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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무리야?”
“왜 무리냐니.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서하의 말. 하지만 명전은 오히려 되물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 것일까. 진짜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걸까.
“결국 지금 서하 네가 마음에 안 드는건 저 사람들의 ‘테크닉’적인 부분이잖아. 근데 기술적인 면은 빨리 발전하기 힘들어. 기본적으로 우리 밴드가 빨리 늘었던 건, 다들 재능이 있었던 거지.”
아까 전 연주를 듣고, 명전은 3주 만에 뭔가를 이뤄내기 힘들겠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실력도 실력이지만… 밴드 자체의 분위기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래도 같은 건 없어.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듯한 서하의 목소리. 명전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네가 말했잖아. 몇년동안 쳤는데도 그 실력이라고. 그건 그 사람들이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야. 성장을 멈춘 게 아니라, 성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거지. 연주 자체가 그런 스타일이니까. 우리처럼 ‘기술적인 면을 더 갈고닦자! 좋은 연주를 하자!’ 보다는 ‘즐기는 연주’를 하는 밴드인 거지.”
서하가 겪어왔던 ‘홍대 인디 씬’의 밴드들. 아니 멀리 가지 않고 ‘그룹 사운드’만 해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경쟁하며, 조금 더 좋은 연주와 조금 더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유형의 밴드다.
하지만 아까 전 겪었던 그 밴드는 다르다. 그들의 목적은 경쟁과 연주, 음악이 아니라 ‘신앙’이다. 아예 출발선부터 다른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의 기준을 적용한다라. 뭐 해 보는 건 좋아. 하지만 우리 레벨에 조금이라도 근접하게 하기 위해서는 극한의 연습과 노력, 한계를 돌파하고자 하는 마인드가 필요해. 그 사람들이 과연 그걸 가지고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명전은 두 손으로 턱을 괸 채, 서하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 사람들이 그럴 요인이 있을까?”
악기를 잡을 때 처음부터 “나는 음악 대충 할 줄 알면 만족해.” 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예를 들어 기타를 잡는 이라면 누구나 지미 헨드릭스와 에릭 클랩튼, 존 메이어를 꿈꾼다.
하지만 그런 사람 100명이 있다면 1년 후에는 10명만 남고, 10년 후에는 1명만 남는다. 그게 현실이다. 모두가 식음을 전폐하고 기타를 잘 치기 위해서 노력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필요한 적정 수준이 있고, 그 수준에 도달하면 굳이 더 성장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성장을 멈추었다, 혹은 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내려다볼 수는 없다. 음악은 결국 서열화를 할 수 없는 것이니까.
명전의 말에 침묵하는 서하. 입을 꾹 다문 채, 책상을 내려다보는 얼굴. 카페의 노란 불빛이 그녀의 눈가에서 살짝 빛난다. 명전은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흘러내릴 듯 아른거리던 그 불빛은, 깜빡임 몇번에 자취를 감췄다.
“그 사람들 실력이 좀 뭐, 기술적으로는 약간 부족한 면이 있긴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그냥 테크니컬한 부분 조금만 손 보고 이대로 계속 가면 잘 될 것 같은데…”
“없어도 해야지.”
“응?”
명전의 말을 끊으며, 서하는 고개를 쳐들었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 명전은 살짝 입을 벌린 채로 서하의 목소리를 들었다.
“안 그래? 없어도 해야 하는 거지. 무대에 서고, 공연을 하는 사람이라면…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하잖아. 네가 말했던 것처럼.”
“… 내가 아까 말하지 않았어? 그 사람들은…”
“몰아붙이면 발전을 하겠지. 그렇지 않나? 아무튼 나는 이번 공연을 무조건, 잘, 부모님이 보시고 감탄할 정도로… 그 정도로 해내고 싶어.”
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명전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냐는 심정으로 서하를 바라보았다.
과연 진심이 아니었다.
절박해보이는 얼굴. 서하가 탁자 위에 올려놓은 손은 미세하게 떨린다. 마치 물러설 수 없다는 듯 입술을 약하게 깨물고, 눈동자는 흔들리면서도 곧은 눈빛을 유지한다.
그런 서하의 표정을 보고, 명전은 의자에 기대어 팔짱을 꼈다.
‘생각해보면, 이럴 만도 한가.’
부모자식간에 완전한 이별을 맞이했다고 할 수는 없다. 영영 보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일년에 두어번 보는 사이가 어떻게 정상적인 부모자식간 사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분명 부모님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발전했다. 칭찬해달라. 인정해달라. 누구나 그런 욕구를 가지고 있다. 명전 자신 또한 그러했으니까.
그는 옛날의 일을 떠올려보았다. 기타가 치고 싶어 가출했던 후에도, 그는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어 안간힘을 다했었다. 사정은 잘 모르겠으나, 서하도 아무튼 그런 느낌 아닐까.
“그래 뭐.”
“무조건… 응?”
어쩔 수 없나. 명전은 코로 숨을 짧게 내쉬고는, 그렇게 말했다. 뭔가 이야기를 하려던 서하는 급하게 말을 끊었다.
“일단 그쪽이랑 만나보고. 우리가 뭐, 한다고 해도. 그쪽에서 안 하겠다 시간 없다. 이렇게 말해버리면 아무런 소용도 없잖아.”
그 말에 밝아지는 서하의 표정.
“이야기를 해 보자. 밴드 멤버가 난생 처음 부탁을 했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지.”
명전은 그렇게 말을 끝맺었다.
“서하는?”
얼마 뒤. 명전은 따로 시간을 내 유진과 밴드 멤버들을 카페에서 만났다. 서하를 데려오면 역효과만 날 것 같아 명전 혼자만 그들을 만났으나, 밴드 멤버는 명전을 보자마자 서하부터 찾았다.
“그때 조금, 사이가 안 좋으신 것 같아서. 또 싸우고 이러면 이야기가 진전이 안 되니, 데려오지는 않았습니다.”
“…음. 맞는 말이긴 한데. 하… 아니, 싸운다기보다는, 어… 음.”
말을 꺼내기 힘들어보이는 유진. 명전은 그녀의 이야기를 인내심있게 기다렸다.
“일단, 서하가 나쁜 애는 아니야.”
“네?”
전혀 맥락없이 튀어나오는 이야기에, 명전은 사고가 살짝 정지했다. 그 이야기를 왜 자신한테 하는가? 서로 소리지르고 싸운 건 당신네 둘 아니냐? 그런데 뜬금없이 나쁜 애는 아니다 뭐다가 나올 이야기인가.
“서하네 밴드 리더라고 했지. 그쪽에서도 고생 많을 것 같은데. 어때?”
“저희 쪽에서는 별 문제 없습니다만.”
“진짜? 와, 대박. 완전 배신자네.”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유진은 다시 명전을 바라보았다. 단정한 눈빛은 그 안에 담긴 감정을 짐작케 했다.
“원래 엄청 착한 애야. 신앙도 깊었었고… 요새는 안 나오지만. 혹시 유 목사님 이야기는 들었어? 서하 부모님.”
“네.”
“다행이네. 유 목사님 내려가시고부터, 평소에는 착한데 음악이랑 관련되면 좀… 애가 이상해진다고 해야 하나. 공격적이게 된다? 뭐 그런 느낌.”
유진은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듯 아련해보이는 눈길.
“그럼 뭐, 어쩌다가 싸우게 되신 겁니까?”
아무래도 질문을 좀 던져달라는 의미인 것 같아, 명전은 내심 한숨을 쉬며 말을 걸었다. 기다렸다는 듯 대답하는 유진.
“얼마 전에 서하가 유 목사님 오신다고, 이번 공연 잘 해보자고 하더라고. 우리야 뭐, 문제될 건 없어서 열심히 해보자고 했는데…”
유진은 그 때를 떠올렸다. 제대로 하자며 이야기를 하던 서하.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서하는 그 이상만을 요구했다. 즐기면서 신앙을 노래하자는 밴드원들이었지만, 서하는 그걸 원하지 않았다.
“서하의 기준에는 우리가 하는 게, 영 안맞았나봐. 우리는 그래도 ccm 밴드인데 좀 신앙적인 부분도 신경을 써야 한다. 주께 기도하는 마음가짐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서하는 그것보다는… 뭐, 그러다 서하가 화를 낸거지.”
너희들 밴드랑 직접적으로 비교도 하고… 마음 아프긴 했다며, 유진은 웃었다. 명전은 그제야 유진과 다른 밴드원들이 보인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사정이 있었으니 뭐 어쩔 수 없었겠지.
“서하는 진짜 음악 잘하는 애야. 너희 밴드 들어가서는 더 잘하게 된 것 같고. 거기에 우리는 따라가기 힘들고. 그러다보니 감정싸움 나고. 안 그래야 된다는 건 아는데, 뭐 사람 마음이 그렇게 조절하게 쉬운 건 아니니까. 그렇게 된 거지.”
유진은 그렇게 말을 끝냈다.
유진과 밴드원들은 연습량을 늘이는 것에 흔쾌히 동의해주었다. 주2회 4시간이었던 합주 연습은 주 4회 10시간으로 늘어났다. 그 뿐만 아니라 조금 더 진지하게 목표를 잡고 연습을 하기도 했다. 서하 자신이 보기에도 실력이 느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문제가 있다면, 단 두 가지.
첫째는, 서하의 기준에, 그들의 '실력’은 원래 낮았기에 티가 잘 안 난다는 것. 둘째는, 서하의 이상이 너무나도 높다는 것이었다.
“그만.”
수연의 말에 연주를 멈추는 밴드원들. 원래 ‘그룹 사운드’였다면 한숨 한번 쉬고, “때려치고 싶으면 연주로 그러지 말고 그냥 말을 해라.” 같은 소리가 나올 타이밍이었으나.
“잘 하고 있습니다. 잘 하고 있는데… 좀 아쉬운 점이 있군요. 드럼이랑 전반적으로 잘 안 맞는 느낌입니다. 드럼이 박자가 정확하니까 거길 따라가야 돼요. 그러면서 이제 좀, 음…”
평소의 칼날같은 기세를 내려놓은 채, 상냥하게 피드백을 해 주는 수연. 서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잘하긴 뭘 잘해.”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 조용히 중얼거린 말. 하지만 수연은 그것마저 들었는지, 고개를 돌리며 눈을 치떴다.
“일단 뭐, 계속 연습을 해 보지요.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처음이랑은 완전 다르니까. 충분히 잘 할 수 있어요. 그럼 잠시 쉬고…”
그 말에 튀어나가듯 올라가버리는 베이스와 키보드. 유진은 바로 수연에게 붙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하는 잠시 그 광경을 보다, 드럼을 두들기려다, 그냥 스틱을 내려놓았다.
‘이럴 시간 없는데.’
초조함이 마음 속을 맴돌아, 서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일어섰다. 교회 바깥의 하늘은 노려보지 않으면 별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마치 그녀의 앞날을 보는 것 같은 느낌.
얼마 전, 서하는 오랜만에 서울로 오겠다는 부모님과 통화를 했다. 그 때 그녀는 “엄마, 나 CCM 공연 할 건데 그때 볼 거죠?”라고 물어보았다. 당연히 볼 거라는 대답을 기대하고.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아직도 음악 하니?”
“…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니. 너 교회도 잘 안 나온다며. 노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신앙이란다. 공부는 잘 하고 있니?”
그 말에 서하는 대답을 하기가 힘들었다. 겨우 짜낸 “…네.” 라는 말에, 엄마는 “그래. 밥 잘 먹고 다니고. 항상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단다. 이만 끊을게.”라고 말했었다.
드럼을 하라고 한 것도, CCM 밴드를 결성하길 권유한 것도 모두 다 부모님이었다. 서하는 그 뜻에 따랐고, 음악의 길로 들어섰다. 계속해서 어필도 해왔다. “진로는 음악으로 잡을 것 같아요.”라고.
그 모든 것이 다 헛되었단 말인가.
그녀의 친구들을 몰아세우고, 안 되는 것을 되게 만들려 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룹 사운드’의 음악은 듣지 않으려 할테니, CCM이라도 들려주자고. ‘제대로 된 음악’을 들려주고, 부모님을 감동시키고, 인정을 받자고. 수연을 데리고 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젠 정말로 시간이 없었다.
그녀의 친구들은 좋은 사람들이다. 서하 자신도 알았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이라고 좋은 음악을 만들 수는 없다. 그녀의 친구들은 매상 “즐기면서 하자, 즐기면서!”를 외치면서, 제대로 된 연주를 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 그냥 자기들 마음대로 음악을 했다.
‘그런 음악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리가 없어.’
적어도 서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친구들은 정말 ‘기본’만 지킨 채, 박자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연주를 대충 했다. 수연은 언제나처럼 혹독하게 몰아세우지 않고, “연주 좋아요. 조금 더 느낌 살려서 갑시다.” 같은 영문 모를 소리를 했지만, 서하는 그런 연주 따위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기술적인 부분이 결여된, 그야말로 우연에 기대는 얄팍한 연주…
“뭐 하냐? 쉬는 시간 끝났어.”
뒤에서 들려온 수연의 목소리. 서하는 수연을 돌아보았다. 맨날 먹는 캔커피를 든 채로, 서하를 바라보고 있는 수연.
“빨리 들어가자. 얼마 안 남았으니까.”
“…우리, 할 수 있을까?”
“응?”
서하는 충동적으로 그런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을 받은 수연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뭘 하는데?”
“공연. 잘 할 수 있을까?”
“잘 할 수 있지. 지금 당장 올라가도 뭐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수연의 대답은 정말 의외였다. 서하가 듣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연주였는데도, 수연은 그렇게 말을 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 걸까. 어떻게 저게 충분하다는 걸까.
“하나도 안 늘었는데? 박자도 계속 미묘하게 안 맞고. 연주도 완전 기본 악보 그대로잖아. 중간중간에 자꾸 엇나가는 부분도 있고.”
“그건 엇나간다기보단… 음.”
수연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다시 대답했다.
“테크닉적인 부분은 당연히 단기간에 끌어올리기 힘들겠지. 주 10시간이라고 해도, 세팅하고 쉬고 뭐 이것저것 하다보면 부족한 면이 있고. 너랑은 안 맞는 게 당연해.”
“그러면…!”
“근데, 방법은 있어.”
수연은 그렇게 대답했다. 무슨 이야기일까. 어떤 방법이 있다는 걸까.
“무슨 방법?”
“니가 맞추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