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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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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적룡이 비상했다.

백각 모험가들과 기사단이 퍼붓는 맹공에 비늘이 벗겨지든 말든, 적룡은 날개를 쫙 편 채 하늘로 솟구쳤다. 마치 처음부터 이 순간만을 노리고 있었단 것처럼.

“······!”

백룡의 날개를 해체하고 있던 나진이 눈을 부릅떴다. 등줄기를 타고 내달리는 오한. 직감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선 제 직감을 따라 움직이는 게 대체로 옳음을 나진은 알고 있었다.

콱, 콰드드득!

백룡의 날갯죽지에 깊게 박아 넣은 검을 나진은 시계 방향으로 비틀었다. 살가죽이 찢어지고 드러난 백룡의 새하얀 뼈가 ‘드드드드득! 소리를 내며 갈려 나갔다.

『———————!』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백룡이 몸부림쳤지만, 한쪽 날개가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균형을 잡을 수는 없는 법이다. 백룡의 몸부림은 추락의 속도를 조금 늦췄을 뿐이지만··· 나진에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스칵!

날갯죽지에 박아 넣은 검을 뽑아냈다.

분수처럼 솟구치는 핏물 사이로 나진이 몸을 던졌다. 백룡의 날개 뒤로 미끄러지듯 이동한 나진은 다시 한번 검을 쑤셔 박았다. 칼자루에 매달린 채 나진은 백룡의 날개 뒤에 제 몸을 숨겼다.

그 판단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솟구친 적룡이 쩌억 벌린 아가리에서 불길을 토해냈으므로. 용의 숨결, 브레스(Breath) 따위로 불리는 용종의 전유물. 최소 6서클의 주문과 같은 위력을 지녔다는 불길이 적룡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열기와 열풍, 그리고 밀려드는 화염.

적룡은 망설임 없이 백룡을 향해 브레스를 뿜었다. 제 반쪽이자, 동족인 아군을 공격한 것이다. 그 이유를 나진은 알 수 없지만 상황을 이해하는 것보다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화아아아아아아악!

백룡의 날개 뒤로 숨은 나진이 몸을 웅크렸다.

맨몸으로 맞았더라면 분명 녹아내렸을 불길. 하지만 백룡이 한번 불길을 걸러주었기에 간신히 견딜만했다. 날개를 관통해 느껴지는 열기에 나진의 살갗이 치이이익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갔다.

울부짖은 백룡의 비명과.

백룡의 살갗이 타들어 가는 소음.

나진이 난도질한 상처 위로 불길이 옮겨붙었다. 백룡의 비늘은 불길을 견뎌낼 수 있지만, 나진이 억지로 찢어 벌린 틈새를 따라 흐르는 불길이 백룡을 불태우고 있었다.

-뭐···야? 왜?

당황한 멀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로서도 예상 못 한 상황.

무언가 틀어졌음을 나진은 깨달았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믿어야 할 것은 자신의 직감이다. 제 감각이 경고하는 대로 나진은 움직였다.

‘적룡은 나를 노린 게 아니다.

백룡을 노렸다. 내가 아니라 백룡을.

그렇다면 브레스로 끝날 리가 없다. 불길은 백룡을 좀먹을 뿐 끝장낼 수 없으니. 다음이 온다. 다음은 무엇인가? 불길이 옅어지고 있었다.

몸의 반동을 이용해 나진이 자세를 바꿨다. 아직 열기가 남은 백룡의 등 위에 나진은 바로 섰다. 꺼져가는 불길의 잔열만으로도 신발의 밑창이 녹아내렸지만,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눈을 부릅뜨고 나진은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너머를 보았다.

‘환장하겠군.

그리고 나진은 보았다.

아가리를 쩌억 벌린 채 백룡을 향해 돌진하는 적룡의 모습을.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적룡이 제 손아귀를 앞으로 뻗었다. 브레스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백룡의 목을 적룡이 움켜쥐었다.

그리곤, 콰드득.

적룡이 백룡의 목을 물어뜯었다. 용의 이빨이 용의 비늘을 박살 낸다. 비늘이 비산하고 핏물이 솟구쳤다. 백룡이 고통에 몸부림을 치기 시작하자······.

쐐에에에에엑!

백룡의 목을 물어뜯은 채 적룡이 하강했다.

온전한 두개의 날개를 펄럭이며 땅을 향해 돌진을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땅에 처박히고 만다. 제아무리 소드 시커라 한들 이런 높이에서 이만한 속도로 처박힌다면 뼈가 부러져 죽는다.

“쯧.”

나진이 혀를 찼다.

상황을 이해할 수 없지만 행동해야만 했다.

챠르르륵.

늘어트린 사슬을 나진이 적룡을 향해 내던졌다. 백룡에게 정신이 팔린 적룡의 팔에 사슬이 걸렸다. 걸린 사슬을 한번 팽팽하게 당겨본 나진은 이내 백룡의 등을 밟고 달리기 시작했다.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가운데, 역풍을 몸으로 받아내며 나진은 사슬을 잡아당기며 달렸다. 백룡의 등을 박차고 뛰어올라 적룡의 머리에 올라탔다.

‘왜 갑자기 서로 물어뜯고 지랄인진 몰라도.

나진이 검을 역수로 쥐었다.

‘어차피, 다음은 너도 떨어트릴 생각이었다.

적룡의 목에 나진이 검을 박아 넣었다.

단단히 박아 넣은 검을 움켜쥔 채 나진은 충격에 대비했다. 이윽고 뒤엉킨 백룡과 적룡이 땅에 처박혔다. 굉음과 함께 흙무더기가 튀어 올랐다.

쿵, 쿠웅, 쿠우우우웅!

땅으로 곤두박질친 두 마리의 용이 땅을 파헤치며 미끄러졌다. 흙무더기가 튀어 오르고, 무너진 돌기둥들이 잘게 부서졌다. 충격에 땅이 뒤흔들리고 서 있던 기사들이 넘어졌다.

“물러서라!”

“후퇴, 후퇴!”

용이 미끄러지는 방향에 있던 기사들이 고함을 외치며 달리기 시작했다. 넘어져 도망치지 못한 이들은 백각 모험가들의 도움을 받아 후퇴했다. 그들이 땅에 설치해 둔 거궁(巨弓)이 용의 몸에 부딪혀 박살 났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각!

그렇게 한참을 미끄러진 용 두 마리가 멈춰 섰을 무렵이다. 하늘까지 피어오른 흙먼지 너머로 소음이 들려왔다. 콰득, 콰직······ 짐승이 사냥감을 물어뜯는 듯한 소음이었다.

“무슨···?”

“저게 뭔···.”

흙먼지가 걷히며 드러난 모습에 토벌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백룡의 목을 물어뜯고, 피와 살을 탐하는 적룡의 모습이었으니.

백룡과 적룡. 본디 저들은 한 쌍을 이루는 용이 아니었던가? 저들이 이처럼 서로 다투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를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는 기록만이 한가득 남아있을 뿐이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

토벌대에 당황스러움이 번지는 가운데, 그들은 문득 적룡의 눈동자를 보았다. 붉게 소용돌이치는 눈동자. 흉흉하기 짝이 없는 눈동자였다. 제 동족의 목을 물어뜯고 피를 삼키는 용의 눈동자는 기이했다.

“···이런 시발.”

그 눈동자를 알아본 것은 오직 한 사람.

소용돌이치는 용의 눈동자와 정확하게 같은 것을 지닌, 붉은 눈 로젤린 아스칼로 뿐이었다. 그녀는 불길함을 느꼈다. 제 영혼의 절반을 이루는 마녀의 혼이 떨리고 있었으니.

그리고.

이변은 일어났다.

쿠웅.

가장 처음으로 이변을 느낀 것은 적룡의 목에 올라타 있던 나진이었다. 적룡이 백룡에게 정신이 팔린 틈에, 그 목을 끊어내고자 검을 휘두르려던 나진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거대하고도 불길한 기척.

알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감이 일대를 찍어 눌렀다. 기사와 백각 모험가를 비롯한 토벌대 전원이 경직했다. 압박감에서 벗어난 것은 나진뿐이었다. 나진은 ‘이런’ 종류의 압박감을 일찍이 느껴본 적이 있었다

멀린과의 첫 조우.

멀린이 보여주었던 풍경.

그때 나진은 이것과 똑같은 감각을 경험했었다. 속박에서 벗어난 나진은 곧장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반사적으로 바라본 하늘. 드넓게 펼쳐진 밤하늘에 이 거대한 존재감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있었다.

수많고 수많은 별 사이에 자리 잡은 공허.

새까맣게 물들어, 평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곳에··· 별이 떠 있었다. 지하도시에서 탈출한 아래 매일 같이 밤하늘을 봐온 나진이지만 저 별을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보이지 않아야 할 별.

존재해선 안 될 별.

섭리를 벗어난 망가진 별.

그것은 보통의 별과는 다르다. 백금색으로 빛나는 별들과 달리 저것은 붉었다. 검붉은색으로 빛나는 별자리가 공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별자리는 아서와 같은 열세 개의 별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녀······?

멀린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나진의 귀에 맴돌았다. 멀린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제야 나진은 저 별자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흉성(凶星), 캄란의 별.

나락의 마녀의 별자리.

수많은 별을 떨어트리고 숱한 대영웅들에게 끝을 안겨준 가장 두려운 별자리. 그 별자리가 불길한 빛을 흩뿌렸다. 한 번의 점멸. 한순간의 빛. 아주 잠깐, 찰나의 순간 동안 모습을 드러낸 별자리는 이윽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 별이 흩뿌린 빛은 남았다.

『■■, ■■■■■■■■■■■■■■!』

적룡이 포효했다. 알 수 없는, 그을음이 낀 듯한 목소리가 일대에 울려 퍼졌다. 포효와 함께 밀려드는 풍압에 나진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적룡의 몸에서 떨어져 바닥을 나뒹군 나진이 고개를 들었다.

으적, 찌이익··· 콰득.

붉게 소용돌이치는 적룡의 눈동자가 흉흉하게 빛났다. 백룡의 목을 부러트린 적룡이 손아귀로 그 살가죽을 찢어 벌렸다. 백룡의 갈비뼈를 부수고 그 안에서 박동하는 용의 심장을 뽑아냈다.

그리곤 콱.

적룡이 백룡의 심장을 씹어 삼켰다.

그 순간 적룡의 몸이 격변했다. 뼈가 비틀리는 소리. 근육이 찢어지고 비대해지는 소리. 기괴한 소음들 사이로 적룡의 골격이 변하고 그 덩치가 거대해졌다.

드득, 드드드드득!

더 많은 비늘이 돋아나고, 날개는 더욱 거대해졌으며, 생물이 지닌 격(格)이 한단계 승화했다.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일어났다.

격의 승화. 불완전에서 완전으로.

본디 하나였다가 둘로 쪼개진 용은, 남은 하나를 삼킴으로써 완전해졌다. 심장을 빼앗긴 백룡이 허물어지는 가운데 적룡의 고개가 돌아갔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아가리를 벌린 적룡의 시선이 나진을 향했다.

백룡은 죽었다.

그리고, 완전해진 용의 가장 가까이에 있던 것은 나진이었다. 나진의 검에 휘감긴 백색과 금색의 별자리를 본 순간 적룡의 동공이 쫙 찢어졌다.

백색과 금색. 백금색. 별.

용들의 역린(逆麟).

적룡이 포효와 함께 나진에게 달려들었다.

적룡이 땅을 내려찍은 순간 땅이 뒤흔들렸다. 날개를 쫙 편 채 적룡이 나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거대한 체구를 십분 활용한 돌격. 질량 그 자체를 무기 삼아 돌진하는 적룡의 모습에 나진이 숨을 헛삼켰다.

혼란에 빠질 시간 따위 없었다.

나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회피할 곳은 없다. 저 돌격을 받아내거나 쳐내야 했다. 나진의 검에 별자리가 휘감겼다. 한계까지 압축된 검기가 빛을 흩뿌렸다. 그렇게 나진이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이다.

적룡이 제 팔다리를 땅에 내려찍었다.

그리곤, 선회. 돌진의 기세를 줄이지 않은 채 적룡이 제자리에서 반회전 했다. 흙무더기를 퍼 올리며 적룡의 꼬리가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드드드드드드득!

땅을 헤집고 공기를 가르며 휘둘러진 용의 꼬리. 가공할 속도로 밀려드는 꼬리를 향해 나진은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충돌의 순간 나진은 역사의 한 구절을 떠올려야만 했다.

『용의 꼬리는 제아무리 거대한 성벽이라도 깨부순다. 하늘의 짐승 앞에 인간이 쌓아 올린 것들은 한없이 무의미하다.』

나진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검을 쥔 손가락이 우드득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검기의 반발력에 의지하고자 했으나, 용의 비늘이 가진 저항력이 검기를 흐트러트려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커, 억!”

충격이 엄습한다. 뼈가 비틀리고 근육이 찢어졌다. 채찍처럼 휘둘러진 꼬리가, 완전한 궤적을 그리며 그 끝을 가볍게 퉁긴 순간 나진의 몸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쿵, 쿠웅. 쿵!

무너진 돌기둥들을 박살 내며 나뒹군 나진이 잔해 속에 처박혔다. 단 일격. 일격을 허용한 결과였다. 돌기둥에 부딪힌 머리가 깨져 피가 흘렀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피에 나진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 ···!”

“······!”

“·········!”

토벌대가 무언가 소리쳤지만 그 목소리가 나진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삐이이이, 하는 이명만이 고막을 울릴 뿐이었다.

까드득.

나진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머리가 무거웠다. 시야가 흔들렸다.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나진이 숨을 내뱉었다.

‘멀린. 내 말 들려요?

-······응.

멀린의 목소리는 들렸다. 고막을 통해 듣는 목소리가 아닌, 영혼의 울림이었으므로.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진은 검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이 부러진 탓일까, 검을 쥔 오른손이 파르르 떨렸다.

콱, 우드드드득!

검을 쥔 오른손을 왼손으로 말아쥐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였을까, 혹은 맞춰지는 소리였을까.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손이 더는 떨리지 않았다.

나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 용(龍)이 있었다.

적룡, 드라이그 고흐.

완전에 이른 용을 노려보며 나진은 돌무더기를 해치며 바깥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하늘을 향해 포효를 내지르며 땅을 뒤흔드는 용을 향해 나진은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저 도마뱀 새끼.”

나진이 씹어뱉듯이 말했다.

“반드시 잡아 족쳐야겠습니다.”

하기야 별 얻는 게 어디 쉬울 리가 있겠는가.

이 정도는 되어야 위업을 세우는 거겠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나진이 자세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