오늘 기분이 좀 더러운 모양이야. 쓰읍, 그래도 옛날엔 인사를 하면 받아주긴 하는 친구였는데.”
“인사를 받는다고요? 저게?”
“옛날에는 그랬어.”
나진은 그 장면이 쉽게 상상이 가진 않았다. 무엇보다도, 나진은 지금 좀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으니까.
‘아니, 목이 잘렸는데 저렇게 움직여?
목이 잘린 채 움직이는 것도 놀랍지만, 창을 던질 때 침묵의 기사가 보인 자세는 인간이 낼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관절의 가동 범위를 까마득하게 넘어선 움직임. 눈으로 보아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움직임이었으니까.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막 나가는 놈이야. 지 상관도 몰라보다니.”
투구기사가 끌끌 혀를 찼다.
그 이야기를 흘려듣던 나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고요?”
“뭐가. 막 나가는 놈이라는 거?”
“아뇨. 그다음이요. 상관이라니?”
“아. 내가 말 안 했나?”
투구기사가 ‘으득! 소리를 내며 제 손목을 맞추고선 능청스럽게 말했다.
“저 친구 내 부하였어.”
“예에···?”
“금빛 뿔 기사단의 부관이었지. 기사단에서 나 다음으로 센 놈이었고.”
호각성(號角星).
침묵의 기사, 크륀벨.
그리고, 금빛 뿔 기사단의 부관.
“일전에 내가 썼던 기술 있지? 그 기술 설명 하면서 ‘가장 잘 쓰는 놈은 따로 있긴 했는데’ 라고 말했던 거 기억하냐?”
“······기억합니다.”
“그놈이 저놈이야.”
투구기사가 저 멀리 돌아다니는 침묵의 기사를 가리켰다. 그 손에 들린 창대가 흉흉히 빛나고 있었다.
“창은 더럽게 잘 써. 창 하나로 마스터의 경지까지 간 놈이니까. 그리고······.”
투구기사가 제 옆에 꽂혀있는 십자별 모양의 창을 가리켰다.
“내가 들고 다니는 이 창의 주인이기도 하지.”
“설마 훔쳤습니까?”
“어허 훔치다니. 저 친구가 망자가 됐을 때 받아온 거야. 정확하겐 내게 맡긴 거지.”
“훔친 것 같은데.”
“글쎄 아니라니까.”
투구기사가 시선을 슬쩍 회피했다.
아무래도 훔친 게 맞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