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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다는 것, 그리고 이쁘다는 것. 그것을 제외하면 4명에게 뭔가 특기할만한 사항은 없다. 제복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무채색의 롱스커트 패션을 한 아이들은 저마다의 위치로 향해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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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명은, ‘신기루’입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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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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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을 끼얹는 듯한 차가운 말투에, 그녀는 뭔가 빈정이 상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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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밴드들은 무대 위에 올라와서 말이라도 한두마디 하고 웃음이라도 짓고 시작을 했지만, 이 애들은 아니었다. 다른 관객들도 그녀와 마찬가지 심정인 듯 웅성임이 이어지긴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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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위기가 오래 가진 않았다. 무대를 지켜보고 있는 밴드들의 긴장감을 관객들도 알 수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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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의 포문을 연 것은 키보드 소리였다. 느긋하게 늘어지듯 자락을 끌며 흘러가는 소리. 그 위에 얹어지는 것은 뭉툭하고 낮지만 그렇기에 달콤한 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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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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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 평범하게 울려퍼지는 기타의 소리. 그녀는 그래도 뭔가 다른가? 싶으면서도 어떤 점이 다른지를 명확하게 찾아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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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밖의 세상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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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러지는 어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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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막히 읇조리는 목소리는 악기 소리와 비슷한 음량이다. 아니, 오히려 기타의 소리가 목소리를 묻어버리는 듯도 하다. 이때까지 공연했던 밴드들과는 정 반대의 분위기에 이질감을 느끼는 관객들. 벌써부터 투표 버튼을 눌러버리는 관객들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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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뒤에 반전이 있을 수도 있는데 벌써부터 누르는 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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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의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은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다 듣고 투표를 해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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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너머의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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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곳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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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그녀도 ‘이거 진짜 뒤에 뭔가 있긴 한 건가? 그냥 힙스터병 걸린 밴드 아닌가?’ 라고 의심하기 시작할 때쯤… 관객들의 미몽을 깨우듯 일순간 맹렬하게 울리는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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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순식간에 잦아든다. 마치 그런 일은 없었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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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기타가 아닐지도 몰랐다. 그렇게 격렬하게 울린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오른 밴드들에게는 별 움직임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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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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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흘러가는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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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간의 소요를 뒤로 하고 심장박동처럼 조금씩 울리기 시작하는 드럼. 뭉툭한 소리는 스피커에서 나와 지면을 타고 흐르는 듯. 찰박찰박하게 흘러내린 드럼은 어느 새 발 밑까지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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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시작된 기타 연주에 그녀는 그제서야 ‘기타가 운다’ 라는 문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덕질 대상인 2MAJOR의 한승윤이 가끔 인스타 라방에서 “기타 잘 치고 싶다. 기타를 울게 만들고 싶다.” 며 푸념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최애’를 위로해주면서도, 기타라는 거 그냥 치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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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라는 것은 저런 것을 말하는 것이었구나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승윤이 정말 저런 걸 하고 싶은 것이라면 기타를 쳐도 한참은 더 쳐야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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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새 단순한 리프를 반복하면서도, 조금씩 음정을 높이며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시작한 베이스와 피아노, 드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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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에 올라간 기타는… 아직도 울고 있다. 아니, 이제는 울음이라기보다는 울부짖음에 가까운 굉음. 흉포한 연주는 산마루에서 닥쳐오는 눈사태와도 같이 관객을 휩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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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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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오늘 두번째로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의미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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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것은 부정이었으나 지금은 혼란이다. 더이상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지 않은 기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아이의 손 끝에서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공산품이 내뱉어지듯, 규칙적인 또는 불규칙적인 사운드가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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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스피커를 통해 나온 그 사운드는, 퍼져 나가 공간을 장악한다. 지배하고 굴복시킨다. 소리와 분노로 가득찬 공연장은 단 한 대의 기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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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순간에도 종말은 오기 마련이다. 컴퓨터 전원을 뽑아버리듯 뚝 끊긴 연주. ‘음악’이라기보다는 ‘소리 뭉치’에 가깝던 것이 사라진 이후 남은 것은 정적을 맞이한 황량한 무대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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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속에서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친다. 하나는 둘이 되고 둘은 여덟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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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걸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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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너를 좇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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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움직임이 미처 다 확산되기 전에 다시 울리는 기타. 뻘쭘하게 서 있다 머쓱하게 앉는 참가밴드들을 뒤로 하고, 기타리스트는 그렇게 읇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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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무대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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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잠시 멍하니 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만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인가 싶어서. 다행히도 그녀의 동지들은 꽤나 많았고, 다들 투표기에 몇 점을 입력해야 하는지 망설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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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또한 마찬가지였으나, 아무튼 점수를 입력했다. 이것이 과연 맞는 점수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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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들의 투표가 끝나고, 멘토들이 선택을 진행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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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 잘 들었습니다. 형식을 파괴했다고 해야 하나, 여러모로 굉장한 곡이었는데요. 어떤 곡이었을지 설명이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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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 중 누군가의 질문에 수연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말을 고르는 듯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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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이상향이잖아요. 이상향이라는 것은 이상적인 연주라고도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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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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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연주가 무엇일까? 고민을 여러가지 하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블루스나 재즈처럼, 틀을 정해놓지 않은 어떤 무작위의 즉흥연주야말로 이상적인 것이 아닐까? 가는 길이 곧 음악이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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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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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멘토의 표정. 그녀 또한 비슷한 심정이었다. 저게 무슨 소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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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즉흥으로 쳤습니다. 따로 정해놓은 것 없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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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그럼 밴드 전부가 그렇게 쳤다는 거에요? 그냥 이 무대 위에서 잼(JAM)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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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수연의 말에, 멘토 중 누군가가 못 참고 끼어들었다. 그 질문에 엷게 웃으면서 대답하는 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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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그건 아니고. 기타는 전부 따로 정해놓은 것 없이 쳤구요. 키보드, 드럼, 베이스는 어떤 타이밍에 어떤 식으로 연주해야 한다, 그 정도만 정하고. 리듬이라던지 뭐 전반적인 부분에서. 예를 들어서 아까 연주를 끊은 부분도 그렇고, 그런 건 좀 정해놓고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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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 세트장. 관객석의 누군가가 “말이 돼?” 라고 중얼거린 것 조차 크게 들릴 정도. 그녀 또한 동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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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연주를 즉흥으로 친다고? 그게 말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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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소개를 들어 보니까 기타 친지 이제 갓 1년 정도 되었다던데. 저게 1년이면, 왜 한승윤은 아직도 뚝딱거리고 있는가? 아까도 영 이상하게 연주하더니. 보컬만 좋아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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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굉장한 연주 잘 들었습니다. 그럼 혹시 멘토분들 픽 다 하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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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대로라면 질문이 더 나와야 할 타이밍. 하지만 정적이 찾아든 촬영장의 분위기 때문인지, MC가 치고 들어왔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멘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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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선 관객 분들이 매기신 점수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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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듣기로, 관객 점수는 100점 만점이며 평균을 매기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당장의 라운드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지만, 다음 라운드 때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점수를 높게 받아놓는 게 중요하므로… 대충 투표하지는 말아달라던 제작진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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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점수는…! 62… 점? 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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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발표된 관객 점수에 그녀는 눈을 의심했다. 62점? 제대로 받은 게 맞나. MC도 당황한 기색으로 살짝 말을 더듬고, 밴드들의 자리에서도 “왜 저렇게 낮아?” 라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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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점… 현재로써는 3번째로 낮은 관객 점수입니다. 그렇다면, 멘토의 픽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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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색을 가다듬고 쾌활하게 외치는 MC. 그 소리와 함께 멘토들이 팻말을 들어 올린다. 올려진 팻말은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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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up Sound를 픽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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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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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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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도 픽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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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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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점수와는 완전 반대의 상황. 하지만 멘토들은 이를 예상이라도 한 듯 평온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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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tica의 4픽에 이은 Group Sound의 5픽! 이렇게 되면, 오히려 Group Sound를 픽하지 않은 팀에게 이유를 묻고 싶어지는데요. 혹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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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일단 연주를 못 했다거나, 곡이 안 좋았다 그런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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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의 질문에 입을 떼기 시작한 멘토 ‘수락’. 그는 살짝 당황한 기색으로 뒷목을 주무르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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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에 관객분들이 62점 주셨잖아요. 그런데 멘토들은 5픽을 했고. 저는 이게 어쩌면 상징적인 장면이라고도 보이거든요. 약간 괴리가 있다, 뭐 그런 느낌. 일단 방금 그 연주에서는 대중성? 이 안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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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룹 사운드는 돈을 못 벌 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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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런 말이 아니고요. 왜 다 알면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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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들어온 깐족거림에 급히 손사래를 친 ‘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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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게 상당히 중요한 오디션이고 무대인데도 불구하고, 패자부활전이 있다 해도 즉흥적인 연주를 가져와서 한다? 이거는 어, 에고가 굉장히 강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거죠. 저희들은 저 팀을 다룰 자신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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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잘 들었습니다. 꽤나 일리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나머지 멘토분들께서는 Group Sound를 픽을 해 주셨죠… 그럼 이제 멘토들의 시간입니다! 왜 Group Sound가 자신들을 픽해야 하는가! 그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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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의 호기로운 외침과 함께, 멘토들이 차례대로 자신들을 픽해달라고 어필하기 시작한다.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촬영 현장의 분위기에, 그녀는 은근슬쩍 카메라를 꺼내 한승윤과 2MAJOR 밴드들의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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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봐도 잘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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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은 관객석에서 백통을 꺼내든 탓에 눈치를 주는 관객이 있었지만, 그녀는 딱히 신경쓰지 않고 사진을 몇장 더 찍었다. 오늘 여기 온 건 사실상 이 짓 하러 온 건데 남의 눈치를 봐서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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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몇장을 더 찍은 후, 카메라를 집어넣을까 하다가… 무대에서 멘토들을 응시하고 있는 ‘하수연’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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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통으로 줌을 확 댕겼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본진인 2MAJOR에 꿀리지 않는 피부와 외모. 단아해보이는 얼굴은, 심드렁한 눈과 맞물려 약간 차가운 인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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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냥 온 김에 사진 찍는 거야. 혹시 데이터를 팔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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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에게 그렇게 되뇌이며 Group Sound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댔다. 왠지 모르게 한승윤과 2MAJOR보다 더 많이 찍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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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점이 말이 돼? 이건 음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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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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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아포가토를 한입 떠 먹었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입안에 퍼져나가며, 지친 심신에 활기를 주었다. 메인 멜로디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즉흥으로 연주하는 일. 기타를 상당히 오래 쳐온 그에게도 상당히 지난한 일이었으며, 또한 난생 처음 해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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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절대 안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명전은 다시 한입 더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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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뭐 커피 시켜놓고 아이스크림만 먹냐. 그럴거면 그냥 아이스크림 시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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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최씨, 남의 식습관에 참견 마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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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는거야… 하며 중얼거리는 이서. 그리고 잠시 찾아든 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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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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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적을 깬 것은 현아의 목소리였다. 듣기만 해도 앞으로의 일에 염려가 가득해보이는 느낌. 명전은 아이스크림을 한입 더 먹다가, 고개를 젖혀 천장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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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괜찮아도 어쩔 수 없지. 일이 벌어졌는데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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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을 받은 것은 좋았다. 5픽이나 들어왔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압도적인 무대를 보여주어 밴드들이 그들에게 덤비지 못하게끔 하려던 것도 의도대로 된 것 같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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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중성을 잡지 못한 탓에 받아버린 관객점수 62점. 30개 밴드 중 28위, 픽을 받은 밴드 중에서는 압도적인 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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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션이 나올 줄 알았으면 그런 식으로 안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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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점수는 2라운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과연 옳은 말이었다. 그 관객 점수로 인해 받은 그들의 2라운드 미션 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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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병맛 뮤비’와 ‘중독되는 가사’로 유명한 노래 [비비드 오렌지]의 JUMPING! 이었기 때문이다. 일명 ‘엔진 춤’으로 유명한, 노래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뮤비에서 춤 추는 게 웃겨서 뜬… 거의 십년은 더 된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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