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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마스터, 대마법사를 비롯한 초월자들을 문헌에선 이렇게 표현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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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몸으로 신의 영역에 닿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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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표현에는 조금의 과장도 들어가지 않았단 사실을 나진은 다시금 깨달았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신의 이적(異蹟)이라 부르기에 충분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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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하나를 가로질러 느껴지는 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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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미터를 가뿐히 뛰어넘어 느껴지는 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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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인간이 일으켰다기엔 지나치리만치 큰 흐름이었다. 그들이 괜히 초월자니 하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는 게 아니다.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 일을 행할 수 있으니 그리 불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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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거대한 힘 앞에 대부분의 이들은 두려움을 느낀다. 압도적인 무력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며, 또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여긴다. 지금 나진의 곁에서 귀를 틀어막고 있는 이단심문관들이 그러했으며, 저 도시 안에서 겁에 질려있을 흑마법사들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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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지 않은 인간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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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서 있는 한 명의 소년이 그 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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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귀를 막았던 손을 뗐다. 메아리치는 검명에 귀를 기울였다. 반사적으로 굽혔던 무릎을 폈고, 고개를 들었으며, 눈을 크게 뜬 채 눈앞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제 두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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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레 나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찢어져라 크게 뜬 눈동자는 반짝였다. 그리고, 그건 최소한 두려움을 느끼는 표정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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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 기대감. 혹은 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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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엘이 보내온 편지에 적힌 제안. 나진이 괜히 그 제안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응한 것이 아니다. 전에 말했다시피 나진은 이를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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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륙으로 떠나기 전 몸을 풀 기회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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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올라야 할 경지이며, 앞으로 마주하게 될 강자들의 싸움을 직관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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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정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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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웃음을 감추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겼다. 이단심문관들이 유엘이 일으킨 여파에 압도당해, 몸을 웅크리고 있는 동안 나진은 도시의 정문을 향해 걸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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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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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 나진이 검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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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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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더노스의 거리는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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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륙에 걸쳐져 있는 도시답게 도시의 전역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으며, 어둠을 밝힐 등불 하나 놓여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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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축축하고, 음산한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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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간이 이곳에서 며칠만 보내면 정신병에 걸릴 게 분명했지만, 흑마법사들은 아니었다. 자신들을 부르는 단어에 당당하게 흑(黑)자를 붙였단 점에서 알 수 있다시피 그들은 어두운 것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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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축축하고 음산하며 공포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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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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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외치며 기꺼이 지하수로니, 버려진 도시에 공방을 만드는 게 흑마법사란 족속들이다. 그곳이 도망치고 숨는데 용이하다는 소소한 장점도 있지만 흑마법사들은 순수하게 어둡고 습한 곳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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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흑마법에 입문하면 뇌 구조가 바뀌는 걸까요? 습하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곰팡이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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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로 논문을 썼던 마법사도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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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누가 그리 쓰잘데없는 주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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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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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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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되고 무너진 건물들.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벽돌. 지금으로부터 대략 300년쯤 전, 하루아침에 주민들이 모조리 증발해 버린 도시는 적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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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서 ‘끼이이이이이이익!’ 하고 들려오는 처형인의 칼질 소리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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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나진은 적막 속에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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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걸음 소리는 유난히도 크게 거리에 울려 퍼졌다. 나진은 일부러 소리 내 걷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를 없애는 거야 일도 아니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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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 곳곳에 숨어있을 흑마법사들이 눈치챌 수 있도록 나진은 제 기척을 숨기지 않았다. 후문에서 쳐들어온 처형인이 문자 그대로 도시를 갈아버리고 있는 마당이다. 혼란에 빠진 흑마법사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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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처형인을 죽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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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처형인을 피해 도주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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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첫 번째 선택지가 가능했다면 그들이 이 도시에 숨어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연스레 남은 건 두 번째 선택지였는데, 이 경우에는 어떻게든 나진을 재껴야만 했다. 아니면 성벽을 타고 도망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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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이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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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문득 성벽쪽을 흘겨봤다. 마법으로 성벽을 타고 기어오르던 흑마법사 하나의 허리가 ‘싹둑’ 하고 잘려 아래로 떨어지는 광경이 보였다. 그는 탈출을 성공했다. 이승에서 탈출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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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성벽을 타고 탈출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엄폐물 없는 성벽을 오르는 건, 수백미터의 사정거리를 가진 소드마스터에게 ‘나 좀 베어주십쇼’ 하고 광고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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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남은 건 정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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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구는 나진이 서성이고 있는 곳 뿐이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유엘의 존재에 흑마법사들은 결국 결정을 내린 듯싶었다. 여태까지 느껴지지 않던 인기척이 갑자기 느껴졌다. 은신을 벗어던진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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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도시. 버려진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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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것들 사이에 숨은 마법사들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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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건물. 무너진 벽돌의 틈새. 커튼에 가려진 창문의 작은 틈. 지붕과 굴뚝 사이의 공간. 기둥의 뒤. 그야말로 도시의 각지에서 새까만 빛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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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발현의 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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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다발적으로 번뜩이는 빛은 어둠과 같은 색이어서 육안으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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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웠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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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번뜩이는 순간 나진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좌에서 우로, 상에서 하로. 빛이 번뜩인 것은 고작 해봐야 3초 남짓의 시간. 그러나 나진에겐 충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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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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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개의 빛. 17개의 마법사. 17개의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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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파악하기까지가 1초. 들어 올린 발로 쿵, 하고 땅을 내려찍는데 다시 1초. 삼켰던 숨을 뱉으며 땅을 박찬 순간 마지막 1초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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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초, 주문이 완성되고 쏘아지는 데 걸린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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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각지에서 나진을 향해 주문이 쏘아졌다. 주문이 쏘아진 순간, 나진은 이미 땅을 박차고 달리고 있었다. 나진이 서 있던 위치에 새까만 말뚝들이 파바바박! 소리를 내며 틀어박혔다. 핏빛 광선이 땅을 녹였으며, 경로상의 장애물을 모조리 박살 내며 밀려드는 주문들이 자그마치 열 개가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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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의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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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진의 눈동자는 차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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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시커에 오르기 전이었다면, 그리고 외륙에서 마녀와의 전투를 경험하기 전이었다면 고전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 모두를 경험한 지금은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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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어려울 것 같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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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질주했다.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주문들은 엄한 곳을 공격할 뿐, 나진에게 닿지 않았다. 순간적인 가속. 나진이 벽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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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에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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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수동적인 조준이 아닌, 나진을 표적 삼아 쏘아진 주문들은 기어코 방향을 틀어 나진을 쫓아왔다. 등 뒤에서, 머리 위에서, 앞에서, 그야말로 사방에서 밀려드는 주문 앞에서도 나진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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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면서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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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타고 달리느라 불안정한 자세에도 불구하고 칼끝이 그리는 궤적은 깔끔했다. 스칵! 검기에 휘말린 주문들이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탁 트인 시야 사이로 나진이 벽을 박차고 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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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눈으로 봐두었던 17개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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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 가장 가까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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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벽의 뒤에 숨어있던 흑마법사를 향해 도약하며 나진은 검을 휘둘렀다. 나진과 흑마법사 사이에는 무너진 벽이 존재했지만, 나진의 검에서 검기가 번뜩이는 순간 그 벽은 엄폐물로서 가치를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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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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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끝이 벽을 부드럽게 베어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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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목이 벽보다 단단하진 않았으므로, 벽 뒤에 숨어있던 흑마법사의 머리 역시 벽과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나진의 움직임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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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휘두르는 동작과, 착지, 방향 전환, 재도약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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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흑마법사의 머리 하나가 땅에 떨어져 ‘쿵’ 하는 소리를 낸 순간 나진은 이미 다음 목적지에 도착 해 있었다. 지붕과 굴뚝 사이에 숨어있던 흑마법사의 머리 위. 나진이 흑마법사를 뛰어넘으며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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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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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의 이마에서 턱까지 한줄기의 선이 그어졌다. 그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는 걸 나진은 기다리지 않았다. 지붕을 박차고 나진은 달렸다. 그 속도는 지나치리만치 빠르다. 눈으로 쫓기는커녕, 마법적인 수단으로 추격하기도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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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뭐 저리 빠르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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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진의 육체 능력이 뛰어나긴 하나, 이 정도로 압도적이진 않았다. 지금 이런 장면이 연출되는 데는 지형적 특징이 한몫했다. 박차고 뛸 것이 많은 지형. 건물과 엄폐물이 줄지어 늘어선 시가지에서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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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에게 있어 더없이 유리한 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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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환경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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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시에서 교단의 암부를 상대로 벌였던 시가전을 떠올린 나진은 무심코 웃었다. 그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강해졌으니. 제 성장을 체감하며 나진은 조금 더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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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흑마법사들의 입장에선 악몽이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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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갈라진 시체가 지붕에서 굴러떨어졌다. 추락하는 제 동료의 모습에, 건물에 숨어있던 흑마법사는 식겁했다.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려던 그는 간신히 비명을 참아냈지만···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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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을 박살 내며 나진이 떨어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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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그의 머리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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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적으로 위를 올려다본 흑마법사의 눈이 부릅 뜨였다. 그 입에서 비명이 새어 나오려는 찰나, 나진의 칼끝이 흑마법사의 목을 쓸어 넘겼다. 쓸어 넘기며 나진이 쥐고 있던 검을 놓았다. 허공에서 빙글, 한 바퀴 도는 검을 나진은 역수로 낚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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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낚아챔과 동시에 나진이 팔을 휘둘렀다. 꼭 창을 던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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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손끝에서 롱소드가 창처럼 쏘아졌다. 투창이 아닌 투검(投劍). 물론 롱소드는 투척을 위해 만들어진 무기는 아니었지만, 충분한 육체 능력만 있다면 문제 될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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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에에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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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직선으로 쏘아진 칼이 맞은편 건물의 창을 박살 냈다. 그 뒤에 숨어 나진에게 지팡이를 겨누던 흑마법사의 어깨에 콱, 하고 틀어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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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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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을 지르면서도 흑마법사는 주문을 멈추지 않았다. 좋은 판단이었지만, 최선의 판단은 아니었다. 통증으로 인한 흔들림이 주문 발현에 1초라는 시간을 더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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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 나진이 건물을 뛰어넘어 흑마법사의 앞에 도착하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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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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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던져 한번 박살 낸 창을 다시 한번 발로 걷어차 완전히 박살 낸 나진이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눈을 부릅뜬 흑마법사가 나진을 향해 지팡이의 끝을 돌렸으나, 그때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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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의 접근을 허용한 순간 마법사는 검사를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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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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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쭉 뻗은 나진의 손이 흑마법사의 어깨에 박힌 롱소드의 자루를 움켜쥐었다. 나진의 손을 떠나며 검기가 꺼졌던 롱소드에 다시 검기가 솟구쳤다. 흑마법사의 어깨를 검집 삼아 나진은 발검(拔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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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를 두른 롱소드가 검집을 박살 내며 휘둘러졌다. 흑마법사의 어깨를 가르며 솟구친 검날이 흑마법사의 머리를 쪼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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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구구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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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나진을 건물째 짓뭉개버리겠다는 양, 흑마법사들은 건물을 향해 주문을 난사했다. 물론 눈먼 주문을 맞아줄 만큼 나진은 굼뜨지 않았다. 건물의 외벽을 베어내곤 나진은 건물 밖으로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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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쉬운데요? 예전에 흑마법사랑 싸울 때는 이렇게까지 만만했던 것 같진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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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지하수로에서 진행했던 파우베 토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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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치명상도 입었고, 그래도 좀 위험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너무나도 수월했다. 혹시 파우베가 강했던 걸까? 나진이 그리 생각하고 있자니 멀린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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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 걘 순전히 아티팩트랑 걸작 덕분이지 기껏 해봐야 4서클 수준이었어. 지금 너랑 싸우는 애들도 3에서 4서클 정도 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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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끌끌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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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넌 소드 엑스퍼트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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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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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별도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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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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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은 별도 있고, 소드 시커네? 심지어 네 옆에는 아주 위대한 대마법사도 하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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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건 별로 도움 안 되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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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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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대마법사님께서 눈을 부릅뜨시는 가운데, 나진은 피식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물론 자신이 강해진 것도 한몫하겠지만 이번 작전이 이렇게까지 쉬운 데는 다른 이유가 있음을 나진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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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에 자리 잡은 흑마법사들의 우두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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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 6서클의 마법사, 자르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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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 휘하의 주요 전력들은 지금 유엘을 막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들이 공방에 준비해 둔 수많은 제물이며, 아티팩트를 총동원하더라도 유엘의 걸음을 막아서기란 어려울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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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증거로 지금 그들의 공방으로 예상되는 성채는 시도 때도 없이 뒤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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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더노스를 점거했던 흑마법사들의 입장에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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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문에선 소드마스터가 날뛰질 않나, 정문에서는 정체 모를 소년 하나가 퇴로를 확보하는 데 보낸 마법사들을 모조리 잡아 족치고 있다. 소드마스터야 그렇다 치는데, 도대체 저 소년은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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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눈을 깜빡일 때마다 위치가 바뀐다. 미래를 내다보기라도 하는지 이쪽보다 항상 한 걸음 앞서 움직인다. 온갖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거리를 좁혀온다. 숨어있는 위치는 또 어떻게 알았는지 대뜸 벽을 부수곤 달려들어 목을 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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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서 튀어나오질 않나, 벽의 너머에서 칼을 뻗어 죽이질 않나, 하다 하다 검을 집어 던져 죽이기까지 한다. 주문을 하나 외울 때마다 동료 하나가 사라지니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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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새끼 이단심문관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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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이단심문관이 어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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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기사인가? 아니, 그것도 아닌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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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떤 기사가 씨발, 검을 집어던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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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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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하게 싸워야 하는 건 이쪽인데, 상대가 더 비겁하고 치사하게 싸우고 있다. 자신들에게 당했던 기사들의 심정을 알게 된 흑마법사들이 신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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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들의 사정이 나진의 알 바는 아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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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여유롭게 발더노스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성채에서 빠져나오는 흑마법사들을 사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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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우우우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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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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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중앙에 위치한 고성. 흑마법사들이 점거해 공방으로 개조해 낸 성채. 그 성채의 꼭대기에서 굉음과 함께 사람 하나가 떨어졌다. 아니, 저걸 떨어진다고 표현해도 되는 걸까? 조금 더 적합한 표현이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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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사람이 ‘쏘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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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나진이 서 있는 위치를 향해 일직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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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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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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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컥, 헉, 허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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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더노스를 7대 3의 비율로 자르면 여기, 지금 저와 당신이 서 있는 부분은 7에 해당하는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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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엘이 담담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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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내리는 첫눈을 닮은 머리칼은 새하얗고 매끄러웠으며, 기다란 속눈썹 사이로 반은 뜨고 반은 감은 핏빛 눈동자는 요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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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인이다. 제국에서 미녀를 논할 때 결코 빠지지 않는 여자답게, 유엘의 외모는 끔찍하게도 아름다웠다. 언제나 무표정한 그 얼굴마저 매력으로 느껴질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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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녀를 코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흑마법사, 자르칸도 하마터면 유엘을 ‘아름답다’고 느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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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컥, 커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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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미친 여자가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지만 않다면, 이 성채를 가득 채운 제 부하들을 모조리 갈아버리지만 않았더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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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서클의 흑마법사 자르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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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더노스를 점거한 흑마법사들의 우두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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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제 목을 움켜쥐고 있는 유엘을 떨리는 눈동자로 바라봤다. 그 시선을 마주한 유엘의 눈동자는, 여전히 무심했다. 마치 눈앞의 자신에겐 조금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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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는 약속했습니다. 7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가 맡을 테니, 남은 3에 해당하는 부분을 당신이 맡으라고. 아, 여기서 말하는 당신은 지금 제게 목이 붙잡혀있는 당신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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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지 않았다. 하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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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목이 붙잡혀있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그 목을 붙잡고 있는 이가 소드마스터라면···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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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약속대로라면 당신을 죽이는 건 제 역할입니다. 당신이 일곱에 해당하는 장소에 있었으니. 하지만, 역시 아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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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엘이 흠, 하고 제 입술을 달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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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소년이 싸우는 광경을 조금 더 보고 싶습니다. 피를 흘리는 모습을, 아슬아슬하게 승리하는 모습 또한 보고 싶군요. 예, 지금 눈앞의 당신을 죽이는 일은 분명 즐겁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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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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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을 내린 듯한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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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러는 편이 더 즐거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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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들이 점거한 성채의 최상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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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더노스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성채의 꼭대기. 그 끄트머리를 향해 유엘은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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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물리적인 충격에 매우 강합니다. 시험해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마법적인 수단도 동반하지 않은 채, 순수한 물리적인 충격이 얼마나 가해져야 악마가 소멸하는가? 그 결과는 제법 흥미롭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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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걸으며 유엘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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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1번입니다. 심장에 칼날이 3761번 들어오고도 악마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럼 3762번째에 죽었나? 놀랍게도 아닙니다. 3762번째가 되는 순간 악마는 자결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어디까지 견딜 수 있나 시험하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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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며 유엘이 고개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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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길어졌군요. 요점은 이겁니다. 악마는 튼튼합니다. 당연히, 악마와 계약한 당신의 몸 역시 튼튼하겠지요. 이 정도 높이에서 추락한 정도로 죽지는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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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층의 끄트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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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더노스를 7:3의 비율로 나눴을 때, 아슬아슬하게 7에 속하는 부분. 여기서 한 걸음만 더 앞으로 내디디면 3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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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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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에 선 유엘이 팔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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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언제나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법. 대부분의 인간은 ‘비행’이란 단어에 동경을 품더군요. 당신도 부디 그러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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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팔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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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공을 집어 던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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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비행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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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엘이 자르칸을 집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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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의 최상층에서 땅을 향해서. 보다 정확하겐, 나진이 서 있는 곳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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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에에에에에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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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식이 다소 거칠었으며, 그 방향이 하늘 위가 아닌 땅을 향해있단 점을 제외한다면. 그리고, 하늘을 난다는 표현이 ‘땅이 발에 닿지 않고 공중을 이동하는 것’에 쓰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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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자르칸은 틀림없이 비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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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 으어어어어어어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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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칸이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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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석하게도, 그 비명을 들어주는 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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