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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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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明滅)의 마녀 에르미나.
최소 일천년의 세월을 살아온, 신화시대의 마녀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마왕군에 투신했다는 것. 인류를 불태우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았다는 것.
그리고, 7 서클의 마법사라는 것.
보편적으로 7 서클의 마법사는 초월에 한없이 근접했으나, 초월에 이르지 못한 존재로 취급되곤 한다. 초월자와 그렇지 못한 이 사이에 놓인 간극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으므로.
하지만 그 누구도.
초월에 이른 초월자들조차도.
명멸의 마녀, 에르미나를 가리켜 초월에 이르지 못한 범인(凡人)이라 평가하지 않았다. 명멸의 마녀의 손에 떨어진 별자리들이 그녀의 강함을 증거했으므로.
-애당초 이미 초월을 경험한 마법사야.
-내가 서클을 모조리 박살 내긴 했지만, 마법을 다루는 감각과 지식마저 잊어버리는 건 아니니까.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서클을 복구했는지 모르겠지만, 하고 멀린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 눈앞에 있는 건 초월자야.
멀린이 단언했다.
8 서클, 초월에 이른 마법을 다루지 못할 뿐 네 눈앞에 있는 것은 분명한 초월자라고. 소드 마스터와 다를 것 없는 초인(超人)이라고.
-그리고, 초월에 이른 마녀는 짜증 날 정도로 성가셔. 말했지? 마녀는 종족 단위로 사기를 치고 있는 또라이들이라고.
그녀가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에는 일곱 개의 원이 떠 있었고, 회전하는 일곱 개의 원이 만들어낸 화염은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지금부터 경험해 봐.
-언젠가 네가 서야 할 전장이니까.
마녀가 손짓했다. 새하얀 손가락이 허공을 할퀴었다. 평범한 인간의 손짓은 눈앞의 공기를 가를 뿐이지만, 초월자의 손짓은 풍경을 가르는 법이다.
7 서클 주문, 화마(火魔).
눈앞에 웽웽대는 날벌레를 치우듯이 마녀는 가볍게 손짓했을 뿐이지만, 그녀의 손끝에서 물결치는 화염은 생각이 조금 달라 보였다.
화염이 파도쳤다. 불길이 물결쳤다.
시뻘건 불길이 전장을 휩쓸었다. 5 서클의 마법만 돼도 공성 마법이라 불린다던데, 그 위의 마법은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언젠가 품었던 궁금증을 나진은 지금 이 순간 해소할 수 있었다.
‘미친.
자그마치 수십미터에 이르는 불의 파도가 밀려들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불길이 퇴각하는 병사들을 노리지 않는단 점이었고, 최악인 점은 그 불길이 정확하게 나진을 노린단 점이었다.
쾅!
나진이 땅을 박차고 달렸다.
불길의 파도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나진을 추격해 왔다. 땅이 타들어 간다. 바위가 녹아내린다. 불길이 지나간 곳에는 그을음조차 남지 않았다. 불타 재로 바스러지거나 흔적도 없이 녹아내릴 뿐.
잡히는 순간 죽는다. 닿는 순간 육체 강화고 나발이고 녹아내린다. 나진은 그리 확신했다.
그렇기에 나진은 벽을 박차고 전력으로 질주했다. 화마(火魔)는 광범위한 영역을 쓸어버리기 위한 주문이었기에, 전력을 다해 질주한다면 그 영역에서 벗어날 수는 있었다.
-저건 ‘깔아두는’ 마법일 뿐이야.
하지만, 당연하게도.
-온다. 준비해.
그 사실을 마녀가 모를 리가 없다.
벽을 박차고 달리던 나진이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시야는 앞에 고정돼 있지만 감각으로 느꼈으니까. 자신의 머리 위에서 소용돌이치는 마나를.
5 서클 주문, 작열 광선.
4 서클 주문, 화염구.
하나의 마법이 아니다. 두 개의 마법이 중첩되어서 시전됐다. 일곱 갈래의 작열 광선이, 일곱 개의 화염구가 나진을 향해 쏘아졌다. 벽을 박차고 달리던 나진은 보지도 않은 채 검을 휘둘렀다.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오르면서 나진의 감각은 더욱 날카로워졌으며, 꼭 두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소용돌이치는 마나가 ‘어느 곳’으로 향할지 알 수 있었다.
키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나진의 두개골을 꿰뚫으려던 작열 광선이 나진의 검에 가로막혔다. 광선이 두 갈래로 쪼개지며 나진의 양옆을 긋고 지나갔다. 녹아내린 절벽을 보며 나진은 혀를 찼다.
‘진짜 스치기만 해도 골로 가겠군.
그런 작열 광선이 일곱 발이다.
이제 겨우 한 발을 쳐냈을 뿐이다. 이리저리 휘며 달라붙는 작열 광선을 느끼며 나진은 혀를 찼다. 그러나, 막아야 할 것은 열선만이 아니다.
콰아아아아아앙!
나진이 땅을 박참과 동시에, 나진이 방금까지 서 있던 곳에 화염구가 착탄 했다. 지름 3m짜리의 화염구가 착탄 한 곳은 움푹 파였고, 폭발에 휩쓸린 돌조각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리고 화염구는 한 발로 그치지 않는다.
화염구가 나진이 서 있던 곳, 발을 디딜 곳, 도망칠 곳을 향해 동시에 날아들었다. 조금이라도 망설이거나 빈틈을 보이는 순간 추격해 온 작열 광선에 몸이 꿰뚫릴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크게 도약해 도망친다면? 절벽을 박차고 땅에 발을 내디딘다면? 저 바닥에서 입을 벌리고, 자신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7 서클 주문 화마(火魔)에 집어삼켜질 뿐이다.
이것이 마법사들의 전투법인가. 사방에 그물을 펼쳐놓고 발을 디딜 곳을 줄여가며 궁지에 몰아넣는 것. 정말이지 까다롭기 그지없다.
‘결국에 선택하란 거겠지.
나진은 이를 악물었다. 발을 디딜 틈이 없다? 도망칠 곳이 없다? 그럼, 만들면 그만이지.
쾅.
땅을 박차고 나진은 정면으로 돌진했다. 떨어지는 화염구를 회피할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나진은 화염구의 궤적에 제 몸을 들이밀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화염구가 나진에게 착탄 했다.
불길과 함께 흙먼지가 솟구쳤다. 그러나 이윽고 흙먼지를 가르며 나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착탄의 순간 검을 휘둘러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인 채 빠져나온 것이다.
물론 무사하진 못했다. 몸에는 그을음이 남았으며, 검을 쥔 손바닥이 녹아내려 칼자루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저 나진은 선택했을 뿐이다.
피해를 최소화하고 살아남을 길을.
화염을 걷어내며 빠져나온 나진이 숨을 몰아쉬며 눈을 부릅떴다. 혈관을 타고 피가 빠르게 흘렀다. 육신이 한계를 넘어 가속했다. 절벽을 미끄러지듯 달리며 나진이 검을 휘둘렀다.
별자리를 휘감은 검이 번뜩였다.
백색의 궤적을 그리며 화염구를 가르고, 작열 광선을 쪼갠다. 벽을 박차고 내달리며 나진은 마녀의 주문을 하나하나 받아쳐 냈다. 얼핏 보면 마녀를 상대로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지만···.
검을 휘두르는 나진은 직감했다.
어느새부턴가 마녀의 시선이 ‘자신’을 쫓아오고 있음을. 자신을 단지 성가신 날벌레가 아닌, 꿰뚫어 죽일 존재로 인식하고 있음을.
뚜욱.
오른손으로는 나진을, 왼손으로는 사슬 부대를 상대하던 마녀의 손끝이 정지했다. 한순간의 정적. 시간으로 따지자면 고작 1초의 시간. 멈춘 시간이 다시 움직인 것은 마녀의 두손이 교차한 시점이다.
마녀의 왼손과 오른손이 맞부딪쳤다.
짜악, 하는 박수 소리.
침묵을 깨는 소리가 나진의 고막을 울린 순간이다. 들끓던 화마도, 나진을 추격하던 마법들도, 그 모든 게 한순간에 흩어졌다. 하지만 그것이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단지 더 효율적으로 쓰이기 위함일 뿐.
흩어졌던 화염들이 쪼개지고, 갈라지고, 분해되어 재조립됐다. 그 모든 과정은 1초도 되지 않는 시간 사이에 이루어졌다. 만일 이 자리에 마법사가 있었더라면, 그리하여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면 제 두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이미 완성되어 쏘아진 주문. 그런 주문을 지금 저 마녀는 분해하고, 재구성해 완전히 새로운 주문으로 변환한 것이다.
마법적으로 불가능하며, 규칙에 어긋나고, 상식을 비웃는 행위다. 이는 제국의 대마법사인 영휘각 시프리아 가체프스카에게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일을 마녀란 존재는 너무나도 쉽게 벌이고 만다.
마법에게 사랑받는 종족이기에.
법칙을 어길 권리를 세계에게 부여받았기에.
1초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재구성된 주문. 7 서클의 주문을 일곱 갈래로 쪼개고, 쪼개진 주문을 다시 일곱 갈래로, 일곱을 다시 일곱으로······.
수백, 수천에 이르는 화염살.
한순간에 제 시야를 가득 메운 불로 빚어낸 화살을 마주한 순간 나진은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마녀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 마녀가 자신을 적으로 인식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나진은 통감했다.
직후.
수천에 이르는 화살이 나진에게 쏘아졌다.
2.
회피할 곳은 없다. 조금의 빈틈도 없이 사방에서 덮쳐드는 화살을 피할 수 있을 리가. 그렇다면 지금 나진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 뿐이다.
나진이 눈을 부릅떴다.
눈동자에 핏발이 서고 시야가 넓어졌다.
사방에서 밀려드는 불의 화살을 시야에 담은 채 나진이 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곤, 검을 휘둘렀다.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회피할 수도 막아낼 수단도 없다면 쳐낼 수 있는 데까지 쳐낸다.
그것이 나진이 선택한 방법이었다.
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열댓 개의 화살이 갈라졌다. 주문을 쪼개고 쪼개 만들어낸 만큼 한 발 한 발의 위력은 보잘것없었다. 문제는 그 숫자다. 한 번의 휘두름으로 열 개의 화살을 베었지만.
파바바박!
놓친 세발의 화살이 나진의 몸에 박혔다. 피부가 타들어 간다. 작열통이 뇌리를 뒤흔들었으나 나진은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계속해서 화살을 쳐내지만 쳐내지 못한 것들이 나진의 몸을 꿰뚫었다.
자그마치 천 발이 넘어가는 화살이다. 화살을 쳐내는 게 아니라, 거대한 파도 앞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파도 앞에 한낱 인간은 무력하다. 무력하지만, 그렇다 하여 파도에 휩쓸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검을 휘두르며 나진은 끊임없이 생각했다. 검의 궤적을 수정했으며 조금 더 빠르고 간결한 움직임을 추구했다.
스걱, 그리고 투콱.
수많은 화살이 잘려 나갔고, 수많은 화살이 나진의 몸에 틀어박혔다. 급소만을 보호한 채 나진은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기어코 파도를 베어버리겠다는 양 나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더 빠르게, 더 간결하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지? 일초? 십초? 알 수 없었다. 단지 검을 휘두르는 데 나진은 몰입했다. 이미 한계까지 간소화했다고 생각했으나, 조금 더 줄일 수 있는 움직임이 있었다.
덜어낼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덜어낸다.
그리함으로 한 번 더 검을 휘두른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흐드러지는 별자리가 잔상처럼 남아, 나진의 주위에는 마치 별이 가득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서걱.
나진이 크게 검을 휘둘렀다. 마지막 파도가 갈라지며 나진의 시야가 탁 트였다. 나진은 참고 있던 숨을 몰아쉬었다. 천 발에 이르는 화염살을 기어코 버텨낸 것이다.
“후욱, 훅······.”
물론 멀쩡하지는 못했다.
나진의 온몸에는 화살이 꽂혀있었다. 그 숫자만 해도 수십 발에 이른다. 팔과 다리는 물론이고, 어깨, 쇄골, 복부, 갈비뼈··· 급소만을 피했다 뿐이지 고슴도치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녹아내린 피부. 그을음이 가득한 살갗.
그러나 그 눈동자만큼은 뚜렷하다. 나진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전투가 시작된 아래 마녀의 표정에 처음으로 변화가 생겼다. 눈살을 찌푸린 채 그녀는 나진을 응시했다.
“너.”
마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대체 뭐야?”
에르미나는 나진을 노려봤다.
붉은 눈동자에는 불쾌함이, 경멸이, 짜증이 서려 있었다. 그녀의 시선을 받으며 나진은 히죽였다.
“이제야 좀 관심을 가져주네.”
치워버려야 할 벌레. 고작 그 정도로 자신을 인식했을 마녀가, 이제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걸고 있다. 그 사실에 나진은 웃음을 흘렸다.
“미친놈이구나. 미친놈이 한둘이 아닌 세상이긴 한데, 넌 독보적이네. 이상해. 분명 처음 보는 인간일 텐데······.”
에르미나가 조금 더 눈살을 찌푸렸다.
“익숙해. 뭔가 익숙하단 말야. 너 뭐야? 날 알아?”
-알지, 미친년아.
나진은 답하지 않았지만 멀린은 답했다. 나진의 곁에 서 있는 멀린이 입가를 틀어 올린 채 히죽였다.
-네 서클을 잘게 밟아 다져버린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떻게 또 기어 올라왔네. 하여간, 재능빨로 먹고 사는 새끼들 같으니라고.
멀린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에르미나의 어깻죽지부터, 종아리까지 이어진 흉터를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그때 심장을 뚫어버려야 했는데.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
나진은 쿵, 땅을 강하게 짓밟으며 검을 휘둘렀다. 물론, 당연하게도 하늘에 떠 있는 마녀에게 칼끝이 닿을 리는 없다. 검기를 아무리 길게 늘어트려도 닿지 않는다.
하지만 나진은 보았다. 검기 없이도 저 멀리 떨어진 대상을 베어 가르는 소드 마스터들의 검을.
카론의 검을 보았고, 유엘의 검을 보았으며, 게르드의 검을 보았다. 그 움직임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나진은 검을 휘둘렀다. 본래대로라면 흉내 내려 한다고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결코 따라 하지 못할 움직임이다.
하지만 지금은.
검(劍)에 몰입한 채,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러 한계까지 감각이 날카로워진 지금이기에, 나진은 아주 조금이지만 그 움직임을 흉내 낼 수 있었다.
스칵!
마녀의 어깻죽지에서 종아리에 이르기까지, 일천년 전 멀린이 새겨넣었던 흉터를 따라 가느다란 실선이 그어졌다. 물론 그 위력은 보잘것없다. 칼끝으로 살짝 스친 듯한 위력에 불과했으며, 그마저도 마녀가 두른 화염에 가로막혀 불길이 일렁일 뿐이었다.
소드 마스터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일격.
그러나, 분명하게.
나진의 검은 마녀에게 닿았다.
“······.”
에르미나가 제 어깻죽지를 매만졌다.
일천년 전 괴물과도 같은 마법사가 제 몸에 새겨넣었던 흉터. 그 흉터를 따라 검을 휘두른 검사를 바라보며, 에르미나가 입을 벌렸다.
“아하.”
벌어진 입가에 맺힌 것은 웃음이었다.
마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광소였다. 에르미나는 제 얼굴을 쓸어내리며 미친 듯이 웃음을 흘렸다.
“너.”
그리곤, 뚜욱.
난데없이 웃음이 그쳤다.
“곱게는 못 죽을 거야.”
제 몸에 새겨진 흉터.
그것은 에르미나의 역린이었으며, 여태껏 그녀의 역린을 건드리고 살아남은 인간은 없었다. 에르미나가 따악,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녀의 등 뒤로 여덟 번째 서클이 떠올랐다.
3.
여덟 번째 서클.
대마법사의 상징과도 같은 것.
에르미나의 등 뒤로 떠오른 여덟 번째 서클은 그을음이 남아있었으며, 금이 가 있었고, 어느 부분은 아예 쪼개져 있었다. 요컨대 서클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불량품이었다.
일천년 전, 멀린에게 박살 난 서클.
자그마치 천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에르미나는 여덟 번째 서클만큼은 복구하지 못했다. 멀린은 에르미나의 본질을 비틀었고, 그녀의 신비를 짓밟아 바스러트렸다. 그렇기에 에르미나는 결코 완벽해질 수 없었다. 불완전함을 간직해야만 했다.
승화(昇華)에 이르지 못한다.
다시는 초월에 닿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초월을 경험한 대마법사였고, 모든 것을 잃고서도 다시 처음부터 쌓아 올려 초월에 한없이 근접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초월을 모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하늘에서 별이 반짝였다.
에르미나가 가진 별이었다.
본디 그녀가 가졌던 다섯개의 별 중, 네 개는 멀린에 의해 바스러졌다. 남은 것은 하나의 별. 그 하나의 별이 에르미나의 여덟 번째 서클을 비추었다. 이것이 에르미나가 찾아낸 답이다.
박살 난 부분을, 금이 간 부분을 별빛이 대체한다. 그렇게 그녀가 잃어버렸던 여덟 번째 서클은 일시적으로 기능한다.
“네가 누구인지, 뭐 하는 놈인진 모르겠지만.”
에르미나의 붉은 눈동자가 소용돌이쳤다.
“영혼째로 태워줄게, 건방진 애새끼야.”
8서클 주문, 명멸(明滅).
하늘이 요동쳤다. 거대한 마나의 격류가 그녀를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별빛마저 불사지르는 마녀의 불길이 나진을 겨냥했다.
그리고, 나진은.
“15분.”
입가를 틀어 올렸다.
동시에, 풍경을 반으로 쪼개며 누군가 전장에 개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