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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점점 추워진다는 것을 느끼며, 명전은 기타를 멘 채 뚜방뚜방 거리를 걸었다. 지하철에서 걸어서 5분. 썩 괜찮아보이는 입지에, 깨끗하게 관리된 것이 분명해보이는 교회. 입구에는 서하가 서 있다.
“왔어?”
“어. 들어가자.”
들어간 교회 내부는, 외관에서 예상할 수 있는 느낌 그대로였다. 돈 좀 들였으리라 생각되는 인테리어. 깔끔하게 놓여 있는 탁자 건너편엔 찬란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빛나고 있다.
“평소에는 어디서 공연을 하는데?”
“여기서는 안 하고, 저쪽 홀이 따로 있어.”
본관만으로도 큰데 홀이 따로 있는가. 확실히 큰 교회라고 생각하며, 명전은 계속 걸었다. 청소를 하고 있던 몇몇 사람들이 서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고, 서하는 그 인사를 받아주었다.
“같이 한지 얼마정도 됐는데?”
“어… 글쎄. 한 7~8년 정도 같이 한 것 같네.”
“그 정도면 꽤 잘하겠네 다들.”
명전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뒤이은 서하의 대답엔 부정적인 감정이 담겨 있었다.
“시간만 보낸다고 뭔가 되지는 않지.”
“그렇긴 하다만은, 뭐…”
이야기를 나누며 도착한 곳은, 지하의 연습실이었다. 굳게 닫힌 방음문 사이로 조금씩 새어나오는 음악.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일단 오늘은 그냥 맞춰보기만 할 거야. 그 다음 커피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좀 해 보자.”
그렇게 말하며 서하는 문을 열었다. 틈새로 왕창 새어나오던 소리가 곧바로 멈춘다. 문 너머로는, 돈을 들인게 확실하게 느껴지는 방음 설비와 스피커가 보인가. 주인 없이 놓여 있는 드럼 옆에는, 키보드 남자 1명, 베이스 남자 1명, 기타 여자 1명이 자리잡고 있다.
“안녕하세요.”
“안녕… 하세요…?”
먼저 인사를 건넨 명전.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마치 ‘누구세요?’ 라고 묻는 듯한 뉘앙스. 그런 대답에 명전은 서하를 쳐다보았다.
“대타 구해왔어.”
“대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하는 서하. 기타를 잡고 있던 여자는, 말 끝을 확연히 티나게 올리며 서하를 응시했다. 그에 별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는 서하.
“왜. 문제 있어?”
“아니, 문제… 하. 서하야.”
“내가 대타 구해온다고 했잖아.”
“그 말이 아니고… 아니다. 대타로 오셨어요?”
서하의 대답에 입술을 깨물며 대답을 하는 기타와, 변한 분위기에 안절부절 못하는 나머지 두 명. 기타는 말을 이어가려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표정을 밝게 바꾸며 명전에게 말을 건넸다.
“네. 서하가 대타 좀 뛰어달라고 했는데… 혹시 제가 잘못 온 것인지.”
“아뇨아뇨, 아니에요. 잠시 좀 앉으시겠어요? 저희 마침 연습 중이었어서.”
“그렇게 된 거야.”
도착한 뒤로, 왠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나빠보이는 서하를 그대로 둔 채. 명전은 기타(최유진, 대학교 3학년)의 설명을 들었다.
요약하자면, ‘CCM 공연이 3주 뒤에 있을 예정인데 메인 기타가 손을 부숴먹었다. 그래서 대타를 구해야 할지 우리끼리 할지 고민이었던 와중에 당신이 왔다. 서하는 대타를 데려온다고 한 적이 없었고, 그래서 좀 당황스럽다’ 라는 이야기였다.
“그럼 대타를 구할 계획은 없으셨던…”
“아니! 그건 아닌데, 그건 아닌데. 약간 서하가 갑작스럽게 데려왔다고 해야 하나… 얘가 좀 마음이 급한 면이 있어.”
그렇게 말하며 서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유진. 하지만 서하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색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명전은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서하가 약간 그런 면이 있긴 합니다. 저희 밴드에서도 저런 느낌인데… 그나저나 3주 후 공연이면 혹시 주에 몇번 연습하시는지.”
“일단은 평일에 한번, 주말에 한번… 평소에는 주에 1번 2시간이고, 요즘은 주에 2번 4시간씩 합주 하고 있는데. 빠듯하긴 해.”
“주에 2번씩 2시간…”
횟수가 너무 적은데. 명전은 그렇게 생각했다. CCM이라고 해서 곡의 난이도가 특별히 낮다거나 율동 수준이라거나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힘든 곡은 똑같이 힘들고, 쉬운 곡은 똑같이 쉽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주에 2번씩 2시간은 매우 적은 수준이었다. 널널한 직장인 밴드 수준이라고 해야 할까.
“그럼 일단 오늘 바로 합주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명전의 말에 당혹한 표정을 지으며, 유진은 서하에게 질문을 던졌다.
“오늘… 지금 바로? 어… 서하야. 혹시 곡은 알려드렸어?”
“아니.”
퉁명스러운 서하의 대답에, 유진은 표정관리가 안 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서하는 그런 유진의 표정을 무시한 채로 입을 열었다.
“근데 괜찮아. 수연이 정도면 금방 칠 수 있을 거거든.”
“그 말이 아니잖아.”
서하를 달래듯이 말하는 유진.
“금방 맞춘다니까. 누구처럼 한두달 걸릴 필요도 없이 그냥 몇시간이면…”
“유서하.”
서하의 이름을 뇌까리며,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보는 유진. 서하 또한 마찬가지로 유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갑자기 냉각된 분위기.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베이스와 키보드.
명전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서하 쟤는 평소에 괜찮다가 여기 오니까 왜 또 저러는지. 이 양반들은 왜 사람 불러다놓고 이러고 있는지. 총체적 난국이었다.
“죄송한데, 어떤 곡 하시는지부터 알려주시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아… 미안해. 사람 다 있는데. 나도 참…”
명전의 말을 듣고는,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며 사과하는 유진. 하지만 서하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 여자가 무슨 부모의 원수라도 되는 건가? 도대체 왜 저러고 있는지.
“일단 몇곡 있는데, 제일 시급한 건 마커스 워십의 ‘다윗의 노래’. 혹시 알아?”
“네. 알고 있습니다.”
그 말에 의외라는 듯 “어… 혹시 CCM 했었어?” 라고 질문을 던지는 유진. 명전은 그저 “아니요.” 라고 대답했다.
“알고 있다니 다행이지만, 맞춰보긴 해야 할 것 같네. 밴드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 다들 호흡이 잘 안 맞지. 한번 맞춰보고, 어디부터 수정해야 할지 들어가보자.”
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밴드원들에게 제스쳐를 보냈다. 각자의 포지션을 잡고 들어가는 밴드원. 드럼으로 걸어가는 서하를 보며, 명전은 연습실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이게 말이 돼?”
연주 직후. 유진은 충격을 받은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다른 밴드원들도 비슷한 심정인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진짜 미쳤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니 혹시 나 몰래 다른 애들이랑 맞춰보기라도 했니?”
“전혀 아닙니다만.”
“그럼 어떻게 이렇게 잘 맞춰? 혹시 이거 몰래카메라 같은 거 아냐? 우리랑 완전 생전 처음 맞춰보는 건데, 아무것도 안 정해놓고 그냥 들어와서 완전 딱 들어맞게 맞춘다고?”
어떻게 그게 가능해? 유진의 마지막 말은 마치 절규와도 같았다. 그 목소리에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는 베이스와 키보드. 명전은 “충분히 가능하죠.” 라고 대답한 후, 머리를 살짝 꼬며 생각했다.
‘이건 좀 문제가 있는데…’
어수선했던 연습이 끝난 후.
“다음 일정은 서하에게 말해놓을게. 그 때 오면 될 것 같네.”라는 유진의 이야기를 들은 후, 명전은 서하를 끌고 카페로 직행했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지 듣기 위해서.
“그냥 대타만 뛰면 된다며.”
“그래서 대타만 뛰었잖아?”
“너는 방금 그게 대타만 뛴 거로 보이냐?”
명전은 서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까와는 달리, 몇초 있다가 금새 시선을 슥 돌려버리는 서하. 그는 한숨을 푹 쉬고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뭐 어떻게 된 건데. 설명 좀 해 봐.”
“그냥 하면 안 될까?”
“야.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봐라. 지금 저런 상황에서 연습이고 뭐고 되겠냐?”
입을 열기 싫다는 기세로 일관하는 서하에게, 명전은 그게 말이나 되냐는 듯 물었다.
“그냥 연습 하고 공연 하는거, 문제 없지. 그런데 니가 아까부터 대타 뛰어달라고 사람 불러놓고는 거기 밴드 사람들이랑 뭐 원수진 것 마냥 그렇게 굴고 있는데. 그런 분위기에서 연습이 되면 그것도 기적이다.”
명전의 말에 살짝 쭈그러든 서하. 그는 팔짱을 낀 채 서하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맹렬하게 진동하던 눈동자의 움직임이 잦아든 후. 서하는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좀 긴데 괜찮을까?”
서하는 원래 음악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아이였다. 소질의 ㅅ자만 보여도 오만 호들갑을 강제로 떨어지며 피아노니 뭐니 하는 것들을 억지로 주입받아지는 요새 아이들과는 다르게, 그녀의 유년은 음악과 아예 관계가 없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CCM 밴드에 드럼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부모님이 시켰지. 드럼 배우라고.”
“드럼을 배우라고 시켜?”
“응. 그거 때문에 드럼을 시작했어. 그 뒤로는 계속 드럼을 쳤고.”
서하의 아버지는 목사였고, 어머니는 사모였다. 두 부부는 종로에 작은 개척교회를 세웠고, 세월이 지난 후 작았던 개척교회는 수천명이 다니고 목사도 여럿인 대형교회가 되었다.
스스로 이뤄낸 업적에 만족할법도 하건만, 두 부부는 교회를 다른 목사의 손에 맡긴 채 지방으로 떠났다. 신앙이 닿지 못하는 곳에 자신들이 있으리라는 말을 남긴 채로. 그야말로 타에 모범이 될 만한 삶이었다.
단지, 그들의 딸이 서울에 남겨졌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일년에 한두번 정도 보는 것 같아. 나는 할머니랑 같이 살고, 아까 그 교회는 원래 우리 아빠가 만든 그런 거였으니까… 거기서 나 도와주고. 그런 느낌이지.”
그 말을 들은 명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무슨 아프리카로 선교 떠나는 인간들도 아니고, 21세기 대한민국에 저런 사람이 있나. 뭐, 세상에는 별 사람 다 있겠지만은.
“근데 그거랑 아까 그 밴드랑 싸운 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 건데.”
“그 이야기도 곧 해줄게. 들어봐.”
서하가 몸담고 있는 CCM 밴드는, 사실상 취미에 가까운 밴드라고 했다. 기본적인 실력은 있지만, 몇년이 넘는 시간도록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 치열하게 노력하지도 않고, 발전하려고 발버둥치지도 않고. 그저 ‘신앙을 즐겁게 노래하자’라고 생각하며 밴드를 하는 사람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몇년이 지날수록 발전이 없던 밴드에 서하는 곧 질려버렸다고 했다. 친구들이긴 하지만, 너무나도 한심한 모습이라. 모태신앙을 때려친 것도. CCM을 하던 애가 메탈을 하게 된 것도. 홍대를 떠돌며 들어갈만한 밴드를 찾던 것도. 음악계에 아는 친구들을 만들게 된 것도. 명전의 밴드에 들어오게 된 것도 그 때문.
“그런데 3주 뒤에 공연이 있다고 했잖아. 거기 부모님이 참석을 하시거든.”
서하는 오랜만에 보는 부모님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같이 연주를 하는 CCM 밴드를 엄청 갈궈댔다고 한다. 반쯤 멀어졌던 사이는 자연스럽게 험악해지고, 감정도 상했다고. 그러다 메인 기타가 손을 다친 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서하는 방법 하나를 떠올렸다고 한다.
‘수연이가 기타도 잘 치고… 우리 엄청 갈궈서 실력 늘어나게 한 거 보면, 지금 이 밴드에서도 그게 가능하지 않을까?’
“… 그렇게 된 거야.”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길고 긴 서하의 이야기가 끝난 후. 명전은 괴고 있던 손에서 얼굴을 떼낸 다음, 서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무슨 무료 컨설턴트도 아니고. 너네 밴드 컨설팅을 왜 내가 무료로 해 줘야 되냐.”
“그렇긴 한데… 어떻게 안 될까. 솔직히 말해서 작년 밴드 시작부터 지금까지 되돌아보면, 우리 진짜 실력이 말도 안 되게 늘었거든. 그 페이스 감안해 보면, 지금 2~3곡 정도는 충분히 잘 연주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소망이 역력한 서하의 목소리. 명전은 치즈케이크를 한 입 먹고는 고민했다. 3주라. 시간이 될지 안 될지…
“연습량을 한 두배, 세배 정도 늘린다고 하면 어떻게 안 될까?”
“아까 들어본 게 평소 실력이란 말이지.”
고개를 끄덕인 후, 치즈 케이크를 포크로 퍼는 서하. 명전은 다시금 고민했다. 그게 평소 실력이고, 3주 있고. 하루에 개인연습 1시간에 주에 10시간 정도 합주 연습 한다고 하면…
“그야 당연히…”
“당연히?”
“무리지. 절대 안 돼.”
서하는 들고 있던 포크를 떨어트렸다. 치즈케이크가 테이블에 폭신하게 떨어지고, 포크가 이리저리 튕기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