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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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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튀어나가 찬물에 샤워를 하고, 머리를 대충 말린 후 옷을 갈아입었다. 평소처럼 얇은 긴 바지에 긴 팔을 입으려고 하다, 명전은 다른 곳에 생각이 미쳤다.

‘일본은 한국보다 더 덥지 않나?

한국에서 다니는 것처럼 입고 다니면 쪄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반바지나 치마에 반팔인데… 명전은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 이때까지 치마나 살갗을 드러내는 옷은 그야말로 ‘특수한 경우’, 곡 홍보를 한다거나 공연을 한다거나 그런 때나 입었는데.

일상적인 환경에서 그렇게 입어야 한다고? 하지만 명전은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남자라고 반팔 반바지 안 입나. 더워 뒤질 거 같은데 그런 걸 가리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결심한 명전은 옷장을 뒤져 돌핀 팬츠를 꺼내들었다. 그렇게 달라붙지도 않고 헐렁하니 통풍도 잘 되고. 딱 좋은 옷이다.


“나는 해외여행은 처음이야.”

인천공항 출국장.

이번 여행에서 그녀들의 보호자 역할을 맡은 수연이의 엄마, ‘이혜인’ 씨는 면세점을 가겠다며 자리를 비운 상황. 출구 근처의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이서가 말했다.

“보통 다 그렇지 않나?”

“그런가? 나는 수연이 너는 해외에 한번쯤 가봤을 줄 알았는데.”

“… 안 가봤어.”

왠지 모르게 잠시 뜸을 들인 수연. 뭐 그런가보다 하고 이서는 생각했다.

현아의 예대 입시를 앞두고 갑자기 결정된 일본 여행. 이서가 밀어붙이긴 했지만, 여행에 제일 의욕을 불태운 사람은 현아였다. 당장 지금도 옆에서 타블렛을 보면서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하며 뭔가를 검토하고 있으니까.

“뭘 그렇게 빡빡하게 일정을 짜.”

“아니, 한번밖에 못 갈 수도 있는데…! 무조건 다 둘러보고 와야 된단 말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현아의 태블릿에는, 이런저런 장소가 찍혀져 있었다. 애니메이트. 스루가야. 멜론북스. 만다라케. 메이드리밍… 메이드 카페?

“메이드 카페는 도대체 왜 가보겠다는 거야. 그런데를 우리가 갈 필요가 있어?”

“한국에서 가 봤는데,”

“한국에서 가 봤다고?”

“네… 한국에서 가 봤는데, 뭔가 묘하게 이질적인 게… 그래서 일본에서… 한번 가보려고요. 본토의 메이드카페는 어떤지.”

“… 그런 걸 굳이 체험해야 하나?”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불쑥 들어오는 수연의 질문. “그러게.” 하며 이야기를 한 이서와 다르게, 현아는 좀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그런 경험도 해 봐야 한다고요. 오타쿠로써의 경지를 높이기 위해서는…”

“도대체 그런 경지를 누가 높이고 싶어하는 건데? 경지를 올려서 무슨 이득이 있는데?”

냉철한 수연의 반박. 하지만 현아는 그에 대해서 나름의 논리정역한 대답을 내놓았다.

“당연히 이득이 있죠. 어디 가서 누구랑 말싸움 할 때 ‘너는 일본 본토 가서 메이드 카페는 가보기는 했냐? 라고 말할 수 있잖아요.”

‘그런 걸 말할 때가 있나?

이서는 그런 의문을 가졌다. 수연 또한 동일한 모양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할 리가 없잖아. 무슨 오타쿠들끼리 싸우는 것도 아니고.”

무심한 수연의 말에 잠시 멈칫한 현아. 뭔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는 말을 내뱉었다.

“…에? 이제 다들… 오타쿠 된 거 아니었어요…?”

“나는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가 궁금한데.”

“아니아니, 이제 막 봇치 더 락 노래도 공연하고 그랬으니까, 노래에 관심이 생겨서… 이제 만화도 보고 애니메이션도 보고… 뭐 당연히 그랬을 줄…”

무슨 소리를 하냐는 수연의 말에, 자신이 오히려 당황한 듯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현아.

“원래 보통 사람들은 안 그래.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막 알아보다가 혼자 좋아져서 막 거기에 몰입하고 그러지 않거든.”

이서는 그렇게 말해주었다. 거짓말 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무슨 세상이 무너지기라고 한 마냥 그녀를 쳐다보는 현아.

하지만 그게 사실인걸 어떻게 하는가. 받아들일줄도 알아야 한다. 언제까지 세상이 착하기만 하지는 않는단 말이다.

“헛소리 하지 말고 이거나 들어줘.”

수연이 어머님과 같이 면세점을 갔다 온 서하가, 면세점 봉투를 건네며 그렇게 말했다.


숙소는 도쿄역 근처로 잡혔다. 현아가 아키하바라를 가고 싶다고 한 것도 그렇고, 그들이 무조건 들러야 할 오차노미즈 역 또한 도쿄 역과 그렇게 멀지 않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엄마, 즉 ‘이혜인’ 씨가 도쿄 출장을 올 때마다 자주 오는 곳이 이 호텔이라고 하니… 명전은 뭐 그렇게 나쁘지 않다 싶었다. 상당히 고급 호텔로 보이고. 뭔가 왠지 한국인의 피가 막 끓어올라서 도시락 폭탄을 던지고 싶은 그런 이름의 호텔이었지만.

“원래 이렇게 짐을 빨리 풀 수 있는 건가요? 2시 3시 그때나 체크인 되지 않나.”

“그렇긴 한데, 내가 이 호텔에 좀 많이 묵었거든. 단골 손님이라서 가능한 거란다.”

서하의 질문에 답해주는 이혜인 씨. 명전은 ‘도대체 단골 손님이 될 정도면 어느 정도로 많이 묵어야 하는 거야? 라는 생각을 하며, 카운터에서 준 키를 바라보았다. 2개의 키. 2인실 하나와 3인실 하나. 명전과 이혜인 씨가 한 방, 나머지 3명이 한 방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런 곳은 비싸…지 않나요?”

화려한 인테리어에 압도되던 아이들은, ‘엄마’가 비용을 다 지불하는 것을 보자 그제서야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이혜인 씨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딸하고 잘 지내줘서 고맙다는 선물이란다. 별 생각 하지 말고 묵으렴. 여기 길게 있을 것도 아니니까 하루이틀 정도는 괜찮아.”

고급 호텔은 고급 호텔인 모양인지, 셔틀버스에서 내린 이후부터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붙는 호텔의 벨보이들. 열쇠도 잠시 들었을 뿐, 이내 그들이 받아들었다. 짐까지 다 옮겨주며 서비스를 하는 벨보이들의 행태에 와~ 하며 탄성을 지르는 나머지 세명.

‘자본주의라는 게 이런 건가…’

하지만 그는 옛날 생각을 떠올렸다. 그가 어릴 때까지도 아직 하인 문화는 좀 살아 있던 편이었다. 그의 집은 아니었지만, 좀 살던 집 중에는 하인을 부리는 집도 꽤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꽤 야만적인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돈을 받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하인을 정당화시키는구나. 이게 이래서야 될 일인가. 역시 일본이라는 나라는…

‘아니, 근데 편하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일삼던 명전이지만, 직접 캐리어를 끌고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데다가 방까지 날라준다는 이야기에 그런 생각이 쑥 들어가버렸다. 그래. 이 사람들도 다 돈 받는 일인데 뭐 그렇게까지 자본주의니 뭐니 궁시렁거릴 이유가 있겠는가.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 법이다.

“ごゆっくりお過ごしください.”

“あ!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혜인이 짐을 푸는 와중, 심심해서 가본 옆방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들어보니 현아의 목소리였다. 꽤나 유창한 것 같은 일본어.

“일본어도 할 줄 알아?”

명전은 신기하다는 듯 현아에게 물었다. 한국어처럼 살짝 더듬지도 않고, 유창하게 대답을 하는 모양새.

“어… 조금 할 줄 안달까…”

“원래 오타쿠들의 덕목은 일본어라고.”

“그럼 너는 할 줄 알아?”

그 말에 현아가 대답하는 사이 끼어든 이서와, 그런 이서를 갑자기 공격하는 서하. 왠지 모르게 배신감이 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서하를 보고 있는 이서를 내버려 둔 채, 명전은 자신의 방 쪽을 다시 바라보았다. 짐을 다 풀었는지 바깥으로 나오고 있는 혜인.

“그럼 얘들아. 우리 밥좀 먹으러 갈까?”

호텔 바깥으로 나와 정처없이 걷는다. 아이들은 평소에 보지 못했던 풍경이 신기한지 “우와!”, “대박.” 같은 소리를 하며 혜인을 따라가고 있었다.

“너는 안 신기해?”

그런 와중 명전을 따라붙은 이서의 말. 명전은 “신기하지.” 라고 대답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명전은 몇번 일본을 와 봤기 때문이다. 목적은 좀 달랐지만.

‘그때는 악기 사러 오거나 공연 하러 오거나 그 정도였지만.

공연 투어 세션 일 때문에 일본을 잠시 들어오거나, 악기만 사고 나가거나. 그런 식으로 일본을 많이 들려봤던 명전이었다. 물론 그것도 한참 세월이 지난 일이었는데, 놀랍게도 일본은 그때나 지금이나 분위기가 비슷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

자신감 있게 걸어가는 혜인을 보고, 명전은 따라붙어 질문을 던졌다.

“예약 하셨어요?”

“아니, 안 했어. 그런데 그냥 막 들려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 아닐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했다. 다 알아보고, 다 동선 짜서 하는 여행이라는 것이 무슨 재미인가. 게다가 우리는…

“아까 보니까 현아가 일본어 좀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 엄마도 일본어는 못해서 영어만 말하고 다니는데, 일본어 할 수 있음 좋지. 필요한 거 있으면 현아한테 부탁하면 되겠네.”

정처없이 거닐던 일행은, 뭔가 괜찮아보이는 음식점 앞에 도착했다. 떠들썩하지 않은 전형적인 ‘일본 식당’이라는 느낌의 가게.

“여기로 하자. 현아야.”

“네?”

“내가 일본어를 잘 못하는데, 혹시 일본어 좀 가능할까?”

혜인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현아는, 살짝 망설여지는 느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입장한 가게. 점원의 안내를 기다려 입장한 가게는, 메뉴판에 일본어가 잔뜩 써 있었다.

“뭐야. 왜 이렇게 비싸?”

“메뉴가 뭐지?”

이서와 서하가 눈이 휘둥그레지는 사이, 혜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메뉴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슬쩍 옆에 와서 알려주는 현아.

“어… 여기 우나쥬(うな重. 민물장어덮밥) 집인가보네요. 장어덮밥이에요.”

“고마워. 얘들아, 장어 괜찮지?”

혜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 명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뭔가 자신감이 붙은 건지, 현아는 “주문은 저한테 맡겨주세요!” 라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현아의 영광은 거기까지였다.

“ソースは何をお選びになりますか?”

“ひつまぶし式で召し上がりますか? それとも普通に召し上がりますか?”

“デザートは何になさいますか?”

“에… 스, 스미마센… 죠, 죳토 느리게, 윳쿠리, 그걸 뭐라고 하더라…”

일본어를 할 줄 안다고 생각한 것인지, 무자비하게 일본어를 퍼붓기 시작한 점원. 사투리도 섞인 모양인지 억양이 살짝 다르다. 그 말에 현아는 눈물까지 조금 글썽이며 필사적으로 점원과 소통을 시도했지만, 명전이 보기에도 상당히 힘들어 보였다.

“일본어 할 줄 안다며?”

“그… 그정도는 못 한다구요…”

“괜찮아, 그 사람이 너무 빨리 말한 거니까. 못 알아들을 수도 있지.”

혜인의 달램에도 불구하고 시무룩해져 있는 현아. 명전은 ‘좀 다른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그런 이야기를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의기소침한 사람을 갈굴 필요는 없으므로.

“원래 덕후들이 그래. 그런 말도 있잖아. ‘세계와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겠어! 같은 말은 할 줄 알아도, ‘라멘 사이즈는 M으로 부탁드립니다. 젓가락이랑 후추 주세요. 같은 말은 못 하는게 덕후들이라고.”

하지만 이서의 생각은 다른지, 연신 싱글벙글하며 현아를 은근슬쩍 공격하는 이서.

“이… 이익! 소맛님은 그냥 일본어 자체를 못하잖아요! 패션 오타쿠! 코스프레녀! 멘헤라 컨셉만 잡는 가짜! 소맛님 싫어!”

그런 일방적인 딜교에 분통이 터졌는지, 갑자기 후다닥 자기 할 말을 외치고 만화처럼 도망가버리는 현아.

벙 쪄있다 현아를 쫒아가는 서하와, ‘패션 오타쿠’, ‘가짜’, ‘소맛님 싫어’ 라는 키워드에 정신이 멍해진 것 같은 이서. 그런 광경을 두고, 명전은 도대체 이게 뭐하는 촌극인가 하고 생각했다.


오차노미즈.

원래는 근처 대학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악기를 파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곳이, 어느새 악기점이 수두룩하게 생겨났고 그러다가 결국 500M가 넘는 악기 거리가 조성되어 버린 곳이다.

그는 오차노미즈의 악기점 점원이었다. 전통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오래된 악기점에서 일하는 점원.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고, 악기 실력도 있고. 찾아오는 사람들 상대로 시연을 할 정도의 자부심도 있었다.

‘저 손님들은, 딱히 뭔가 안 살 것 같은데.

그리고 손님을 감별하는 식별안 또한 있었다. 워낙 많은 손님들을 맞이하다보니, 거의 90% 정도는 맞는 그런 느낌의 감각. 그런 그의 감각에 의하면, 방금 들어온 손님들은 ‘절대 악기를 살 것 같지 않은 손님’들에 속했다.

‘엄마… 인가? 교사일지도 모르겠고. 젊은 걸 보니 이모일지도? 아무튼 그런 사람 한명하고, 딱 봐도 여고생인 4명. 한국사람일지도 모르겠네.

그가 손님들에게서 받은 첫 인상은 그랬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하게 일치했다. 들어오자마자 알아듣지도 못할 한국어로 “와 미쳤다.”, “악기 너무 많은데? 시연해봐도 되나?” 같은 소리를 하는 여고생들.

저런 애들은 절대 악기를 사지 않는다고 그는 생각했다. 여고생들이 밴드를 꾸리는 것은 그저 만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 만화가 아니라 실제로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실력이 뛰어나진 않다. 여자에 대한 편견 섞인 발언이 아니라 그냥 객관적 사실이 그렇다.

“Can we play this? for demonstrate.”

“어… 어… 오케. 오케.”

이모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은 좀 의외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생각은 딱히 변하지 않았다.

그 중 키 크고 몸매가 좋은 아이가, 갑자기 “나 이거 진짜 쳐보고 싶었어! 워윅 프렛리스!” 라며 잭 브루스의 워윅 썸 프렛리스 시그니쳐를 잡아들때는, 솔직히 말해서 악기가 아깝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아이가 악기를 연주하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