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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방이랑 투어… 아니 일단 음방은 세션을 쓸 필요가 없잖아요. 기타 계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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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우리 스케쥴 다 잡혔는데, 하필 그때 우리 기타가 뭐 사정이 있다 해가지고. 그래서 변경할까 했는데 그건 안 된다고 해서 말이죠. 그래서 세션을 구해야 한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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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명전은 전화기를 든 채로 머리를 살짝 꼬았다. 음방 세션과 투어 세션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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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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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악 시장에서 락이 종말해버린 이후에도… 메이저 시장에서 꿋꿋하게 살아남으며 한국 락의 명줄을 유지시키고 있는 몇 안 되는 밴드. 전연령 가수 선호도 조사를 하면 20위권 안에 들락날락하는, 오늘도 노래방에서 그들의 노래가 울려퍼지고 있을 그런… 통칭 ‘국민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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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최근에는 침묵하고 있는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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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만 했다. 밴드의 최전성기는 보통 결성 후 5년 안이라고 하지 않는가. 20년 동안 활동하면서 지속적으로 앨범 내온 것만 해도 대단한 거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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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낸지 거의 5~6년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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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최근 간격은 좀 너무하긴 했지만… 그래도 신보를 낸다는 건 뭐 좋은 일이니까. 낙수효과도 좀 받을 수 있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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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전’과 작업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음악 현장의 세션 후배들은 테일러드와 작업을 하는 것을 ‘철또 맞았다’ 라고 표현하곤 했다. 정이 많은 김철연의 성격 덕에, 철또 한번 맞으면 인맥으로 열리는 세션이 워낙 많았으니까. 지금도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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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투어 세션은 좀 힘들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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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짧게 뜸을 들인 후, 일단 투어 세션은 거절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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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우리 돈 많이 줄 수 있어요. 같이 돕시다. 든든한 기타 있어주는게 얼마나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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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미성년자니까. 투어 도는데 숙소 문제도 있고 학교도 가야되고 여러가지로 문제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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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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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오디션 프로그램도 예외의 예외… 각서도 쓰고 동의서도 쓰고 어쩌고 저쩌고로 피해갔는데. 투어는 대놓고 밤까지 도는 건데 어떻게 하겠는가. 게다가 그런 문제를 회피한다 해도 잠은 어떻게 잘 것이며… 어쩌고 저쩌고. 피곤한 문제가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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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음방은 나와주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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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게 하시죠. 이메일 알려드릴테니까 스케줄이랑 이것저것 관련사항 해서 좀 보내주세요. 확실한 답변은 제가 그거 확인하고 다시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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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오케이, 오케이. 완전 프로구만. 직업 정신이 투철해. 알았어요. 오늘 안에 저희 회사에서 이메일 갈 겁니다. 조만간 연습실에서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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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은 저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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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매주 금요일 밤에 하는 심야 음악 프로그램에 테일러드가 나갈 건데, 그 날 풀로 세션을 뛰어달라. 구곡 신곡 포함해서 4곡 정도 할 것이고, 금액은 백만원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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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음악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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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많이 들어보았다. 아니 이름을 많이 들어보는 것을 떠나서, 명전이 옛날에 자주 보던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KBS의 금요일 밤 시간대를 십년이 넘게 책임지고 있는 음악 프로그램. 모르는 사람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르는 뮤지션은 아마 없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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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프로그램에 나가게 된다면… 홍보효과는 확실하겠지. 물론 명전은 세션일 뿐이니 스포트라이트가 그렇게 많이 오진 않겠지만, 어찌되었든 메이저 씬에 발을 들이고 존재감을 알린다는 것 자체가 이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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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했습니다. 연습 일정에는 모두 참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련해서 혹시 알려주시거나 할 사항 있으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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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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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악기를 내버려두고 연습실 바깥으로 튀어나가버리는 사람들. 딱 봐도 담배 한대 피우러 가는 것이 뻔했기에, 명전은 구태여 따라가거나 행선지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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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서 할 일도 있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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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버려 둔 동안 성장을 많이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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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그룹 사운드]의 컨텐츠를 확실히 독립시킴으로서, 이제는 완전히 개인 채널이 된 명전의 유튜브, [White 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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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이전 2024에 참가하고 일본 여행을 갔다오는 동안 컨텐츠를 제대로 올리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십만대 초반으로 구독자가 불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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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이제 실버버튼 신청인가 뭔가 하면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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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린지 꽤 된 가장 최신 영상을 봐도, [구독자 십만 축하드려요!!], [10만 이벤트 같은 거 하나요??] 같은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십만 이벤트라. 명전은 감사의 인사를 올릴까 하다가,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좀 더 MZ한 수단을 사용하는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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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으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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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모르게 가방 안에 들어가 있는 셀카봉(이서의 것으로 추정된다)에 핸드폰을 꽂고. 그는 최대한 연습실이 노출되지 않게 각도를 조절하며, 자신의 얼굴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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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 그… 최근에 제가, 영상을 많이 못 올렸습니다… 올렸어요. 다들 아시다시피, 오디션 프로도 있고. 그 다음에는 사실 올릴 수 있는 시기가 있긴 했는데, 심신이 좀 지… 좀 쉬고 싶어서. 그래서 일본 여행을 갔다 왔습… 왔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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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서명전’ 씨의 자아를 제어하며, 그는 최대한 MZ한 말투로 브이로그를 찍었다. 일본 여행 간 거는 이제 밴드 멤버들이랑 엄마랑 같이 갔고. 브이로그 사진 같은 건 편집해서 올리게 될 것 같아요 같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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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찍으려고 했던 인사는 점점 더 길어졌고, 그 사이 테일러드 밴드의 멤버들이 연습실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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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수연 학생, 혹시 뭐 하나요? 지금 우리 들어가도 되는 타이밍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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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네. 저 잠시 유튜브용 컨텐츠 좀 찍는 중이라서… 아 혹시 연습실 좀 찍어도 될까요? 여러분이 나온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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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괜찮아. 완전 신세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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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신세대가 아니라 실제로 신세대지 임마. 우리 같은 40대 늙은이랑 10대를 어떻게 비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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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가… 늙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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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이야기가 조금 이어진다. 그러다 철연이 꺼낸 “우리도 유튜브 하거든요. 3만따리지만. 수연 학생은 얼마에요?” 라는 말에 그는 구독자 수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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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만?! 와 완전 대선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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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봐. White Room. 이게 역시 수연 학생은 기타 선생님부터 해서 그냥 완전 근본이라는 게 딱 서있다니까. 기타를 못 칠 수가 없어요. 그에 반해서 우리 표선호 이 새끼는 진짜 기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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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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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만이면 구독자 수가 높은 것이긴 하지만, 그렇게 부러워할 정도 까지 높은 것은 아닌 수치. 하지만 테일러드의 멤버들은 진심으로 수연을 부러워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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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너무 어려워. 우리 봐. 공연 영상이랑 이런 꿀팁까지 다 뿌려주는데, 구독자가 3만밖에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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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유튜브 너무 어렵긴 하지요. 저도 십만이긴 한데 어떻게 한 건지 잘은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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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 한종현이 꺼낸 말에 촉발된 유튜브 성토대회. MZ 감각이라는 게 너무 어렵다. 젊어보이는 거 힘들다. 태그는 도대체 뭐 어떻게 쓰는 거냐? 이게 세상이라는 게 점점 늙어가다보니 적응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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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흐름에 명전 또한 자연스럽게 올라탔다. 그 또한 그렇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강제적으로 적응하고 있긴 했지만 명전의 본모습은 이 쪽이 전혀 아니었다. 마치 안 맞는 옷을 강제로 입은 것 같은 기분. 갑갑하고 적응하기 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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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수연 학생은 이런 거에 동감하면 안 되지 않나? 전혀 안 맞는 나이잖아. 우리는 늙었고, 수연 학생은 젊잖아요. 이제 막 십대인데. 이십대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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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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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이면 이제 늙었지~ 최신문물 너무 힘들어. 우리도 은퇴할 때가 됐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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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며 너스레를 떠는 테일러드의 멤버들. 명전은 아하하 웃으면서도 속으로 중얼거렸다. 도대체 뭐가 늙었다는 거냐? 내가 예전에 그 나이였으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배우고 싶은 거 배우면서 살았을 나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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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음악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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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넘게 KBS의 금요일 밤 시간대를 지켜오면서, 수많은 뮤지션들을 초대했던 정통 음악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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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서 ‘정통 음악’ 이 아닌 ‘아이돌’을 초대한다는 말이 오가는 프로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지연의 음악편지’를 대체할 프로그램이 없었기에… TV의 종말이 다가오는 요즘 시대에도 꿋꿋히 살아남고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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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오랜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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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김지연. 잘 계셨어? 아이고. 살이 완전 쪽 빠지셨네. 다이어트 너무 무리하게 하는 거 아냐? 뺄 살이 어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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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거 살 안 빼면 완전 아줌마 된다니까. 남편한테 사랑받을라면 빼야지! 안 그래도 어젯밤에 무겁다고 못하겠다고 막 그러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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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 하는 거 보면 그냥 지금 아줌마 맞는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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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실에서 너스레를 떠는 김철연과 김지연 선배. 그녀는 그런 둘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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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들,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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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그래 정화야. 오랜만이다. 너도 컴백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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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정화 오늘 2부로 나올 거에요. 얘도 오랜만에 활동 재개한다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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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차트에서 나 밀어내면 안 돼 응? 디바들 음원 파워는 너무 강하다고. 사기야,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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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떻게 선배님을 밀어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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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분간 덕담을 섞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러다 발길을 돌려 대기실로 가려는 차에, 지연이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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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곡 작업은 잘 되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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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잘 안되긴 해서요. 뭔가 잘 떠오르지 않아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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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럼 이번에 곡은 어떻게 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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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써 둔 게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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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났다는 듯 호들갑을 떨며 반응해주는 철연. 그녀는 걱정섞인 말들에 고개를 숙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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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곡을 아예 못 쓰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곡을 쓰고 있긴 했고. 하지만 뭔가, 머릿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줄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녀가 가진 문제였다. 구체적으로는 그녀의 그런 느낌을 ‘필링있게’ 끌어내줄만한 연주자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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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급 세션을 다 찾아보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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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기타를 다 잘 치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연주들. 세션비만 엄청 낭비하고 곡은 곡대로 나오지 않고.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그것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슬럼프가 온다는 느낌을 받고 있던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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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잘 될 거야. 오늘 한번 노래 제대로 부르고! 풀고 가.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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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염려해주는 지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정화. 대기실을 나와 걸어가는 와중, 그녀는 마주치는 테일러드 멤버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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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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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어떻게 오늘 출연 하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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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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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그녀는 뒤에 붙은 이쁘장한 여자애 한명을 슬쩍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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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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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일 수도 있지만, 음악이랑은 크게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듯한 분위기. 굳이 엮자면 아이돌 정도? 신입 스태프가 출연자를 안내하는 것이겠거니하며, 그녀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의 대기실로 향했다. 저런 아이에게 신경을 쓰기에는 그녀의 인생이 너무 바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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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생각은, 곧 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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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뵙는 분들입니다. 한국 락의 자존심! 국민 밴드! 많은 수식어가 있긴 하지만, 뭐 일일히 열거하기는 좀 힘들겠죠? 밴드 ‘테일러드’… 나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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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시작되고. 김지연의 잡담이 약간 이어지다, 관객들의 환호성과 함께 테일러드가 등장한다. 딱히 바뀌지 않은 멤버들. 보컬과 베이스, 드럼, 키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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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른 얼굴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 항상 늘 웃고 다니는 기타의 익숙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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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신, 뒤 쪽에서 누군가가 등장한다. 평균적인 키. 약간 버거워보이는 검은색 기타를 메고 뚜방뚜방 등장하는 여자애. 아까 전에 봤었던, 스태프로 추정되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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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애가 왜 저기 있지? 기타는 뭐고? 혹시 테일러드가 새로운 멤버를 영입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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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녀만이 아닌 듯 했다. 술렁이는 관객들. 제작 스태프와 테일러드 멤버, 그리고 김지연만이 평정을 유지하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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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거두절미하고 첫 곡 들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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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 카드를 내뻗으며 외치는 지연. 그녀의 말이 끝난 후, “하나, 둘, 셋!” 이라는 시작 신호가 작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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