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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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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벌전의 준비가 한창이다.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에 돌아온 나진은 주변을 둘러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 티가 나진 않지만, 내부 사정을 알고 있는 나진의 시선에는 미묘한 움직임들이 잡혔다.
상인들의 흐름, 어디론가 움직이는 물자, 바삐 움직이는 중앙 길드의 직원들······.
곧 다가올 적룡과 백룡 토벌전의 준비로 바쁜 모양새였다. 중앙 길드는 백각 모험가들에게 함구령을 내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정보를 백각 모험가들만이 쥐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협력 관계인 상회에게도 풀었겠지.
대규모 토벌전에는 당연하게 막대한 물자가 들어간다. 하물며 이번 토벌전에는 백각 모험가 다섯에, 황실 소속의 기사단마저 동원되니 물자 준비에 미흡함이 있어선 안 됐다.
그리고, 그쪽 분야의 전문가는 상회이지 길드가 아니었다. 아마도 상회 하나를 끌어들였을 테지.
“······.”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던 나진은 이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떤 상회를 끌어들였는지 알만 했으니. 금화를 닮은 눈동자를 반짝이는 어느 상인이 나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얼굴 안 본 지가 한 달이 다 돼간다. 자주 좀 찾아오라고 칭얼대던 디에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나진은 상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곧이네요.
-응. 앞으로 삼일 정도?
쫙 편 손가락을 하나씩 접던 멀린이 손가락 세 개를 나진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계산해 보니 삼일 정도 남았네. 봉인식이 가장 약해지는 시점까지 말야.
중앙 길드와 황실이 예측한 것과 엇비슷한 날짜였다. 나진은 질레트에게 선물 받은 사슬 말뚝을 매만지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보를 알릴 걸 그랬나요?
적룡과 백룡이 완전히 부활한다는 것. 당신들이 생각하던 것보다 강적이 되리라는 것. 그 정보는 오직 나진과 멀린만이 알고 있었다.
-글쎄, 별로 의미는 없을걸?
그 사실을 미리 알렸어야 했나, 하고 묻는 나진의 질문에 멀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린다 해도 믿어준다는 보장은 없어. 증거가 없잖아. 예언자 노릇이라도 할거라면 그래도 되겠지만, 그래서야 의심만 살 뿐일걸?
사실이었다.
그래서 알리지 않은 것이기도 했고.
-그리고 네 말을 믿어준다 해도 제국이 지원군을 얼마나 더 보내주겠어? 그 용의 두려움을 아는 인물은 이 시대에 남아있지 않아. 외륙 쪽에나 있겠지.
이런 일에 마스터 급의 인력을 투자할 리가 없다. 기껏 해보아야 기사단에 사람 몇을 추가해서 보내는 데 그치겠지, 그런 말투로 멀린은 이야기했다.
실제로 적룡과 백룡의 위험도를 제국은 그리 높게 점치고 있지 않았으니까. 그저 몇백년을 주기로 돌아오는 사건 정도로 여기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것도 그렇네요.
-그리고 뭐가 걱정이야?
멀린이 히죽이며 어깨를 쫙 폈다.
-하늘을 불태우고, 수많은 용을 떨어트렸으며, 나락의 용을 땅에 못 박아 둔 위대한 대마법사에게 ‘용 사냥법’을 직접 배운 네가 함께하잖아.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지. 안 그래?
자신만만하게 어깨를 쫙 편 채, 코웃음을 치는 멀린의 모습에 나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하기야 지난 몇개월간 틈만 나면 멀린은 나진에게 용의 특성에 대해 떠들곤 했다. 덕분에 나진은 용에 대한 지식에 한해서는 어지간한 학자들보다 해박했다.
‘멀린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뭐야? 그 반응은?
이제는 익숙해진, 투덜거리는 멀린의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나진은 걸음을 옮겼다.
2.
“얼굴 보기 진짜 힘들다. 그쵸?”
“···미안하게 됐습니다.”
“아니에요, 뭐, 미안할 건 없죠. 바쁘셨잖아요? 저도 바빴구요. 그냥, 가볍게 식사할 시간은 있었다 정도? 제가 막 딱히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건 아니고, 굉장히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 이렇게 연락도 없이 한 달간 휙 떠나버리면······.”
디에타가 제 머리칼을 배배 꼬며, 나진의 시선을 회피한 채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 모습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그녀의 호위 기사 파시온은 입술을 꽉 깨물며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지난 한 달간 디에타는 창문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얼굴 보기 진짜 힘드네. 언제 한번 안 찾아오나. 바로 옆집 사는데 이건 너무한 거 아냐? 하고 몇번이고 중얼거렸던 그녀다.
그러다가 나진이 외륙으로 떠났단 소식에 디에타는 눈을 부릅뜨고 발을 굴러야만 했다. 그래도 한 달 안에는 돌아온단 사실을 알았기에, 한숨을 내쉬며 기다리기를 27일 차.
‘드디어 왔다!
나진이 찾아왔단 소식에 화색 하며 벌떡 일어나기를 잠시, 애써 평정을 찾은 디에타는 고뇌했다. 이거 너무 티 나지 않나? 내가 너무 휘둘리는 것 아닌가? 남녀관계에서 주도권을 한번 빼앗기면 죽도 밥도 안된단 사실을 디에타는 책으로 배웠다.
“딱히 막 기다린 건 아니구, 편지 한 통 정도는 보냈어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안 한 것 같기도 하고······.”
물론 책으로 배운 것과 실행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한 달 만에 보는 나진의 얼굴에 심장은 쿵쾅댔고, 얼굴은 한껏 달아올랐다. 한 달 만에 뭔가 더 어른스러워진 느낌인데. 하긴 열여덟이면 성장기니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과 함께 디에타는 제 얼굴에 부채질을 하며, 열심히 연기를 했다. 물론 바로 곁에 서 있는 파시온이 보기에는 참 쓸모없어 보이는 연기였다.
“앞으로는 편지 정도는 보내겠습니다.”
디에타의 속내까진 알 수는 없지만, 그녀가 굉장히 섭섭해 보인다는 사실을 눈치챈 나진이 쓰게 웃으며 답했다.
“···정말이죠?”
“예. 편지 정도야 어려운 건 아니니까.”
“기왕이면 찾아와 주면 더 좋을 텐데.”
“그건 노력해 보겠습니다.”
“약속한 거예요.”
그제야 디에타가 화색 하며 제 집무실의 테이블을 탁탁 두들겼다. 가까이에 와서 앉으란 뜻이었다. 디에타의 맞은편에는 손님 대접용이라는 핑계로 한 달쯤 전에 들여둔 최고급 의자가 하나 놓여있었는데, 그것이 나진 전용 의자라는 걸 아는 것은 파시온 뿐이었다.
‘다른 손님이 올 때는 저만치 치워두시니.
나진이 온다는 소식에 급하게 파시온을 시켜 다시 놓아둔 의자였다. 물론 나진이 그 사실을 알 턱이 없었기에 의자에 앉으며 나진은 ‘착석감이 좋네’ 하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그건 그렇고, 디에타.”
의자에 앉은 나진이 질문했다.
“곧 벌이는 토벌전, 디에타도 알고 있죠? 디에타 상회의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던데.”
“물론이죠. 물자 유통 및 토벌 후 소재 최우선 낙찰권을 따낸 게 저희 상회니까요.”
지난 한 달간 디에타라해서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다. 중앙 길드의 어수선한 움직임을 눈치채고, 곧장 접근해서 계약 여럿을 따냈으니까.
“토벌에는 당연히 물자가 필요하고, 토벌 후에는 상회의 도움이 더더욱 필요하죠. 하물며 이번에 토벌하는 것은 드래곤이잖아요. 드래곤의 소재가 초고가에 거래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디에타의 샛노란 눈동자가 반짝였다.
“기회죠. 금화를 잔뜩 벌어들일 기회.”
금화 냄새 하나는 기막히게 맡아대는 그녀답게 디에타는 벌써부터 미끼를 뿌리고 있었다. 내일이면 도시에 도착할 황실 기사단에게 팔아 재낄 물품들도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나진, 당신도 이번 건 큰 기회잖아요?”
디에타가 나진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용은 예로부터 위업의 상징이었으니까요. 이번 토벌전에서 활약한다면, 어쩌면 별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저야 자세히는 모르지만.”
“보통 활약하는 걸로는 안되죠. 주역이 될 생각입니다. 가장 눈에 띄고, 가장 화려한 역할.”
위업을 이루는 건 언제나 가장 앞서나가는 이의 몫이다. 위험을 감수한 만큼 그 업적은 빛날 테니.
“당신답네요. 그럼 이 토벌전은 당신에게나 제게나··· 꿈에 다가갈 큰 기회네요?”
기회.
“이번 토벌전에서 나오는 소재들, 저희 상단이 모두 낚아챌 거예요. 가장 비싼 값에요. 그걸 위해 따낸 최우선 낙찰권이니까요.”
누구에게도 들려주지 않은 계획.
디에타는 그것을 나진에게 들려주었다.
“드래곤의 소재를 독점할 거예요. 자그마치 몇십년 만에 풀리는 물품이죠. 독점할 이유로는 충분하고도 남아요. 당연히 따라붙으려는 상회가 많겠지만··· 금화 유통량에서 저희 상회를 따라갈 상회가 있을까요? 이번 거래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금화를 끌어모았어요.”
그녀가 백금화를 튕겼다.
“독점한 뒤, 본격적으로 황도로 진출할 거예요.”
더욱 큰 시장으로.
캄브리아를 넘어 제국의 중심으로.
“드래곤의 소재를 중심으로 황도의 마탑과 거래를 뚫고, 계약을 맺겠죠. 한번 길을 뚫어놓으면 그다음은 쉬워요. 저희 상회는 캄브리아를 경유해 ‘수많은 소재’를 신속하게 유통할 수 있으니까요. 그들이 필요로 하는 소재를 빠르게 가져다줄 수 있겠죠.”
거기서부터가 시작이라고, 그녀는 이야기했다.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디에타가 튕긴 금화를 공중에서 낚아챘다.
“황도에 이름을 알릴 기회에요. 이름을 알리는 것부터 시작이죠. 이게 첫 단추인 셈이에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진이 디에타를 바라보며 말했다.
“가장 높은 곳에 오르려거든, 우선은 별 하나를 새기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죠. 제게도 이번이 첫 단추가 되겠군요.”
나진에게나 디에타에게나, 이번 용 토벌전이 가지는 의미는 깊다. 아직은 우물 안 개구리인 두 사람이 우물 바깥으로 나설 계기가 될 테니까.
“그럼 각자의 미래를 응원한다는 뜻에서···.”
디에타가 나진을 힐끗,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잠깐 망설이던 그녀가 될 대로 되라는 양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밥이나 같이 먹을까요? 한 끼 정도는 괜찮잖아요. 기왕이면 차도 한잔하면 좋구요.”
“그렇게 하죠.”
나진의 대답에 흡사 비명이라도 지를 듯이 기뻐하며 주먹을 불끈 움켜쥐는 디에타의 모습에, 호위기사 파시온은 속으로 웃었다.
제국의 수도를 휘어잡을 계획을 세우는 상인. 제 주인은 금화의 흐름을 낚아채, 그 흐름마저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타고난 상인이지만······.
저 소년의 앞에서만큼은 평범한 소녀였다.
순수하게 웃고, 사소한 일에 얼굴을 붉히고, 부끄러워하는 그 나이대의 평범한 소녀. 파시온 나갈 준비해요 어서, 하고 외치는 디에타의 모습에 파시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어쨌거나 잘된 일이었다.
소년 소녀의 간질간질한 교류를 지켜보며 파시온은 흐뭇하게 웃었다.
3.
시간이 흘러 토벌전 당일.
캄브리아의 인근, 스톤헨지에 토벌전의 참가자들이 집결했다. 캄브리아의 정점이라 불리는 백각(白角) 모험가들이 한자리에 모여들었다.
전(前) 이단 심문관, 바셴 코르테.
전(前) 기사단장, 리하르트 폴센.
붉은 눈, 로젤린 아스칼로.
불명, 그리젤 파라멜트.
그리고.
신성(新星), 나진.
캄브리아의 정점에 선 백각 모험가 다섯, 그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토벌대가 스톤헨지를 애워쌌다. 황실에서 보내온 기사단들이 아티팩트와 장비들을 배치하기 시작했고, 상회의 직원들이 바삐 움직이며 물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봉인식이 깨어지는 시간은 깊은 밤.
밤을 밝히기 위해 상회에서 조달한 광석등, 조명탄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여분용 장비와 물자들이 후방에 놓였으며 마나와 체력 회복을 위한 최고급 포션들이 지급됐다.
그리고 나진은.
자신이 맡기로 한 위치로 걸음 했다.
드넓은 초원 위에 솟아오른 야트막한 언덕. 마치 무덤과도 같아 보이는 언덕을 원형으로 에워싼 돌기둥들. 천 년 전 멀린이 세운 봉인식이었다.
스톤헨지(Stonehenge).
봉인식이자 용의 무덤.
돌기둥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나진은 바로 섰다. 나진이 맡겠다고 한 위치였는데, 이 위치를 요구한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이곳이 아서가 서 있었던 위치라고 멀린이 말했으니까.
나진이 검을 뽑아 들었다.
아서와 같은 자리. 같은 무대. 같은 상황.
오늘 이 자리에서 새로운 신화의 첫 장을 써 내려갈 것이다. 나진은 그렇게 정했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나진 스스로가 그리 정했다.
저 드높은 밤하늘.
아직은 자신의 별이 자리 잡지 않았기에, 단지 머나먼 곳으로 느껴지는 저곳에.
오늘 밤, 나진은 자신의 별을 새겨넣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