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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헨지, 용이 봉인된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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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헨지에 집결한 토벌대는 저마다의 무기를 손질하며 시간을 기다렸다. 해는 저문 지 오래였고 밤은 깊어만 갔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기사단은 하늘을 향해 광포(光砲)를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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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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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이 쏘아진 빛 덩어리들이 어둠을 밝혔다. 하늘에는 광포로 쏘아 올린 광원이, 땅에는 광석등이 자리 잡았기에 스톤헨지 인근은 깊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대낮처럼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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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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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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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자정을 넘긴 순간 땅이 진동했다. 언덕 위에 늘어선 돌기둥들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흔들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졌다. 스톤헨지에 모여든 토벌대는 직감했다. 드디어 때가 왔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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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십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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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나진에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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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아홉, 하고 숫자를 세기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봉인식을 이루는 돌기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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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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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 번진다. 번지고 번진 끝에 돌기둥 하나가 무너졌다. 무너지는 돌기둥의 모습에 토벌대가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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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예상에 없던 일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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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스톤헨지의 봉인이 약해진 순간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돌기둥이 아예 무너지는 경우는 없었다. 이변을 느낀 기사들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무언가 다르다. 그들은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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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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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기둥들이 차례로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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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쿠구궁··· 둔중한 소리를 내며 돌기둥들이 무너지는 가운데, 땅에도 균열이 내달렸다.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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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다섯,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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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에 가까운 기둥이 무너졌다. 박차를 가하듯 거세게 흔들리는 땅 아래서 무언가 박동했다. 땅을 뒤흔드는 진동과는 다른 것. 생명이 태동하는 소음이 스톤헨지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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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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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확! 흔들리는 땅 아래에서 무언가 솟구쳤다. 무덤을 파헤치며 솟구친 것은 앙상한 뼈대로 이루어진 손아귀다. 그러나 공기와 맞닿은 순간 새하얀 뼈에 붉은 피와 살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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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게 한순간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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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초의 시간이 채 흐르기도 전에 뼈대에는 피와 살이 차올랐고, 비늘이 뒤덮였다. 그것은 재생이라기보단 시간을 되감는 것에 가까웠다. 자그마치 일천년의 시간을 되감은 용의 손아귀가 땅을 내려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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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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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우우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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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뒤흔들린다. 돌기둥들이 모조리 무너지며 봉인식이 박살 났다. 균열이 내달렸던 땅이 아래로 꺼지며 흙먼지가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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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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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구치는 흙먼지를 꿰뚫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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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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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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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으로 솟구친 두 마리의 용이 하늘에서 날개를 편 순간, 광풍이 불어닥쳤다. 밀려드는 바람에 흙먼지가 일거에 걷혔다. 기사들이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밀려드는 바람에 그들은 얼굴을 가린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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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비늘로 뒤덮인 적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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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비늘로 장식한 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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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의 용이 드높은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몇백년 전, 저들이 봉인식의 틈새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와는 다름을 토벌대는 직감했다. 기록대로라면 남아 있어야 할 부상이 저 용들에겐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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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에 흉터가 없다. 비늘이 떨어져 나간 곳도 없다. 한쪽 눈이 파헤쳐있지 않으며, 목의 절반쯤 파고든 검흔(劍痕)도 남아있지 않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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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부활. 완전한 회생(回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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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신화시대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사실을 알리듯, 두 마리의 용이 제 아가리를 쩍 벌린 채 괴성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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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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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를 울리는 괴성. 하늘의 짐승이 내뱉은 포효에 공기가 뒤흔들렸다. 땅에 발을 디디고 선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는 이들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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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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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 로젤린 아스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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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 아닌데? 저거 약화된 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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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것 같군. 봉인식이 죄다 박살 난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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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하는 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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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봐도 그리 보이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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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투덜거림에 남은 백각 모험가 셋이 답했다. 그들로서도 당황스러운 일이었으니. 들었던 것과 이야기가 다르다. 완전히 부활한 용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보통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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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애송이.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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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을 하지 않은 것은 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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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新星)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소년. 그 소년이 서 있을 곳으로 백각 모험가들은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그곳에 나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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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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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땅을 박차고 달리고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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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용의 기세에 짓눌린 가운데, 오직 나진만이 남들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였다. 질주하는 나진을 확인한 로젤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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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저놈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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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검을 고쳐 쥔 로젤린도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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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녀도 백각(白角)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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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각은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의 정점. 그리고 캄브리아의 격언은 도시의 모험가들에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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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해라. 금화를 쫓아라. 기회를 낚아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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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란 언제나 위험 속에 있는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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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을 필두로, 백각 모험가들은 달리기 시작했다. 저 하늘을 나는 용을 떨어트리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위업을 이루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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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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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용이란 멀고도 먼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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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대의 기록을 찾아보면 인간들은 용을 단지 머나먼, 하늘의 존재 정도로 여기곤 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자연 현상의 일종 정도로 여겼단 것이다. 그 이유라 해보아야 별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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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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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하늘 높이 날아다니는 용에게 무슨 수로 근접할 것인가? 무슨 수로 저들의 몸에 상처를 입힐 것인가?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무슨 수로 하늘의 존재를 이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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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인류는 용을 두려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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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신비롭고 두려운 존재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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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간은 흘렀다. 수많은 해가 뜨고 저물었으며, 여러 시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태고의 불길은 꺼졌다. 용과 거인으로부터 시작된 태초의 시대는 나락에 파묻혔으며, 신화의 시대는 아서에 의해 종막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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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도착한 곳은 인류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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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왕이 열어젖힌 인간의 시대에 인류의 문명은 끝없이 발전했고, 기어코 하늘의 존재를 사냥할 방법을 찾아냈다. 뛰어난 인간이 아니어도, 초인이 아니어도 용을 사냥할 방법. 그 방법을 스톤헨지에 늘어선 제국의 기사들이 선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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끽, 끼기기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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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기사들은 다섯이 짝을 이루어 거궁(巨弓)의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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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용을 사냥하던 것은 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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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인들이 쓰던 무기를 흉내 내 만든 거궁의 활시위에 매달린 것은 길이만 3m에 이르는 작살이다. 화살이라기엔 너무나도 거대하지만, 용의 비늘을 꿰뚫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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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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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가 떨어짐과 동시에 기사들이 활시위를 놓았다. 투웅, 하는 소리와 함께 다섯발의 작살이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용 사냥은 먼저 그 고도를 낮추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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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에에에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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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를 가르며 쏘아지는 화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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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용이 비행을 시작했다. 용이란 본디 거만한 존재다. 하늘 높이 날며 회피만을 거듭하는 것은 성질에 맞지 않다는 듯, 두 마리의 용이 땅을 향해 낙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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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의 화살이 백룡의 비늘에 흠집을 냈지만, 백룡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돌진을 감행했다. 거대한 체구에서 오는 무게. 그 질량으로 찍어 누르는 돌진은 가히 위협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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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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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시커들에게마저 그렇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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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드는 백룡을 향해 전(前) 기사단장, 백각 모험가 리하르트 폴셴이 대방패를 땅에 내려찍었다. 방패에 마나가 휘감김과 동시에, 백룡과 방패가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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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깊게 꽂아 넣은 대방패가 땅을 헤집으며 뒤로 밀려났지만, 기어코 리하르트는 백룡의 돌진을 받아냈다. 그 사실에 불만을 표하듯 백룡이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불을 토해내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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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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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룡의 측면에서 뛰쳐나온 백각 모험가, 그리젤 파라멜트가 할버드를 휘둘러 용의 턱을 후려쳤다. 용의 아가리가 다물어지며 불발한 브레스. 혼자서 상대할 만한 적이 아님을 깨달은 백각 모험가들은 협력했고, 이는 적룡 쪽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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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뻘건 놈들끼리 놀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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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 로젤린 아스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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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前) 이단심문관, 바셴 코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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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짝을 지어 적룡을 맡았으며, 황실의 기사들이 그들을 보조했다. 쏘아지는 화살. 마나를 두른 채 번뜩이는 무기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위력적이지는 않았다. 용의 비늘에 맥없이 튕겨 나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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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공격이 아니면 통하지 않는다. 충분히 힘을 모은 일격(一擊)이 아니라면, 용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다. 그렇기에 저마다가 일격을 박아 넣을 순간을 계산하며 용의 시선을 끌고 있을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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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룡이 날개를 펄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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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공중으로 치솟으려는 백룡의 모습에 토벌대가 혀를 차며 충격에 대비하려는 순간, 챠르륵 소리를 내며 무언가 용의 발톱에 휘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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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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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벌대가 그 사실에 의문을 표하기도 잠시 백룡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그러나 이번에 솟구친 것은 백룡만이 아니었다. 백룡의 발톱에 휘감긴 사슬이 차르륵 소리를 내며 거칠게 출렁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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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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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땅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공중에서 몸을 비틀며 사슬의 반동을 이용해 하늘로 솟구쳤다. 마치 곡예라도 부리는듯한 모습이다. 허나, 그 묘기의 결과는 비웃을 게 못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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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슬을 붙잡은 소년, 나진이 용의 발톱에 올라탔다. 닿지 않는 공중으로 날아오른 용에 올라탄 것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나진은 비늘을 밟고 백룡을 등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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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으로 비행하고 있는 용의 몸 위를 사슬과 한 자루의 검에 의지해 나진은 등반했다. 와이번들을 사냥하며 몸에 익힌 감각은 이 순간 도움이 됐다. 순식간에 백룡의 등까지 올라탄 나진이 숨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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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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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이 검을 들어 올렸다. 별자리를 닮은 검기가 나진의 검을 휘감고, 백색으로 번쩍였다. 하늘을 찌를 듯이 들어 올린 검을 나진은 아래를 향해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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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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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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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가 시작한 아래 처음으로, 용의 피가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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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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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비늘에는 분명히 틈새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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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백룡의 경우에는 그 틈새가 크다. 멀린의 말대로였다. 백룡의 비늘은 얼핏 보기엔 촘촘했지만 부릅뜨면 그 틈이 시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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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그 틈에 칼을 비집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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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악, 하고 피가 튀어 올랐다. 용의 몸집에 비하면 작은 출혈이지만 분명히 피가 튀었다. 그 사실에 나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통한다. 검이 들어간다. 그렇다면, 벨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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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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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강하게 쥔 채 나진이 용의 등을 밟고 달리기 시작했다. 비늘과 비늘의 틈을 따라 나진의 검이 질주했다. 아주 작은 틈이었지만, 나진이 휘두르는 칼끝은 정확하게 그 틈을 파고들어 용의 살가죽을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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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아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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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튀어 올랐다. 이번에는 백룡도 무시하지 못할 상처인 까닭일까. 제 등 뒤에 누군가 올라탐을 눈치챈 백룡이 공중에서 몸을 비틀었다. 괴성을 내지르며 거칠게 날갯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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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진은 용의 등에 검을 깊게 박아 넣은 채, 검을 버팀목 삼아 백룡의 난동질을 견뎌냈다. 제아무리 백룡이 몸을 비틀어도 나진은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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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올라타면 결코 떨어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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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등만큼 안전한 곳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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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멀린의 가르침이었고, 나진은 이를 충실히 이행했다. 나진은 백룡의 비늘에 칼을 꽂아 넣으며 움직였다. 나진의 눈동자는 백룡의 등줄기에서 이어지는 날개에 고정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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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는 용의 날개를 찢어 떨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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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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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날개를 아예 잘라버려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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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날지 못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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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난도질하는 걸로는 용의 목숨을 끊을 수 없다. 용은 그 목을 치거나 심장을 꿰뚫어야만 죽일 수 있으니까. 그러기 위해서라도 일단은 용을 땅 아래로 떨어트릴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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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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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박아 넣으며 나진이 백룡의 날갯죽지 쪽으로 움직였다. 지금부터 비늘을 뜯어내고, 가죽을 찢고, 그 뼈를 끊어야만 했다. 이는 소드 시커에게도 몹시 어려운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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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마나에 높은 저항력을 가졌으며, 용의 뼈쯤 되면 어지간한 공격으론 흠집조차 나지 않으니. 하물며 살가죽을 베어놔도 금세 재생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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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진에게도 방법은 있었다. 난동을 피우는 백룡의 등 위에서 균형을 잡은 나진이 검을 들어 올렸다. 호흡을 가다듬은 나진이 눈을 부릅떴다. 심장이 박동하며 피가 빠르게 돌고 검기가 점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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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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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격. 비늘의 틈새에 검을 꽂아 넣었다. 직후 나진이 손목을 비틀며 꽂아 넣은 검을 위로 쳐올렸다. 벗겨낸 백룡의 비늘이 공중에서 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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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이격(二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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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칵, 하고 나진의 칼끝이 백룡의 살가죽을 베었다. 튀어 오르는 핏물과 함께 살가죽에 일자가 새겨졌다. 그 일자를 똑바로 노려보며 나진이 숨을 삼켰다. 그리고, 삼킨 숨이 뱉어지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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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 가가가가가가가가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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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칼끝이 잔상을 흩뿌리며 휘둘러졌다. 일초에도 수번이고 휘둘러지는 검. 마녀가 흩뿌린 수천발의 화염살을 쳐냈을 때처럼, 나진은 호흡하는 것도 잊은 채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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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늘이 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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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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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가죽이 찢겨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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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러난 것은 용의 날갯죽지로 이어지는 뼈. 그 뼈를 향해 나진은 마치 곡괭이질을 하듯 검을 내려찍었다. 사슬부대에서 배운 ‘뼈를 끊는 검격’ 이었다. 뼈를 끊어내는 데 있어선 이 방법이 더 효율적이란 사실을 나진은 와이번 사냥을 통해 학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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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갗이 차오르는 것보다, 용이 재생하는 것보다 나진의 검이 더 빨랐다. 살가죽이 한 뼘만큼 차오를 때, 나진의 칼끝은 열 뼘을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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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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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룡이 괴성을 내지르며 미친 듯이 날뛰고, 공중에서 몸을 뒤집어댔으나 나진의 검격이 끊기는 일은 없었다. 날갯죽지에 박아 넣은 검을 중심으로 나진은 몸을 한 바퀴 돌려 다시 균형을 잡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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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백룡의 한쪽 날개가 경직됐다. 날갯짓의 균형이 무너지고, 백룡의 고도가 급속도로 낮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백룡에 올라탄 채로 서서히 땅으로 추락하던 나진은 문득 적룡 쪽을 흘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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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이상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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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멀린과 이야기했던 작전대로라면, 머릿속으로 그렸던 전황대로라면 적룡이 이쯤에서 방해를 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방해가 없었다.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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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적룡을 노려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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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과 적룡이 시선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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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룡 역시 나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로젤린과 백각 모험가들을 상대하면서도 적룡의 시선은 똑바로 나진을 향해 있었다. 짐승의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나진의 직감이 경종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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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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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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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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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가 무엇인지 나진이 고민하는 것보다 먼저, 적룡이 포효했다. 천지를 뒤흔드는 포효와 함께 적룡이 하늘로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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