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es
rupy1014 f66fe445bf 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4 KiB
Raw Permalink Blame History

입을 꾹 닫은 채로 걷는 두 명. 명전은 한숨을 푹 쉬었다. 아까 옷가게에서 끌려나간 후로부터, 계속 세상과 소통을 거부하고 ‘나 삐졌음’ 이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녀석들.

‘언제까지 저럴 건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녀석들이 도대체 왜 이러나. 애새끼도 아니고… 라고 생각하던 명전은, 잊어먹고 있던 사실 하나를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이 애들은 전부 애들이었던 것이다.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 고등학생 2학년과 3학년. 당연히 그럴 수 있는 나이.

인간관계에 있어 ‘다툼’을 제거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수십년을 동거동락한 부부도 싸우고 서로 좋아 죽고 못 사는 커플들도 싸운다. 그런데 고작 1년 정도 본, 그것도 친구 사이로 만난 것이 아니라 밴드 결성을 위해 급작스럽게 만난 아이들이 어떻게 안 싸울 수가 있겠는가.

그 동안 안 싸운 것이 기적이었다는 생각에, 명전은 머리를 살짝 꼬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그렇기는 해. 처음부터 계속 알아서 잘 딸려오고… 기강 살짝 잡았던 서하를 빼면 뭐 다 군소리 없이 따라왔지.

대략적인 이유는 짐작이 갔다. 아마 그 자신 때문이었겠지.

지금은 아니라고 하지만 어찌되었든 ‘일진’이었던 과거, 카리스마가 풍겨나오는 외모, 압도적인 실력. 그리고 실제로 그의 지도를 따라오면 실력이 팍팍 늘고, 성과도 나오고, 음악도 잘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사람이 있는데, 그 누가 반기를 들거나 그룹에서 불화를 일으키겠는가? 가만히 있어도 쫒겨날까봐 덜덜 떨어야 하는 조건인 것을.

‘그렇게 생각하면 부딪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가.

아무튼 인간관계라는 것은 그렇게 심하게 균열만 가지 않으면, 붙을 때 더 단단하게 붙는 법. 명전은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꾹 다문 둘을 쳐다보았다.

고집스럽게 다문 입. 하지만 이리저리 헤엄치다가 슬쩍 상대방 쪽을 바라보기도 하는 눈. 전형적인 ‘아 화해하고 싶은데 각이 안 나오네 누가 좀 화해좀 시켜줬으면 좋겠네’ 라는 태도. 하지만 자기 쪽에서는 말을 걸기는 싫다. 자존심이 상하니까.

그 탓에 계속해서 이어지던 침묵은, 혜인이 던진 말에 의해 깨어졌다.

“저기도 옷가게인가? 한번 가 보자.”

옷가게로 다시 들어오고 나서도 계속해서 침묵하고 있던 아이들. 명전은 자신이 나서야 하나 싶어 입을 열까 했지만, 선수를 친 건 혜인이었다.

“우리 애가 어디 나가지 않으면 늘 우중충한 거나 입고 다니던 애라서…”

“네?”

명전의 어깨를 잡고 둘 사이로 슬쩍 들이미는 혜인. 갑자기 자신을 슬쩍 내미는 것에 어안이 벙벙하던 그였지만, 이내 혜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화해하게 해주려고 하는 거는 좋은데…

‘그게 왜 나냐?

“수연이한테 어울리는 옷 좀 추천해주지 않을래. 응?”

“아… 아 네!”

“알겠어요.”

딱 봐도 의도가 보이는 행동. 하지만 그 손길을 거절할 수 없던 아이들은, 이미 다 놓아버린 채 체념하고 있던 명전의 손을 붙잡고 이리저리 코너를 옮겨다녔다…

와 같은 혜인의 화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두 사람이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라거나, 혜인의 시도가 부족했다거나 하는 그런 요인 때문은 아니었다.

“아니 왜 자꾸 이런 거 입히냐고오…!”

“어울리…”

“야! 그냥 옷은 대충 사이즈 맞고 어! 손에 잡히는대로 입으면 되는거야! 그냥 최대한 단정하게! 어! 무난하게! 왜 자꾸 옷으로 뭘 무늬를 만들고 악세사리를 달고 빈티지를 하고 어쩌고 저쩌고!”

수십분에 걸친 인간 마네킹 노릇에 질려버린 명전의 일갈. 다른 아이들이 주춤하는 사이, 명전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기운을 진정시키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당장 집에 가서 옷장 열어보면 옷장에 옷이 가득한데도 ‘아 입을 거 없다’ 이러면서 맨날 옷 같은 거 사대고. 아프리카에 애들은 맨날 밥이 없다 물이 없다 옷이 없다 굶어죽고 추워죽고 이러는 시대에 왜 자꾸 옷을 산다 만다 이러면서 입지도 않는 옷 버리고 다시 또 산 다음에 한번 두번 입고 버리고.

세상이 이래서 안 되는 것이다. 돈을 아끼고 자원을 아껴서 뭘 할 생각을 해야지 그냥 돈 있으면 다 갖다 쓸 생각만 하고. 도대체 옷이 뭐 그렇게 많이 필요한가? 그냥 적당한 속옷 몇가지. 외투 한두벌. 작업복. 외출복. 이 정도만 있으면 사람 사는데 충분하지 뭐가 그렇게 많아야 하는가? 나때는 말이야, 그 때는 옷을 살려고 해도 사기도 힘든…


어색했던 분위기는, 수연이 어머님의 도움과 수연의 대폭발로 마무리되었다. 아직도 어색하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나아진 분위기.

이서는 호텔의 저녁을 먹은 후, 잠시 산책을 하겠다고 바깥으로 나왔다. 호텔 정면의 짧게 이어진 공원을 지나면, 바로 앞에는 왠지 모르게 정박해있는 배와 함께 바다가 있고… 해안 건너편으로는 야경도 보였다. 꽤나 낭만적인 분위기의 도시.

정처없이 목적없이 공원을 거닐다, 공원 근처의 로손에 들른다. “어서오세요~” 하는 점원의 말을 들으며 이서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집고는, 카운터로 곧장 향했다. 아르바이트생은 교통카드를 내미니 일본어를 말하며 카드기기에 대라는 손짓을 했다.

“감사합니다~”

일본은 편의점에서도 인사를 하는구나. 한국에서도 그랬나? 뭔가 이제까지는 한번도 신경을 쓰지 않은 부분이라, 그랬는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서는 주차장 가드레일에 기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어 뭐야. 너 왜 여기 있어?”

그렇게 잠시간 아무 생각 없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이서를 부른 목소리. 서하였다.

서하가 아이스크림을 사온 뒤, 다시 또 이어지는 침묵. 그 침묵 속에서 이서는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했다. 어떻게 말을 하면 좋을까? ‘내가 미안했어. 는 좀 너무 굽히고 들어가는 것 아닌가? 서하 언니도 잘못했는데. ‘패션은 주관적인 거니까. 같은 말은 어떠려나. 아니면 ‘아무리 그래도 꽃무늬는 좀 그래’ 같은 말은… 싸우자는 거로 들리려나.

“너 지금 아이스크림 흐른다.”

“어? 아이씨…”

생각에 잠겨있던 이서를 깨운 것은 서하의 경고였다. 흐른 것을 눈치채지도 못할 정도로 깊은 생각이었던 걸까. 반쯤 녹아버린 커피색 아이스크림이 흰 티에 묻어, 지워지지 않을 자국을 내고 있었다.

“이걸로 닦아.”

“으… 고마워.”

서하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구겨진 물티슈 패키지. 닦아도 완전 다 지워지지는 않지만, 닦지 않은 것보다는 나아 보이는 옷. 이서는 아이스크림을 전부 먹어치우고는, 꽤나 아끼는 티였는데 이제는 버리게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다, 피식 웃음을 흘렸다.

“수연이 말이 맞아. 옷을 버릴 생각부터 하고 있네.”

“응?”

서하의 반문. 이서는 그냥 밤하늘을 잠시 쳐다보았다. 그들은 도시에 있으니, 별이 빛날리는 없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서는 북극성을 본 것 같았다. 변하지 않는 별을.

“미안해.”

“…응.”

필요했던 것은 단지 짧은 단어 하나. 그들은 그렇게 대화를 끝내고는, 다시 침묵속으로 잠겨들었다. 공원을 오가며 떠드는 사람들. 뒤쪽 편의점에서 비치는 불빛. 저 멀리서 보이는 야경. 쓰름하게 우는 풀벌레의 소리까지, 그 모든 것들 사이에서.

“그래도 그 무늬는 좀 아닌 것 같아.”

“…뭐라고?”


언제 화해했는지도 모르고, 도대체 어떻게 화해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사이가 더 가까워진 것 같은 이서와 서하. 명전은 골머리를 앓을 일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전철에 몸을 실었다.

도착한 곳은 에노시마 해변 인근의 호텔.

짐과 혜인(오늘은 피곤하다며 숙소에서 쉬겠다고 했다)을 함께 호텔에 맡겨놓은 후, 해수욕을 하기 전에 일단 에노시마를 한바퀴 돌아보는 것이 오늘의 오전 일정이었다. 꽤나 많은 사람에도 불구하고, 도쿄나 요코하마 같은 완전한 ‘도시’ 느낌은 아닌 곳에 꽤나 즐거워하는 일행들.

“아, 맞다! 생각해보니까…”

“뭐.”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이야기를 하는 이서. 대개 이럴 때의 이서는 그에게 좀 해로운 이야기를 할 때가 많았기에, 명전은 살짝 경계하며 질문을 던졌다.

“에노시마가 봇치 더 락 성지였어.”

“… 아! 맞아요! 에노덴 타고… 에노시마 역에서 내리면! 거기부터 성지순례… 할 수 있어요.”

“보치드락? 그 노래 나오는 만화영화인가 그건가.”

“왜 아직도 기억을 못해? 봇치 더 락이라고, 봇치 더 락.”

이서의 말에 그런 거 까지 기억을 해야 하나… 하며 명전은 멀거니 바다를 쳐다보았다. 노래 외에는 굳이 자신과 연관될 일도 없는 컨텐츠인데, 그것을 굳이 기억해야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명전을 가만두지 않았다. 정확히는, 이서가 명전을 그렇게 가만두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한번 코스프레 해 보자. 여기 에노시마이기도 하니까, 봇치 더 락 애들.”

“… 네? 코스프레… 요? 어…”

“재밌겠다.”

이서의 말에 재빠르게 반응하는 두 명. 코스프레라는 말에 뭔가 확신이 없어보이는 현아와,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서하.

“코스프레가 뭔데?”

그리고 명전은 그 가운데에서 얘들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나 같은 표정으로 셋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직도 현대문명에 그렇게 적응하지는 못한 것 같아 보였다.


코스프레. Coustume + Play를 합친 조어로서, 일본에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유래와 뜻은 장황하지만, 어찌되었든 ‘좋아하는 캐릭터의 옷을 입고 좋아하는 캐릭터처럼 군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내가 그걸 왜 해!”

당연하게도, 명전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런 일은 할 수 없다’ 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안 그래도 몇 십년 동안 살다가 드디어 죽는 줄 알았는데 깨어나고 보니 이제 여자고 여자처럼 살아야 된다는 것조차 억울해 죽겠는데.

이제는 무슨 만화영화 캐릭터를 따라하라는 말인가. 그의 눈에 흙이 들어와도(사실 ‘서명전’의 눈에는 이미 흙이 들어갔을 테지만) 절대 안할 짓이었다.

“아니, 같이 하자~!”

하지만 그랬던 명전의 철벽같은 태도는, 주변의 3명이 어르고 달래면서 점점 허물어졌다. 에노시마 온 김에 이런 것도 해보고 싶은 이서, 왠지 분위기 타서 후회할 짓 하려고 하는 현아,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 하자고 하는 서하. 세 명의 합작공격에 명전은 마냥 드러눕기만 할 수는 없었다.

“아니, 그래. 하는 거… 아니 애초에 그런 걸 하려면 그 캐릭터 복장이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런데 우리는 없잖아. 그럼 못 하는거 아니냐? 일단 복장 같은 게 있어야지.”

곤란한 상황을 타파해보려던 명전의 발언. ‘어차피 옷도 가발도 어쩌고도 없는데 그걸 어떻게 하냐! 라는 말. 그 아키하바라인지 뭔지 그런 곳이 아니면, 만화영화와 관련된 의상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빌릴 곳이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명전은 그 발언이 위기를 타파하는데 매우 효과적일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 이서가 핸드폰을 뒤져 알아 온 수상하게도 수상한 의상 대여 가게에서 수상하게도 수상한 의상과 가발을 대여해 오기 전까지는.

“아니, 내가 이걸 왜…”

“재미있잖아~ 유카타? 그런 것 입은 느낌도 나고. 연수. 이런 데 아니면 해볼 곳도 없어 이런거. 한국에서 할 것도 아니잖아.”

악기와 캐릭터적인 부분을 고려해서 맞춰 입은 의상. 수연은 분홍색 가발, 이서는 붉은색 가발. 서하는 푸른색 가발, 현아는 노란색 가발을 쓰고, 각자의 의상을 입은 채.

4명의 (코스프레) 여고생은, 보무당당하게 에노시마 신사를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들은, 몇 발짝 걷다가 옆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자신들과 똑같은 복장. 분홍색,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 가발. 게다가 그 중 한명은 기타 케이스까지 메고 있다. 이 더운 날씨에.

“… え? なんで?(에? 어째서?)”

그 소리는, 상대방 쪽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물러설 수 없는 외나무 다리에서 서로를 마주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