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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디 록의 발전사를 다 읊으려고 한다면 길고 긴 5700자로도 불가능하다. 태초에 미8군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한국의 락이 태동하기 시작하였으며… 인디 락의 본격적인 시작은 홍대를 기반으로 했던 라이브클럽 ‘드럭’을 위시한 펑크 락과 PC통신을 기반으로 해서 결성한 모던 락… 어쩌고 저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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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적기에는 지나치게 장광설이 될 것이고, 말 한마디 보탤 역사의 산증인들 또한 남아있어 ‘이 말이 곧 진리요 정전(正典)이니라’ 라고 말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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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디 락도 결국 락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락 리스너들은, 매일같이 ‘나는 틀니 음악들은 듣지 않는다’며 ‘Too Mainstream’한 음악에 대한 거부감을 말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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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결국 락을 즐기는 사람이다. 즉, ‘근본’을 맞이했을 땐… 호응을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운명에 처해있는 인간들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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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는 음이 되지 못한 소리를 내밀었다. 시험삼아 울린 게 분명한 소리와 함께, 낮게 울던 드럼이 잦아든다. 그리고 공연장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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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음악이 나올지 궁금해하던 관객들이 슬슬 ‘실수인가?’ 라고 생각하던 바로 그 때, 수연이 기타를 다시 튕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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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토닉 스케일 기반의 셔플리듬이 분명한, 바로 그런 사운드. ‘걸즈 밴드’나 ‘여고생 밴드’에 어울리지 않는 그런 블루스풍의 사운드가 공연장의 스피커를 통해서 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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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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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락 꽤나 들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점점 기억 속을 뒤지기 시작할 때쯤에… 수연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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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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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이 차마 되지 못한 마지막 마디가 관계자석을 살짝 맴돌다 사라진다. 다음 날 19시 공연을 책임질, ‘뮤직임마서울’의 김태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지른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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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아 왜 그러냐? 앉아라. 안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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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병을 기울이며 철연은 무심하게 말했다. 그 말에 자신의 반응이 과하다는 것을 자즉했는지, 불콰한 얼굴로 자리에 앉는 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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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태종이 살짝 과한 반응을 보였을 뿐, 관계자석에 앉아 있는 2일차 밴드들과 공연이 끝난 1일차 밴드들의 반응은 태종과 강도만 다를 뿐 비슷했다. 저게 뭔지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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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밖에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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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연은 내심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도 파라독스의 강성민에게 라이브클럽 공연 영상을 받아보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못했을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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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가 믿겠는가. 고등학교 2학년 밖에 되지 않은 여고생이 저런 연주가 가능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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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자석에서 누가 경악을 하건 간에 연주는 계속 이어진다. 느긋한 템포는 관객들이 조금씩 몸을 들썩일 수 있게 하고, 기타를 연주하는 수연의 리듬을 타는 몸짓은 그러한 용기를 더 북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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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뭐야?”, “뭔진 모르는데 신나는데.”, “씹근본!!”, “와 진짜 뭐임?” 등의 말소리가 오가는 가운데, 아까 들려왔던 것 같은 술 취한 목소리가 우렁차게 “Crossroads!!” 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 말에 미소를 띠며 연주를 계속하는 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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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커버곡이긴 하나, 정통 블루스였던 Robert Johnson의 [Cross Road Blues]나 Eric Clapton의 [Crossroads]와는 살짝 다르다. 템포는 확연하게 낮춰졌으며, 좀 더 댄서블하게 변한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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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작된 1차 기타 솔로는 관객석과 관계자석에 충격을 주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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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느긋하게, 하지만 청자의 귀에 확실하게 꽂혀들어가는 소리. 0점 맞기가 100점 맞기보다 어렵다는 말처럼, 어느 것 하나 정확한 것이 없는 리듬과 음정은… 역설적으로 연주자의 정확도를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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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지금의 기타연주가 진정으로 살아있는 연주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아무런 의도 없이 곡을 ‘재생’ 하기 위해서 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곡을 ‘연주’ 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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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가 끝나자마자 다시 시작된 보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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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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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무슨 노래인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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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 그냥 개쩐다는 거만 알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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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 듣는다는 애가 이 곡도 모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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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때와 다르게, 사람들의 움직임이 확연하게 늘어나고 있었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만큼, 관객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도 넓어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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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분 전 아무런 움직임 없이 차갑게 공연장을 바라보고 있던 관객들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에 와서는 마치 인간이 밥 주기를 기다리는 잉어들처럼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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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음, 다시 한번 연주되는 기타 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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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주에 태종은 다시 한번 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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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울리기 시작하는 블루지한 기타 톤. 왼손과 오른손의 움직임에는 화려함이란 없고 단지 의도에 따른 정확함만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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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울려대는 소리는 다르다. 수연의 손 아래에서, 소리는 천변만화하는 어택과 디케이, 서스테인과 릴리즈를 보여주고 있다. 어디 하나 의도치 않게 나는 소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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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어처구니 없는 연주에 관객들마저 움직임을 멈추고, 입을 살짝 벌린 채 무대를 보고 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시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에게서…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을 겪고 있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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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말이나 되냐? 이거 사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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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은 나름대로 나이를 먹은 사람이고, 블루스와 블루스 락에 상당히 오랜 세월을 바친 사람이다. 외국이라면 모르겠으나 국내에서는 블루스로 본인을 능가할만한 사람이 몇 없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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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저 아이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진정으로 뛰어난 재능은 세월마저도 뛰어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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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가운데, 거의 4분 가량 지속된 솔로가 끝나간다. 철연은 그 연주에서, 이것이 계획한 것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솔로라는 것을 깨닫고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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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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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타임의 밴드를 아예 죽여버릴 셈인가. 도대체 얼마나 진심인 건가. 철연은 몇분 전 관계자석에 슬쩍 올라온, 다음 타임 밴드인 [윤현준밴드]의 윤현준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피가 완전 다 빠져나가 새파래진 기색의 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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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준아. 너 지금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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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네? 어, 으, 어… 네, 아 네. 네. 어, 빨리 내려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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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우당탕 내려가버리는 현준. 철연은 관계자석 좀 더 뒤쪽을 바라보았다. 맥주를 홀짝이고 있던 나머지 1일차 밴드 아이들은 다 내려간지 오래. 1일차 헤드라이너인 [메르키쉬드]의 조우현만이 밴드 구성원들과 머리를 긁적이며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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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야. 너는 안 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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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지금 내려가봐야 소용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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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더니, 밴드 구성원들을 내버려두고 철연의 테이블에 털썩 앉는 우현. 공연은 솔로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은 상태로 바로 다음 곡을 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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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rnstund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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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곡과 다르게, 열화와 같은 환호성을 보내는 관객들. 아까 전과는 훨씬 느린 템포와 우울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던 원곡과는 다르게, 블루스풍으로 편곡된 Sternstunde가 밴드의 손끝에서 연주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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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쟤들 아셨어요? 저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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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당연히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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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철연은, ‘사실 이 정도일줄은 몰랐지만’ 이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숨겼다. 선배의 위상을 깎아먹는 이야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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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들이 밴드 파이오니어 나왔을 때부터 알았어. 와 이거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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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근데 TOP 8에는 없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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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있어서 그래. 나중에 술자리에서 이야기 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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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치부에 가까운 이야기가 드러날까봐 살짝 찔린 철연은, 이야기를 바로 마무리해버리고는 무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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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의 어느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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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얀 새를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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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리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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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가득한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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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의 장기인 기타는, 이번 곡에서는 단지 스트로크만 울릴 뿐이다. 하지만 블루지한 음색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는 그 공허감을 막으며 관객을 통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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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전까지만 해도 관객석에 퍼져 있던 댄서블한 분위기는 이미 없다. 사람들은 셔플 리듬과 남아있는 여운에 따라 관성으로 몸을 움직이면서도, 곡의 분위기를 받아들여 절제된 동작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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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큰일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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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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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의 중얼거림에, 철연은 의문을 표했다. 뭐가 큰일났다는 걸까? 하지만 우현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위스키를 한잔 쭉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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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좀 있다가 공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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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억. 아니 몇시간 뒤니까 뭐… 아무튼 저런 애들이 나와버렸으니. 한동안 인디이나 락씬도 시끌시끌해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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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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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의 탄생은, 긍정적인 일로만 가득한 것이 아니다. 유입되는 사람들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 누군가는(아마 파라독스 사장이겠지) 떼돈을 벌겠지만, 누군가는 수입이 줄어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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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의 차이에 음악을 접고 악플러로 전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떻게든 따라잡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영향을 받아 블루스를 시작한다거나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방향이 어찌되었든, 아무튼 뭔가 떠들썩해질 것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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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뭔가 ‘얘들이다!’ 라고 말할만한 그런 애들이 없긴 했지. 자랑은 아닌데, 우리 이후로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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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형네만한 밴드는 좀 많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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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연은 우현을 살짝 째려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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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이 얼마나 빨리 커질지 모르겠어. 다만 확실한 건, 몇년 안 걸릴 것 같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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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찾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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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거리의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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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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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리 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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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의 보컬이 나지막하게 울리며, 스트로크만 치던 기타가 다시 울부짖기 시작했다. 마지막의 트럼펫 솔로를 대체하는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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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의 움직임 없이, 눈을 감은 채로. 고개는 살짝 떨군 채 침묵하며 바삐 움직이는 손과 다르게, 음은 아까보다도 더 격렬하게 울어댄다. 파도가 치는 북해, 험난한 여정 속에서도… 저 멀리 보이는 등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 희망 한 가닥이 섞인 멜로디가 격렬한 아밍과 함께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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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난 그 날의 내 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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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파도와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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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나를 조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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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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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을 장식하는 [그 거리를 뛰어넘어]. 이서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는 관객들. 전혀 모르는 노래였음에도 불구하고 1절만에 후렴구를 외워버린 관객들을 보면, 그 집중도를 알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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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구요!! 다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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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난 그 날의 내 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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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가수라도 된 것 마냥, 계속해서 다시! 를 외치며 신나하는 이서. 수연의 박수를 따라 치며, 노래를 따라 불러주는 행복한 표정의 관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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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보며 아윤은 살짝 빈정이 상했다. 이렇게 잘들 놀 것이면서 도대체 아까는 왜 그랬는가? 아까 이 공연은 볼 필요 없다면서 자리를 떠난 녀석들은 왜 대부분 돌아왔는가? 계속 다른 데 처박혀서 자리 차지 하지 말고 놀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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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지. 우리 애들이 잘하는 탓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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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오늘 공연 미쳤다. 원래 얘들 이러나? 파라독스에 못 가봤는데. 너 그거 무조건 예매해. 진짜 못하면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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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다고 좀… 아까부터 왜 자꾸 그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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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와중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윤은 고개를 돌렸다. 아까 마주친 듯한 남녀 둘. 파라독스를 꼭 가봐야겠다는 이야기에, 아윤은 본능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빨리 예매를 해 놔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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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윤은 핸드폰을 다시 내렸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기타를 치고 있는 수연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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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예매 아무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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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즐기는 것이 훨씬 중요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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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의 나날들]에서도 이 애들이 말했듯이, 추억이란 결국 잿빛으로 변하는 것. 낡은 사진첩에 고이 모셔두는 것보다는 빛나고 있는 현재가 훨씬 중요한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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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윤은 가만히 공연을 바라보다가, 충동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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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의 미소가, 무대를 배경으로 싱그럽게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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