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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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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 의자 2개만 놔두고 앉은 아이들. 세팅이라고는 마이크 몇개, 그리고 베이스와 기타 두 대. 밴드 사운드라고 하기에는 단촐한 장비.

그리고 그런 단촐한 장비로, 두 사람은 설명도 없이 바로 음악을 시작했다.

드럼을 발구름으로 대체하고, 간단한 베이스 위에 핑거스타일 풍의 일렉 기타가 얹혀진 연주. 강당에 모인 아이들은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악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 갸웃거림도 잠시.

전혀 모르던 음악으로 인해 흐릿하게 가려졌던 무대 위. 그 안개를 뚫고 나타난 쟁글한 기타 사운드는, 음악을 좋아하는 학생들의 입을 트이게 했다.

“이거 과오 아닌가?”

“과오? 들어본 것 같은데.”

고요한 수면 위 물방울을 떨어트린 것처럼, 이야기의 파문은 조금씩 퍼져간다. 24시간 차트에 잠시간이라도 머물렀던 곡인 만큼, 곡명을 몰라도 들어본 아이들은 많았고… 곡을 아는 아이들도 꽤 있었다.

그리고 귀를 확 사로잡는 메인 멜로디가 시작되자, 대다수의 관객들처럼 그는 지금 연주되는 노래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곡명은 잘 모르지만, 어찌되었던 멜론 틀어놓으면 가끔씩 흘러나오던… 꽤나 신나던 락 밴드의 곡.

어느날 네가 수많은 길들 중에

그 중에 하나의 길을 선택하더라도

내가 너에게 과연

가지 말아야 한다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보컬이 시작되었을 때, 그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 곡과 목소리가 완전 똑같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기타 소리도 똑같고. 베이스도 뭔가 똑같고… 연주가 전반적으로 다 똑같은 것 같은데. 드럼과 피아노가 없는 것 빼고.

그 지점에서, 뭔가를 깨달은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짜맞춰지는 퍼즐. 비슷한 목소리. 밴드를 한다는 하수연. 기타 실력. 오디션 프로 우승. 학교 폭력. 다에요. 4인 미소녀 밴드. 그 외 기타 등등. 마치 집단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강당 안의 아이들은 비슷한 과정을 거쳐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수연이가 그룹사운드인가 그거였어? 그 오디션 우승했다는 걔들?”

“이거 어디서 얼굴 많이 봤다 했는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거 아는 곡이네 재미있다’ 정도의 분위기에 잠겨 있던 강당에, 터져나오듯 불어닥친 아이들의 말 소리. “걔가 쟤라고?”, “야 그럼 다에요인가 그거도 수연이야?”, “아니 돌았네.”, “말이 되냐?” 와 같은 이야기는, 한순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를 압도했다.

어찌보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싶은 일이지만, 과정을 되짚어보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학교폭력 고발’ 건 때문에 굳이 학교에 자기가 오디션 프로에 나가니 뭐니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수연과 이서. ‘인베이전 2024에서 보여주었던 카리스마틱하고 광기 넘치는 이미지와, 학교에서 보여주는 소위 ‘호구잡힌’ 이미지, 그리고 쇼츠 등에서 흘러나오는 ‘다에요’ 등의 귀여운 이미지까지.

천천히 생각해보면 쟤가 걔고 걔가 쟤구나라는 것을 알 만 했다. 수연이 밴드 오디션 프로에 나간다 했으니 당연히 인베이전 2024일 것이고 거기에 나간 여고생 밴드는 그룹 사운드밖에 없으니 수연이 포함되었을 것이며, 우승을 하면서 부른 노래가 과오이니 수연이 과오를 불렀을 것이고… 기타 등등.

하지만 수없이 휘발되고 짧게 흘러가는 정보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그러한 정보를 그냥 대충 흘려버리고 말았고, 아는 아이들은 ‘당연히 알겠지’ 하고 말았다. 그렇게 된 일이었다.

내일의 너는 눈물을 닦지만

어제의 너는 아냐

내일의 너는 무릎을 꿇지만

어제의 너는 달라

그런 아이들의 위로 두 줄의 가사가 다시 떨어져내렸다. 그리고 그 가사는 아이들의 입을 거쳐 다시 무대 위로 던져진다. 불과 백여초 전의 상황과는 다르게.


‘갑자기 왜 이래?

느닷없이 터져나온 반응에, 명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노래를 마쳤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갑자기 자기들끼리 쑥덕대다가 그 다음은 반쯤 떼창으로 화답하다니.

“아~ 감사합니다. 드럼이랑 키보드가 빠지니까 처음엔 바로 알아듣기 힘들죠? 저희 ‘그룹 사운드’의 곡, ‘과오’였구요! 안녕하세요! 저는 그룹 사운드의 베이스를 맡고 있는 최이서입니다! 반갑습니다~!”

안 하느니만 못했던 앞선 남자애들의 공연 덕에 박살나버리고, 그들이 올라올때까지 회복되지 못했던 분위기는… 어느새 열광의 도가니에 차 있었다. ‘하수연’과 ‘최이서’의 네임콜을 외치는 아이들도 꽤나 많았다.

‘설마 이제야 알아본 건 아니겠지.

명전은 그렇게 생각을 하며, “안녕하세요. 그룹 사운드의 기타, 하수연입니다.” 라고 인사를 했다. “귀여워!”, “다에요 해줘~” 같은 이상한 소리들은 무시한 채로.

“30분 밖에 없으니까 빨리빨리 가겠습니다. 모르는 노래가 나올 수도 있는데, 적당하게 즐겨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통기타를 다시 집어들었다. 며칠동안 이서를 굴린 효과를 볼 차례가 왔기 때문에.

아까와 같이 드럼은 발구름으로만 대체한 곡이 시작된다. 명전은 기타의 스트링을 굳은 살과 손톱으로 사정없이 뜯으며 무대 밑을 바라보았다. 전혀 모르는 곡이지만, 시작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환호하는 아이들. 아까와는 사뭇 다른 반응.

‘이 곡을 알려는지 모르겠지만…’

유명한 곡이긴 하지만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유튜브에서 기타와 관련된 곡을 찾다보면 한번쯤 나오는 곡이니, 아는 아이들도 꽤나 있겠지.


“진짜 수연이네.”

“아니 내가 그랬잖아~! 맞다고!!”

곡 하나가 끝난 후. 무대에서 잠시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다인은 친구에게 짧은 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아무리 말해줘도 의심하는 불신자를 단죄하기 위해서.

다행히도 이제는 믿음이 생긴 모양이었다. 다인의 말을 믿은 게 아니라, 수연의 라이브를 직접 봐서 생겼다는 것이 좀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야 너는 진짜 내가 말을 하면 믿지를 않냐. 내가 뭐 언제 없는 말 했어?”

“실제로 없는 말 많이 하지 않았나…”

옆에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 채린의 입을 막아버리고는, 다인은 다시 친구에게 그렇게 따졌다. 그제서야 동의를 표시하는 친구.

“근데 수연이는 이런 음악밖에 안 하는 거야?”

“뭐 어떤 거.”

“이거 뭐야. 락이라고 하나? 이런 거. 나는 이런 음악은 좀 별론데…”

“그런 건 아닐 걸.”

다인은 그렇게 대답하며 얼마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수연이 출연했던 유튜브 프로그램, ‘버스킹 버스킹’. 그 프로그램에서 수연은 통기타 하나만을 들고 거리의 사람들을 모두 울게 만들 정도의 퍼포먼스를 선보였었다.

바로 지금처럼.

“지금 뭐 다른 거 하는 모양인데?”

채린이 가리킨 것은, 무대 위. 일렉 기타를 스탠드에 내려놓은 채 통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를 준비를 하고 있는 수연. 뭔가 좀 더 ‘싱어송라이터’스러운 모습에 아이들의 환호가 쏟아진다.

그리고 연주되기 시작한 곡.

처음에는, 그냥 리듬만이 존재할 뿐.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베이스 음 위에, 라인 없이 그저 ‘좋은 음’만을 울리는 통기타.

그 모습에 아이들은 어떤 곡이 연주될지, 어떤 노래가 시작될지…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무대를 쳐다보고 있었으며, 다인 또한 그러했다. 어떤 곡을 하려는 걸까.

궁금증은 곧 풀렸다. 왠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멜로디. 살짝 펑키(funky)한 리듬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연주. ‘과오’가 시작된 후로, 끊임없이 이어지던 강당 안 아이들의 소리가 조용해졌지만, 차갑게 식어버리지도 않았다. 붉게 달아오르지는 않았지만 다가오는 모든 것에 화상을 입힐 준비가 된 푸른 쇠처럼, 강당 안에 찾아든 적막 아래에는 끓어오르는 연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다인은 어느새 “나는 이런 음악 별로인데” 라고 말한 아이가 조금씩 리듬을 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도 차마 흥을 참지 못한 느낌이었다.

“와, 이거 누구 노래야?”

“몰라.”

“기타 진짜 개잘치네. 저거 하수연 맞음?”

유려하게 이어지던 기타 연주에 진심으로 감탄한 아이들은, ‘그 사고’ 이후로 학교에서 맨날 놀림만 받던 수연이 보여준 새로운 모습에 진심으로 환호를 보냈다. 저 정도로 진지하게, 그리고 화려하고 능숙하게 기타를 연주할 줄은 몰랐다는 느낌으로.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던 것은, 끝나지 않은 기타의 연주와… 이때까지 존재감을 보이지 않던 베이스의 부상(浮上)이었다.

“엥?”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다인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 연주가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이제까지는 있는 듯 없는 듯 가만히 리듬만을 잡아주다가, 보컬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존재감을 뽐내기 시작하는 베이스.

그리고 이어지는 연주는, 이전과는 완전 다른 것이었다.

가만히 앉아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연주를 시작한 최이서. 온몸으로 리듬을 타는 그녀의 두 손가락에서 튕겨나오기 시작한 베이스 소리. 그 사운드는 스피커를 통해서 바닥으로 흘러들어가 강당에 있는 아이들에게 움직임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의도에 따라 조금씩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아이들과, 그 위에 얹혀진 통기타라고는 믿을 수 없는 날카로운 기타 솔로 소리.

아까까지만 해도 적막 밑에 가려졌던 들끓는 열기는 이미 표출된지 오래. 그 몇분 안 되던 시간만에, 무대 위의 두 사람이 보여준 연주는 아이들 태반을 일으켜 움직이게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