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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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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수도에 놓인 마탑.

천문학자와 점성술사들의 탑, 회색탑.

바깥에서 보기엔 탑(塔)이나, 그곳에 머무르는 마법사들에겐 회색탑은 하늘을 관측하기 위한 관측소에 불과했다. 그렇게 회색탑의 마법사들은 언제나와 다를 것 없이 오늘 또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자리의 흐름을 읽고, 새로운 별이 탄생했는지, 또 지는 별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그들의 일과였으니까.

다만 그들의 업무는 대체로 정적이며 큰 변화가 없기로 유명했다. 밤하늘의 별자리가 그리 크게 변하는 일은 좀처럼 없으니까. 역사를 뒤흔들 대사건 정도는 와야 하늘의 별이 요동치곤 하는데······.

‘역사적 대사건이 뭐 그리 자주 오겠어?

회색탑의 주인.

회색탑주, 나유타는 소파에 늘어져 커피를 쪽쪽 빨며 흥얼거렸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회색탑주라는 직책은 놀고먹기에 최적이었다. 예산은 빵빵하게 나오는데, 정작 하는 업무라곤 느긋하게 하늘을 바라보는 게 고작이 아니던가?

‘옆 동네 백금탑주는 개고생하던데.

철야는 기본에, 밤잠 줄여가며 뺑이치는 제 동기를 떠올리며 회색탑주 나유타는 웃음을 흘렸다. 그러게 누가 백금탑에 들어가랬는가?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승리자이거늘.

그렇게 나유타가 오늘도 어제와 다를 바 없는, 느긋하게 꿀을 빠는 일상을 보내려던 순간이다.

쿠웅, 하고 회색탑이 뒤흔들렸다.

천체와 연동해 둔 회색탑은 별자리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이렇게 크게 탑이 흔들렸다는 것은 하늘에 큰 변화가 생겼음을 의미했다. 눈을 부릅뜬 나유타가 고개를 휙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이 요동치고 있었다.

별자리들이 요란스레 움직였으며, 양옆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마치 아서의 별자리가 요동쳤을 때와 같은 모양새였다. 거대한 별자리의 태동은 그것만으로도 하늘을 뒤흔들게 만드니.

‘또 아서왕의 별이 움직였나?

아니, 그때와는 무언가 달랐다.

별들이 공포에 질려 도망치고 있었다. 나유타의 시선이 미끄러졌다. 평소에는 놀고 먹지만 그녀는 제국에게 공인받은 1급 점성술사였다. 그 눈동자는 흐름의 중심을 꿰뚫었다.

그리고, 나유타의 눈에서 피가 흘렀다.

그곳엔 관측할 수도, 이해할 수도, 감히 바라봐서도 안되는 거대한 별이 있었기에. 검붉은 흉성(凶星), 마녀의 별자리를 마주한 순간 나유타의 눈과 코에서 피가 흘렀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일천년의 세월 간 침묵하던 별자리.

나락의 마녀의 별자리가 그곳에 있었으므로.

검붉은 별은 아주 짧은 순간 동안만 모습을 드러내고, 어둠 속으로 그 존재를 감추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하늘을 뒤흔들고 진탕을 쳐 놓았다. 별자리들이 혼란에 휩싸인 가운데 나유타는 시선을 내렸다.

마녀의 별이 짧게나마 비추었던 곳.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그녀는 떠올렸다.

스톤헨지(Stonehenge).

용의 무덤이 있는 곳이었다.

붉은 용은 하늘을 향해 포효를 내지르며, 눈에 보이는 것을 닥치는 대로 깨부수기 시작했다. 황실의 기사단이 후퇴하기 시작했으며 백각 모험가들도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무언가 이상했으니까.

들었던 이야기와는 상황이 달라졌으니까.

백룡과 적룡이 상처 없이 부활한 것까지는 이해해 줄 만했다 했다. 그래도 잡을 방법은 보였고, 상대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적룡은 달랐다. 그 덩치가 두세배는 커졌으며 기세가 달라졌다.

이건, 안된다.

그들은 직감했다.

저건 소드 시커급의 인력으로 어찌해볼 만한 적이 아니다. 붉은 빛을 흩뿌리는 비늘에 검기가 통할 것 같지도 않으며, 저 두꺼운 목을 벨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적룡이 내뿜는 압박감은 진짜였다.

목숨을 걸고 달려든다면 상처 한둘 정도는 만들 수 있겠지만, 그리해서야 수지타산이 맞질 않는다. 결국 그들은 모험가였고 목숨과 이득을 저울질하는 이들이었다. 의무에 묶인 기사가 아니라 자유로운 모험가.

“이건 안 되겠는데.”

“상대할 만한 적이 아니다. 불가능해.”

“적어도 소드 시커가 열 명은 있어야 해. 넷으로 상대할 만한 수준이 아니야.”

“아니면 소드 마스터라도 데려오던가.”

최소한 소드 시커가 열은 있어야 한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최소일 뿐, 열 명이 모인다 해도 사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확신이 서질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사냥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으니까.

백각 모험가 셋은 그리 중얼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이미 한명이 일격에 나가떨어진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더 싸우는 건 멍청이들이나 할법한 일이었다.

“그래서 튀겠다고?”

그리고, 여기에 멍청이가 하나 있었다.

침묵하던 로젤린 아스칼로가 툭 내뱉었다. 그녀는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은 채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의 한마디에 백각 모험가, 리하르트 폴셴이 눈살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후퇴가 옳다. 제국의 지원군이 올 때까지···.”

“제국의 지원군보다 저 시뻘건 용이 캄브리아를 덮치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리하르트 아저씨, 그거 몰라서 하는 말 아니지?”

로젤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자신들이 도망친다면 적룡은 가장 가까운 도시인 캄브리아로 향할 것이다. 용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죽이고, 문명을 파괴하기 위해 움직이니까.

그리고 캄브리아는 적룡을 막아낼 수 없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캄브리아에서 가장 강한 인력이며, 캄브리아의 남은 모험가들을 죄다 합쳐보아야 용을 사냥할 수는 없다. 소드 시커급의 출력이 아니라면 용의 비늘에 흠집조차 낼 수 없으니까.

“그래서 싸우겠다고 말하는 건가? 로젤린.”

“뭐 그거 말고 방법이 있나? 도시 사람들이 죽든 말든 그냥 나 몰라라 도망치는 방법도 있긴 한데···.”

로젤린이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캄브리아에 묶인 재산이 좀 많아, 아저씨. 최근에 용병단 거점도 새로 마련했고, 집도 하나 샀단 말이지? 내가 그거 사려고 얼마나 뺑이를 쳐댔는데··· 다 날아가면 좀 그렇지?”

부하 놈들이 죽게 내버려두는 것도 좀 그렇고 말야.

그리 중얼거리며 로젤린은 손에 쥔 걸작을 빙글빙글 돌렸다.

“물론 이건 내 사정이긴 하지. 아저씨랑 거기 뒤에 둘은 튈 거면 튀던가.”

근데 말야, 하고 로젤린이 히죽였다.

“그럼 늬들, 나중에 내가 겁쟁이 쪼다 새끼라고 욕해도 할 말 없는 거다?”

로젤린이 제 쌍검을 맞부딪쳤다.

키이이이잉! 고막을 찌르는 소음이 메아리친 순간이다. 후퇴하는 기사단을 쫓아 움직이려던 적룡의 머리가 로젤린 쪽으로 휙 돌아갔다.

“옳지. 여기다, 도마뱀 새끼야.”

로젤린 아스칼로가 입가를 틀어 올렸다.

“시뻘건 놈들끼리 놀아야지, 안 그래?”

그녀가 제 눈가를 툭툭 두들겼다.

붉게 소용돌이 치는 눈동자는 마녀의 증거. 마녀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로젤린은, 자신과 같은 눈동자를 지닌 적룡을 노려봤다.

『————————!』

적룡이 포효를 내질렀다.

로젤린의 도발에 응하듯, 그녀를 적으로 인식한 적룡이 로젤린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경로상의 모든 것을 깨부수며 다가오는 적룡의 모습에 로젤린이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빡세긴 하네.

저건 혼자선 절대 못 잡는다.

그녀가 뒤를 흘겨봤다. 백각 모험가 셋. 저놈들이 합류한다면 작은 가능성이라도 생길게 분명했지만, 그들은 침묵한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다는 듯이.

하기야, 도망치기도 좀 그렇겠지.

저들도 캄브리아에는 정이 들었을 것이며, 거점을 캄브리아에 두고 있지 않은가. 승산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목숨을 걸기 아까워서 머뭇거리고 있을 뿐이다. 즉, 그건 달리 말하자면······.

상황이 조금만 기울어도 저들은 합류할 것이다.

지금 로젤린이 보여야 할 것은 가능성이다. 조금이라도 좋으니 저들이 승산을 느낄만한 상황을 만들어내야 했다. 당연하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쯧, 이럴 때 같이 달려갈 놈이 하나는 있어야 하는데.

원래대로라면 여기도 있었다. 그런 놈이.

일단 발부터 들이밀고 보며, 앞뒤 안 재고 달려드는 놈. 그녀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애송이. 하지만 그 놈은 일격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후우······.”

로젤린이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잡았다.

아쉬운 대로 혼자서라도 해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그녀가 걸작, 메아리를 고쳐 쥔 채 적룡을 향해 걸음을 내디디려는 순간이다.

콰앙!

저 멀리서 돌무더기가 하늘로 튀어 올랐다.

난데없이 들려온 굉음. 로젤린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무너진 돌기둥의 잔해를 깨부수며 뛰쳐나온 것은 검을 쥔 소년이다. 그 모습에 눈을 크게 뜬 로젤린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제대로 미친 새끼네 저거.”

그걸 정통으로 맞고 바로 움직여?

웃음을 터뜨리면서 로젤린이 고개를 까딱였다. 용을 사이에 두고 로젤린과 나진의 시선이 교차했다. 별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로젤린이 오른쪽을 가리키며 달린 순간, 나진은 왼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신화시대의 짐승.

살아 숨 쉬는 신비.

거대한 괴물을 향해 두 검사가 질주했다. 용의 덩치에 비하면 두 인간은 보잘것없지만, 그들이 손에 쥔 검에서 피워 올린 검기(劍氣)마저 그렇지는 않다.

인간의 몸으로 붙잡은 초월의 편린.

용의 비늘을 꿰뚫을 가능성을 지닌 빛무리가 찬란히 피어올랐다.

적룡을 향해 달리며 나진은 숨을 골랐다. 용의 꼬리에 후려쳐진 까닭에 호흡이 거칠었다. 몸이 삐걱거렸다. 하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멀린.

달리며 나진은 속으로 말했다.

‘방금 그거, 마녀의 별 맞죠?

-맞아.

‘마녀가 개입한 거예요?

이곳은 내륙이다. 성좌들이 거의 개입하지 못하는 안정된 공간이란 뜻이었다. 그러나 마녀는 모종의 수단을 써서 개입했다.

-그년이 개입한 게 맞아. 본래대로라면 적룡은 결코 백룡을 공격하지 않아. 하나에서 쪼개진 존재인 만큼 서로를 아주 소중히 여겼으니까.

마녀가 적룡을 조종했다.

조종하여, 백룡을 삼키고 완전해지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용의 본질을 건드렸다고 멀린은 말했다.

-어떤 수단을 썼는진 몰라도, 다시 쓰진 못할 거야. 베디비어가 원탁을 움직였으니까.

멀린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재배치되고 정렬되는 별자리가 보이겠지. 그 풍경은 분명 장관일 테지만, 지금 나진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캄란의 존재이니, 원탁이니, 그런 하늘 높이 떠 있는 이들에게 신경 쓰기에는···.

지금 눈앞에서 포효하고 있는 용이 있었으니까.

자신의 전장은 이곳이다. 자신의 적수는 땅에 발을 디디고 포효하는 적룡이다. 그러니 나진이 집중해야 할 것은 저 붉은 용뿐이었다. 삐걱이는 다리로 땅을 박차고 달리며 나진이 눈을 부릅떴다.

‘묵직하다. 빠르다. 베기엔 힘들다.

덩치가 몇 배는 커진 적룡.

아까전 일격을 받아내며 나진은 직감했다. 통상적인 수단으로는 적룡을 벨 수 없었다. 저 비늘을 찢어발기고 검을 박아 넣을 방법을 떠올려야만 했다.

반쪽짜리에서 완전해진 적룡은 멀린이 이야기했던 용의 특성을 온전히 지닌 신비의 짐승이다.

소드 마스터 정도는 되어야 저 목을 일격에 잘라낼 수 있겠지. 지금의 나진은 저 비늘에 흠집을 내는 게 고작이었다. 같은 장소를 수십, 수백번이고 후려치면 벨 수 있을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목숨을 걸고도 승산이 불투명한 상대.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나진이 숨을 가다듬었다.

‘용 사냥의 기본.

멀린에게 배운 것.

상대가 얼마나 강해졌던 나진이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우선 저 말도 안 되는 기동력을 빼앗아야 했다. 나진의 눈동자는 적룡의 날개를 향했다.

하늘을 날기 시작하면 잡을 수 없다.

지금 흥분해 땅을 기어다닐 때 저 날개를 찢어야만 했다. 나진과 시선을 교환한 로젤린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한 듯싶었다. 달려드는 용의 측면으로 두 사람은 미끄러지듯 달려 나갔다.

꾸욱.

나진이 칼자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검을 휘감은 것은 백색과 금색으로 이루어진 별자리. 이것이 용들의 역린(逆麟)이란 사실을 나진은 알고 있었다. 멀린이 그렇게 말해주었으니까.

아서를 닮은 백금색의 검기.

용들의 신비를 꿰뚫을 가능성을 지닌 빛.

멀린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나진은 머릿속으로 동화의 한장면을 떠올렸다. 신화시대의 거대한 괴물, 거인과 용을 향해 망설임 없이 달려들던 아서의 모습. 그 전투의 끝에서 아서는 하늘에 별을 걸었다.

별, 위업, 영웅으로의 첫걸음.

자신의 검이 저 용에게 통할지 안통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진은 결정했다. 저 용을 기어코 쓰러트리겠노라고. 아서가 이룬 것 이상의 위업을 이루어 별을 새기고 말 것이라고.

‘반드시.

그리 정했다. 그렇다면 행할 뿐이다.

나진이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나진의 검기가 크게 점멸하며 번뜩였다. 그에 응하듯, 반대쪽에서 뛰어오른 로젤린이 쌍검을 맞부딪쳤다.

“어이, 나진.”

로젤린이 나진의 이름을 불렀다.

애송이가 아니라 나진. 망설임 없이 전장에 뛰어든 나진에게 존중을 표하듯, 그녀는 기꺼이 나진을 이름으로 불렀다.

“이거 아무한테나 해주는 거 아닌데.”

그녀가 퍼뜨린 메아리.

걸작이 만들어낸 파장이 나진의 코앞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네 자리도 마련해 두었다는 듯이.

“한 방 먹여라. 가장 센 거로.”

나진이 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눈앞에서 일렁이는 파장을 향해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휘두를 수 있는 가장 강한 일격. 파장에 나진의 검기가 뒤섞인 순간이다.

키이이이이이이이이잉!

두 사람분의 검기를 실은 메아리가 몇겹으로 겹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