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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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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춤을 추고 있는 일본 아이돌들. 뒤로는 테크니컬하고 헤비한 메탈 사운드가 연신 이어진다. 깨끗하고 청아하게 올라가는 고음과 강력한 메탈 사운드의 조합은 음악적으로는 나름 괜찮지만…

정작 그 곡이 불러지고 있는 무대의 모습은 약간 정신을 나가게 하는 형태였다. 치렁치렁 프릴이 달려 있는 옷을 입은 아이돌 세 명이, 애교를 부리고 귀여움을 어필하면서 춤을 추는 장면.

“어, 이건…”

도연은 그렇게 말하며 진서를 곁눈질했다. 아무 생각 없이 “오~ 괜찮은데.” 라고 말하고 있는 진서. 그녀는 주위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진서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순간 오가는 눈빛.

‘이거 괜찮은 거 맞아요?

‘아니 괜찮은데 왜?

도연은 고개를 살짝 젓고는, 입모양으로 P.D.’라는 말을 보여주었다. 그 말에 차가운 물이 끼얹어지듯 정신이 든 진서. 그렇다. 그들은 이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PD에게 지시를 받고 왔던 상태였다.

“제가 원래 출연자분들에게 이런 부탁은 잘 안 드리는데요.”

동욱은 커피를 시원하게 들이키고는, 부탁이라기보다는 명령에 가까운 말투로 말했다.

“여러분들이 지도하시는 ‘그룹 사운드’. 그 애들의 편곡 방향, 최대한 멋있고 실력이 드러나는 쪽으로 해 주십시오.”

“… 왜죠?”

“이유를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구요.”

의아함을 담은 도연의 대답에, 동욱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조작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단지 편집점을, 컨셉을 좀 잡자는 거죠. 실력파 이미지를 얻는 게 그 애들한테 안 좋을 일이 아니잖아요? 꼭 좀 부탁드립니다.”

그 부탁 아닌 부탁을 듣고 도연과 진서는 분개했지만, 어찌되었든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촬영 감독의 말이기도 하고, 0화 편집본을 보니 왜 동욱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기에. 아주 강력한 캐릭터를 부여해줬는데, 시일이 좀 지난 다음도 아니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그 캐릭터가 붕괴해버리면 좀 그렇지.

하지만 지금 이 아이들이 들고 온 컨셉은, 그런 피디의 지시사항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었다. 실력은 드러나겠지만 전혀 멋있지도 않고 강력해보이지도 않는다. 반전매력을 어필해서 밴드의 인기가 올라가긴 하겠지만, 그게 이전 편집과 어울리는 방향은 아니다.

“일단 재미있는 컨셉이네요.”

빠르게 눈빛으로 생각을 주고받은 후, 진서가 입을 열었다. “그렇죠?” 하는 이서의 반응. 하지만 진서는 다른 대답이 튀어나오기 전에 바로 부정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이런 쪽은 좀 아닌 것 같아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그런 점도 있긴 하지만… 더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데.”

“어떤…?”

“이 컨셉의 중심은 결국 무대에 있단 말이죠. 어울리지 않는 음악과 외모, 복장, 컨셉 등을 의외로 좋은 무대로 연출해냄으로써 조화로움을 느끼게 하는 게 중요한 컨셉인데. 문제는 우리 공연에서는 세션을 못 쓰니까 4명이서 이런 풍의 복장을 하고 춤을 추면서 연주도 해야 하는데. 그건 그냥 불가능하잖아요?”

‘미안합니다, 윤피디. 내 머리로는 이 정도밖에 생각이 안 나네요.

속으로 동욱에게 사과를 하면서 진서는 억지로 이유를 짜냈다. 딱 봐도 허술한 점이 많아서 이 애들이 작정만 하면 파훼될 수 있는 논리. 도연도 그 점을 아는지, 옆에서 은근히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세션은 충분히 쓸 수 있는…”

“음, 역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저희도 이 레퍼런스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서요.”

실제로 서하가 반박을 하려 했으나, 갑자기 튀어나온 수연이 서하의 말을 끊고는 말했다. 해당 레퍼런스에 크게 미련이 없어 보이는 모습에 둘은 안도했다.

“다른 레퍼런스가 있나요?”

“네. 비슷한 계열이긴 한데, 좀 다른 느낌이에요. 이전과는 좀 다르게 저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계열이구요.”

그리고 몇분 후 그렇게 생각한 것을 후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 본 레퍼런스는 좀 다른 방향으로 많이 미쳐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까 그것보다는 훨씬 낫긴 했다. 최소한 ‘귀여움’은 없다는 점에서. 문제는 ‘귀여움’이 사라진 자리를 ‘광기’가 메우고 있다는 것이었지만.

“이런 컨셉은 괜찮겠죠?”

“음… 뭐, 아까보다는 확실히… 곡 자체가 원래 이런 방향이다보니까, 그런 방향을 좀 더 강화한다고 보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냥 락이나 메탈 쪽으로 편곡하면 확실히 심심하긴 하죠. 게다가 실제 공연에도 써먹을 수 있을 것 같고.”

둘은 혹시라도 수연의 입에서 “저희 그럼 그냥 카와이메탈 하겠습니다.” 라는 말이 나올까봐, 허겁지겁 두번째 레퍼런스에 동의를 했다. 수연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걸려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당신들 제정신이야?!”

2차 경연 리허설 당일. 충격과 공포의 경연을 보고 온 윤동욱 피디는, 도연과 진서를 불러놓은 다음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애들이 무슨 이상한 무대를 하고 있냐고! 내가 분명히 말했죠! 최대한 멋있고! 실력이 있어보이는 쪽으로 해 달라고! 그런데 뭔 미친 지랄을 하냐고 애들이!”

“그, 피디님…”

“뭐! 저게 최선을 다 한 거라고요? 설마 그런 헛소리 할겁니까? 저게 최선을 다 한 거면 그 전에는 어땠는데?”

“죄송하지만, 저희 진짜 최선을 다한 게 맞습니다. 저 애들이 맨 처음 가져왔던 컨셉을 좀 보시죠.”

분이 안 풀렸는지 마구 소리를 지르다가, 진서가 핸드폰을 건네주자 일단 진정하고 영상을 바라보는 동욱.

그리고 몇분 후, 동욱은 뜨악한 표정으로 다시 진서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어, 최선을 다한 거 맞네요. 죄송합니다… 1차로 이걸 들고 왔다고요?”

“네. 그나마 방향을 바꾼 게 저 방향이에요.”

그 말에 동욱은 머리를 싸맸다. 도대체 어떻게 편집 방향을 만들어야 하는가. 하지만 절망적이던 심정도 첫 번째 레퍼런스를 보고 나니 조금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 거였다면 아예 손도 못 썼을테니까.

“… 알겠습니다. 소리 지른건 미안합니다. 나가보세요.”

꾸벅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두 사람. 동욱은 팔짱을 끼고 천장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가 생각했던 방향은, 기존 락 밴드들이 걸그룹 곡을 받았을 때 하는 정석적인 편곡이었다. ‘이런 곡을 이렇게 소화해내다니! 같은 방향의 편곡과 편집. 정석적이라 식상하긴 하지만, 정석은 항상 먹혀서 정석이라고 하는 법.

하지만 그와 정 반대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그룹 사운드’를 보고, 동욱은 뭔가 불길함을 느꼈다. 뭔가 제어할 수 없는 존재를 대면한 듯한 그런 기분.

“기본도 있고 웃기기도 할 테니까 탈락은 안 하겠지. 무대 자체의 퀄리티도 괜찮았고. 그럼 되는 거야. 어떻게든 편집으로 살릴 수 있어. 고난이도 편곡이 들어왔다보니 약간 부담감에 이상한 걸 해버린 거겠지.”

동욱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찝찝한 기분을 털어내고, 자기 자신도 그렇게 믿게 하기 위해서. 하지만 왠지 이 오디션이 그의 생각대로 될 것 같지 않다는 불길한 예감은 쉽게 떠나지 않았다.


‘우리 애들’을 터무니없이 왜곡한 0화를 목격한 이후. 세윤은 인터넷 곳곳에 키워드 알림을 걸어놓고 인베이전 2024의 방청객 모집 소식이 뜨기만을 기다렸다.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방송에 상처받았을 아이들을 최대한 응원해주기 위해.

인고의 시간 끝에 당첨된 방청. 오늘 경연의 주제는, ‘파격적인 편곡을 보여라’. 통상적인 밴드의 장르와는 전혀 다른 아이돌 곡들을 주고 편곡을 시킴으로써, 얼마나 파격적이고 신선한 편곡을 해 오는지 겨루는 무대.

도착한 방청 무대는, 꽤나 열기를 띄고 있었다. 그룹 사운드의 팬들은 그다지 없어 보이는 팬 구성. 세윤은 왠지 고립감을 느끼며 팬들 사이를 조금씩 헤쳐나갔다.

‘이렇게 다른 밴드를 파는 사람들도, 결국 우리 애들의 매력을 느끼고 응원하게 되겠지.

세윤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녀 자신이 그런 케이스였기에.

TV나 인터넷으로 봐서는 그룹 사운드의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제대로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공연을 눈 앞에서 보게 된다면? 무조건 입덕할 수 밖에 없으리라.

대체로 지루한 공연들이 많았다. ‘파격적인 편곡을 보여라’ 라는 주제와 달리, 아이돌 곡을 밴드 곡으로 만든 것에 지나지 않은 편곡들이 주를 이루는 무대.

눈에 띄는 밴드들은 있었다.

[Mystica : 저희의 이번 곡은! 이베리아 반도의 탱고를 추는 여인이 재즈를 감상하는, 뭐 그런 느낌이랄까…]

무난한 남돌의 댄스곡을 소울풀한 재즈로 편곡해서 꽤나 좋은 호응을 얻었던, 왜 0화에 안 나왔는지 모를 정도의 실력을 보여주는 밴드인 Mystica라던가.

[TWR : 슬로우 템포로 곡을 만들어보니까, 상당히 잘 붙더라고요.]

0화 후반부에 푸시를 엄청 받았던 TWR이나 WEKIDS같은 밴드들도, 나른하고 섹시한 편곡으로 눈요기 정도는 해 주었다.

“아, 다리 아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중력을 잃고 흐트러지는 관객들이 많이 나왔다. “이런 무대는 왜 봐야 하는 거야?” 하며 푸념을 하는 보이밴드의 팬 같아 보이는 여성. “존나 재미없네. 집에 갈까…” 같은 소리를 하는 남성. 공연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집중력을 잃어가는 관객들.

“그럼 이제 다음 무대입니다! 이번 순서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아실 수 밖에 없는 바로 그 곡! 한때 음원차트를 지배하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바로 그 곡! 비비드 오렌지의 JUMPING!’”

‘그 곡을 밴드가 부른다고?

곳곳에서 “리얼?” 같은 반응이 흘러나온다. 도저히 밴드 사운드와는 어울리지 않는 곡이기 때문에. 뿅뿅대는 소리와 중독성을 노린 가사로 이루어진 곡 아닌가. 게다가 뮤비로 뜬.

그래서 도리어 더 궁금하기도 했다. 과연 어떤 불운한 밴드가 저 곡을 가지고 경연에 참가하게 되었을까. 아마 망할 것 같은데, 망하면 망하는 대로 웃길 것 같은 느낌.

“그럼, 자료화면 잠시 보시죠!”

그리고 자료화면에 흘러나오는 것은, 그룹 사운드였다. 멘토와 토의를 하면서 곤란한 점을 하나씩 짚어가는 장면.

‘왜 우리 애들인데?!

세윤은 내적 비명을 질렀다. 우리 애들이 망하게 된다고? 그래선 안 된다. 천재적인 실력을 다 보여주지도 못했는데…

“쟤들 뭐 잘하는 것처럼 나오지 않았나?”

“탈락하겠네~”

“오디션이 좀 운빨이긴 해.”

살짝 비웃음이 섞인 반응들이 흘러나온다. 세윤은 이를 악물고 무대를 쳐다보았다. 우리 애들이라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멘토 : 그래서, 결국 편곡 방향은 어떤 식으로 정했나요?]

[하수연 : 저희는… ㅁㅁㅁ 쪽으로 정했습니다.]

[멘토 : 밴드의 전통적인 역할과 ㅁㅁㅁ은 좀 안 어울릴 영역 같은데. 잘 할 수 있나요?]

[하수연 : 해 봐야죠.]

ㅁㅁㅁ가 뭔데? 라고 세윤은 중얼거렸다. 그 생각이 끝나기 전에 올라오는 ‘그룹 사운드’ 일원들.

‘그런데 원곡 의상은 도대체 왜 입고 나오는 건데?

첫 번째, 스쿠터 헬멧에 흰색 플레어 스커트. 카라 티에 츄리닝 바지라는 말도 안되는 조합. 10년 전에 끝났어야 할 복장이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부활한 것을 보고, 세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두 번째. 맨 앞의 수연이 기타 2개를 낑낑대며 가져오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시작하겠습니다.”

세 번째. 수연이 그렇게 말하며 시작된 공연이 원곡 그대로의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했다는 것에서, 세윤은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

“다 같이 원!”

그렇게 시작된 무대. 그룹 사운드가 연주하는 곡과 기존 JUMPING!’과 다른 점은, 그냥 밴드 편곡으로 변경되었다는 점 밖에 없다. 단체로 자신들 앞에 놓인 마이크에 합창을 하면서, 조금씩 곡을 진행시켜가는 그룹 사운드.

그 때문에, ‘너무 난이도가 높은 나머지 그냥 다 놔 버린 건가. 하고 관객들이 생각하는 찰나. 수연이 앞에 놓인 기타를 바꿔 들더니, 갑자기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하드한 메탈 사운드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허나 보컬의 피치라거나 창법은 바뀌지 않는다. 계속해서 유지되는 기존 곡의 테마. 루프 머신을 사용해 기존 곡의 리프를 남겨놓은 채, 그룹 사운드는 인더스트리얼 메탈에서나 들을법한 거친 사운드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점핑! 점핑!”

묘하게 유지되는 균형. 디스코 팝 틱한 멜로디와, 그 뒤에 깔려 있는 메탈 사운드. 플레어 스커트에 츄리닝, 스쿠터 헬멧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복장을 하고서, 웃음기 하나 없이 그런 연주를 하고 있는 그룹 사운드.

관객들은 자신이 도대체 뭘 듣고 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빠져가기 시작했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이것이 현실이 맞나 싶어진다. 나는 어디이고 여긴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