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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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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노트북을 앞에 둔 채, 명전은 이서의 말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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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시절의 추억. 난로에 도시락을 데워 먹던 어린 시절. 그 시절의 명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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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아니면 안 된다 같은 생각을 하긴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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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머리가 커지고 나서도 기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 때는 그게 더 심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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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아. 나는 비틀즈가 되거나, 혹은 절벽에서 몸을 던지거나 둘 중에 하나만 하겠다.”라고 말했던 것 같은 기억도 있다. “씨벌 그게 뭔 소리여” 라고 홍일이가 대답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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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당시에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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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실패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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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일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은채로, 그저 ‘나는 기타로 성공하겠어!’라고 외칠 수 있었던 계기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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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명전은 옛날에 보았던 고시엔 경기 하나를 떠올렸다. 두 투수 다 결승전에서 15회 완투를 하고, 다음날 또 9회까지 완투를 했던가. 대회 내내 950개의 공을 던지고, 결승전에서는 이틀 간격으로 24이닝을 던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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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지탱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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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은 아프지 않았을까? 여기서 이렇게 자신을 혹사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미래에 대한 걱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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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명전은 얼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아무 생각 없이 투자자 앞에서 말을 내뱉고. 뒷 일이 어떻게 되는지는 생각하지 않은 채, 현재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했던 그 사람. 십대와는 살짝 거리가 멀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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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왜 그렇게 행동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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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일이 두렵지 않았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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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쳐오지 않은 미래보다 맞닥뜨린 현재가 더 중요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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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올린 생각 중 하나는 중립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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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긍정적이고, 하나는 부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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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점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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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자신을 내맡겼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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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보다는 감정으로 행동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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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삶의 방식을 좋다고 나쁘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다른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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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명전은, 그 찬란함에 대해서 노래할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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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내팽겨친 채로, 단지 던지고 싶고,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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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신을 불태워버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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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이 지나간 후, 숲이 다시금 살아날지… 폐허가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불꽃 자체는 아름다운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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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잠시 생각한 후 그러지 않기로 했다. 불꽃은 찬란하다. 찬란하고 찬란하지만, 동시에 덧없지 않은가. 한번의 불꽃을 위해서 인생을 불태우다니. 그 불꽃이 그만큼 가치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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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신 그 다음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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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가 휩쓸고 난 다음의 숲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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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버린 재가 양분이 되어, 새로운 싹을 피울지도 모르고… 혹은 그대로 죽어버린 숲이 될지도 모르지만. 누군가는 그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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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전부 내던질 필요는 없다는 것을. 순간의 감정에 모든 것을 내맡길 필요는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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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던진 자의 슬픔에 대해서 노래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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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다시금 키보드를 잡았다. 느린 템포의 단조 곡인 것은 이전 곡과 같다. 구성도 동일하다. 드럼, 키보드, 기타, 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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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박자는 살짝 위태위태한 5분의 4박. 멀리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를 반복적으로 넣는다. 불안감과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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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의 비중은 어떻게 둘까. 명전 자신이 기타를 잘 다루니, 이번 곡에서도 기타를 메인으로 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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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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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는 정말 최소한으로만 둔다. 중간중간에 들어가는 사운드로만. 그리고 스트링을 조금 넣는다. 살짝 장송곡의 느낌이 나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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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는 뭐,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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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안되면 이 곡은 라이브 안 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키보드는… 스트링과 같이 곡을 따라오게끔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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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드럼과 베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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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드럼에는 5분의 4박으로 모자라, 끊임없는 변박을 준다. 서하가 연주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고생을 좀 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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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베이스는 튀지 않는 리프로, 화려함 없이. 오로지 리프에 기반한 연주만. 단조로운 기반 위에서 드럼이 춤출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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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장송곡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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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놓고 나니 너무 처지는 느낌이다. 드럼이 춤추고, 베이스도 살아있긴 하지만… 보컬 라인이 들어간다고 해도 처진 것을 살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애초에 그 정도로 부를 생각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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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의 전체적인 그림을 다시 한번 조망해본다. 춤추는 드럼 아래서, 연주되는 단조로운 베이스. 간혹 가다 스트로크만 연주하는 기타. 그리고 불안하게 들려오는 사이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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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배경. 화마에 휩싸여 불타버린 피안을 묘사하기 위한 파도 소리를 넣어본다. 희미한 철썩임과 대해에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뱃고동 소리도 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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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곡이 시작할 때, 키보드 트레몰로를 넣어본다. 떨려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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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작업은 이걸로 된 걸까. 그렇다면 다음은 어떻게 할까. 곡에서 지속적으로 느껴지는 회한을 내버려 둘 것인가, 해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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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음악적 취향은,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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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가면 너무 암울한 곡이 되어버리겠지. 듣는 재미도 없고.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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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팔짱을 끼고 DAW를 쳐다보았다. 기타를 넣는 것이 무난하고 자신도 있다. 하지만 너무 무난한 선택이고, 재미도 없다. 기타는 최소로 넣고, 이 곡에서 자신의 역할은 보컬로 한정하고 싶은 것이 명전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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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이라이트를 줘야 된단 말이지… 그렇게 고민하던 명전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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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악기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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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 스케일의 트럼펫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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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사람이 회한을 극복해낼 수 있도록. 슬픔을 승화시키는 블루스처럼, 결국 불탄 숲에도 비가 내리면 새싹이 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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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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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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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너무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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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세션을 위해서 오랜만에 만난 수연. 그런 수연이 들려준 노래를 듣고, 채호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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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 학생이 몇살이라고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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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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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근데 고등학생 2학년이 이런 곡을 만들면… 나 같은 늙은이는 무슨 곡을 만들란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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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이 들려준 이야기에 의하면, 이 곡은 젊은 사람들이 순간의 감정에 모든 것을 맡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쓴 곡이라고 했다. 과연 그것이 곡으로 가능한지는 둘째치고, 일단 발상부터가 좀 남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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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나이 때는 모든 것을 불사르겠다, 그런 곡을 쓰지 않나? 사랑에 인생을 바치겠다. 노래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 그런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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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전체로 보면 너무나도 사소한 일들. 하지만 그것을 너무나도 중대하게 여기고, 그를 위해 모든 것을 걸겠다고 하는. ‘하수연’은 분명 그런 연령대였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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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써 온 곡은 왜 이렇게 동년배같은 느낌인지. 나이를 먹어도 몇배는 더 먹은 것 같은 아이지만, 실상은 여고생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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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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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 정도 맞아요. 겸손해 하지 말고 평가를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내가 이렇게 후학을 칭찬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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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뭐 하세요? 무슨 문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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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 끼어들어온 드럼 세션. 호근은 양해를 구하고 그에게도 노래를 들려주었다. 드럼이 감탄하는 사이 하나둘씩 모여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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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수연 학생이 만든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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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 나이때 뭐 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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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천재다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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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지 1년밖에 안 됐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게 진짜 재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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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세션들의 반응에 살짝 얼굴이 빨개지는 수연. 호근은 박수를 쳐 주의를 환기하고는, 세션들을 자리로 다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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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식으로 발매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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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로 생각하고 있긴 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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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이 끝난 후, 다과상이 어느새 준비된 스튜디오 밖에서 호근은 커피를 들어올리며 물었다. 그 말에 답하는 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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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밴드라면 정규 앨범부터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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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긴 한데, 지금은 좀 빨리 앨범을 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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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며 수연은 사정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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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밴드는 현재 파라독스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데, 최근에 정부지원사업에서 떨어졌다. (수연은 이 부분을 호근에게 상세하게 늘어놓았고, 호근은 상당히 분노했다) 그리고 주현의 콘서트에 세션 밴드로 참여했는데, 그게 계기가 되어서 팬들이 꽤나 많이 모여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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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부분이 있어서, 조금 빨리 일을 진행하려고 하거든요. Ep를 한 4~5곡 정도 해서. 프로듀싱 좀 붙이고, 홍보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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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있는 생각이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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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적인 루트라고 호근은 생각했다. 물론 예전의 밴드들이 하던 방식은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변화해버린 음악 산업인데 아쉬운 놈이 따라가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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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레이블에 낼지는 정했습니까? 레이블도 꽤나 중요한 요소긴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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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레이블은 어때요? 음악 엄청 좋던데. 내가 많이 팔아줄 자신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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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근의 말에, 갑자기 사냥감을 발견한 사자마냥 달려드는 사람들. 서로 자신의 레이블에 오라고 난리치는 세션들이었지만, 수연은 “이미 레이블은 정했어요.” 라는 대답으로 다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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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문제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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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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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블이 좀 인디라서, 홍보가 안 되는 상황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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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홍보… 같은 소리가 이어진다. 아마 이 사람들도 별다른 방법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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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만약 ‘곡과 앨범을 띄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으면 락이 왜 이 꼴이겠는가? 이미 그 방법 쓰고 락 전성시대 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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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제는 어딜가도 다 마찬가지긴 하겠지. 지금 내가 이렇게 앨범 내는 것도 뭐… 몇장이나 팔리겠어요? 그래도 음악 활동은 계속 이어가야 하니까 하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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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교수님 앨범은 좀 잘 팔리는 편이죠. 저는 얼마전에 냈던 거 알아보니까 육백장 팔렸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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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면 그냥 안 내는게 이득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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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세션들의 대화. 명전은 그가 아무리 홍보를 하지 않는다 해도 음악이 저 정도로 안 팔릴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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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튼 홍보 자체는 해야 했다. 존재를 모르는데 어떻게 구매를 하겠는가. 바이럴마냥 수요 없는 공급을 돌리지는 않더라도, “이런 곡이 있습니다. 한번만 들어보실래요?” 정도는 되어야 사람들이 존재를 아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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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곡이 있습니다. 한번만 들어보실래요?” 를 어떻게 하냐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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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끼리 이야기해봐야 답 안나오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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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중 한 사람의 이야기를 계기로, 슬슬 파장되는 커피 타임. 명전은 어떤 식으로 홍보를 돌려야 할지 계속해서 고민을 해 봤지만, 뭔가 뾰족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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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정확히 말하면 뾰족한 수는 많았다. 대부분이 좀 그렇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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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뭐 음원 사재기라거나, 바이럴 같은 거 돌리면 충분히 뜰 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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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틱톡 바이럴인가? 하는 게 대세라고 했던가. 아무튼 돈을 어떻게든 끌어와서 그런 바이럴에 부어버리면 홍보는 잘 될 터.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진 않다는 것이, 명전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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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근처 사람들한테 들려줘도 되죠? 뭐 미공개곡이라서 공개하면 곤란하다던가 그런 거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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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없습니다. 듣고 표절만 안 해주시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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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상도덕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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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을 남기고 헤어지는 세션들. 명전은 딱히 좋은 생각을 떠올리지 못한 채 그냥 집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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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것은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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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 까 하는데. 음. 더해달라고요? 방금 카톡 소리 뭐냐고요? 그러게요. 뭐지. 재현이형이 왜 이 시간에 카톡을 보내. 무슨 노래를 보냈는데? 틀어달라고요? 어 잠시만요. 이거… 틀어도… 돼요? 답장이 없네. 그냥 틀어도 되지 않을까요? 한번 들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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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의 곡이 흘러흘러 들어가, 메이저 기획사의 보이밴드 멤버에게까지 흘러 들어가… 느닷없이 시청자가 수천명이 넘는 인스타 라이브에서, 그대로 재생되어버린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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