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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하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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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전자제품을 주로 파는 곳이었으나, 현재는 오타쿠의 성지가 되어버린 장소. 일종의 메카처럼, 오타쿠라면 한번쯤은 와 봐야 한다는 그런 인식이 박힌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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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소에, 4인(+1인)은 발을 디뎠다. 숨막힐 정도로 많은 인파들이 오가는 아키하바라 역. 수많은 직장인들과 일반인들과 오타쿠들과 기타등등이 뒤엉켜 자연의 열기 뿐만 아니라 인간의 열기까지 만들어내고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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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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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여름. 하필이면 슬 해가 중천에 뜰 오전. 출퇴근시간의 지옥철 정도는 아니지만 한창때의 홍대 명동에 비하면 훨씬 더 많은 인파. 그들은 일본의 열기를 정통으로 맞으며, 어떻게든 역에서 기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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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겠다. 너무 더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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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쪄 죽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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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두 명, 이서와 서하. 아닌 것 같아 보여도 혜인 또한 미간에 주름이 그려져 있었다. 일행 중 그나마 움직이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은 ‘정신을 가라앉히면 겨울이 곧 여름이요 여름이 곧 겨울이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정신적 노인네인 명전과 '영혼의 고향'에 돌아왔다는 기쁨이 더 큰 현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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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자! 빨리 움직이죠! 우린 시간이 없어요. 돌아볼 곳이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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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는 정 반대인 모습을 보며, 명전은 도대체 얼마나 기쁜 것인가 하고 생각을 했다. 뭐 생각만 하고 있던 곳에 왔다는 기쁨이 있긴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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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그정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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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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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무것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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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그렇게 얼버무리고는, 아키하바라를 걸어가며 거리 곳곳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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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통제한 채로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일본인보다는 서양인, 중국인이 더 많아보이는 풍경. 그런 것을 제외하면 그냥 평범한 거리 같아 보였지만, 간판 등에 붙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 광고가 아니라 애니메이션 캐릭터니 게임 광고니 하는 것이 좀 달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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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만화영화니 뭐니 하는 것들이 참 정부가 때려잡는 대상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커진 걸 보면 뭔가 좀 오묘하네. 아니, 그건 그냥 한국 정부 한정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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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어릴 시절에도 알음알음 일본 만화니 그런 것들이 밀수입으로 들어온 적이 있었다. 옛날에는 그런 것들이 다 한국에서 그리니 만들었니 그런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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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곳을 구경하다, 더위에 지친 일행들의 읍소에 들어온 곳은… 다름 아닌 ‘메이드 카페’ 였다. 간 곳은, 가장 대표적이고 메이저하기로 유명한… 곳곳에 지점이 있는 메이드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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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까, 이 사람들이 이런 걸 보고 좋아하긴 할까? 되려 싫어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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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일행들을 데려오기는 했으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 현아였다. 학교 축제 당시 오타쿠 곡을 공연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좋아해주는 것을 보고 어느정도 그런 자격지심이 고쳐진 그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뼛속 깊이 박힌 감정이라는 것은 쉽게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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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분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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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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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분들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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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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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찬 메이드들의 인사를 받아가며 도달한 테이블은 꽤 컸다. 그리고 내밀어지는 한국어 메뉴판. 하지만 현아는 그것보다는 우선 일행의 안색부터 슬쩍 살펴보았다. 이 곳에 온 것을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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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곳이네. 관광 특화 카페 같은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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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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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행히도, 일행들의 모습은 꽤나 괜찮아 보였다. 처음 보는 메이드 카페의 광경에 사진을 찍어대는 이서와, 메뉴를 주의 깊게 고르고 있는 서하. 그리고 이 카페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수연 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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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는 마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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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770엔. 정식 코스 3080엔. 디저트 코스 2860엔. 드링크 코스 2310엔. 풀 코스 3960엔. 음식점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비싼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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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괜찮았으나, 가격을 보자마자 수연은 “세상에 이런 사기꾼들이 있나. 가격이 왜 이래?”를 외치며 나가자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수연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언제 이런 것들을 즐겨보겠냐며 메이드들이 권유하는 것들을 마구 시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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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라이브 옵션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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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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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라이브 보는 건 어떠냐고 물어보는데요. 주문을 하면 저기 앞에서 춤 추면서 라이브를 해주나봐요. 132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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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도 돈을 받아먹는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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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거리는 수연의 말을 무시한 채로, “그럼 그것도 부탁합니다.” 라고 말하는 혜인. 그리하여 풀코스 5개, 라이브 주문까지 합쳐 15만원이 넘는 지출을 하게 된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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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테이블의 아가씨분들께서 풀 코스를 주문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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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코스 주문을 하자, 마치 가로수길 애플 스토어마냥 핸드벨을 울리며 외치는 메이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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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는 당혹감과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사람을 부끄러움에 질식시키려는 의도인지 모를 정도의 칭찬을 퍼붓는 메이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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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쳐다보는 다른 손님들. 서하는 순식간에 화장실로 도망쳐버리고, 수연은 현실을 외면하며 필사적으로 창문 바깥을 쳐다보는 가운데… 이서와 혜인은 싱글벙글 웃으며 마치 퍼레이드라도 하는 듯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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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오무라이스에 그림을 그려주는 서비스.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가버린 두 사람(서하와 수연)을 제외한 채로, 나머지 3명은 메이드에 맞춰 활기차게 구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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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いしくな~れ, 萌え萌えきゅ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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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시쿠나레, 모에모에 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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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말로만 듣던 본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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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가 생각하건데, 한국의 메이드 카페 서비스나 일본의 메이드 카페 서비스나 뭔가 확연히 드러나는 차이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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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일정 측면에서는 한국이 더 나은 점도 있었다. 예를 들어 메이드가 엄청 바빠보여서 스몰톡 같은 것은 전혀 못한다던가. 그 외에도 음료에 그림을 그려주지 않는다던가. 좀 추가 메뉴나 가챠 같은 것을 권유한다던가.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이 나은 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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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뭔가 본질적인 부분에서 다른 것 같은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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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하지 못할 부분이지만, 아무튼 현아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메이드 카페가 뭐가 그렇게 본질적이고 뭐고가 중요하겠냐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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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이런 거 즐기는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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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카페의 전통과도 같은 이런 저런 일들이 끝나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듯한 수연이 그렇게 물었다. 그 질문에 현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뉴판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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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보듯이 기념품… 기념촬영. 이건 체키라고 하는데, 메이드…랑 사진을 찍는 거에요. 그리고 아까 라이브 주문했는데, 그거도 좀 있다가 시작할 것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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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랑 사진은 왜 찍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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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냥? 기념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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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수연의 표정. 하긴 그럴 만 하다고 현아는 생각했다. 지금 주변 테이블이나 메이드들의 몸짓, 반응을 보면… 수연이 메이드와 기념 촬영을 하는 게 아니라, 메이드들이 수연과 기념 촬영을 하고 싶어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단지 수연이 ‘나는 이 모든 게 다 마음에 안 든다’ 라는 느낌으로 앉아있기 때문에, 근처에 오지 못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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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질어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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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아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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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런 말은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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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어를 내뱉었다 수연이 어머님의 걱정을 산 서하. 잠시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카페 전체의 불이 확 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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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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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 라이브 하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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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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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주문한 거요. 저 사람들이 이제 저기서 공연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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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는 아까 나눠준 형광봉을 들어보였다. 손에 들고 꺾으니, 응원봉처럼 빛을 내며 밝아지는 모습. 그 모습을 본 옆의 메이드는 그걸 흔들면서 응원하는 거라며, 웃으면서 몸짓으로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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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뮤직 스타트! 라고 외쳐주세요~! 그럼, 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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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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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저 편의 남자 손님들이 내는 우렁찬 소리. 그 소리와 함께, 가게 안 조그맣게 세팅된 작은 무대에서 메이드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열심히 귀여운 목소리를 내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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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가 내 돈을 내고 내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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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열심히 응원하는 와중에, 서하가 무심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 잠시 테이블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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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여름에 오면 안 되는 나라인 것 같아. 이거 뭐 더워서 살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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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현아의 아키하바라 일주로 모두가 다 땀에 젖어버린 탓에, 한번 호텔에서 샤워를 하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더위의 불쾌함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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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덥다 타령할 수록 더 더운 거야.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해야 안 더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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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되는 소리 그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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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삶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이서에게 해 주었으나, 이서는 영 받아들이는 눈치가 아니었다. 뭐, 살아보면 알 것이다. 한 20년 정도 더 살아보면, “아 그때 수연이가 한 말이 맞았구나” 같은 생각이 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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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너희가 말했던 시모키타자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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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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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혜인의 물음에 대답했다. 시모키타자와. 한국에는 홍대가 있듯이, 도쿄에는 시모키타자와가 있다. 라이브 하우스가 득시글거리는, 일명 ‘문화와 예술의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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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명전이 오자고 한 곳이었다. 하필 뭔 애니메이션에 나온 곳이라 “성지순례 하자는 거야?” 같은 무슨 이상한 질문을 현아에게 듣긴 했지만… 전혀 그런 마음은 없었고, 그저 밴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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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가야 할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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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시장이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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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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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의 대답. 명전은 살짝 웃고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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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두 번째로 큰 시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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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영국 같은 데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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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일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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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의 답변에, 서하가 정정을 해 준다. 그 말이 맞았다.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음악시장은 바로 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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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본은 그 음악시장 규모를 바탕으로 자생적인 음악 씬을 키우고 있지. 오늘 여기 오자고 한 것도 다 그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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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계속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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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씬의 밴드들이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일본에서 충분히 통할만한 밴드도 많지. 예를 들어 인베이전 2024에 출전했던 밴드들이라던가. 우리랑 상대했던 Mystica 같은 밴드는, 일본에서도 꽤 찾아보기 힘든 실력의 밴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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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대 씬은 쇠퇴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다. 음악 시장의 규모가 작다는 것. 그로 인해, 한국 음악 시장은 락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발달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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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기 와보자고 한 건 그 이유야. 우리는 한국에서 꽤나 성적을 올리고 있지. 하지만 우리가 좀 더 성장하고, 수익을 올리고, 뭔가를 더 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한국 시장을 넘어 외국으로 뻗어나가야 하겠지. 그럼 당연하게도 첫 번째 대상은 옆나라 일본이 될 것이 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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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일본의 락은 어떨까? 그냥 음반으로 듣는 것 말고. 실제의 공연은 어떨까? 나는 너희들과 그걸 한번 체험해보고 싶었어. 그래서 오늘 여기에 오게 된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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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말을 끝맺으며, 어느 라이브하우스 앞에 섰다. 그가 딱히 특정한 라이브하우스를 고른 것은 아니다. 조금 있다가 공연을 할 것 같은, 그리고 매진이 되지 않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라이브하우스를 골랐을 뿐이다. 그야말로 ‘아무데나’ 골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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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한번 일본 밴드들이 어떤지 한번 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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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그렇게 말하며 라이브 하우스의 계단을 내려갔다. 그들도 많이 느껴왔던, 공연 전의 미약한 긴장감이 입구에서부터 느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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