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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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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토벌이 아니라 경쟁이다.

이 자리에 모인 백각 모험가 넷이 그리 판단한 데에는,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존재했다. 그들이 딱히 용의 두려움도 모르는 천치들이라 그런 것은 아니다.

일천년 전 신화시대의 종막과 함께 용들의 태반이 종적을 감추었다 한들, 용들의 위용은 역사서에 고스란히 남아있었으니까. 개체마다 차이가 있긴 하나 통상적으로 소드 시커가 단독으로 용을 사냥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 ‘통상적으로는’ 말이다.

캄브리아 아래에 봉인된 적룡과 백룡은 통상적인 용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본디 하나였으나 둘로 쪼개진 용이며 이미 아서에 의해 추락하고, 멀린에 의해 힘의 태반을 잃고 봉인된 용들이다.

한때는 위대했으나.

땅 아래로 떨어지며 위대함을 잊은 용.

적룡과 백룡은 그 특성도, 공략법도, 심지어는 약점까지도 모조리 까발려진 용이다. 하물며 오랜 세월 봉인된 영향으로 약화까지 돼 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소드 시커 다섯이면 능히 사냥하고도 남는다.

중요한 건 누가 ‘마지막 일격’을 꽂느냐.

이곳에 모인 모험가들은 그리 판단했다.

조금의 위험은 있겠지만 그 위험을 감수하고 얻을 수 있는 보상은? 용의 가죽과 뼈, 피, 심장과 같은 부르는 게 값인 최고급 소재들이다. 그리고 용의 소재로 만들어진 아티팩트가 하나 같이 입이 떡 벌어지는 성능을 가졌음을 모르는 모험가는 없었다.

모험가란 금화와 위험을 저울질 하는 이들.

그들에게 있어 이번 용 토벌전은 입맛을 다시게 만드는 기회였다. 중앙길드의 길드장도 그 사실을 알기에 토벌권을 우선해서 가져온 것이겠지. 위험보다 이득이 더 크다고 여겼을 테니.

황실의 기사단은 어디까지나 보험일 뿐, 이 도시에 모인 모험가들로 충분히 토벌 가능하다······.

-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멀린이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평범하게’ 흘러갔다면 이건 틀린 판단은 아니야. 대략 이백년쯤 전에도 백룡과 적룡이 부활했었거든?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응, 몇백년마다 한두 번씩 봉인의 틈새로 튀어나오곤 해. 완벽한 봉인이란 세상에 존재할 수 없거든. 아무튼, 그때마다 소드 시커 몇 명이서 쉽게 사냥했으니 이번에도 그렇다고 생각하겠지.

그녀가 회의실의 테이블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았다. 당연하게도 멀린은 나진의 눈에만 보였기에 다른 백각 모험가들이 보기에 나진은 허공을 올려다보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지.

멀린이 고개를 숙여 나진을 바라봤다.

-저들이 착각하는 건 두 가지.

그녀가 두 손가락을 펼쳤다.

-하나는 이번에도 약화된 용이 나올거라 생각하는 거. 이번엔 달라. 봉인식이 ‘완전히’ 깨질 거거든. 저들이 상대해야 하는 건 약화된 용이 아닌 나와 아서가 상대했던 신화시대의 용이야.

손가락 하나를 접고.

다른 손가락 하나를 까딱이며 멀린이 말했다.

-그리고 둘은, 만일 완벽한 용이 부활한다 한들 자신들이 용을 사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지. 이 착각은 어째 일천년간 변함이 없네.

멀린이 우습다는 듯 히죽였다.

일천년 전, 용을 떨어트릴 당시 멀린은 육환(六環)의 마법사였으며 아서는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었다.

-단 둘이서 용 두 마리를 떨어트렸으니, 소드 시커 여럿이 모이면 충분히 할만한 게 아닌가? 그런 이야기가 돌았었지. 그때마다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봉인해 버려서 보여줄 수도 없고.

멀린이 한숨을 내쉬며 턱을 괬다.

-그게 그리 쉬우면 별을 얻을 수 있었겠어?

위업을 이루어야 하늘에 걸 수 있는 별.

자신의 첫 번째 별을 손바닥 위에서 굴리며 멀린은 나진을 바라봤다. 그것은 자신이 이끌어야 할 왕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후배를 바라보는 눈동자이기도 했다.

-이번엔 네 차례야.

멀린의 푸른 눈동자와.

나진의 노을빛 눈동자가 서로를 바라봤다.

-네가, 너만의 방식으로 증명 할 차례이지.

일천년 전 아서는 용의 날개를 베어 땅 아래로 떨어트렸다. 그렇다면 너는 어떠한 방식으로 용을 떨어트릴 것인가? 어떻게 그들을 땅 아래에 가두어 둘 것인가? 멀린의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다.

아서와 닮았지만 닮지 않은 소년.

이번 토벌전에서 소년이 어떠한 대답을 들려줄지, 어떠한 방식으로 별을 손에 넣을지, 멀린은 너무나도 궁금했다. 하지만 그 대답을 듣는 것은 한 달 뒤로 미뤄두어야 하리라.

나진의 독백이 멀린에게 들리듯, 멀린의 독백과 감정 역시 나진에게 일정 부분 흘러들어왔다.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오르며 많은 것이 바뀌었으므로.

옅게나마 흘러들어오는 멀린의 감정을 느끼며 나진은 입가를 틀어 올렸다.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멀린.

멀린의 조언을 들으며 떠올렸던 것.

그것을 곱씹으며 나진은 웃었다.

자신도 자신 나름의 방법을 생각 중이었으니.

중앙길드로부터 토벌과 관련된 정보와 서류를 받은 뒤 나진은 길드를 빠져나왔다. 그 과정에서 마주치는 직원마다 나진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는데 이 또한 백각 등급의 특권이었다.

기회의 도시 캄브리아에서 높고 낮음을 가리는 것은 오로지 실적이다. 그리고, 백각 등급의 모험가는 가장 높은 실적을 가진 이들.

‘캄브리아의 귀족이라고 불리는 게 이런 뜻이군.

나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제국의 황실에서 계산한 봉인식의 틈이 벌어지는 날은 한 달 뒤였고, 멀린도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다. 즉, 한 달 정도 여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한 달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크고 작은 의뢰들을 수행해도 좋겠지만, 나진은 지금의 자신에게 과할 정도로 세간의 시선이 쏠려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무엇을 하던 시선이 따라붙을 것이며 그 의도를 의심받을 것이다.

‘내 앞으로 도착한 지명의뢰만 해도 수십 개고.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런 속내가 훤히 보이는 의뢰는 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한 달간 뭘할지에 대해선 이미 생각해둔 참이었고.

‘멀린.

-응, 말해.

‘용을 잡고 나면 분명 대륙의 바깥으로 나간다 했죠? 별들의 전장과 악마들의 땅.

-그렇게 되겠지.

멀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성을 쌓고, 위업을 이루고, 별을 새기는데 그만한 장소는 없으니까. 그리고 숱한 영웅들이 걸음 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별들의 전장과 악마들의 땅.

일전에 멀린이 보여주었던 환상을 나진은 기억하고 있었다. 제 영혼을 뒤흔들고 한번은 무릎 꿇렸던 풍경들.

-그으거언··· 시험하려 했던 거야. 알지? 막 너 겁주려는 의도가 없···지는 않았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었어.

‘알고 있어요. 왜 그래요? 갑자기.

-네가 저번에 말했잖아? 멀린도 나한테 대뜸 지랄하지 않았냐고······.

묘하게 시무룩한 목소리.

게르드와 조우했을 당시 농담삼아 던졌던 ‘멀린 당신도 그랬잖아요’ 라는 말에 아직도 신경을 쓰고 있는 듯싶었다. 나진이 피식 웃었다.

‘다 알죠. 시험이었잖아요?

-그치?

밝아지는 멀린의 목소리를 보니, 뭔가 조금 더 놀리고 싶었지만 나진은 꾹 참았다.

‘아무튼, 늦어도 두 달쯤 뒤면 그쪽으로 가게 될 것 같은데··· 이번에 한번 미리 보고 올까 생각 중이에요.

-지금?

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용을 잡으려면, 용 비슷한 거랑 상대라도 해봐야 할 것 같은데 내륙에는 마땅찮더라고요.

용과 비슷한 마물.

용의 피가 옅게나마 섞여 들어간, 그러나 그 신비는 공유받지 못한 존재. 와이번. 그것이 나진이 점찍어둔 연습 상대였다.

-와이번은 나름 상위 마물이니까 마경 쪽에 있긴 하겠지. 그래서 그걸 잡으러 가보겠다?

‘감은 잡아야 하니까요. 날아다니는 놈들이랑 싸워본 적이 딱히 없는 것 같아서.

잠시 고민해 보던 멀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긴 하네. 네 행보를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보여주기도 좋고.

그 부분 또한 나진이 노리는 것이었다.

지금 자신에게 쏠려있는 시선들에게 보여줄 생각이었으니까. 자신은 마경으로의 진출을 시험 중이며, 차후 그곳에서 활동할 것이라고.

-나쁘지 않긴 한데······.

다만 멀린은 무언가 걸린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처음 보면 그··· 좀 충격적일 거거든?

‘와이번이요?

-아니, 세상의 바깥. 외륙(外陸).

무언갈 설명해 보려다가 멀린이 입을 다물었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단 한번 보는 게 빠르겠지. 그래서, 지금 당장 갈 생각?

빨라서 나쁠 건 없었다.

왕복에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한 달도 나름 빠듯한 일정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고개를 끄덕인 나진은 곧장 마차 하나를 매수했다.

대륙의 끝.

경계선, 그렇게 불리는 곳까지 멈추지 않고 직행으로 달리는 마차였다.

대륙의 바깥쪽, 외륙(外陸).

혹자는 그곳을 가리켜 세상의 바깥, 세외(世外)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틀린 표현이 아니었다. 세상에 통용되는 규칙의 태반이 그곳에선 일그러지거나, 망가진 채로 적용되기에.

산자와 죽은 이가 명확히 나뉘지 않는다. 염하지 않은 시체는 하룻밤이 지나면 저절로 살아 움직이며, 망자가 되어 세상을 떠돈다.

시간의 흐름이 일정하지 않다. 어느 곳은 빠르며 어느 곳은 느리고, 또 어느 곳은 아예 멈춘 채 박제되어 있다. 그렇기에 모든 계절이 공존하기도, 하나의 계절만이 영원히 반복되기도 한다.

규칙과 섭리가 엉망인 곳.

절경과 황무지가 마구잡이로 뒤섞인 곳.

그렇기에.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성좌들이 개입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세상의 바깥, 외륙이다. 지금 나진이 향하는 곳인 악마들의 서식지인 마경(魔境) 역시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일부 악마들은 성좌와 비견되기도 해. 애초에 성좌인 놈들도 있고. 악마라고 성좌가 못 되는 건 아니니까.

‘그 정도예요?

-마경의 지배자, 마왕이라 불리는 놈들은 그 정도는 될걸? 내가 태워죽였던 바알이란 놈도 별 아홉개는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멀린의 설명을 들으며 이동하기를 며칠.

몇 날 며칠을 달리던 마차는 돌연 멈춰 섰다. 마부는 여기서부턴 더 이상 못 나아간다며, 나진을 내려두고선 마차를 돌려 내륙으로 향했다.

황야에 덩그러니 놓아진 나진은 눈을 깜빡였다. 주변을 둘러보면 ‘마지막 한잔’이란 간판이 걸려있는 마구간 겸 주점이 하나 놓여 있었다.

“여긴 처음인가?”

주점의 바깥에서 술을 홀짝이던 사내 하나가 나진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는 팔을 쭉 뻗어 한쪽을 가리켰다.

“한 시간쯤 걸으면 도착할 거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술을 홀짝일 뿐이었다. 나진은 고개를 돌려 사내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뒤틀린 지형과 황폐해진 토지가 끝없이 이어진 곳. 일단 나진은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본 나진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하늘이 깨져 있었다.

푸르른 하늘에 금이 가 있었으며, 균열은 저 멀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거의 다 왔네.

멀린이 그렇게 말했고.

나진은 걸음을 다시 옮겼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다시 걸음을 멈추어 서야만 했다. 땅에 하나의 경계선이 그어져 있었으므로. 누가 그었는지는 모르나 경계선은 세상을 양분한 것처럼 저 멀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거, 최초의 검성이 그은 거야.

멀린이 히죽였다.

-아서가 캄란의 경계선을 긋는 걸 보고, 자기도 하나는 그어야겠다고 대뜸 그은 게 이거거든.

천년이 지나도록 흔적이 남은 검격.

도대체 어떻게, 어떤 식으로 검을 휘둘러야 이런 식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잠시 경계선을 바라보던 나진이 길게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경계선 바깥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한 걸음.

한 발자국.

그렇게 세상의 바깥에 걸음을 내디딘 순간.

“······!”

나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쿵, 쿵, 쿵 심장이 거세게 뛰었으며 체내의 마나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나진의 동공에 핏발이 바짝 섰고 온몸의 감각이 한계까지 곤두섰다.

공기가 역변했다.

마나의 흐름이 뒤집혔다.

온 감각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곤 파삭, 하고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나진은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피부가 갈라지고 있었다. 아니, 피부가 아니었다. 육신이 아주 천천히 바스러지고 있었다.

-마나를 전신에 둘러.

나진이 빠르게 마나를 둘러쳤다.

그제야 갈라짐이 멈추었다.

-여기선 항상 마나를 두르고 있어야 해. 아니면 아예 여기에 몸을 적응시키던가. 뭐··· 넌 엑스칼리버 덕분에 마나를 안 두르고도 몇 달은 버틸 텐데, 해볼 거면 해봐도 돼.

별로 추천은 안 하지만.

멀린이 중얼거리는 가운데, 나진은 천천히 숨을 가다듬었다. 당황스러웠다. 고작 한 걸음 내디뎠을 뿐인데 자신이 알고있던 상식이 망가진 느낌이었으니.

-원래 여기가 그래. 그런 곳이니까.

쓰게 웃은 멀린이 나진의 옆에 바로 섰다.

-그리고, 아직 놀라기는 이를걸.

그녀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나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한순간에 뒤바뀐 것은 일대의 흐름만이 아니었다. 경계선 너머에서 보았던 풍경과 경계선 안으로 들어와서 본 풍경은 전혀 달랐다.

사막과 초목이 공존했으며, 눈보라가 몰아치는 곳과 바짝 마른 황무지가 공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원근감을 무시하고 시야에 들어오는 구조물들이었다.

땅에 박힌 거대한 검, 부러진 창, 화살, 사슬, 낫··· 온갖 종류의 무구들.

-성좌들의 상징이지. 저긴 자기네 영역이니 들어오면 재미없을 줄 알라는 경고 같은 거야.

멀린은 그리 설명하면서, 다시 한번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저 풍경은 나중에 보고 하늘이나 먼저 봐보라는 것처럼.

그래서 그렇게 했다.

나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왜 멀린이 하늘을 보라 한 지 나진은 깨달을 수 있었다. 제멋대로 쪼개진 하늘. 마치 깨진 유리창처럼 하늘은 깨져있었으며, 깨진 곳마다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푸른 하늘 사이사이에 검은 밤하늘이 존재했다.

그리고, 밤하늘에는 빛나는 별이 박혀 있었다. 저마다의 색으로 빛나는 별들. 그 별들이 마치 눈동자 같다고 나진은 생각했다.

-정확한데.

‘예? 뭐라고요?

-정확하다고. 눈동자 맞아 저거.

멀린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곤, 그녀가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멀린이 나진의 영혼을 감싸놓았던 장막이 걷혔다. 그 순간, 나진은 동시다발적으로 밀려드는 감각에 숨을 헛삼켰다.

시선, 시선이 느껴졌다.

하나가 아니었다. 수십, 수백, 수천 개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은 하늘에서부터 시작됐다. 저 빛나는 별 하나하나가 모두 시선이었다. 수백 개에 이르는 별이 나진을 주목하고 있었다.

-세상의 바깥, 외륙(外陸).

멀린이 양팔을 쫙 펼쳤다.

-빌어먹을 별자리들의 땅에 온 걸 환영해.

아서왕 다음으로 가장 많은 별을 가진, 어느 오래된 성좌는 쓰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