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301 lines
15 KiB
Markdown
301 lines
15 KiB
Markdown
|
||
“당신을 좋아해요. 나진.”
|
||
|
||
말했다. 말해버렸다. 그녀의 이성이 비명을 지르다못해 개거품을 무는 가운데, 디에타는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좀 얄미웠다고.
|
||
|
||
사실이 그렇지 않나.
|
||
|
||
이쪽이 좋아하는 티를 팍팍 내는데 나진은 언제나 평온하기 짝이없다. 그 사실이 디에타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어디가서 꿀릴만한 사람은 아니지 않나? 솔직히 외모로만 따져도 제국에서 나보다 예쁜 여자가 얼마나 있다고?
|
||
|
||
최소한 좀 흔들리는 기색이라도, 거리를 좁혀오면 당황하는 기색이라도 보이면 좀 좋은가.
|
||
|
||
‘연애감정을 몰라서 통하지 않는 거라면.’
|
||
|
||
이쪽이 좋아하고 있다는 걸 최소한 인지는 하게 만들어주겠다. 그 사실을 알고도 어디 평소처럼 대할 수 있을까. 이 관계에 최소한 변화는 생기겠지.
|
||
|
||
좋은 쪽으로든 안좋은 쪽으로든 말이다.
|
||
|
||
물론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간다면 조금, 어쩌면 좀 많이 슬프겠지만 그건 그때가서 생각할 일이다. 미래의 자신이 어떻게든 방법을 떠올려주겠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디에타는 나진의 눈치를 살폈다.
|
||
|
||
그리고, 나진이 반응했다.
|
||
|
||
우선 나진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
||
|
||
뒤이어, 나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눈을 크게 뜬 채 나진이 뒷걸음질을 치려했지만 울타리에 가로막혀 더 물러서지도 못했다.
|
||
|
||
턱, 하고 나진의 등이 울타리에 닿았다.
|
||
|
||
누가봐도 당황한게 분명한 모습이었다.
|
||
|
||
2.
|
||
|
||
나진은 일반인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의 반응속도를 가지고 있다. 소드 엑스퍼트가, 소드 시커가 되기 이전부터 그랬다. 타고난 동체시력과 반응 속도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으니.
|
||
|
||
그렇다보니 나진이 ‘불의의 일격’을 허용하는 상황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자신보다 강자에게 당한 적은 있어도, 약자나 동등한 수준의 적에게 치명타를 허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했단 뜻이다.
|
||
|
||
하지만 지금 이 순간.
|
||
|
||
나진은 불의의 일격을 허용했다. 그것도 그가 크게 동요할만큼. 도대체 누가 이 최연소 소드 시커에게 습격을 했는가? 피할 수 없을만큼 빨랐는가? 그게 아니면 숨어서 뒤를 노렸는가? 혹은 소드마스터라도 되나?
|
||
|
||
전부 아니었다.
|
||
|
||
상대는 정면에서 천천히 걸어왔으며 무(武)와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소녀였다. 그런 소녀에게 나진은 치명타를 허용했다. 나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
||
|
||
내가 방금 뭘 들은거지?
|
||
|
||
잘못 들었다기엔 너무나도 선명한 목소리. 그 발음 역시 깔끔하다. 도망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완벽한 일격이었다.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서려던 나진의 등이 울타리에 닿아 ‘턱’ 소리를 냈다.
|
||
|
||
당신을 좋아해요, 나진.
|
||
|
||
디에타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
||
|
||
제 아무리 연애와 담을 쌓고 살아가는 나진이라 한들 그 한줄의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진 않는다. 직설적이면서도 담백한 고백. 동화나 영웅담의 클라이막스에나 등장할법한 대사였다.
|
||
|
||
나진은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언제나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상대의 공격에 반응하는 나진이었지만, 푹 찌르고 들어오는 디에타의 한마디에는 반응하지 못했다. 예상치도 못한 공격이었으니까.
|
||
|
||
어떻게 답해야할지.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
||
|
||
알 수가 없는 나진의 시선은 자연스레 멀린을 향했다. 멀린은 나진의 길잡이다. 그녀라면 분명 이 상황에 적절한 답을 알려줄 터. 도움을 구하듯 나진은 멀린을 바라봤지만······.
|
||
|
||
-뭐, 뭐··· 뭐어?
|
||
|
||
멀린이라고 나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
||
|
||
오히려 더하면 더 했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멀린은 천천히 제 고개를 기울였다. 그 고개가 기울어지다 못해 꺾일 무렵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
||
|
||
-내가 방금 잘못들은거니? 잘못들은거겠지. 아니, 잘못 들은거라고 해. 그래야만 할 테니까.
|
||
|
||
멀린이 어이없다는 듯 디에타를 바라봤다.
|
||
|
||
-고백에 가장 중요한 건 무드야. 분위기라고! 분위기도 안 잡고 냅다 이렇게 질러? 연애가 장난이야? 자고로 고백이란 달밤의 호수같이 분위기가 좋은 곳에서, 여정의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하는 거야. 이런 어중간한 상황이 아니라!
|
||
|
||
그녀가 빼엑 소리를 질러댔다.
|
||
|
||
당연하게도 멀린은 고백을 한 적도, 받아 본 적도 없었다. 단지 자신이 고백을 받는다면 그런 장소가 좋을 것 같다고 언제나 망상했을 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제 취향을 털어놓은 멀린이 언성을 높였다.
|
||
|
||
-세상 어느 여자가! 어느 남자가! 이런 갑작스러운 고백을 좋아해!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이런 같잖은 수에 넘어갈 만큼 애가 만만해보여? 그렇게 봤다면 오산이야. 이 발랑까진 꼬맹아!
|
||
|
||
발을 동동 구르며 멀린이 휙, 나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
|
||
-그렇지? 응? 너도 빨리 대답······?
|
||
|
||
멀린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
||
|
||
그녀가 게슴츠레 뜬 눈동자로 나진을 흘겨봤다.
|
||
|
||
-뭐야. 넌 또 왜 그래.
|
||
|
||
‘제가 뭘요.’
|
||
|
||
-눈. 눈동자! 왜 그렇게 흔들려? 뭐야, 너 설마?
|
||
|
||
‘아니, 당황할만 한 상황이잖아요.’
|
||
|
||
-끄으으으으으윽!
|
||
|
||
당장에라도 거품을 물고 쓰러질 것처럼 멀린이 제 뒷목을 잡았다. 지금은 도움이 안되겠군. 나진은 멀린의 비명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눈앞의 디에타에게 집중했다.
|
||
|
||
“······.”
|
||
|
||
그녀는 말 없이 나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
나진이 대답을 들려주기 전 까진 비켜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진 역시 이 상황을 적당히 넘길 생각은 없었다. 정면에서 마음을 고백해 온 상대의 각오를 무시할만큼 나진은 무례하지 않았다.
|
||
|
||
침묵, 그리고 고민.
|
||
|
||
한시간 같은 1분이 흐른 뒤 나진이 입을 열었다.
|
||
|
||
“디에타.”
|
||
|
||
“네, 나진.”
|
||
|
||
“솔직히 말하자면, 전 디에타가 제게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좋아하냐 싫어하냐를 묻는다면 당연히 좋아하긴 합니다만.”
|
||
|
||
나진도 안다.
|
||
|
||
“디에타가 말하는 건 그런 단순한게 아닐거잖습니까?”
|
||
|
||
“툭 까놓고 말해, 연인 사이가 되고 싶다는 고백이긴 했어요. 이걸 제 입으로 말하는 것도 좀 부끄럽지만요.”
|
||
|
||
디에타가 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
||
|
||
뒤늦게 부끄러움이 밀려오는 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디에타가 중얼거리는 가운데 나진은 쓰게 웃었다.
|
||
|
||
“그래서 바로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
||
|
||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
||
|
||
“아직 모르겠거든요. 좋아한다는 게 뭔지, 디에타가 제게 느끼는 감정이 뭔지 말입니다. 그게 뭔지도 모른 채로 지금 디에타의 고백에 대답하는 건, 비겁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
||
|
||
당신이 걸어온 승부에 신중하게 임하고 싶다. 적당한 대답, 적당한 말로 받아치는 건 당신에게 실례되는 일일테니. 나진은 그렇게 답했고.
|
||
|
||
“과연.”
|
||
|
||
디에타는 무심코 웃고 말았다.
|
||
|
||
비겁하다, 라. 참 눈앞의 남자가 할법한 대답이었으며, 디에타가 어느정도 예상한 대답이기도 했다.
|
||
|
||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어요.”
|
||
|
||
“미안합니다.”
|
||
|
||
“사과하지마요. 사과하면 꼭 차인 것 같잖아요? 대답을 아직 뒤로 미뤘을 뿐 거절한거 아니잖아요. 설마 저랑 평생 안볼거에요?”
|
||
|
||
“그건 아닙니다만······.”
|
||
|
||
“그럼 사과하지마요. 사과할 일이 아니니까.”
|
||
|
||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지른 고백은 아니었다.
|
||
|
||
아예 거절당하는 것까지 염두에 뒀거늘 이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
||
|
||
“알고 있었어요. 당신이 아직 연애감정이 뭔지 모른다는 것도, 이런 반응이 나올거라는 것도.”
|
||
|
||
모르고 홧김에 저지른게 아니다.
|
||
|
||
알고도, 디에타는 나진에게 고백했다.
|
||
|
||
“원래는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려했죠. 당신의 ‘첫번째 자리’를 하나 하나 차지해가다가, 마지막으론 연인자리까지 차지할 계획이었는데 말이에요.”
|
||
|
||
디에타는 수줍게 미소지었다.
|
||
|
||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조금은 부끄럽다는 듯이.
|
||
|
||
“도저히 못참겠더라구요.”
|
||
|
||
웃으며 그녀는 말했다.
|
||
|
||
“당신, 멀리 떠나잖아요?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도 있고. 그래서 좀 초조해졌어요. 더 커다란 무대. 더 높은 곳. 더 대단한 자리. 당신은 분명 저 멀리까지 나아갈텐데······.”
|
||
|
||
최연소 소드시커. 최연소 쌍성.
|
||
|
||
지금도 말도 안되는 업적을 세운 나진이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할거라고 디에타는 확신했다. 확신했기에 불안했다. 더 거대한 존재가 될 나진에게 자신은 ‘한때의 인연’ 정도로 기억될까봐.
|
||
|
||
그러고 싶진 않았다. 정말로.
|
||
|
||
“그런 당신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남기고 싶었어요. 당신이 말했죠? 뭐든 처음이 중요한 법이라고. 그럼 기억해요. 당신에게 처음으로 고백한 게 저란 사실을.”
|
||
|
||
그리 말하며 디에타가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
||
|
||
매력적인 미소였다. 나진도 숨을 삼킬 만큼.
|
||
|
||
“이런 여자인 걸 어떡해요. 실망했나요?”
|
||
|
||
“전혀.”
|
||
|
||
나진이 웃었다.
|
||
|
||
“오히려 좋은데요? 솔직함은 기사의 미덕이죠.”
|
||
|
||
“기사 시험이라도 치러볼까요?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
|
||
“도와드리죠. 검술은 가르쳐 드릴 수 있습니다.”
|
||
|
||
“그건 좀 솔깃하네요?”
|
||
|
||
농담을 던지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본 채 웃었다. 어이가 없어서, 그리고 즐거워서. 한참을 웃다가 디에타는 흐, 하고 길게 숨을 뱉어내곤 말했다.
|
||
|
||
“나진? 언제든 좋아요. 당신이 연애 감정이란 걸 느끼면 꼭 알려줘요. 그 상대가 저라면 좋겠지만, 제가 아니어도 좋아요.”
|
||
|
||
바람이 불어왔다.
|
||
|
||
디에타의 머리칼이 흔들렸다.
|
||
|
||
“저는 지금부터 당신이 내게 반하도록··· 설령 당신이 다른 누군가에게 반하더라도, 결국에 나를 선택하도록 만들 거예요.”
|
||
|
||
바람에 흔들리는 연갈색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디에타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샛노란 눈동자가 별처럼 빛났다.
|
||
|
||
“경매에요. 경쟁자가 나타난다면, 상대보다 더 좋은 조건, 더 많은 재화를 때려 박아서 빼앗아버리면 그만인 법.”
|
||
|
||
무얼, 하고 그녀는 말했다.
|
||
|
||
“저는 금화를 삼키는 뱀. 제국 제일의 거상이 될 상인이랍니다. 사람의 마음 하나 사들이지 못해서야 거상의 이름이 울지 않겠어요?”
|
||
|
||
반드시 당신을 가지겠다.
|
||
|
||
그렇게 포부를 밝힌 소녀의 기세에 나진은 자신이 밀렸음을 인정해야 했다. 단 한 번도 기세에서 밀려본 적이 없는 나진이, 상대가 소드마스터라도 고개를 빳빳이 세운 채 달려들던 나진이 처음으로 뒤로 물러섰다.
|
||
|
||
나진의 패배였다.
|
||
|
||
하지만 기분 나쁜 패배는 아니었다.
|
||
|
||
“인상적인 고백이네요.”
|
||
|
||
“그렇죠? 제가 생각해도 대사 참 잘 친 것 같은데. 어때요, 좀 두근거렸나요?”
|
||
|
||
“조금은.”
|
||
|
||
디에타가 피식 웃었다.
|
||
|
||
그녀가 손을 뻗어 나진의 가슴팍을 가볍게 밀쳤다. 나진에게 거리를 벌리며 자연스럽게 헤어질 작정이었지만, 디에타는 몇 걸음 가지 못해 멈춰 섰다.
|
||
|
||
원래 계획은 여기서 ‘그럼 다음에 봐요’ 하고 떠날 생각이었다. 더 얼굴을 보고 있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참 애석하게도 여기서 캄브리아, 그것도 그녀의 집무실까지의 거리는 꽤 멀었다.
|
||
|
||
‘여기서 집무실까지 걸어가면······.’
|
||
|
||
그때는 이미 해가 져 있을 것이다.
|
||
|
||
디에타는 살짝 고개를 돌려 나진을 바라봤다.
|
||
|
||
“······저기, 나진?”
|
||
|
||
“네. 디에타.”
|
||
|
||
“돌, 돌아갈까요? 우리?”
|
||
|
||
조금 전의 기세는 어디로 가고,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며 말을 더듬는 디에타의 모습에 나진은 그만 웃고 말았다. 결국 디에타는 나진의 품에 안긴 채 집무실로 귀환했다.
|
||
|
||
이동하는 동안 제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나진과 눈도 마주치지 못한 건 덤이었다.
|
||
|
||
3.
|
||
|
||
-연애는 안 돼.
|
||
|
||
“예?”
|
||
|
||
-연애는 안 된다고!
|
||
|
||
디에타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나진이 처음으로 마주한 것은, 씩씩대는 멀린의 모습이었다. 멀린은 나진에게 손가락질하며 소리 질렀다.
|
||
|
||
-잘 들어. 아서는 여정의 끝까지 연애 한번 하지 않았어. 아서에게 고백하는 얼간이가 없던 건 아니야. 하지만 아서는 고고했지. 절대!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허락하지 않았어.
|
||
|
||
거기까지 말한 뒤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는데, 꼭 나진을 설득할 완벽한 논리를 발견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
||
|
||
-자, 아서왕을 동경해서 닮고 싶어 하는 네가 연애하지 않을 이유로는 충분하지?
|
||
|
||
그런 멀린을 빤히 바라보던 나진은, 멀린에게 들리지 않게끔 주의해서 독백했다.
|
||
|
||
이 사람 바보인가?
|
||
|
||
멀린이 들었다면 눈을 부릅뜨고 나진을 들들 볶아댈 만한 독백이었지만, 참 다행스럽게도 나진의 속내가 멀린의 귀에 들어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진은 오묘한 표정으로 멀린을 흘겨봤다.
|
||
|
||
-왜. 뭐. 왜.
|
||
|
||
“아뇨 그냥······.”
|
||
|
||
말끝을 흐리던 나진이 툭, 던지듯이 말했다.
|
||
|
||
“아서왕이 연애를 안 했다고 했죠?”
|
||
|
||
-물론이지. 아서의 길잡이였던 내가 보증해.
|
||
|
||
“그럼 제가 연애까지 해버리면, 아서왕보다 한 걸음 더 앞선 것 아닙니까? 아서왕이 하지 않았던 일을 해낸 거니까요.”
|
||
|
||
-······어?
|
||
|
||
“연애를 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군요.”
|
||
|
||
말문이 막힌 멀린의 동공이 흔들리는 가운데, 나진은 옷을 정리하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멀린에게서 등을 돌렸다.
|
||
|
||
-잠깐. 잠깐만.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야! 자는 척하지 말고 일어나. 일어나봐!
|
||
|
||
멀린이 소리를 질러댔지만 나진은 무시했다.
|
||
|
||
좀 시끄러울 뿐 멀린은 나진에게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었으며, 나진의 어깨를 잡아당겨 자기 쪽으로 돌리지도 못했다. 보통은 그리 소리 질러 대면 잠에 드는 것이라도 방해할 수 있었을 텐데, 지하도시의 골목길에서도 잘만 노숙했던 나진에겐 별 소용이 없었다.
|
||
|
||
-자? 진짜 자게? 야, 너 진짜 이럴 거야?
|
||
|
||
멀린의 칭얼거림을 자장가 삼아 나진은 잠에 들었다.
|
||
|
||
나진의 승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