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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가의 기사가 뭡니까, 영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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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대뜸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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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질을 하다 말고 호겔 영감은 고개를 들어 나진을 흘겨봤다. 아직 검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체격과 검을 쥐는 방법을 확인하기 위해 나진을 대장간으로 부른 호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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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는 다 쟀으니 후딱 나가면 될 것을 남아서 말이나 걸고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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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시간을 방해받아 떨떠름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소년이 던진 질문에서 제법 그리운 이름을 들었기에 호겔은 잠시 망치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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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가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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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결한 기사들에 대한 이야기는 망치를 잠시 내려놓을 가치가 있었으므로. 호겔은 물 한 잔으로 목을 축인 뒤 입을 열었다. 노인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만큼 아는 것이 많았으며, 그 이야기를 남에게 들려주는 것에 인색한 인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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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가. 그리운 이름이지. 왜, 이반 그 녀석이 아탕가의 이름을 말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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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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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겔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이반이 아탕가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은 몹시 드문 일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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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탕가가 뭐에요? 유명한 가문의 이름 같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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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가는 가문의 이름이 아니다, 애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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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겔 영감이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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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기사는 가문에 속하고, 자신을 밝힐 때 가문의 이름을 말하겠지만··· 아탕가에 속한 이들은 다르지. 아탕가는 일종의 무력 집단이자 기사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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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가 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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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란 명예와 긍지를 지키는 이. 명예와 긍지 없이 기사는 존재할 수 없으며, 존재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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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사의 계율(戒律)을 지키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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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전, 영웅들의 시대에서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기사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많이 바뀌었지. 명예롭지 않은 자도, 긍지를 모르는 이도 힘만 갖춘다면 얼마든지 기사가 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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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란 이름이 가진 무게가 가벼워진 시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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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중얼거린 호겔 영감이 힘을 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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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게 바로 아탕가 기사단이다. 긍지와 명예를 지키지 않는 이는 기사라 불릴 수 없다며, 오래된 계율을 입에 담으며 기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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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아탕가를 가리켜 이렇게 말한다. 이상주의자라고. 또 다른 이는 말한다. 기사 중의 기사들만이 속할 수 있는 곳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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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통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고, 올곧고, 딱딱하고, 때로는 미련한 놈들이지.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미워할 수 없는 놈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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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만나본 것처럼 말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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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만나봤었지. 그놈들 검을 몇 자루고 단조해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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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영광을 떠올린 노인의 눈은 아득해졌다. 추억에 젖은 호겔 영감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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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탕가는 그런 녀석들이다. 긍지와 명예에 죽고 사는 놈들. 꼭 동화 속의 기사 같은 놈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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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좀 멋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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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를 때는 몰라도 제 명예와 긍지를 입에 담을 때는 멋있는 놈들이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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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해 보일 때가 더 많지만 말이다. 그리 중얼거린 호겔이 내려놨던 망치를 다시 손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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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검은 한 삼사일 뒤에나 완성될 것 같다. 그때 찾으러 와라. 그동안 쓸 검이 필요한 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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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건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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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호겔의 말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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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서 일어선 나진은 제 허리춤을 툭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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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은 이거 쓰면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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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며 나진이 가리킨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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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이반의 검이 매달려 있었다. 십여년 전 호겔이 단조해 낸 역작이었다. 이반의 허리춤에 걸려있어야 할 검이 나진에게 있음을 확인한 호겔은 조금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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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남에게 검을 맡기는 법이 없는 이반이, 자신의 검을 남에게 내주었다. 그 의미를 모를 만큼 호겔은 까막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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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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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겔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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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의 눈에 찼나 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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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좀 잘났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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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없는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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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을 던지며 대장간을 빠져나가는 나진을 보며 호겔은 웃었다. 오랜만에 짓는 시원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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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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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게 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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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어가 빠진 오펜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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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손질하던 이반의 손이 잠시 멈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반은 검을 마저 손질하며 입을 열었다. 오펜이 뭘 물어보는지 알아차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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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쳐 보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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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이군. 왜, 뭐라도 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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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봤지. 아마도 네가 봤던 것과 같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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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이 히죽였다. 그 웃음에 오펜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양 어깨를 으쓱였다. 검의 길을 걸어본 이들이라면 나진의 재능을 모를 수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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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에 묻혀선 안 될 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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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광채를 이반 또한 마주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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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함과 즐거움, 그리고 흥분이 뒤섞인 표정을 지은 채 이반은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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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검을 못 들게 어깨나 베어버릴까 생각했는데, 그놈이 검기를 뽑더라고. 검기를 뽑아서 내 검을 막았어. 그것도 밀어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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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 박살 나며 대치는 끝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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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이지만 이반은 나진의 기세에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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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 가르쳐준 적도 없는 걸 뽑고 앉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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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살에 검기의 편린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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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지. 불세출의 천재라 불리던 검성 카론 경께서도 스물셋에 검기를 뽑았다고 알려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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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달리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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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키면 윗동네가 발칵 엎어지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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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이런 지하도시에서 그런 천재가 나와선 안 되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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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명백한 ‘위험 요소’가 됐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만약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면 나진은 불세출의 천재라 불리며 온갖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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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진은 지하도시에서 태어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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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하도시에서 태어난 이들은 모두 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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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아선 안 될 것에 손을 뻗은, 캄란의 저주받은 더러운 것들과 같은 이단자들. 그런 이단자가 찬란한 빛을 가졌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윗동네··· 특히나 교단에선 나진을 반드시 묻어버리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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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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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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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을 수 없을 만큼, 차마 덮을 수 없을 만큼의 가치를 가지게 만들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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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엑스퍼트 정도야 위에서 작정하고 덮으려 한다면 쉽게 덮을 수 있다. 저항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진이 그다음의 경지에 오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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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시커(Sword See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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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엑스퍼트와 마스터 사이에 놓인, 인간과 초월자의 사이에 서 있는 강자. 초월에 오를 길을 찾아 헤매는 검의 구도자들. 나진이 소드 엑스퍼트들 중에서도 극히 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인 그곳에 닿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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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나진을 조용히 묻을 수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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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시커급의 강자를 묻으려면 막대한 전력이 필요할 테니까. 그런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묻으려 든다면 반드시 잡음이 발생할 것이고, 누군가는 눈치채고 만다. 일을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단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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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만 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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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이 자신이 기사 시절 휘둘렀던 검을 손질하며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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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와 협상이 가능하겠지. 그쪽에서도 이쪽의 말을 들어야만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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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협상의 자리에 이반과 오펜은 나진을 길러낸 스승으로서 앉게 될 것이다. 죄를 짓고 추락한 지하도시의 쓰레기가 아닌 기사와 용병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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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일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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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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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면 다시 한번 위로 올라가는 거고, 실패하면 죽음이라니. 꽤 화끈한 도박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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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걸어볼 만한 도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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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이 히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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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검기를 뽑아낸 애송이야. 걸어볼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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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주점에서와는 전혀 달라진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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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태도에 오펜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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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답지 않은 선택인데. 이런 도박은 안 하는 거 아니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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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지. 눈깔 하나 잃고 여기까지 떨어진 뒤로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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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고 이반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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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버린 걸 어떡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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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가진 광채. 이런 지하도시에서 썩어가기엔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채. 그 빛은 이반이 언젠가 놓아버렸던 꿈을 일깨우기엔 충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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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한 걸 보고도 심장이 안 뛰는 놈이 어딨어? 씨벌, 건방진 애송이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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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역시 한때는 정점을 꿈꾸던 검사였으며, 별을 동경했던 기사였다. 그리고 나진이 이반에게 보여준 광채는 그가 지하도시에 떨어진 이후 잊고 살았던 별빛과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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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광채를 떠올리며 이반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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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의 입가에 맺힌 것은 지하도시를 주름잡는 지배자의 탁한 웃음이 아닌, 별을 쫓았던 기사의 투명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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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여전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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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반의 모습에 오펜은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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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렇게 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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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광채를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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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은 나진의 운명을 동정했다. 결국에 평생 이 도시에서 썩어가야 할 나진을 딱하게 여겼다. 그렇기에 술자리에서 이반에게 그런 말을 던졌던 것이다. 나진에게 걸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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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계획도 없이 즉흥적으로 던진 말. 빌어먹을 꼬맹이에 대한 동정심에서 비롯됐던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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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제안을 이반은 받아들였다. 제안에 살을 붙여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기사 시절의 이반을 보는듯했다. 이제는 낯설고도 또 그리운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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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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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채 오펜은 길게 숨을 뱉었다. 평소와 같은 술에 찌든 숨결은 아니었다. 취기를 싹 뺀 오펜이 허리춤의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용병 시절 무던히도 휘둘러댔던 그의 애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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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바빠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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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겠지. 가르칠 방법도 생각해 봐야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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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것도 그거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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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이 뽑아 든 검을 까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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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저것부터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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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의 칼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호르세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위한 입구가 있다. 호겔 영감의 대장간에 있는 정문이 아닌, 갱도를 통해 들어서는 뒷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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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뒷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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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늘어트린 이반은 기사로서의 웃음을 지우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들의 걸음걸이와 장비의 상태를 확인한 이반이 칼자루를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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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졸 넷에 간부급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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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 세냐? 만나본 적은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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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마나를 다룰 줄 알긴 하는데 엑스퍼트 급은 아니야. 네 번째 다리였나 할 거다.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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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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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눈에 보이는 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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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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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이 턱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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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른쪽 셋을 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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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가 간부 쪽 처리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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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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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에서 갱도의 입구를 내려다보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땅을 박찼다. 그러나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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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으로서 숱한 의뢰를 수행했던 오펜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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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로서 숱한 작전에 투입됐던 이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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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과 잠입,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레인저에겐 못 미친다고 하나, 그들 또한 잠입과 요인 암살은 질리도록 해봤다. 벽만 보고 검을 휘둘러서 소드 엑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게 아니다. 실전 경험은 차고 넘칠 만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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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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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이반과 오펜은 이미 경비병의 코앞까지 접근한 뒤였다. 그들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오펜의 검이 경비병의 목을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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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물이 튀었다. 튀어 오르는 핏물을 가르며 오펜의 검이 송곳처럼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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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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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경비병의 목덜미가 꿰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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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물에 목이 막혀 쓰러지는 경비병의 목에서 검을 뽑아내며 오펜이 크게 한 걸음 내디뎠다. 뒤늦게 기척을 알아차리고 급히 뒤를 돌아본 경비병의 입을 향해 오펜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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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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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틀어막은 채 목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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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세 명이 죽었다. 순식간에 셋을 처리한 오펜이 숨을 내뱉으며 뒤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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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컥, 커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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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제 목을 붙잡은 채 바닥을 기고 있는 간부가 있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반이 바닥을 기는 간부의 등줄기에 검을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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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경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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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부는 더는 움직이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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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목젖을 베어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만든 다음 처리하는 방식. 시체에서 검을 뽑아낸 이반이 갱도 안쪽을 가리켰다. 들어가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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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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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잠긴 갱도를 향해 둘은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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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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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나진은 거리를 순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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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이 자리를 비운걸 아는 조직원은 극히 소수일 뿐더러, 고작 해봐야 며칠 자리를 비운다고 무슨 일이야 나겠냐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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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이란 게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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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지하 도시의 분위기가 흉흉하지 않은가. 아직 못 잡아낸 호르세 쪽의 첩자가 뭔가 일을 벌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거리를 순찰하고 있긴 하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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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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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순찰하다 보니 어느새 광장의 근처에 와 있었다. 나진은 괜스레 광장의 중심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을 흘겨봤다. 그러고 보니, 오늘 자정이면 엑스칼리버가 사라진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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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시련이 진행되는 것은 13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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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이 바로 13일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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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검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지난 13일간 꾸준히 광장을 기웃거린 나진이지만, 결국 첫날을 제외하곤 검은커녕 검이 내뿜는 빛조차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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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 지키고 있는 병사들 갑옷 구경이나 실컷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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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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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이제 더는 광장을 어슬렁거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일이면 성검이 사라질 테고, 성검이 사라진다면 귓가에 울리는 이 목소리도 사라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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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을 뽑아라. 너라면 뽑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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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정이 들 것 같은 문장을 곱씹으며, 나진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나진이 광장을 벗어나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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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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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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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곳에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조직원이 있었다. 이반이 자리를 비운 걸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조직원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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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수꾼 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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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과 나진을 제외한다면 이반의 조직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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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에요, 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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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욱, 후우··· 그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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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고르고 말해요. 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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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오느라 숨이 찼는지 제크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길게 숨을 내뱉은 제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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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데이지 주점 앞에서 땅거미 조직 놈이 깽판을 치고 있다. 당장 이반을 데려오라고. 이반에게 해야 할 말이 있다고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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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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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눈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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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인가? 남의 구역에서 왜? 일단 묶어놓고 이반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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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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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크가 나진의 말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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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열댓명이 달려들어서 붙들고 있긴 한데, 얼마 못 갈 거야. 그놈 간부야. 그것도 첫 번째 다리 아놀드. 아무래도 네가 와봐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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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거미의 첫 번째 다리, 아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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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개의 다리 중에 가장 강하며, 이반의 말에 의하면 소드 엑스퍼트에 근접한 강자. 제크의 이야기를 들은 나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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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가죠. 먼저 갈 테니까 따라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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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다. 숨만 돌리고 따라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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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다리가 깽판을 치고 있다는 주점을 향해 나진이 달리기 시작했다. 일단 그곳으로 향하긴 하지만 나진은 느껴지는 위화감을 떨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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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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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맴도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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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다리 아놀드는 땅거미 호르세 조직의 이인자라 불리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왜 이반의 영역에 들어와서 깽판을 치고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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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이 선수 치려는 걸 눈치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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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렇다기엔 석연찮은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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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이 선수를 친 걸 알아차렸다면 오히려 자신의 영역에서 호르세를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이곳까지 찾아와 이반을 데려오라며, 이반에게 해야 할 말이 있다고 난동을 피우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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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껴지는 묘한 위화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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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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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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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는 다른 거리의 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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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손등으로 코를 문질렀다. 공기에 섞인 악취에 나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언젠가 맡아본 적이 있는 악취였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하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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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데려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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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귓가에 목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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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주점 앞에 도착한 것이다. 그곳에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조직원들을 떨쳐내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 첫 번째 다리, 아놀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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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을 데려와라! 알려야 한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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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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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세도, 나도, 이용당했을 뿐이란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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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찢어져라 소리치는 아놀드의 눈동자는 시뻘겋게 충혈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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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약에 취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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