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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별을 토벌하러 가는 와중 나진에겐 의문이 하나 생겼다. 그 성좌라는 거, 정확하게 어떤 존재를 표현하는 건가? 여태까지 단어는 참 많이도 들었는데 정작 그 뜻을 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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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星座)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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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가진 자신과 성좌의 차이는 또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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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나진의 옆에는 그 질문에 대해 답해줄 수 있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무려 11개의 별을 가지고 있는 성좌 중의 성좌, 자칭 대성좌 멀린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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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별을 가진 사람과 성좌 사이에는 그렇게 큰 차이가 있진 않아. 기껏 해봐야 별의 개수 정도겠지. 별을 띄우는 데 그치지 않고 별과 별을 이어 별자리로 만들면 그때 성좌가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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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별을 이어 별자리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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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필요한 최소 개수가 정해져 있냐는 나진의 질문에 멀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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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정해진 건 없어. 별이 세 개만 있어도 별자리를 만들 수 있긴 한데, 그렇게 한 애는 내가 딱 한 명밖에 못 봤고··· 걔는 좀 특이한 경우라서. 일반적으론 별을 네다섯 개쯤 모았을 때 성좌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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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아서도 그쯤 해서 성좌가 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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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며 멀린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녀의 손끝에서 반짝이는 별들이 이어지며 별자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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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천이니 권능이니 하는 개념도 있긴 한데, 이건 뭐 나중에 설명해 줘도 되는 거고······ 당장 궁금한 건 그거지? 낙성(落星)이 뭔지. 망성(忘星)이 뭔지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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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고개를 끄덕였고 멀린은 위에서 아래로 손가락을 그었다. 반짝이던 별이 아래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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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라 한들 영원하진 않아. 별을 잃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거든. 별 하나를 잃을 때마다 정신에 큰 충격이 오는데, 그걸 연달아 겪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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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버리지. 제정신으론 못 버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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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경험해 봤다는 듯한 말투였다. 멀린이 상상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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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별을 가진 성좌일수록, 격이 높은 성좌일수록 충격은 커져. 그런 충격을 연달아 받다가··· 아예 모든 별을 잃어버리면 말야, 더 이상 자신을 유지할 수 없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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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유지 못 한다는 게 뭔 뜻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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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가 된다는 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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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여선 자신을 잊어버린 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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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落星)이자 망성(忘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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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가 되어버린 별, 멀린은 그렇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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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본디 성좌란 인간의 육신을 초월한 존재들이지. 그런 존재들이 망자가 된다면, 글쎄. 최소한 네가 알고 있는 ‘인간’이란 범주에 묶이는 존재는 아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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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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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투구기사와 함께 외륙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투구기사가 ‘그 선은 넘지 마라. 그 선 너머는 성좌의 영역이니’ 하며 경고하는 일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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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성역(星域)이 존재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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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들의 영역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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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더 나아가던 투구기사는 비탈길을 타고 내려갔다. 깎아지른 절벽을 내려갔으며,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렇게 투구기사의 뒤를 따라 며칠에 걸쳐 이동한 나진은 어느 널따란 황무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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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초원, 설산, 들판··· 그 외에도 수많은 지형이 뒤섞여 있는 게 외륙이다. 하지만 지금 나진이 도착한 곳에는 어떠한 지형도 섞여 있지 않았다. 단 하나의 풍경만이 지평선 저 너머까지 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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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황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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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황폐해진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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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땅에 존재하는 건 어지럽게 꽂혀있는 수많은 무기들과, 땅에 박혀있는 거대한 돌뿐이었다. 단순히 거대하기만 한 돌은 아니었다. 돌에선 별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별빛은 저 하늘 위까지 이어져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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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꼬리를 물고 떨어진 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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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떨어진 별을 연상케 하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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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풍경에 압도된 나진은 잠시 침묵했다. 침묵을 깬 건 투구기사였다. 그는 드넓은 황무지를 바라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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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선 외륙을 별들의 전장이라고 부른다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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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고 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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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륙에서 살아가는 별들은 이렇게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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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황무지를 가리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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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별들을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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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무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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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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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별들이 추락하는 곳이다. 한때는 영웅이었고, 한때는 빛나는 별이었지만 결국에 추락해버린 별들이 가득한 곳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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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를 으쓱인 그가 나진에게 눈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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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는 영웅들이 있나? 그중에서 대륙에선 ‘명예롭게 죽었다’고 알려진 영웅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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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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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명만 말해봐라. 대충 3~400년 전 인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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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목의 수호자, 아르타 트리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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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영웅 아르타 트리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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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베니아 공작가의 기사단장이 쓰는 검술을 창시해 낸 성목의 수호자. 그 이름을 듣자 몇 초의 고민 후 투구기사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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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나무의 수호자로군. 170년 전에 추락했다. 그리고 망성(忘星)이 됐지. 키르호프가 토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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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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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에는 안 알려졌나? 그럴 수도 있지. 다른 이름은 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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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부르가 알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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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자 킨부르가. 200년 전에 떨어진 별이다. 악마들에게 파먹혔지. 지금쯤 악마들의 배 속에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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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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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의 사피아. 환락제가 떨어트렸다. 비교적 최근이군. 100년쯤 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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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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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자 렉디르? 그자도 환락제에 의해 떨어졌지. 지금은 환락제의 광대다. 양 팔다리가 잘린 채 환락제의 궁전에 전시돼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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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영웅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투구기사는 비슷한 답을 들려줄 뿐이었다. 그 이름이 열 개가 넘어가고, 스무 개가 넘어가서야 ‘아 그자는 명예롭게 죽은 게 맞아. 대륙에서 죽었을걸?’ 이란 답을 한번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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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런 거다. 대륙에선 명예롭게 죽었다. 순교했다. 그런 식으로 포장했을 테지만··· 외륙에서의 죽음이 어디 명예로울 수 있을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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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기사가 황무지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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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곳, 별들의 무덤에 묻혀있다. 혹은 망성이 되어선 아직도 떠돌아다니고 있겠지. 아니면 환락제의 광대가 됐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악마나 별을 탐하는 짐승들에게 먹혔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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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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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들이 향하는 땅이니, 별들의 전장이니, 새로운 별이 탄생하는 곳이니······ 암만 거창하게 포장해도 한 꺼풀 까고 보면 여기만큼 끔찍한 곳이 없어. 인간을 초월해 죽음으로부터 도망친 이들이 도착하는 저승이 바로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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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을 위해 마련된 저승이자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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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승을 떠도는 망자를 사냥하러 가 보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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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기사는 앞장서 걸었다. 그 뒤를 따라 걸으며 한동안 침묵하던 나진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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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기사, 크륀벨이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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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지금 우리가 잡으러 가는 놈의 이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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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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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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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기사가 담담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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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안개를 정면에서 맞은 놈이다. 이 땅에서 망각의 권능만큼 지랄 같은 게 또 없어. 남들에게 잊혀지던, 내가 나를 잊어버리던, 어느 쪽이든 급속도로 마모되고 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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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디넬을 지워버린 그 성좌의 짓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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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성좌 맞다. 소각과 망각의 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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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성좌에 대해선 더 이야기하기 싫어 보였기에 나진은 화제를 돌렸다. 확인해야 할 게 있긴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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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륀벨이란 기사, 별을 여섯 개 가지고 있었다 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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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여섯 개. 왜, 긴장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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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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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개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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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에서 나진이 만났던 검성 카론과 처형인 유엘 라지안이 가진 별이 여섯 개였다. 그 둘의 경지를 떠올려보면 지금의 자신이 상대가 될 것 같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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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만한데, 그렇게 강하진 않을 거다. 별이 떨어진다는 건 약해진단 뜻이고, 초월을 박탈당한단 뜻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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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초월은 관련이 없지 않습니까? 초월자가 많은 별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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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 하지만 초월자의 기본 전제가 뭐냐? 자신(自身)을 자신(自信)하는 것이지. 별을 잃는다는 건 자신을 잃는다는 거다. 스스로를 확신하지 못하게 되니 초월을 박탈당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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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기사가 자신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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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크륀벨 그놈, 나하고 비슷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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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해볼 만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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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찔, 자존심이 긁힌 투구기사가 걸음을 멈추고 나진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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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너와 싸울 때 내가 전력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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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도 전력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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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난 창이 주무기가 아니야. 검이 주무기지. 검을 쓰지도 않은 나한테 져놓고 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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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게 주무기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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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디 꿍쳐놓은 무기라도 있나 보지? 자고로 기사란 무기에 의존하면 안 되는 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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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신경전이 오가는 가운데, 투구기사가 끌끌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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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내가 검을 쓰는 걸 보면 그런 말을 못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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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쓰십니까,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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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투구기사의 허리춤에 묶여있는 검을 가리켰다. 검은 검집과 함께 쇠사슬로 칭칭 감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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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선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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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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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내가 이걸 쓴다는 건 나 스스로를······ 됐다. 아무튼 못 쓸 이유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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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나누며 얼마나 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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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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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기사가 손을 뻗어 나진을 제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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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턱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나진은 투구기사가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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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수많은 창대가 바닥에 꽂혀 있었다. 아니, 저게 창은 맞을까? 차라리 꼬챙이에 가까웠다. 무성의하게 깎아낸 나뭇가지 같기도 했다. 무언갈 꿸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듯 뭉툭한 봉이 땅에 박혀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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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각각의 형태. 제각각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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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그 끝에 사람이 꿰여있다는 점이었다. 무기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바닥에 꽂혀있는 것들에는 사람이 하나씩 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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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을 잃어버린 깃 창은 사람의 시체로 깃발을 대신했고, 창날을 잃어버린 장창은 사람의 손으로 창날을 대신했으며, 머리를 잃어버린 망치는 사람의 머리로서 그것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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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체가 수십, 수백 구가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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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챙이에 꿰뚫린 시체들로 장식된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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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지금부터 상대할 성좌의 성역인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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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진의 눈에는 성역의 주인이 보이질 않았다. 어딜 보아도 시체밖에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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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침묵의 기사는 어디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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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딨긴. 저깄잖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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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기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본 나진은 눈을 깜빡였다. 뭘 가리키는 건가. 저긴 시체밖에 없는데? 투구기사가 가리킨 것은 창대 사이에 서 있는 시체였다. 모든 시체가 꼬챙이에 꿰여있지만, 그 시체만큼은 땅에 발을 디디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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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가 서 있다는 게 좀 이상하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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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위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인간을 시체 말고 달리 뭐라 불러야 할지 나진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눈을 깜빡이고 있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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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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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가 움직였다. 그 순간 나진은 무심코 뒤로 물러설 뻔했다. 아니, 저게 왜 움직이나? 내가 잘못 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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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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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본 게 아니었다. 나진은 제대로 봤다. 목 위로는 아무것도 없는, 그러니까 머리를 잃은 시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절그럭’ 소리를 내며 걸치고 있는 갑옷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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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진과 투구기사 쪽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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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없지만 시선이 마주했다는 것을 나진은 느꼈다. 직감이었으며, 나진의 직감은 대체로 명중했다.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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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드드드드드드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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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잃은 기사의 몸이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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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문득 그가 몸에 걸치고 있는 갑옷들을 바라봤다. 머리를 잃었지만 기사는 투구를 입고 있었다. 보통 투구에 ‘입다’라는 동사를 쓰지는 않았지만 이 경우에는 ‘투구를 입다’라는 표현이 쓰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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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잃어 투구를 못 쓰게 된 저 기사는, 자신의 갑옷과 어깨에 투구를 여럿 매달아 놓았다. 그건 꼭 투구를 입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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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드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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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하던 기사의 몸이 돌연 멈췄다. 그리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기사가 입고 있던 투구의 덮개가 일제히 열렸다. 마치 짐승이 입을 벌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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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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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어진 투구 사이에서 검은 구정물이 침처럼 늘어졌다. 투구들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투구 사이 사이에 꽂혀있는 뿔피리들이 덩달아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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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우우우우우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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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피리 소리가 메아리쳤다. 사라진 자신의 머리 대신 시체들의 머리를 통해 기사는 뿔피리를 불었다. 뿔피리의 웅장한 음색이 황무지에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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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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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기사가 신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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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친구, 오늘 기분이 좀 안 좋은 모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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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콱. 그가 대뜸 나진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투구기사가 나진을 하늘을 향해 집어 던졌다. 그것과 거의 동시에 영원히 울릴 것 같던 뿔피리 소리가 갑작스레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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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를 대신하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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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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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의 울부짖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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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짐승의 울부짖음에 나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귀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공중에 뜬 채 나진은 포효하는 기사를 바라봤다. 그 몸에서 검은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빛은 그의 머리가 위치해야 할 곳에 뭉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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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대신하듯,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 검은빛이 번뜩였다. 꼭 밤하늘의 별을 닮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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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성(忘星), 자신을 잊어 검게 물들어버린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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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가 된 성좌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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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어째서 투구기사가 자신을 공중으로 집어 던졌는지 곧 알게 됐다. 포효하며 침묵의 기사는 주변에 꽂혀있는 창대 하나를 뽑아 들었다. 그 끝에는 사람이 하나 꿰여 있었는데, 거기에 하나를 더하겠다는 양 그 창대를 투구기사를 향해 투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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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에에에에에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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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을 가르며 쏘아진 창. 창이 지나가는 궤적을 따라 땅이 갈려 나갔다. 그 창을 투구기사가 받아친 순간 투구기사의 몸 역시 공중에 붕 떴다. 쩌억, 소리를 내며 충돌 점을 중심으로 땅이 갈라졌다. 창대에 매달려 있던 시체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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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장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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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기사가 저 멀리 날아가며 나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 손이 좀 심하게 덜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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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겠다. 잠깐 정비 좀 해야겠는데. 방금 창을 잘못 받았어. 손목이 꺾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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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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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뒤에서 만나지. 저기 숨기 좋은 돌이 하나 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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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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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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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구기사가 바닥을 구르며 일어서선 ‘탁탁탁!’ 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거인의 식량창고를 털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히 완벽한 자세의 달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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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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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착지함과 동시에 투구기사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침묵의 기사가 괴성을 내지르며 창을 집어던져 댔지만, 참 다행히도 그는 자신의 성역을 벗어나진 않았다. 격한 배웅을 받으며 나진은 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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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기사는 도주하지 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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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인 후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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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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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당신보다 좀 약하다면서요? 저게 어딜 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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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좀 세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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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망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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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후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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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기사가 덜렁거리는 제 손목을 맞추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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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저 친구, 오늘 기분이 좀 더러운 모양이야. 쓰읍, 그래도 옛날엔 인사를 하면 받아주긴 하는 친구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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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받는다고요? 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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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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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그 장면이 쉽게 상상이 가진 않았다. 무엇보다도, 나진은 지금 좀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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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목이 잘렸는데 저렇게 움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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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잘린 채 움직이는 것도 놀랍지만, 창을 던질 때 침묵의 기사가 보인 자세는 인간이 낼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관절의 가동 범위를 까마득하게 넘어선 움직임. 눈으로 보아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움직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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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막 나가는 놈이야. 지 상관도 몰라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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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기사가 끌끌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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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를 흘려듣던 나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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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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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막 나가는 놈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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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그다음이요. 상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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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말 안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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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기사가 ‘으득!’ 소리를 내며 제 손목을 맞추고선 능청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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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친구 내 부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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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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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뿔 기사단의 부관이었지. 기사단에서 나 다음으로 센 놈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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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각성(號角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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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기사, 크륀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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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금빛 뿔 기사단의 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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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내가 썼던 기술 있지? 그 기술 설명 하면서 ‘가장 잘 쓰는 놈은 따로 있긴 했는데’ 라고 말했던 거 기억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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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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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이 저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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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기사가 저 멀리 돌아다니는 침묵의 기사를 가리켰다. 그 손에 들린 창대가 흉흉히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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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은 더럽게 잘 써. 창 하나로 마스터의 경지까지 간 놈이니까.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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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기사가 제 옆에 꽂혀있는 십자별 모양의 창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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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들고 다니는 이 창의 주인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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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훔쳤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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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훔치다니. 저 친구가 망자가 됐을 때 받아온 거야. 정확하겐 내게 맡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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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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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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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기사가 시선을 슬쩍 회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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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훔친 게 맞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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