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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했던가. 하지만 요새는 발 없는 말보다 번개 맞은 글자가 훨씬 빨리 돌아다니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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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음악계에서 자신의 실력보다 호로잡놈이기로 더 유명한 김재훈 음악감독을 엿먹인 세션이 있다는 이야기는, 눈 깜짝할 새에 다 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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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발놈 이야기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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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날 들었지. 크~ 그새끼 언젠간 한번 그런 일 당할 줄 알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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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주제 중 대부분은 공공의 적이었던 김재훈 감독을 엿먹인 것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대화들도 있었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믿기 힘든 이야기가 당일날 참여한 스태프들에게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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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녹음을 한큐에 다 땄다고? 뭔 개같은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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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진짜 제 친구가 그날 스탭 들어갔는데 그걸 눈으로 봤다고 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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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선생님들이 가신 거도 아니고 딱 봐도 여고생이었다며? 그런데 그런 애가 원큐에 녹음을 땄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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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게 진짜라니까요. 아 답답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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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부정하는 사람들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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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빨리 녹음 따는 사람 있으면 다음 작업때 불러 쓰면 안 되나? 엄청 잘 하는 거 같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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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 보정작업 할때 좀 들어가봤는데 뭐라 후보정을 할 부분이 별로 없었어요. 그냥 쭉 따고 조금만 다듬고 하니까 끝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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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자신들의 작업에 불러 쓸 생각을 하는 사람들.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고, 씬에 나타난 거짓말같은 ‘미소녀 여고생 기타리스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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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기타리스트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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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홍아. 이번에 뭐, 좀 봐줄만한 애 한명 생겼다면서. 너도 들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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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거, 제가 남들한테 이야기하고 다녔는데요. 그게, 그 애가 서명전 선생님 제자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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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명전이 형이 제자가 있었다고? 아니, 그럼 지금 이야기 도는 그 여자애, 걔가 명전이 형 제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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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식의 대화가… 술자리에서 돌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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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바보킬러님 감사합니다. ‘진성이형님 요즘 한국 락씬 메탈씬에 주목할만한 기타리스트가 너무 없는 것 같아요.’ 음… 아무래도 이 씬에 대한 주목도가 좀 떨어지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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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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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그래도 불모지인 한국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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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락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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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쯤 한국의 G3 같은 거 볼 수 있으련지 후 제가 죽기 전까지는 좀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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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3같은 건 솔직히 말해서 힘들겠죠. 제가 뭐 겸손을 모르는 사람은 아닌데, 나름 전성기때 굉장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 시절에도 그런 건 무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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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뭐 요즘 제가 듣기로는, 꽤나 주목할만한 기타리스트가 있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명전이 형 아시나요? 일반인들은 다들 모를 수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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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명전 선생님 제 곡에 세션 들어와주셨을때 진짜 너무 잘 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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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규뢰님 맞죠. 명전이 형이 진짜 기타는 거의 국내에서 세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잘 치셨지. 여튼, 그 분이 제자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명전이 형이 살아돌아왔다고 생각될 정도로 잘 친대요. 근데 여고생이라고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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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유령이 인터넷을 배회하고 있다. 천재 미소녀 여고생 기타리스트라는 유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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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전역을 달구지는 않았지만, 좁디 좁다 못해 사망 직전까지 몰려 있는 한국 밴드 씬 중 일부… 새로운 떡밥이 언제 공급되나 하고 수면 밖으로 입만 내밀고 있는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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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들은, 이내 소문으로만 돌던 ‘그 기타리스트’의 정체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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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하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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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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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고등학생(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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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엄청 이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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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White Room을 운영 중. 구독자는 1만명 남짓. 조회수 최대 25만. 영상에 나온 실력은, 분명 상당한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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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본인이 편집한 영상은, 잘 나올때까지 계속 시도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이것이 근거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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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판단 아래, 사람들은 실력을 입증해줄 수 있을 만한 자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영상 하나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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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임준홍 기타리스트의 채널에서 연주했던 Eric Johnson의 Manhattan 라이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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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아주 난리가 났다. 저 나이에, 저렇게 매끄럽게, 원본의 느낌을 살리는 연주가 가능하다고? 다른 연주는 없나? 영상의 말미에 보면, ‘그날의 너’라는 이름의 곡이 있다. 이 곡도 80년대 블루스 락이 떠오르는 상당히 좋은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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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밴드 이름이 Group Sound라고? 근데 이 밴드가 공연을 한 적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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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사람들은, 시간을 거슬러올라갔다. 그리고 찾아낸 두 번째 공연. 애니메이션 곡을 연주했다는 정보와, [Group Sound라는 밴드 대단하다… 보자로 곡 연주했는데 진짜 반할뻔했음] 같은 SNS 게시물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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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근거로, 그들은 결국 첫 번째 공연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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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악한 학교의 카메라와 마이크 품질로 담아낸, 하지만 밴드의 실력은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는 영상. 그리고 그 영상을 먹으며, [야 이게 첫 공연ㄷㄷㄷㄷㄷ], [씹덕곡이지만 나쁘지 않네], [4인조 여성밴듣ㄷㄷㄷ] 같은 반응들이 오가는 와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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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근데 베이스는 존나 못치지 않냐? ㄹㅇ 거의 얹혀가는 수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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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좋아하는 밴드가 묻힐까봐, 뱀심 가득한 마인드로 던진 누군가의 한마디가… 좁디 좁은 씬의 인터넷 여론에 약간의 파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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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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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잠시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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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스크래치를 한번 약하게 긁고는, 나머지 셋에게 말했다. 벌떡 일어나 커피를 마시러 가는 서하와, 자리에 앉아서 키보드로 피아노 연습 - 과연 그게 가능한진 모르겠지만 - 을 하고 있는 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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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명전은, 소파에 앉아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는 이서에게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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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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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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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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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영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던 이서. 연습은 궤도에 올라와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멘탈이 망가져버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기도 해서… 따로 혼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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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물어는 봐야 할 것 아닌가. 밴드의 리더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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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별 일,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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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일이 없으면 달 일은 있나? 프하핳… 아니,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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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털어놓지 않을 기세라, 명전은 분위기나 띄울 겸 농담이나 하나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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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더욱 더 가라앉는 분위기.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서하를 보고, 명전은 빠르게 사과부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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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별 일이 없으면 그렇게 있지는 않겠지. 생리라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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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런 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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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게 아니면 그냥 뭐, 우울한 날인가. 비도 안 오는데. 이유없이 슬픈 날? 글루미 선데이? 일요일도 아닌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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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서는 우울한 눈으로 명전을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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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 알아봐달라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일이 있으면 말을 해야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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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새끼도 아니고 왜 이렇게 답답하게 구나, 생각했던 명전은 자신의 앞에 있는 애들이 전부 다 아이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명전 자신도 정신만 나이가 들었을 뿐이지, 어린애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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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나이에 맞는 일이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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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내적 한숨을 쉬었다. 그 요즘 뭐, 중2병이라는 것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꼭 중학교가 아니더라도, 아무튼 이 연령대는 사춘기를 맞이하는 연령대다. 만사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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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시도 사춘기때 오만 일을 다 저질렀었지. 통기타 한대 메고 이걸로 돈 벌어서 전국팔도 여행을 해 보겠다고 나갔다가 아버지한테 오지게 맞았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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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래놓고 부모님은 역시 내 마음을 모른다며 다른 음악하는 형한테 가서 푸념하고, “그래. 명전아. 음악은 원래 힘든 것이란다. 하지만 너도 나처럼 될 수 있어.” 라는 자랑 아닌 자랑을 듣고. 정작 그 양반은 나중에 보니까 쌀가게 하고 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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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에 비하면, 이서는 참 얌전한 편이었다. 누구도 자신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패악질을 부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연습에 참여해서 그냥 안 좋은 얼굴만 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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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있는지 말해줘야 우리가 도와줄 수 있어. 너 무슨 일 있다고 표정에 다 쓰여 있으니까. 가족 관련된 일이면 뭐, 우리 집 넓으니까 며칠 우리집에 묵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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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는 수연을 보고, 이서는 잠시 머뭇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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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꺼내도 될까? 별 거 아닌 일이긴 한데, 이렇게까지 생각해주는 애들한테 이런 사소한 이야기를 꺼내도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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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서는 이야기를 하기로 생각했다. 아무튼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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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너 욕하는 걸 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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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은 아니지 않을까? 내가 베이스를 잘 못치는 건… 그냥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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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소리에요! 소맛님 베이스 잘쳐. 소맛님 지켜! 누가 그딴 미친 소리 하고 있는 거야. 진짜 인터넷 악플러들 다 신고해야 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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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의 말에 와락하고 이서를 껴안는 현아. 명전은 머리칼을 살짝 꼬았다. 생각 같아서는, “너 실력 부족한 거 사실이긴 한데 늘고 있으니까, 그딴 좆같은 말은 신경쓰지 말고 연습에나 전념해라.”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런 이야기 했다가는 진짜 자기가 베이스 못 치는 줄 알고 탈주를 해버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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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딱히 욕도 없었어. 그냥 밴드에 얹혀간다, 다른 멤버보다 좀 못치네, 뭐 그런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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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욕이지! 하여간 인터넷에서는 키보드만 잡으면 무슨 자기가 모짜르트고 베토벤이래. 피아노에도 그런 애들 많아. 근데 걔들 다 체르니도 못 쳐봤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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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체르니는 쳐보지 않았을까…” “호랑은 조용히 해!” 같은 만담을 주고받는 현아와 서하. 그런 그들을 놔둔 채 명전은 이서가 가르쳐준 커뮤니티 화면을 쳐다보았다. 베이스가 어떻다 저떻다 하는 댓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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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딱히 전문적이지도 않은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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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잘 모르는 놈이 제일 목소리가 크다고 했다. 명전이 보기에는 이 인터넷 상황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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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무튼 내가 보기에는 베이스가 별로임. 뭐 부족하고 뭐시기도 부족하고 뭐도 잘 안 맞고… 그런 말을 주워섬기는 몇몇 인터넷 유저들. 하지만 진짜 이들이 말한대로 그런 처참한 수준이었다면, 명전부터가 “그딴 실력으로 공연 절대 못해.” 라고 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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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건 첫번째 공연이고, 요즘에는 예전에 있던 단점조차 많이 나아진 상태. 결국, 그냥 알지도 못하는 애들의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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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뭐 이렇게 말해도 이서는 전혀 들을 것 같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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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노트북의 인터넷을 끄고, 돌아서서 이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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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로 말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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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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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 너는 상당히 괜찮은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 게 사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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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는 내심 안심했다. 수연의 입에서 나오는 ‘객관적’이라는 단어는, 그야말로 냉정한 평가 그 자체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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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레슨이나 나한테 코칭 받는 걸 생각하면, 빠른 성장을 보여줘야 하는 게 당연하기도 하지. 하지만 그걸 고려했을 때도 너는 성장속도가 빠르긴 해. 일반인 수준에서 보면, ‘쟤는 프로해도 되려나?’ 같은 느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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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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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우리가 이런 사람들한테 실력을 보여준 적이 없는 것도 맞긴 하지. 두 번째 공연은 뭐 녹화가 된 게 없고, 첫 번째 공연은… 그것도 몇개월 전이니까. 너는 그 이후로도 많이 발전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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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결국 이 사람들은, 뭐 네 실력에 대해서는 별로 알지도 못하는데 말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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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고개를 으쓱인 다음, 이서에게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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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평가가 신경쓰인다면… 이번 공연에 실력 한번 보여줘볼래? 저런 애들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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