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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수도에 놓인 마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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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와 점성술사들의 탑, 회색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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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보기엔 탑(塔)이나, 그곳에 머무르는 마법사들에겐 회색탑은 하늘을 관측하기 위한 관측소에 불과했다. 그렇게 회색탑의 마법사들은 언제나와 다를 것 없이 오늘 또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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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을 수놓은 별자리의 흐름을 읽고, 새로운 별이 탄생했는지, 또 지는 별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그들의 일과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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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들의 업무는 대체로 정적이며 큰 변화가 없기로 유명했다. 밤하늘의 별자리가 그리 크게 변하는 일은 좀처럼 없으니까. 역사를 뒤흔들 대사건 정도는 와야 하늘의 별이 요동치곤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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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대사건이 뭐 그리 자주 오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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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탑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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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탑주, 나유타는 소파에 늘어져 커피를 쪽쪽 빨며 흥얼거렸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회색탑주라는 직책은 놀고먹기에 최적이었다. 예산은 빵빵하게 나오는데, 정작 하는 업무라곤 느긋하게 하늘을 바라보는 게 고작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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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동네 백금탑주는 개고생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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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야는 기본에, 밤잠 줄여가며 뺑이치는 제 동기를 떠올리며 회색탑주 나유타는 웃음을 흘렸다. 그러게 누가 백금탑에 들어가랬는가?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승리자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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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유타가 오늘도 어제와 다를 바 없는, 느긋하게 꿀을 빠는 일상을 보내려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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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웅, 하고 회색탑이 뒤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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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와 연동해 둔 회색탑은 별자리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이렇게 크게 탑이 흔들렸다는 것은 하늘에 큰 변화가 생겼음을 의미했다. 눈을 부릅뜬 나유타가 고개를 휙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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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요동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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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들이 요란스레 움직였으며, 양옆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마치 아서의 별자리가 요동쳤을 때와 같은 모양새였다. 거대한 별자리의 태동은 그것만으로도 하늘을 뒤흔들게 만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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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아서왕의 별이 움직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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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때와는 무언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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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이 공포에 질려 도망치고 있었다. 나유타의 시선이 미끄러졌다. 평소에는 놀고 먹지만 그녀는 제국에게 공인받은 1급 점성술사였다. 그 눈동자는 흐름의 중심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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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유타의 눈에서 피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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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관측할 수도, 이해할 수도, 감히 바라봐서도 안되는 거대한 별이 있었기에. 검붉은 흉성(凶星), 마녀의 별자리를 마주한 순간 나유타의 눈과 코에서 피가 흘렀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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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천년의 세월 간 침묵하던 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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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의 마녀의 별자리가 그곳에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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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붉은 별은 아주 짧은 순간 동안만 모습을 드러내고, 어둠 속으로 그 존재를 감추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하늘을 뒤흔들고 진탕을 쳐 놓았다. 별자리들이 혼란에 휩싸인 가운데 나유타는 시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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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별이 짧게나마 비추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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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그녀는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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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헨지(Stonehe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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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무덤이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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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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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용은 하늘을 향해 포효를 내지르며, 눈에 보이는 것을 닥치는 대로 깨부수기 시작했다. 황실의 기사단이 후퇴하기 시작했으며 백각 모험가들도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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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이상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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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었던 이야기와는 상황이 달라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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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룡과 적룡이 상처 없이 부활한 것까지는 이해해 줄 만했다 했다. 그래도 잡을 방법은 보였고, 상대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적룡은 달랐다. 그 덩치가 두세배는 커졌으며 기세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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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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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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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소드 시커급의 인력으로 어찌해볼 만한 적이 아니다. 붉은 빛을 흩뿌리는 비늘에 검기가 통할 것 같지도 않으며, 저 두꺼운 목을 벨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적룡이 내뿜는 압박감은 진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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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고 달려든다면 상처 한둘 정도는 만들 수 있겠지만, 그리해서야 수지타산이 맞질 않는다. 결국 그들은 모험가였고 목숨과 이득을 저울질하는 이들이었다. 의무에 묶인 기사가 아니라 자유로운 모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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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안 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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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할 만한 적이 아니다. 불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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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소드 시커가 열 명은 있어야 해. 넷으로 상대할 만한 수준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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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소드 마스터라도 데려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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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소드 시커가 열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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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어디까지나 최소일 뿐, 열 명이 모인다 해도 사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확신이 서질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사냥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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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각 모험가 셋은 그리 중얼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이미 한명이 일격에 나가떨어진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더 싸우는 건 멍청이들이나 할법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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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튀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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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에 멍청이가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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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던 로젤린 아스칼로가 툭 내뱉었다. 그녀는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은 채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의 한마디에 백각 모험가, 리하르트 폴셴이 눈살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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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가 옳다. 제국의 지원군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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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지원군보다 저 시뻘건 용이 캄브리아를 덮치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리하르트 아저씨, 그거 몰라서 하는 말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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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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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자신들이 도망친다면 적룡은 가장 가까운 도시인 캄브리아로 향할 것이다. 용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죽이고, 문명을 파괴하기 위해 움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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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캄브리아는 적룡을 막아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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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캄브리아에서 가장 강한 인력이며, 캄브리아의 남은 모험가들을 죄다 합쳐보아야 용을 사냥할 수는 없다. 소드 시커급의 출력이 아니라면 용의 비늘에 흠집조차 낼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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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싸우겠다고 말하는 건가? 로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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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거 말고 방법이 있나? 도시 사람들이 죽든 말든 그냥 나 몰라라 도망치는 방법도 있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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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이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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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캄브리아에 묶인 재산이 좀 많아, 아저씨. 최근에 용병단 거점도 새로 마련했고, 집도 하나 샀단 말이지? 내가 그거 사려고 얼마나 뺑이를 쳐댔는데··· 다 날아가면 좀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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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 놈들이 죽게 내버려두는 것도 좀 그렇고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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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중얼거리며 로젤린은 손에 쥔 걸작을 빙글빙글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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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건 내 사정이긴 하지. 아저씨랑 거기 뒤에 둘은 튈 거면 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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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말야, 하고 로젤린이 히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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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늬들, 나중에 내가 겁쟁이 쪼다 새끼라고 욕해도 할 말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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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이 제 쌍검을 맞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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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이이잉! 고막을 찌르는 소음이 메아리친 순간이다. 후퇴하는 기사단을 쫓아 움직이려던 적룡의 머리가 로젤린 쪽으로 휙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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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지. 여기다, 도마뱀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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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 아스칼로가 입가를 틀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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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뻘건 놈들끼리 놀아야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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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제 눈가를 툭툭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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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소용돌이 치는 눈동자는 마녀의 증거. 마녀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로젤린은, 자신과 같은 눈동자를 지닌 적룡을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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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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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룡이 포효를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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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의 도발에 응하듯, 그녀를 적으로 인식한 적룡이 로젤린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경로상의 모든 것을 깨부수며 다가오는 적룡의 모습에 로젤린이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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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빡세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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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혼자선 절대 못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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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뒤를 흘겨봤다. 백각 모험가 셋. 저놈들이 합류한다면 작은 가능성이라도 생길게 분명했지만, 그들은 침묵한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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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도망치기도 좀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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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도 캄브리아에는 정이 들었을 것이며, 거점을 캄브리아에 두고 있지 않은가. 승산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목숨을 걸기 아까워서 머뭇거리고 있을 뿐이다. 즉, 그건 달리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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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조금만 기울어도 저들은 합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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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로젤린이 보여야 할 것은 가능성이다. 조금이라도 좋으니 저들이 승산을 느낄만한 상황을 만들어내야 했다. 당연하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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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이럴 때 같이 달려갈 놈이 하나는 있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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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대로라면 여기도 있었다. 그런 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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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발부터 들이밀고 보며, 앞뒤 안 재고 달려드는 놈. 그녀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애송이. 하지만 그 놈은 일격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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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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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이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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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대로 혼자서라도 해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그녀가 걸작, 메아리를 고쳐 쥔 채 적룡을 향해 걸음을 내디디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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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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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서 돌무더기가 하늘로 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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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들려온 굉음. 로젤린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무너진 돌기둥의 잔해를 깨부수며 뛰쳐나온 것은 검을 쥔 소년이다. 그 모습에 눈을 크게 뜬 로젤린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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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미친 새끼네 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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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정통으로 맞고 바로 움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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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터뜨리면서 로젤린이 고개를 까딱였다. 용을 사이에 두고 로젤린과 나진의 시선이 교차했다. 별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로젤린이 오른쪽을 가리키며 달린 순간, 나진은 왼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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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시대의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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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숨 쉬는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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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괴물을 향해 두 검사가 질주했다. 용의 덩치에 비하면 두 인간은 보잘것없지만, 그들이 손에 쥔 검에서 피워 올린 검기(劍氣)마저 그렇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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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몸으로 붙잡은 초월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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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비늘을 꿰뚫을 가능성을 지닌 빛무리가 찬란히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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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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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룡을 향해 달리며 나진은 숨을 골랐다. 용의 꼬리에 후려쳐진 까닭에 호흡이 거칠었다. 몸이 삐걱거렸다. 하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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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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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며 나진은 속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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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그거, 마녀의 별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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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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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가 개입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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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내륙이다. 성좌들이 거의 개입하지 못하는 안정된 공간이란 뜻이었다. 그러나 마녀는 모종의 수단을 써서 개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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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년이 개입한 게 맞아. 본래대로라면 적룡은 결코 백룡을 공격하지 않아. 하나에서 쪼개진 존재인 만큼 서로를 아주 소중히 여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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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가 적룡을 조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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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하여, 백룡을 삼키고 완전해지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용의 본질을 건드렸다고 멀린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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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수단을 썼는진 몰라도, 다시 쓰진 못할 거야. 베디비어가 원탁을 움직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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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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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에는 재배치되고 정렬되는 별자리가 보이겠지. 그 풍경은 분명 장관일 테지만, 지금 나진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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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란의 존재이니, 원탁이니, 그런 하늘 높이 떠 있는 이들에게 신경 쓰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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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눈앞에서 포효하고 있는 용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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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전장은 이곳이다. 자신의 적수는 땅에 발을 디디고 포효하는 적룡이다. 그러니 나진이 집중해야 할 것은 저 붉은 용뿐이었다. 삐걱이는 다리로 땅을 박차고 달리며 나진이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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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하다. 빠르다. 베기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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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가 몇 배는 커진 적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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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전 일격을 받아내며 나진은 직감했다. 통상적인 수단으로는 적룡을 벨 수 없었다. 저 비늘을 찢어발기고 검을 박아 넣을 방법을 떠올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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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에서 완전해진 적룡은 멀린이 이야기했던 용의 특성을 온전히 지닌 신비의 짐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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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마스터 정도는 되어야 저 목을 일격에 잘라낼 수 있겠지. 지금의 나진은 저 비늘에 흠집을 내는 게 고작이었다. 같은 장소를 수십, 수백번이고 후려치면 벨 수 있을까? 확신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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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고도 승산이 불투명한 상대.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나진이 숨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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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사냥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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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에게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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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얼마나 강해졌던 나진이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우선 저 말도 안 되는 기동력을 빼앗아야 했다. 나진의 눈동자는 적룡의 날개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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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날기 시작하면 잡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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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흥분해 땅을 기어다닐 때 저 날개를 찢어야만 했다. 나진과 시선을 교환한 로젤린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한 듯싶었다. 달려드는 용의 측면으로 두 사람은 미끄러지듯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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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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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칼자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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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휘감은 것은 백색과 금색으로 이루어진 별자리. 이것이 용들의 역린(逆麟)이란 사실을 나진은 알고 있었다. 멀린이 그렇게 말해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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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를 닮은 백금색의 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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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들의 신비를 꿰뚫을 가능성을 지닌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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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나진은 머릿속으로 동화의 한장면을 떠올렸다. 신화시대의 거대한 괴물, 거인과 용을 향해 망설임 없이 달려들던 아서의 모습. 그 전투의 끝에서 아서는 하늘에 별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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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위업, 영웅으로의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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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검이 저 용에게 통할지 안통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진은 결정했다. 저 용을 기어코 쓰러트리겠노라고. 아서가 이룬 것 이상의 위업을 이루어 별을 새기고 말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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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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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정했다. 그렇다면 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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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나진의 검기가 크게 점멸하며 번뜩였다. 그에 응하듯, 반대쪽에서 뛰어오른 로젤린이 쌍검을 맞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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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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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린이 나진의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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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이가 아니라 나진. 망설임 없이 전장에 뛰어든 나진에게 존중을 표하듯, 그녀는 기꺼이 나진을 이름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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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아무한테나 해주는 거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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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퍼뜨린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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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이 만들어낸 파장이 나진의 코앞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네 자리도 마련해 두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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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 먹여라. 가장 센 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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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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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눈앞에서 일렁이는 파장을 향해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휘두를 수 있는 가장 강한 일격. 파장에 나진의 검기가 뒤섞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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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이이이이이이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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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분의 검기를 실은 메아리가 몇겹으로 겹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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