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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독 김재훈은, 담배를 꼬나물고 싶다고 생각하며 눈 앞의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살짝 눈을 감은 채 음악을 듣고 있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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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봐도 중고등학생 정도는 되었을까… 고3이나 대1은 분명 아닐 것 같은 외모. 아직 다 자라지 않았고 어린 기가 빠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외모라면, 분명 나이가 충분히 들었을 때는 아이돌… 배우 정도까지도 가능하려나 생각되는 그런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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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음악은 얼굴로 할 수 없다. 정확히는 얼굴로 할 수 있는 분야도 있지만, 지금 재훈에게 필요한 것은 할 수 없는 분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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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홍 이 시발새끼… 못 하겠다 하면 못 하겠다고 해야지 이렇게 뒤통수를 쳐? 뭐 내가 잘못 대해준 것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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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제대로 잘 가고 있던 드라마의 스케줄. 하지만 그 스케줄은, 조연배우 중 한명의 논란으로 완전 어그러지고 말았다. 배우는 하차하고, 그 씬은 다 들어낸 다음 새로 찍어야 하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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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반 쪽에서는 어떻게든 작업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서 세팅된 그대로 배우만 바꾸자! 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작가와 메인 PD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스토리 전체를 수정하고, 씬도 전부 삭제한다. 극 완성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좀 더 열심히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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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좋다. 뭐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자는 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음악은 거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간다는 거고… 그건 재훈에게 주어진 작업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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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에 아무튼 손에 닿는 세션 아무나 부른 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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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홍은 그와 사적 친분이 있진 않지만, 여러번 작업해서 안면도 있고 부탁도 들어줄 수 있을만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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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에 일단 와달라고 이야기했으나, 다른 스케줄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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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른 사람이라도? 소개해줄만한 급의 세션들은 다 일이 있어 못 갈것 같은데요. 아! 싸고 괜찮고 실력있는 사람 있어요. 세션 처음 해보는 사람이긴 한데… 실력은 제가 진짜 보장합니다. 분명 잘해줄 겁니다. 괜찮나요? 준홍씨가 추천했으면 괜찮죠. 밑에 애한테 연락 해보라고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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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딱히 체크하지 않았다. 임준홍이야 뭐 실력이 검증되었으니, 그 양반이 추천하는 사람도 뭐 어느정도는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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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잊어버렸다, 도착한 기타리스트를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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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기가 점점 불편해지는 재훈의 얼굴을 보며, 주변 스태프들은 자신들에게 튈 불똥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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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애는 “아 이런거 못할 실력이면 그냥 집에 가세요. 임준홍 씨발…” 이라는 소리만 듣고 말겠지. 하지만 그 다음 신명나게 줘 터질 예정인 것은 자신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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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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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뭔 준홍인지 전홍인지 그 새끼는 책임감도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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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임준홍씨 제자인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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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얘랑 떡이라도 쳤나? 밀어주는 거 보니까. 근데 그거 불법 아닌가? 개 민짜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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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 없는 생각들을 떠올리고 있는 스태프들 사이에서, 음악이 끝날 때 까지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수연. 음악이 끝나자마자, 한번 더 음악을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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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것은 손의 포즈. 다리 위에 올려놨던 손은, 살그머니 모여 조금씩 박자를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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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 안 되는 시간이지만, 재훈은 그 시간조차 아까웠다. 스태프 중 한명에게 눈짓으로, 새로운 사람을 빨리 찾아보라는 눈치를 주었다. 스태프 중 한명이 슬쩍 사라짐과 함께, 눈을 뜨는 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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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악보는요? 아까 달라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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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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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은 마지못해 코드악보를 건네주었다. 수연은 건네주는 악보를 책상에 올려놓고는, 펜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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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됐습니다.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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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되는 음악. 복고풍 드라마의 주제에 맞는, 90년대 락발라드 풍의 OST. 살짝 녹슨 것 같은 보컬의 목소리가 초중반에 읊조려지다가, 후반부에 폭발하는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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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뭘 하는지 보자… 하고 들여다보는 스태프들 앞에서, 수연은 이것저것 뭔가를 적었다. 끼적끼적대는 폼과, 쓰여지는 글씨가 뭔가 옛스럽다는 생각에 당황하는 스태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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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면 될 거 같은데. 작곡가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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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수연은 곡이 끝나자마자 펜을 내려놓았다. 따로 더 할게 없다는 듯한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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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담배피러 갔는데…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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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면 이야기 들어보고 별 거 없으면 녹음 그냥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여러분들이 일렉만 들고 오래서 일렉 들고 왔는데, 제 생각에는 어쿠스틱이랑 나일론 둘 다 필요할 것 같거든요. 지금 들어가있는 미디가 댐핑이 별로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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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은 저 새끼 어디까지 하나 두고보자는 심정으로 스태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곧잘 하는데, 실력이 과연 그걸 받쳐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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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수연은 펜더를 꺼내들었다. 그 모습에, 스태프 중 한명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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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희 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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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펜더로 녹음하는 게 더 나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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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참.” 하는 재훈을 두고, 펜더를 이리저리 만지는 수연. 그 때, 담배를 피다 소식을 들었는지 급하게 뛰어올라오는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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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야. 준홍씨는요? 오늘 온다면서? 얘는 또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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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잘난 임준홍씨가 얘를 대타로 보냈답니다. 에? 박선생. 얘가 녹음 하겠대. 자기 기타 칠줄 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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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하다는 듯 수연을 쳐다보는 작곡가. 그리고 작곡가를 쳐다보던 수연은, “뭐 의견 있으세요? 강조해줘야 하는 부분이라던가.”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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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 D브릿지 3마디부터 빌드업 올라갈 부분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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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여기부터 드라이브 걸고… 아니, 그 이전부터 걸어야 하나. 여기부터 방방방 하면서 올라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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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거기부터는 아니고. 약간 좀 더 짧게 했으면 좋겠는데. 그대신 좀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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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을 보자마자 불신을 표하던 작곡가. 하지만 수연의 말에, 어느새 어떤 식으로 곡을 연주해야 할지 수연과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저음부를 잡고 짧게 탁탁탁 이렇게 뭐 해달라는 건가요.” “아… 마 그럴 거 같은데?” 같은 의견이 오가며, 진지해지는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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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스태프들의 시선이 ‘쟤 진짜 농담 아니고 세션 할 수 있는 거 아냐?’ 같은 식으로 변해갈 때 쯤, 수연은 펜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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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이. 이제 들어갑시다. 기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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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폰을 낀 채로, 악보를 보고 앉은 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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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한번만 내 볼게요. 이펙터 아웃풋 괜찮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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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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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에게 쏟아지던 의문의 시선은, 점점 긍정적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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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세션에 들어오는 연주자들은 - 애초에 이런 레벨의 녹음에 세션을 처음 하는사람들이 들어오지도 않지만 - 자신이 녹음을 위해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 녹음에 어떤 연주를 넣어야 할지도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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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오라니까 왔고, “이런 식으로 기타를 연주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라는 말에 몇번이고 기타를 치면서 시간을 잡아먹은 다음 감도 잘 안잡히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연주를 마치고 나간다.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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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수연은 달랐다. 분명 세션은 처음이라고 들었는데, 세션을 수십년은 한 것 마냥 들어오자마자 음악을 듣고, 코드악보를 보고 라인을 만든 다음 작곡가의 의견을 반영한다. 경력이고 뭐고 모르겠으나, 일단 하고 있는 폼새 자체는 꽤 믿음직스러워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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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비 백킹부터 들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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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악곡의 클라이막스 파트라고 할 수도 있는 부분, 싸비. 수연은 기타를 몇번 땡겨보더니, 곡을 시작하라고 손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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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재생되는 음악. 수연은 발으로 리듬을 타며, 간단한 백킹을 넣기 시작했다. 스트럼, 스트럼, 스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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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재훈은, 컨트롤 룸 안에서 들려오는 기타소리를 듣고 있었다. 내질러지는 90년대풍 락발라드의 클라이막스를 배경으로, 조금씩 들려오는 백킹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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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할 것 없는 백킹 스트럼 소리지만, 재훈은… 살짝 위화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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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느껴져야 할 것이 느껴지지 않는… 뭐가 문제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문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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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가 없으면 안 되는데. 왜 문제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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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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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지금… 잠시만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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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비의 백킹을 끝내고 다음 파트로 넘어가겠다는 수연의 신호. 그 말에 장비를 잡고 있던 석준이 한번 더 재생을 하려다, 재훈의 말에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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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녹음한 거 다시 한번 틀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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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별 문제 없는 거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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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다시 한번 틀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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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눌러지는 재생 버튼. 들려오는 배킹은, 그가 듣기에도 별 문제가 없었다. 석준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듯, 재훈을 쳐다보며 왜 그러냐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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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거 밸런스가 왜 다 맞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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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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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한번에 녹음이 들어갔고, 수정을 한 적은 없다. 하지만 몇십 초 동안 들어간 스트럼은… 마치 녹음 후 보정이라도 한 것 마냥, 처음부터 끝까지 모난 부분 없이 정확하게 밸런스가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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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면 뭐 그냥 바로 곡에 올려도 될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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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다음 진행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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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은 그렇게 말하고는, 살짝 물러나 뒤에 섰다. 그리고 계속 진행되는 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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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페지오도, 멜로디를 보좌하는 오브리카토도, 브릿지의 화음 부분도, 그 외 다른 기타가 들어가는 부분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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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과 작곡가 둘이 컨트롤 룸에 서서 계속 들어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의 멈춤 없이 쭉쭉 치고 나가는 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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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제대로 녹음 되고 있는 거 맞나? 우리 뭐 최면 같은 거 걸린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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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의 중얼거림. 재훈은 컨트롤룸 유리창 너머로 수연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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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손을 푼다며 주먹을 연신 쥐었다 폈다 하다, “솔로 세팅 좀 할게요.” 라고 말하며 앰프를 만지기 시작하는 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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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말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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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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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녹음이 빨리 되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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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흔치 않은 일이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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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의 물음에, 작곡가는 그렇게 대답한 뒤 장비를 잡고 있는 석준에게 말을 걸었다. “저 세션 이름이 어떻게 된다고요?” “하수연이라고 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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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은 그들의 대화를 흘려들려들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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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 있는 세션… 이를테면 저 아이를 추천해준 임준홍 본인을 데려온다 한들 이렇게 녹음이 빠르게 진행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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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홍의 실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실력이 부족했다면 부르지도 않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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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작곡가의 요구를 캐치하고, 곡에 들어가면 좋을만한 요소 또한 제시하고. 뭔가 부족하다 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의 퀄리티로, ‘이렇게 단시간에 녹음을 따는 것’이… 준홍에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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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은 그 부분에서 선뜻 ‘가능하다’고 대답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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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이런 작업은 경험이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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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OST의 취지는 드라마를 홍보하는 것. 그런 OST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뭔가 익숙하고 듣기 쉬운 느낌을 주고, 그러면서도 기존과는 다른 차별적인 분위기 또한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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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음악 장르적인 문법을 따라야 하고, 이렇게 시급한 현장이라면 듣자마자 어울리는 연주 또한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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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을 저렇게 쉽게 해내려면, 천재성만 있어서는 안 된다. 경험 또한 있어야 한다. 이런 일을 수십 수백 수천번은 해 보고, 수도 없이 연습을 해서 듣자마자 정답을 찾아내는 그런 압도적인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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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 애는 그걸 하고 있단 말이지. 역시 임준홍이 추천한 사람인가. 술이라도 한잔 사줘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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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시간을 아꼈다고 생각하며 재훈은 웃었다. 이미 그가 스태프들 앞에서 준홍을 씨발놈이니 뭐니 욕한 것은 다 잊어버린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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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솔로 들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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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세팅이 마무리되었는지, 수연이 기타를 두어번 튕기고는 말했다. 그리고 재생되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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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차분한 피킹과 함께, 확연하게 펜더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드라이브가 들어간 클린톤의 기타 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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