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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공개. 최초에는 신선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무난한 홍보 전략으로 꼽히고 있는 방법이다. 앨범의 기대감을 높임과 동시에, 미리 화제를 끌어오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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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명전이 선공개를 고려하지 않았던 이유는… 앨범을 그냥 한번에 공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선공개를 하게 되면 “맛보기로 보여드릴게요.” 같은 느낌으로 김을 빼는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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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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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명전은 그렇게 생각했고, 그 때문에 선공개에 대해 무의식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는데, 굳이 그런 태도를 고수해야 할까. 그렇게까지 지켜야 할 정도로 대단한 신념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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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제 슬 녹음을 들어가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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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수록곡은 5개. (가칭) 잿빛의 나날들. (가칭) Sternstunde. 현재 초안만 잡아놓은 곡 하나와, 아직 구상하지 않은 2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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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를 다 완성한 다음 연습을 들어가는 게 좋을지도 몰랐다. 연습한 곡이 EP에 들어간다고 확신할 수도 없는 것이고, 아무래도 상 차려지기도 전에 밥 먹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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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4인 전부 학생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지금부터 연습을 시작하지 않으면, 생각해놓은 스케줄에 맞추지 못할지도 몰랐다. 첫 번째 곡은 그렇다고 쳐도, 두 번째 곡은 서하를 혹사하는 곡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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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한테 물어보고 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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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곡의 녹음을 시작하고, 그 김에 아이들에게 의견도 조회해보고. 별 의견 없으면 선공개를 통해서 화제를 이어가는 쪽으로 가야겠다고… 명전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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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도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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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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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공개 여부에 대해 결정하고 나서, 회의를 마칠까 했더니… 현아에게서 날아온 한마디. 그 말에 명전의 표정은 신기하다는 쪽으로 변했다. 평소에 의견을 잘 제기하지 않는 현아가 저렇게 말하고 드는 게 좀 색달랐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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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공개를 한 다음 단계. 어떤 식으로 EP를 알리냐를 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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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확실히 그렇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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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의 말을 듣고 명전은 고개를 끄덕였다. 1곡을 선공개로 푸냐 마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EP와 밴드의 흥행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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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사람들의 관심이 몰린 상태에서 선공개 하나만 하고… 그 다음 EP를 발매하는 걸로 끝내면 좀 아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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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느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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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공개만 듣고 이제 아~ 이게 그 노래구나. 하고 끝나버리는? 그런 느낌. 화제를 이어나가지를 못한다는 거지. 선공개와 EP 사이가 비어버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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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서하의 의견을 듣고, 명전은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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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있는 의견이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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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 또한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붕 떠버리니까. 그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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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는 무리다. 전곡이 완성되려면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아무리 ‘하수연’이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한 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건 불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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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공개할 수 있는 건 2곡. 하지만 연습도 해야 하고, 녹음도 떠야 하니까… 그런 걸 고려하면, 근 시일 내에 릴리즈를 할 수 있는 곡은 [잿빛의 나날들] 1곡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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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명전은 아이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평소대로라면 자신이 결정을 내렸겠지만. 이전부터 고민해봐도, 딱히 떠오르는 방안이 없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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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홍보를 한다고 하면, 곡 릴리즈가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 홍보를 해야 하는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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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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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찾아온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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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랬던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만 명전은 그 이야기를 인정할 수 없었다. 해결방법을 모르고 문제만 파악해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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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이번에 예기치 않은 바이럴이 터진 것도 엄청난 운에 가까웠다. 다시 그런 걸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 이번에는 운이 좋았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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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찍는 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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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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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로그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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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의 말에 명전은 머리를 살짝 꼬았다. 가만 보면, 이서는 이전부터 묘하게 브이로그라던지 그런 것에 집착하는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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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로그만 찍어서 될 일은 아닐 것 같은데. 우리 일상을 보여준다고 해서 뭔가 되는 일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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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틱한 기타 연주자의 실체는 여고생? 미소녀 밴드의 일상을 알아보자!! 같은 제목 걸고 화장하고 막 쇼핑하고 인생네컷 찍고… 그런 거 보여주면 어떻게 안 되나? 얼굴 이쁜 거 보여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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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그럼 니 얼굴 보여줘라. 왜 자꾸 내 얼굴을 팔아먹으려고 하니? 너도 어디 뭐 문제있는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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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럴까? 으흫흫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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띨하게 웃고 있는 이서를 보면서, 명전은 한숨을 쉬었다. 음악을 잘 할 생각을 해야지 자꾸 이상한 거 하려고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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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이 화장하는 거 찍으면 확실히 조회수는 나올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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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까지 그러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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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 한마디를 넣는 서하. 명전은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던져진 마구잡이식 제안. 온라인 콘서트는 어떠냐, 팬싸인회는 어떠냐, 챌린지는 어떠냐, 틱톡 바이럴은 어떠냐, 아무튼 아무거나 찍어보는 건 어떠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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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쓸모있는 이야기를 해 봐. 이상한 이야기만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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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쓸모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홍보업계에 취직을 했지 밴드는 안 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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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일리가 있는 이야기군. 명전은 머리를 살짝 꼬고는, 헛소리들을 흘려넘기며 골똘히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별 방법 없을 것 같은데, 그냥 초심으로 돌아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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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방법 있다. 좋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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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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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님한테 부탁하는 거야. 홍보해달라고. 좋지 않나? 인스타 같은 데 한번 올리면 효과 엄청 좋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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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방법이라는 이서의 말. 그러나 명전의 미간은 심각하게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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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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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그 사람이랑 얽히고 싶지 않다. 자꾸 카톡 보낸단 말이야. 귀찮아 죽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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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사소한, 공연 잘 마쳤다느니 뭐니 선물 주고 싶다느니 곡 구매가 가능하냐느니 하는 식으로 왔던 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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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인맥도 만들 겸, 최대한 친절하고 상냥하게(이 부분에서 명전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노력했다) 대응을 해 줬더니… 이제는 업무 외적인 부분으로도 자꾸 연락이 오고 있었다. 뭘 먹었냐, 기타 배워보고 싶은데 뭘 사야되냐, 어떻게 왼손 운지를 잡아야 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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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그 뭐야. 이번에 그 사람, 어? 류진? 진우? 아무튼 그 양반도 지금 자꾸 카톡 보내서 돌아버릴 것 같은데. 이번에 빌미 만들고 그러면 진짜… 아무튼 힘들다고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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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현님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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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의 이야기에 왠지 기분이 나빠진 것 같은 이서를 둔 채로, 서하가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돈에, 인맥에. 성격도 착실하고. 남녀관계 더러운 소문도 없고. 유명하고. 기타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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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분 나쁜 소리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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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게 왜 기분이 나빠? 연애 이야기 하는 게 뭐가 문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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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악이랑 결혼해서 다른 곳에 신경쓸 겨를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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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헛소리로 헛소리를 일축하고는, 탁자를 내려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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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정공법으로 가자. 일단 공연부터 보여주는 거야. 다른 건 나중에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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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고 브이로그고 틱톡이고 뭐고 전부 다음의 일. 릴리즈와 쇼케이스부터 하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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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독스에서 할 수도 있지만, 우리를 보러 오는 사람밖에 없을 테니 좀 그렇고. 홍대 야외공연장을 임대해서 버스킹 형식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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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공개 릴리즈와 함께 버스킹을 하면서, 커버곡으로 어그로 끌고 신곡을 선보인다. 다인 3인방 데려와서 바람잡이 하고, 팬들에게도 야외공연 하니 보러오라는 식으로 유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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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 말마따나 외모도 활용한다. 도저히 입기 싫지만 그 날은 좀 짧은 치마도 입고, 화장도 하고. 그럼 외모에 끌린 사람들도 오겠지. 관계자 아닌 척 사진도 찍고 하면 화제가 돼서 홍보가 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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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을 두고, 명전은 어떻게 하면 이 방안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뭔가 좋은 방법 없을까… 아. 하나 있긴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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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조금 간 다음,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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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교수님. 저 수연입니다. 잘 지내시죠? 그 부탁을 하나 드리려고 하는데요. 친구분 있으시죠? 김수렬 평론가님 아시죠? 뭐 좀 부탁드리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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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렬은 음악 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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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업계에서 원로 대우를 받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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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우들에게 “이제는 좀 쉬어도 안 되냐?” 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아직도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코어 음악 팬들에게는, “그래도 김수렬픽이면 믿고 들을만하다” 라는 이야기를 듣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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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요 무대는 밴드 웹진이다. 매 주마다 새로 발매된 밴드들의 음원들을 정리하고, 짤막하게 한줄평을 하고, 일부는 장문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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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평의 이름은 ‘주목할만한 음악’. 김수렬의 추천 마크를 단 음악들은, “우리 음악 수렬픽 달았어요!” 라고 마구마구 자랑을 하거나, 보도자료를 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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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그는 바쁜 사람이었다. 매일매일 새 노래를 듣고. 라디오에 나가서 평론도 하고. 밴드 공연 체크도 하고.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서 음반사 사람들과는 식사도 하지 않는다. 음악계에서 교류하는 사람들이라곤, 어린 시절 만났던 몇몇 사람들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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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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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렬은 마스크를 한 채로, 홍대 어딘가의 야외공연장 근처로 다가섰다. 마침 준비를 하는 모양인지, 이리저리 오가는 여고생 4명과 떠들썩하게 모여 있는 관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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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늘 화제의 밴드 ‘Group Sound’의 취재를 왔다. 친구 채호근 교수에게서, “그 친구들이 라이브를 한다던데. 자네도 들어본 적 있나? 그 애들?” 이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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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공정하게 심사를 하려고 노력하는 수렬이었지만, 다만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지켜오는 그만의 규칙이 있다면… [라이브를 잘 하면 가산점을 더 준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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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여고생 4명. 완전 생초짜 베이스. 클래식 지향인 것 같은 키보드. 인디 유망주였던 드럼. 그리고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잘 치는 기타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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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밴드 구성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무슨 근본없는 바이럴인가 싶었다. 그렇기에 친구 앞에서 “이제는 바이럴 아닌 척 하고 연습생들 내보내서 밴드 활동 시키는 거냐?” 라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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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들리는 소문들은, 그의 생각과는 반대. 학교 축제와 애니메이션 커버를 거쳐 파라독스에 정착한 후, 달에 1~2번 정도 공연을 선보이고 있으며. 정부지원사업인 ‘밴드 파이오니어’에 참가해서 8강에 진출하였고, 최근에는 주현의 콘서트에 세션 밴드로 참가하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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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행보를 보면, 착실하게 성장의 계단을 밟아가고 있는… 요 근래 가장 촉망받는 인디밴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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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소문대로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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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밴드를 다루는 독립 레이블로 유명한(최근에 누군가한테 팔렸다는 소문이 있었다) [레이블 에코사운드]에서 최근 릴리즈된 선공개곡, [잿빛의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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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 자체는 상당히 좋았지만, 일단 라이브를 들어보고 평가하기로 했다. 곡을 잘 만들어놓고 라이브를 이상하게 하는 밴드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밴드도 그 중 하나일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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