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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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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노덴 에노시마 역 앞.

‘드디어 여기 왔구나.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옆을 슬쩍 쳐다보았다. 그녀와 비슷하게,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 가발을 쓴 채 애니메이션 코스프레 복장을 하고 있는 세 명의 일행이 그곳에 있었다.

“오늘은 진짜 없겠죠?”

“그, 일단 제가 트위터랑 웹 서치 돌려봤는데 코스어 팀들 중에서는 오는 팀이 없더라고요. 진짜 무슨 이상한 사람들 오는 거 아니면 오늘은 사람 없을 거에요.”

옆에서는 우려섞인 대화가 이루어진다. 그럴만 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애니메이션 코스프레를 한 채 애니메이션 성지를 순례하기’는 코스플레이어들이 꿈꾸는 행위 중 하나다. 특히 22년의 패권작인 ‘봇치 더 락’은 인기도 많았고, 코스프레도 쉬웠고, 성지도 도쿄이거나 인근이거나 얼마 안 걸리는 곳이기까지 한 만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생길 확률이 높았다.

‘기껏 신경써서 코스프레까지 했는데, 똑같이 코스프레 한 사람들 만나면 좀 그렇지…’

이치로만 따지면 거리낄 것은 없다.

하지만 사람 심리라는게 이치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만의 특별함’을 찾아 왔는데 똑같은 생각 한 사람들 있어서 기분 잡치는 것도 있거니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또 어떻겠는가. 복장을 비교하거나 재현도를 비교하거나… 불보듯 뻔한 일.

시시각각 비교될 것이 분명하니, 차라리 마주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그들이 고른 날짜가 바로 오늘이었다. 아는 코스프레 팀의 일정을 전부 확인하고 맞춘 날.

… 하지만 그런 그들의 기대는 시작부터 배반당했다. 에노시마 신사를 향해 걷기 시작한 그 시점에, 바로 옆에서 똑같은 ‘봇치 더 락’ 코스프레를 한 4인조가 나타난 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우르르 지나다니는 인도 위에서, 마치 도플갱어를 만나기라도 한 듯 얼어붙은 8명의 사람들.

“…에? 어째서?”

일행 중 한명이 무심코 흘린 목소리에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그렇게나 날을 고르고 골랐는데. 하필 오늘, 그것도 완전 똑같은 컨셉으로 나타난 코스플레이어 팀이 있다니.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냥 촬영 접고 집에 갈까? 아니면 살짝 늦출까? 강행하는 것 또한 방법이지만, 저쪽에서 접지 않으면 관광객들 앞에서 ‘줄 서서 성지 사진 촬영하기’ 같은 부끄러운 상황이 나올지도 몰랐다.

‘… 아니, 잠시만.

거기까지 이어지던 생각을 끊은 후. 그녀는 빠르게 상대방 4인의 스캔을 마쳤다.

‘가발은 일반모. 복장은 싸구려 원단으로 만든 대여복…’

코스프레에는 우열이 없다. 중요한 것은 캐릭터를 재현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코스프레를 통해 캐릭터를 ‘재현’하는 것에는 우열이 없다 한들… ‘코스프레 복장’에는 분명한 우열이 있는 법이다. 대충 인터넷 사이트에서 아무렇게나 구매한 2만원짜리 가발과 맞춤제작한 10만원짜리 가발. 그 중 어떤 것이 가치가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일행들에게 은근슬쩍 눈빛을 보냈다.

이 ‘코스프레 대결’에서, 이길 수 있겠다고.

… 그리고 그 시점에, 이서 또한 비슷한 생각을 했다.

‘저쪽이 더 퀄리티가 높아보이긴 하지만…!

이서와 일행들이 빌린 가발과 의상은, 관광지 근처 아무 가게에 들어가서 빌려온 것 답게…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이 확연히 보이는 것들이었다. 굳이 이서의 ‘과거 경험’을 빌려오지 않아도 이쪽이 딸린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이서는 웃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 쪽이 외모가 더 나아!

잔인한 이야기기도 하고 부끄러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국 외모라는 것은 타고나는 것이며 사람의 노력으로는 바꿀 수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이서와 아이들은 싸구려 의상을 입고 싸구려 가발을 쓴다 해도… 고급 의상에 고급 가발을 쓴 저쪽 사람들보다 ‘재현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사실에서 기반한 이서의 자신감은, 그녀로 하여금 상대와의 보이지 않는 승부에 나서게 만들었다. 서로를 노려보는 눈빛에 불꽃이 튀고, 뒤이어 고개가 살짝 끄덕여진다.

승부의 시작이다.

물론 일행의 동의는 전혀 받지 않은 채였다.


살면서 온갖 일을 다 겪어본 명전이다. 군대에 몇년을 처박혀도 봤고 감방에도 가 봤고 해외투어도 돌아봤고 마약도 해 봤다. 심지어 최근에는 죽기까지 해 봤고, 여자로 되살아나기까지 했다. 세상에 기인이사가 많다지만 아마 명전보다 많은 일을 겪은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바로 지금 여기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만약 죽기 전의 ‘서명전’에게 가서 “너는 내년에 일본에 여행가서 만화영화 등장인물을 따라하는 복장을 입고 너와 똑같은 만화영화 등장인물을 따라하는 복장을 한 사람을 마주친 다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똑같은 목적지로 향할 것이다.” 라고 한다 치자.

과연 그는 믿을 수 있을까? 절대 믿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믿지 않아도 닥쳐오기 마련이다. 바로 지금처럼.

명전은 일행을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면서도 어찌되었든 움직이고는 있는 현아와, 무슨 일인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실실거리고 있는 서하.

그 앞에는 딱 봐도 기 싸움을 하는 중인 이서와 상대방 4명이 있다.

서로를 의식하지 않는 척 길을 걸어가면서도, 행인들을 지나칠 때마다 눈동자를 빠르게 움직이며 시선을 확인하는 다섯 명. 그 때마다 희비가 엇갈리는 것을 보면, 판정을 어떻게 내리는지는 몰라도… 대결이 벌어지고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다리를 걸으면서도, 상점가를 오르면서도. 끊임없이 서로를 확인하며 분하다는 표정이나, 신나하는 표정을 짓는 이서와 상대방 4명.

“혹시…”

“응?”

꼭 먹어봐야 한다는 ‘타코센베’… 이상하게 생긴 과자판떼기를 든 채로 야금야금 베어물던 명전에게 흘러든 나지막한 현아의 말소리.

“지금 저 분들이랑, 우리랑 뭔가… 대결 같은 거 하고 있는 건가요?”

“글쎄… 잘 모르겠네.”

명전은 그냥 모르는 척 했다. 괜히 대답해줬다가 “왜 그러고 있는 거죠?” 같은 질문이 들어올까봐.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을 서하가 해주고 있는 동안, 대결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야트막한 상점가를 오르면 있는 신사 앞에서 각 네 명 끼리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으면서도(사진은 상대방이 찍어줬다). 계단 대신 요금을 내면 탈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서도(마찬가지였다). 그 길 끝의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고(마찬가지), 전망대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으면서도(상동).

그렇게 계속해서 이어지던 이상한 대결은,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이르러 최종장을 맞이했다. 바로 상대방의 분홍머리가… 등 뒤에 지고 있던 ‘기타 케이스’를 땅에 내림으로써.

“비등비등하네요. 쉽게 이길 수 없는 상대인 걸 알겠어요. 이제 그만… 최종 승부를 보죠.”

“뭐라는 거야?”

“승부… 승부? 승부를 보자는데요.”

“한국인이었어?”

“에? 한국인?”

“우리보고 한국인이라고 하는 건가?”

“아니… 이때까지 한국인인 거 몰랐던 게 더 이상하지 않냐? 아까부터 계속 한국어 썼었는데.”

기타를 꺼내든 여성의 중얼거림과, 그 말에 통역을 하는 현아. 잠시간의 소란이 이어지다 다시 분위기가 잠잠해진다. 왠지 모르게 비장해진 분위기.

“저희 쪽은 기타를 칠 줄 알아요.”

“뭐래?”

“기타를 칠 줄 안다는데요.”

“기타는 우리 쪽도 칠 줄 안다고 해줘.”

“저희 쪽도 기타 칠 줄 알아요.”

“저희는 기타를 잘 쳐요!”

“뭐래?”

“자기들이 기타 잘 친대요.”

“우리는 기타 히어로가 있다고 그래.”

“우리는 기타 히어로가 있어요.”

“우리도 있거든요!”

일본어 통역사(아니다)를 끼고 주고받는 이서와 상대방의 문답. 초등학생마냥 서로가 잘났다고 우기고 있는 꼴이 무슨 ‘가족오락관’을 보는 듯 하다고 생각하며, 명전은 그냥 기타를 쳐보라는 시늉을 했다. 그 말에 분홍머리가 케이스에서 꺼내든 것은 마틴의 어쿠스틱 기타.

“갑니다!”

그리고 이어진 연주는 의외로 들을 만 했다. ‘아마추어 수준에서’ 착실하게 기타를 연습하고 노력해왔다는 것이 느껴지는 실력.

“잘하네~”

2분간의 짧은 연주는, 안 그래도 코스프레로 인해 몰려있던 사람들의 이목을 확실하게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행인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감탄사와 박수에 머쓱한 듯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다… 이 쪽을 보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는 상대방 일행.

“어떤가요? 지금이라도 졌다고 하시는게…”

명전은 대답 대신 터벅터벅 걸어가 손을 내밀었다. 살짝 놀랐다가, ‘할 수 있겠냐?’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기타를 내미는 상대방.

“뭐 칠까.”

“어… Distortion? 맨 마지막 파트?”

이서의 말에 명전은 심드렁하게 마지막 파트를 쳐주었다. 그에겐 손 풀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 16분 음표의 연타. 그냥 끝내기는 심심하니 적당한 속주를 섞은 솔로까지 곁들여서.

그러나 그 연주에, 상대방 일행은 눈을 번쩍 뜨고 명전을 바라보았다. 마치 트럭에 치인 듯한 표정으로.


“재미있는 사람들이었어.”

“너만 재미있었겠지.”

명전의 이죽거림에 이서는 웃음으로 반응했다. 크흐흡거리는 웃음 소리가 왠지 얄미워, 그는 무릎 밑으로 흐르는 바닷물을 손으로 퍼 이서에게 뿌렸다.

“차가워!”

“그럼 물이 차갑지. 따뜻하냐?”

‘에노시마 섬 코스프레 대결’(이서가 붙인 이름이었다)이 끝난 후. 땀에 푹 젖어버린 코스프레 의상을 반납한 후, 호텔에서 자고 있던 혜인을 깨워 도달한 곳은 에노시마의 해수욕장, 가타세 히가시하마.

‘이번 여행 와서는… 진짜 생전 처음 겪은 일들만 잔뜩 생기는구만.

반짝이는 바다와 저 멀리 보이는 후지산. 명전은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두개 정도 있는 맑은 하늘.

몇십년동안 바라봐왔던 풍경이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그가 아무리 오래 살았다 할지라도, 그리고 그 상대로 몇십년을 더 살았다 할지라도. 지금의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새로운 삶’이라는 것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뭘 그렇게 생각을 해.”

이어지던 생각은 퉁 하는 충격에 끊어진다. 이서가 던진 알록달록한 비치 볼. 명전은 그를 주운 후 이서를 바라보았다.

“글쎄.”

‘쟤는 뭐 저렇게 남사시러운 걸 골랐냐…’

가슴 밑까지 가리는 듯한 검은색 민소매 수영복이지만, 실은 시스루인 수영복 상의. 그리고 가랑이 끝까지 올라올락말락 하는 하의.

그 의상은, 이서의 몸매와 맞물려 그야말로 파괴적인 퍼포먼스를 내고 있었다.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그런 외모에 불나방처럼 모여드는 남자들.

“저기 너. 혹시 같이…”

“일본어 못해요~ 안 놀아요.”

이서가 계속 거절하는 것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자기라면 다를 것으로 아는 건지 근거 없는 자신감인지… 비 내린 다음 날 잡초마냥 계속해서 생겨나는 '난파남'.

저래서야 놀기는 글렀다고 생각하며, 명전은 비치볼을 손으로 통통 튕겼다. 혜인과 서하, 그리고 현아가 빨리 와야 그래도 인원이 돼서 저런 놈들 그만 올 텐데. 한명밖에 안 보이니까 자꾸 얕잡아보고 번호 따러 오는 거 아닌가.

“어이, 그쪽의 너.”

“…네?”

그렇게 생각하던 명전에게 들려온 것은, 얇상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혹시 같이 놀지 않을래? 우리 지금 한명이 부족해서…”

“야이씨… 꺼져.”

들려온 것은 일본어. 하지만 명전은 굳이 해석을 하지 않아도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살다살다 이런 일도 다 겪어보는구나. 굳이 이런 일 까지 겪고 싶진 않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